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그래도 간다
한동안 잠잠하던 궐 안팎은 본격적으로 어수선했다.
그간 도성을 벗어났던 화제의 인물이 너무나도 화려하게 복귀하였기 때문이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이를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
늘 호사가 중 최고라고 자부하는 관우 수염의 관리는 삼삼오오 모여 있는 관리들을 유심히 살폈다.
자고로 섣불리 윗사람에게 말을 꺼냈다가는 역습에 당하거나, 괜한 말을 듣는 등 절대 아름답지 않은 일에 휘말리기 때문에 반드시 피하는 게 옳다.
그래서 다가가서 말을 꺼내기 전에는 늘 상대의 품계나 연령을 세세하게 확인해야 했다.
또, 평소 친분이 두터운 지인이 있어도 피하는 게 옳다.
무릇, 지인은 언제라도 말을 잘라먹으며 맹렬하게 치고 들어오기에 무척이나 불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우 수염은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봤다.
나이와 품계가 비슷하고, 잘 아는 사람도 없다.
딱 좋다.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험험. 자네들을 보면 태평성대가 따로 없군.”
“뭔가? 응? 자네가 바로 그 유명한 관우 수염을 한 호사가로군.”
“나를 한눈에 알아보는 자네야말로 참된 지식인이 아닐 수 없네.”
“됐네. 그나저나 무슨 말인가? 천하가 태평성대는 아니지만 요즘 조정이 잠잠하지 않나? 물론, 주상께서 과감한 개혁을 선언하셨기에 늘 긴장하고는 있네만.”
“자네들은 아직도 부족하네.”
“혹시 우리의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말해주겠나?”
“잘 듣게. 우암 대감이 또 사직을 언급하셨네.”
“사직 상소가 올라왔나?”
“그건 아닐세.”
“하면, 뜬소문이 분명해. 자네는 호사가를 자처하면서 어찌 이리도 사리 분별을 못 하는가.”
“잘 듣게. 소식의 진원지가 송준길 대감일세.”
“확실하군.”
모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관우 수염의 호사가는 흐뭇하게 웃었다.
무릇, 호사가는 남이 경청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순간이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시작일세. 해서, 내가 진지하게 생각해봤지. 이번에는 대체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자네 생각은 궁금하지 않네. 들은 말이나 꺼내 보게.”
“끙. 우암 대감은 누구보다도 자기애가 넘치는 분일세. 한데 이번에 삭주까지 다녀왔으니, 그 일로 앙심을 품은 게 분명해. 고급 인력인 본인을 변방으로 보낸 어명이 불쾌하다는 심경의 표출이지.”
“그 말은……?”
“다시는 객지로 보내지 말라는 압박일 가능성이 상당하지 않겠나?”
“아마도.”
모두 격하게 동의했다.
관우 수염 호사가는 기쁜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호사가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때였다.
“어찌 말을 딱 잘라서 전하나?”
걸걸한 목소리.
털보 호사가였다.
관우 수염 호사가는 가늘게 눈을 뜨며 노려봤다.
“자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쯧. 자네는 빠지게.”
“뭐, 뭐라고?”
“호사가끼리 서로 싸우지 말게. 그래. 털보 호사가. 자네가 말해보게. 뭐가 더 있나?”
“우암 대감이 비변사 축소를 주장하였다는군.”
“헛! 그게 사실인가?”
“이보게. 내가 명색이 호사가일세. 어찌 없는 말을 전하겠나.”
“어처구니가 없군.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털보 호사가가 순식간에 화제를 장악하자 관우 수염 호사가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정보의 질에서 명백한 차이가 났기에 섣불리 나설 수는 없었다.
여차하면 패배를 인정해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털보 호사가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무릇, 비변사는 중앙부서의 최고 실세로 구성된 기구일세. 당상관 세 분 이상이 참석해야 이뤄지는 협의제이지. 어디 이뿐인가? 최종적으로는 주상께 고해야만 일이 진행되는 구조일세. 한데 이를 축소하자는 안을 내었다는 건, 앞으로 정국이 급격하게 냉각될 것이라는 의미일세.”
