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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45화 (45/298)

45화 이게 아닌데

그나저나 묘했다.

이연은 내가 집행한 강경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심지어 군포와 관련한 일과 천마진의 병력을 이동시킨 건 문제의 소지가 있으나 전혀 언급이 없었다.

적어도 한 번은 지적할 만한 일인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먼저 물어볼 수도 없다.

괜한 짓을 해서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다.

“의구심이 드오?”

“……어인 하교이시옵니까.”

“경은 가여운 백성을 옥죄었고, 군권을 행사했소. 한데, 내가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소.”

“황공하옵니다. 만일 벌하신다면 신이 어찌 변명하겠사옵니까.”

“아. 오해하셨소. 벌할 생각은 없소.”

그러니까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의구심이 무럭무럭 커졌다.

결과가 좋아서 그런가?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긴 하다.

어쨌거나 서둘러 해결하고 싶었다.

“백성을 위하였으나 백성을 짓눌렀소.”

“…….”

“하여, 민심을 얻지 못하였으니 어찌 탓하겠소.”

“…….”

그야말로 뇌리를 흔들고, 경종을 울리는 말이었다.

단지 결과가 좋아서 덮는다는 게 아니었다.

만일 내가 백성의 환호를 받고 민심을 품었다면 가볍게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괴질은 수백 명을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역병이지만 나는 십수 명의 죽음으로 모든 상황을 종결했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에서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오직 관의 권위로 강제적 집행을 했을 뿐이다.

그랬다. 허목을 비롯한 여러 관리의 만류에도 나는 시종일관 강경책을 펼쳤다.

나를 향한 백성의 욕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쏟아졌다.

그러나 심각한 민심 이반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직 나를 향한 비난만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혹독하였던 과정을 말끔하게 잊게 했고.

백성의 뇌리에 남은 건 악랄한 송시열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일 내가……

“경이 백성을 설득하고, 눈물로 읍소하며 일을 도모하여 성과를 이뤘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외다. 감히…….”

감히…….

그 뒤의 말은 예상할 수 있었다.

“병력을 이동하였으니까.”

구관당상의 권한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나는 천마진의 병력을 이동시켰다.

그런데 이를 문제 삼고자 한다면 무조건 가능하다.

이연의 말 한마디면 나는 진짜 죽은 목숨이 된다.

그만큼 이 시절 군권을 자위적으로 휘두르는 건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그러나 지금 군권의 발동은 핵심이 아니었다.

바로 민심이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이연이 문제로 삼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내가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라.

백성의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그런데 군권을 행사했다.

더 심각한 건 그 주체가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대신이라는 사실이다.

군왕으로서는 부담스럽고 불쾌한 상황이다.

단지, 내가 민심으로부터 아무런 환영을 받지 못하였기에 일이 덮어지는 것이다.

“군권의 행사는 재해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정1품 구관당상의 권한으로 수행했다고 여길 것이외다.”

바꿔 말해서 나만 예외라는 의미였다.

깜냥도 안 되는 사람이라면 엄히 벌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재해가 심하더라고 해도 전국 단위에서 병력이 요리조리 사정없이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

군주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군권은 무조건 일사불란해야 하는 법이다.

군주가 모르는 병력이 이동은 역모로 직결할 수도 있고.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저 최선을 다한 일로 어쩌면 형장의 이슬로 끌려갔을 수도 있었다.

내가 만약 조금이라도 인정을 베풀었다면 또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이는 반드시 심장에 새길 일이었다.

나는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신은 그저…….”

“되었소. 앞으로도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길 바라오.”

다 알겠는데 이대로 대화를 끝낼 수는 없다.

매번 이연에게 책잡힐까 봐 신경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자세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신은 상황을 보며 가장 효과적인 방책을 사용할 뿐이옵니다. 하온데, 그 순간 재해의 극복과 문제 해결이 아니라 어심의 방향을 고민할 수는 없사옵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오만?”

“때로는 신이 백성으로부터 환호를 받을 수도 있사옵니다. 또한, 눈물로써 백성을 설득할 수도 있사옵니다. 다시 병력을 움직일 수도 있사옵니다.”

“허.”