딱 그때였다.
갑자기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급보일세.”
일제히 고개가 돌아갔다.
염소수염을 한 호사가가 사람들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모두 자연스럽게 길을 터졌다.
관우 호사가와 털보 호사가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지는 건 당연했다.
“급보라니?”
“지난날 우암 대감이 용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사직을 직접 운운하였네.”
“뭐라고?”
“예사롭지 않은 기세로 바닥을 치면서 마음에 안 들면 파직하라고 고래고래 난리를 쳤다는군.”
“그게 정말인가? 주상께서는 어찌하셨다는가.”
“어진 전하께서는 그저 넉넉하게 웃으시며 상황을 좋게 마무리하셨네. 그러자 그 직후 비변사의 축소를 언급하였다고 들었네. 즉, 파직을 선언하여 기선을 제압한 뒤 비변사 축소를 꾀한 것일세.”
“과연 미쳤군.”
“내 말이. 앞으로의 정국은 실로 예사롭지 않을 것이네. 모두 긴장하게.”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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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를 어찌 뜻대로 할 수가 있겠냐마는, 진짜 이건 아니었다.
그 오만가지 일 중에 내 의지가 콩알만큼이라도 들어간 게 있으면 말도 안 한다.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숨 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진짜.
진심으로.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대단해.”
눈을 부라리며 열기를 뽐내는 윤휴였다.
그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는 혼탁했고.
정확하게는 너무 짜증 나서 혼탁했다.
“한때나마 대감의 진심을 믿었던 소생이 한심합니다.”
“무릇 유자(儒者)라면 자신을 되돌아보는 수기치인을 부지런히 해야 하는 법일세.”
“예?”
“이제라도 자신의 한심함을 깨우쳤으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말일세.”
“대감!”
“옛 성현께서 이르셨네. 너 자신을 알라고. 참으로 합당한 말씀이 아닌가.”
“하! 참으로 바른 말이기에 소생이 대감께 그대로 돌려드리지요.”
“알겠네. 잘 받겠네.”
“이…….”
윤휴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열이 제대로 뻗친 게 확실하다.
애석하게도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내 코가 석 자라서.
“갈지자 행보도 적당히 하셔야 합니다. 왕권 강화에 힘을 보태더니 이제 와서 비변사의 축소를 주장하는 건 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
역시 나오는 건 한숨이었다.
그냥 먼 산을 바라봤다.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윤휴는 분한지 계속 혼자 떠들었다.
“종래 의정부와 6조의 체계가 대신의 권한을 보장해줬으나, 비변사는 아닙니다. 주상께서 당상을 임명하지요. 하면, 어찌 됩니까. 당상은 비변사로 인하여 체계를 넘어서는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바로 왕권의 강대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요.”
“…….”
“구관당상은 다릅니까?”
구관당상이 왜?
이거 일단 들어야겠다.
계속 말해 봐.
“또 모르는 시늉을 합니까?”
“모르네.”
“대체 왜 그럽니까?”
“그냥 말하면 되는데 굳이 이유는 왜 알려고 하나?”
“…….”
“아닌가?”
“정말 뻔뻔하군요. 뭐. 양난 이후 왜 비변사가 강화되었습니까. 종래의 의정부나 6조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양난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한두 개의 부서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6조의 모든 영역과 연결되었기에 의정부 체계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여, 당상의 제도를 수립하여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비변사가 아직도 유지 강화되는 것입니다. 의정부 체계에서는 관직이나 관등을 넘는 인사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비변사라는 긴급하고 임시적인 기구가 상설화되어 있으니 가능하지요.”
“…….”
“한데, 대감은 기어이 비변사 축소를 권하였습니다. 이건 왕권의 발목만 잡은 게 아니라 작금의 현황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감께서 이번에 삭주에서 여러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이조판서가 아니라 구관당상이라는 권한을 사용하였기 때문이지요. 소생의 말이 틀렸습니까?”