“신은 장담하옵니다. 만일 신이 백성의 환호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어찌 신의 것이겠사옵니까. 신은 그저 왕명을 수행하는 도구에 불과하옵니다. 도구에 환호하는 민심은 오직 용상의 것이옵니다.”

“해서요?”

“신은 전하께서 신에게 그 정도의 권한을 부여하셨노라고 판단하옵니다. 만일 아니었다면 지금 벌하시옵소서.”

이연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가 점차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쓰임의 방법을 직접 생각한다면 어찌 도구인지 모르겠소만.”

“신은 그저 진심을 고하였을 뿐이옵니다. 만일…….”

“만일?”

“내키지 않으신다면 쓰임을 그만하셔도 되옵니다.”

“이런. 또 시작이오?”

사직 쇼냐는 말이다.

이는 송시열의 업보로다.

어쩔 수 없다.

나는 고소를 삼키며 말했다.

“그리 여기신다면 그리 판단하시옵소서.”

“되었소. 이만하면 경의 진심은 알겠소. 성과로 화답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완벽하게 동의한 느낌은 아니다.

일단 두고 보자는 식으로 여겨졌다.

나도 여기까지 하기로 했는데 문뜩 궁금한 게 있었다.

“하온데 비변사 논의를 직접 주도하셨사옵니까?”

“아니외다. 그들을 불렀소. 비변사 논의가 아니라 그저 내가 한 일이오.”

이연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하나씩 세세하게 말했다.

여태껏 무엇하나 들고 오지 않은 대신들에 대한 불만도 상당했다.

지금 무엇이 필요할까?

뭐라고 해야 할까?

무언가 비효율적이라고 해야 할까?

딱 스치는 게 비변사였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 국립대학에서 역사를 수학(修學)한 엘리트다.

문제는 전문적인 역사 공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사는 수천 년이다.

역사를 전공하였으니 대략적인 내용을 알지만 모든 시대와 상황을 세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이건 내가 게으른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사학자인 교수들도 전공 시대가 있고 중점으로 다루는 주제가 있다.

과거 고려사 전공인 교수가 있었는데 오직 토지제도만 집중했다.

평생 고려 시대 토지제도만 연구한 것이다.

그러니 고작 학부생에 불과했던 나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조선 시대 토지제도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아무튼 나는 조선 시대 정치사를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다.

뭐. 강의에 나온 내용이라면 남 부럽지 않게 암기와 이해를 하고 있지만, 아닌 경우라면 딱 고등학교 수준이다.

그리고 다시 비변사.

비변사는 종래 최고 정치기구인 의정부를 무력화하고 왕권을 억제하는 정치기구다.

이건 팩트다.

만일 비변사를 무력화하거나 조금이라도 힘을 뺄 수 있다면, 보다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으나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분란이 일어날까 우려한 것이다.

조선의 대동단결을 위하여 호포제도 보류하였는데 비변사로 다투는 게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말하고, 이연이 생각하면 될 일이다.

그저 제안에 불과하니까.

“전하. 이참에 비변사를 무력화하고 의정부를 다시 세우는 건 어떠하옵니까.”

“……뭐요?”

“신이 사료하건대…….”

말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이연의 눈동자가 소름 끼칠 정도로 싸늘해졌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건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실제 상황이었다.

“……물러가시오.”

“예?”

“물러가라고 했소.”

“……그리하겠사옵니다.”

장르가 변경됐다.

스릴러로.

냉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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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뭘까……?

갑자기 왜 장르가 바뀐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왕권을 중시하는 이연이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그렇게까지 장르를 변경할 이유는 없지 않나?

설마 호포제 때는 대동단결을 외쳤는데, 지금은 다른 말 해서 감정 상했나?

에이……. 그렇게까지 속이 좁을까.

그런데 이것 말고는 이유가 없는데……?

방구석에 누워서 끝도 없는 고민을 이어갔다.

그러다 보니 잠도 노곤하게 왔다.

등 따시니까 눈이 감긴다.

이러나저러나 역시 집이 제일 좋다는 말은 진리다.

일단 자기로 했다.

“우암!”

하……. 타이밍 진짜.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다.