“…….”
“결국 선생은 명분도 틀렸고, 현실 감각도 형편없으면서 어심을 어지럽힌 겁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습니다. 아주 형편없고요.”
“…….”
“아직도 어쩌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십니까? 이 시국에 의정부로의 회귀는 군왕에 대한 도전 그 자체입니다.”
윤휴의 말은 다 중요한데 쓸데없이 길었다.
그래도 일단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의정부-6조 체계가 더는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도 하나였다.
일이 더럽게 꼬였다는 거.
이연이 나를 죽일 듯 노려본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생각이라는 걸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윤휴부터 치우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뭔가?”
“허수를 던질 수야 있으나, 사안을 보면서 해야지요. 소생으로서는 그저 기가 막힐 뿐입니다. 비변사라니.”
“허수라니?”
“설마하니 비변사 축소를 진심으로 청하였겠습니까. 대체 의도가 무엇입니까.”
“의도 없네.”
“함께 세종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한데, 이리 나올 겁니까?”
“그건 내가 할 말일세. 의도가 없다는 데 계속 추궁하는 사람이 누군데 이러나?”
“계속 비밀을 만드니 추궁하는 것이지요!”
“비밀 없네.”
“!!!”
윤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황당해서 물었다.
“뭘 또 그렇게까지 놀라나?”
“비변사 축소가 진심이었다는 겁니까?”
진심이긴 했다.
이는 모두 내가 무식해서 생긴 일이었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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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대갈성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사가의 분위기는 엄숙해졌다.
마당에서 비질 따위를 하던 머슴들은 화들짝 놀랐으나 허둥대지 않았다.
눈치껏 조용히 자리를 비우듯 움직였다.
까치발로 움직이던 그들의 귀로, 노기가 가득한 윤선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기어이 송시열 이자가 조정을 어지럽히는구나!”
윤휴는 한숨을 푹 쉬면서 답했다.
“소생이 최대한 만류했으나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답답합니다.”
“내가 늘 말하지 않았나. 송시열은 무언가를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설마 그가 이런 식으로 조정을 우롱할지 몰랐습니다. 주상께서도 상심이 매우 크실 겁니다.”
“답답하군. 참으로 답답해.”
그때였다.
“조금 더 지켜보시지요.”
갑자기 허목이었다.
평소라면 먼저 나서서 송시열의 씹어 먹을 듯 욕했을 사람이 느닷없이 관망을 청했다.
윤선도와 윤휴가 놀라서 쳐다봤는데, 이는 무척이나 당연한 행동이었다.
“아.”
허목은 다소 민망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인사이기에 상황을 더 지켜보자는 뜻이었습니다.”
“더 지켜볼 게 있겠나? 제 입으로 사직을 운운하고, 주상께는 파직하라고 겁박을 하였어. 윤휴에게는 비변사 축소가 진심이라는 망언까지 했네.”
“그렇긴 합니다만…….”
“왜 그러나?”
“이보게. 윤휴.”
허목은 윤선도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고 윤휴에게 물었다.
“갑자기 소생입니까?”
“괴이한 소리는 넣어두게. 어쨌든 자네 역시 송시열과 뜻을 함께하고 있네. 그간 느낀 바가 없나?”
“느낀 바라고 하셨습니까? 도통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그의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느끼지 못하였는가?”
“예?”
“아직도 모르겠나? 그는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인사일세. 손과 발이 움직이기 전에 한 말은 전혀 의미가 없어. 행동에 나선 뒤에 하는 말 또한 절반은 걸러야 하고.”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일세.”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듣고 있던 윤선도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지금은 일단 지켜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표면으로 도출된 현상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그를 공격했다가는 난처한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습니다.”
윤선도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목은 서인 특히 송시열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던 인사였다.
그런데 이런 신중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온건파로 분류되는 허적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자네, 삭주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저 괴이한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괴이한 것이라니?”
“우암 송시열 말입니다.”
“…….”
윤선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목을 바라봤다.
듣고 있던 윤휴도 마찬가지였다.
허목이 송시열을 상대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하하하. 그나저나 주상께서 소생에게 하교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윤휴가 말을 돌렸다.
사실 그 역시 이대로 송시열과 싸우기보다는 관망하는 쪽을 선호하긴 했다.
어쨌든 그와는 같은 길을 가기로 약조하였으니 말이다.
다만, 동지가 되기로 하였는데 속을 숨기는 꼴이 못마땅했을 뿐이었다.
“주상께서 하교하신 일이라고 했나?”
“어서 말해보게.”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윤휴는 준비해온 문서를 내밀면서 말했다.
“국고를 채우고 백성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소생이 시작하였으나 두 분께서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겸손하게 말했으나 자신감이 넘쳤다.
문서의 내용을 확인한 윤선도와 허목은 크게 감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를 봐도 보탤 내용은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름의 무게를 더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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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중상모략이 도성을 뒤덮고 있었다.
내가 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 의도가 아니었으니 중상모략이 맞다.
나는 무조건 그렇게 생각했다.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렇게 여겼다.
그래서일까?
난국을 돌파할 묘수를 찾지도 않았다.
사실 고민한다고 찾아지지도 않을 것 같기도 했고.
게다가 이럴 때는 바쁘게 움직이기보다는 방구석에 앉아서 세상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는 게 옳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연이 크게 오해한 상황이지 않은가.
대신들을 찾아다니며 해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연과 꼬인 실타래를 잘 풀어야 했다.
그래서 사람을 한 명 불렀다.
지금 막 도착했는데,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윤선거였다.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는 눈치를 보면서 은근슬쩍 앉았다.
“앉아도 되겠나?”
“지금 서 있나?”
“아. 미안하네.”
그랬더니 헐레벌떡 일어나는 윤선거.
나는 진짜 악당이 분명하다.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또 미안하게 됐네.”
“썩 앉게.”
“암. 응당 그래야지.”
다시 재빨리 앉는 윤선거.
그는 정말 쉬지 않고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저런다.
이건 눈치를 보는 건지, 안 보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눈치를 볼 거면 변승업처럼 빠릿빠릿하기나 하든가.
여러 가지 의미로 신념의 강자가 아닐 수 없다.
“소식을 접했네. 몇 번이나 자네를 만나고자 했으나 끝내 대문을 넘지 못했네.”
집 앞까지 왔다가 돌아갔다는 말이다.
과거 송시열이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까지 눈치를 보는 걸까?
아니면, 윤선거라는 캐릭터가 원래 이런 걸까?
어쨌든 귀찮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내가 무슨 짓을 하면 괜한 탈만 날 뿐이다.
나는 그냥 내가 정한 길을 우직하게 가기로 했다.
“미촌. 자네 혹시 어의(御醫)를 아나?”
“갑자기 어의는 왜? 설마 그들이 자네에게 실수라도 했나?”
“……아냐고 물었네.”
“아. 내가 또 실언했네.”
“아냐고 물었다고 했네만.”
“우암. 아무리 자네라도 어의를 함부로 할 수는 없네. 그들은 군왕의 옥체(玉體)를 살피는…….”
윤선거는 밑도 끝도 없이 어의를 보호했다.
정말 쓸데없는 말이긴 한데, 듣고 보니 한 가지는 맞다.
아무리 나라도 어의를 사적으로 불러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간단하게 처방전이나 한 장 받을 것도 아니고.
여전히 절절하게 어의 불가론을 소심하게 부르짖고 있는 윤선거를 보며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들은 그냥 두겠네.”
“참으로 잘 생각했네.”
“대신 자네가 나를 좀 도와주겠나?”
“도와주다니?”
“잘 부탁하지.”
윤선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나와 함께 무언가를 도모한다는 게 정말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거들 사람이 필요한데, 윤휴는 바쁘니까 윤선거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