잔소리꾼 6촌 형 송준길이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이불로 얼굴까지 덮었다.

부디 내가 취침 소식에 송준길이 물러가길 바랄 뿐이었다.

이 와중에도 잠이 몰려왔다.

잠결에 실랑이가 들렸다.

귀를 통해서 뇌로 전해졌다.

아주 날것 그대로 해석됐다.

-잡니다.

-깨우게.

-소인은 뒷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하하. 내가 우암의 형일세. 그러니 묻지. 앞감당은 되나?

-하면, 이렇게 하시죠?

-그래. 묘안이 있다면 꺼내게.

-대감께서 깨우십시오. 직접.

-그야말로 우문현답일세. 현자가 여기 있었군그래.

-과찬이십니다. 하면,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자네도.

개 같은 말이 희미하게 들렸다.

됐고.

나는 잔다.

그런데.

“우암!”

문이 열렸다.

나는 잠을 부여잡았다.

“우암!”

사람이 이불까지 덮어쓰고 있으면 정말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물러가야 하지 않나?

대체 누가 조선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단 말인가.

발가락에 있던 짜증이 목울대까지 올라와서 뇌리를 뒤덮었다.

“좋게 말할 때 일어나게. 발가락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

“…….”

나는 반쯤 풀린 눈으로 일어났다.

실제로 피곤하기도 했으니까.

절대 상석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고.

결국 송준길은 적당한 곳에 앉았다.

“사실인가?”

“형님. 아직 여독이 풀리지도 않았습니다.”

“혹시 그 이불은 계속 그러고 있겠다던가?”

나는 이불을 칭칭 감고 있었다.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중이었다.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형님께서는 계속 그러고 있으실 계획입니까?”

“잔말하지 말고 말하게.”

“예. 이불은 계속 이러고 있을 계획입니다.”

“사실이냐고 물은 말에 답하라고 했네.”

“소제가 잠이 덜 깼는지, 오늘따라 형님의 화법도 영상 대감처럼 질서가 없으시군요.”

“당장 그 이불을 뺏어주겠네.”

“송구합니다. 큰 실언을 했습니다. 그나저나 뭐가 사실이냐는 겁니까.”

“주상께 비변사의 축소 및 폐지와 의정부의 복원을 청하였다고?”

“그렇습니다. 뭐. 형님께서는 반대하실지도 모르지만, 남인은 크게 찬성할 겁니다.”

“자네 삭주에서 병이라도 걸렸나?”

“섭섭하게 또 왜 이러십니까.”

다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정말.

살짝 언짢아졌다.

잠도 오고.

“한동안 잠잠하더니 자네가 또 시작한다는 말이 도성을 뒤덮고 있네.”

“…….”

“설마 이대로 사직상소를 던질 생각은 아니겠지?”

귀찮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냥 축객령을 내렸다.

“사직하겠습니다. 그러니 이만 가시지요.”

“기어이 또 시작할 생각인가?!”

“예. 이만 자야겠습니다.”

송준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 내용은 잠을 한 번에 싹 달아나게 했고.

“주상께서는 누구보다도 왕권 강화를 중시하시네. 한데, 비변사의 축소와 의정부의 복원이라니. 자네가 실성하지 않은 이상 왕권과 정면충돌을 도모할 수는 없네. 작금의 왕권은 선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하거늘 어찌 감당할 생각인가.”

비변사가 왕권 강화와 한편이라고?

오히려 의정부가 방해고?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아니,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었단 말인가.

진짜 너무 당황해서 눈만 깜빡였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도통 모르겠군. 어쨌든 사직상소를 언급했으니 끝을 보겠다는 뜻일 터.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대신 소문은 내주겠네.”

“예……?”

“어차피 자네의 사직상소는 엄포용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작금의 정세에 실제로 사직상소를 올리면 큰 화가 미칠 수도 있으니 적당하게 소문만 내준다는 말일세. 문제가 생기면 소문에 불과했다고 발을 뺄 수도 있게끔. 내가 여기까지는 해준다는 말이네. 하지만 몸조심하게. 주상께서 크게 격노하셨으니까.”

“자, 잠시만요.”

“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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