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48화 (48/298)

48화 조선을 노래하라(1)

윤선거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당혹감이 잔뜩 묻어난 눈빛이었다.

“우암. 대체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라니?”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사방을 바라봤다.

동서남북으로 잘 빠진 도로가 보였다.

남북가로변으로는 물길이 흐르고, 도랑도 잘 정비되어 있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행랑이 가득했다.

다시 윤선거를 바라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시전행랑에 처음 오나?”

“당연히 아닐세.”

“한데, 무슨 일인지는 왜 묻나?”

“그러니까 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본 걸세.”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물어봤어야지. 딱 보게. 도성에서 이곳보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 있나?”

“없네.”

나는 방긋 웃으면서 윤선거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래서 더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러나?”

“나는 자네가 진정한 벗이라고 여긴다네.”

“암.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일세.”

“그래서 부탁이 있네.”

“자네 부탁을 어찌 거절하겠나? 그러지 않으면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아. 이런. 나도 모르게 진심…… 어쨌든 진심으로 도와줄 것이네.”

“뭐 하나?”

“진심을 말하였네.”

“…….”

정말 진심으로 도와줄 거 같긴 하다.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으니까.

전체적으로는 짜증 나지만, 가끔 송시열의 성격이 마음에 들 때도 있기는 하다.

주로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될 때.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 이어질수록 윤선거의 눈동자는 거세게 흔들렸다.

떨리는 게 아니라 그냥 흔들렸다.

마음껏 흔들리길 바랄 뿐이었다.

------

딱 하루가 지났다.

시전 행랑은 어제처럼 활기가 넘쳤다.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나는 방긋 웃으면서 흐뭇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짐꾼들은 부지런히 짐을 옮겼고, 머슴들은 내려진 짐을 여기저기 잘 배치했다.

돗자리도 깔고, 의자도 들여오고, 책상도 놓았다.

조금은 조잡하지만 대충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천막도 두었다.

또, 여기저기에 목을 축일 수 있는 냉수도 준비하였다.

이만하면 아주 만족스러웠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내 눈에는 혼이 나간 듯 뻘쭘한 표정을 한 윤선거가 보였다.

이토록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 공간에서 참으로 부적절한 처세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진심으로 답답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목을 살살 긁으면서 다가가서 말했다.

“뭐 하나?”

“아…….”

“미촌?”

윤선거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계속 재촉하자 어색하게 웃더니 슬쩍 옆으로 몸을 옮겼다.

내 눈이 절로 가늘어지는 순간이었다.

“설마 이제 와서 몸을 사리는 건가?”

“……지금 몸을 사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네.”

내 시선을 피한 윤선거는 좌우를 돌아보기만 했다.

나는 일단 달래듯 말했다.

“미촌. 병세가 있는 백성에게 약재를 나누는 일일세. 한데, 어찌하여 이러나?”

“우암. 나는 죽어도 백주에 노상에서 이리할 수는 없네.”

그동안 겪은 윤선거의 성격을 미뤄볼 때 이건 정말로 완강한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싫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윤선거는 필요했다.

“백주가 싫은가? 노상이 싫은가.”

“둘 다.”

“하면, 돌아가게.”

“정말인가? 뒤탈은 없는 건가?”

“없네. 다만, 자네를 경멸하겠지.”

“우, 우암.”

이 시절 사대부가에서 ‘경멸(輕蔑)’이라는 건 최고 수준의 욕이었다.

그냥 사람으로 안 본다는 말이었으니까.

과연 윤선거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렸다.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들었으니 그럴 만했다.

“그건 자네 뜻대로 하더라도 제발 혼자 경멸하면 안 되겠나?”

“……뭐?”

“부디 자네만 나를 경멸하게. 이 사람, 저 사람을 선동하여 모두가 억지로 나를 경멸하게 하지 말고. 부탁하는 바일세.”

“……자네 지금 뭐 하나?”

“또, 다른 사람을 붙잡고 나를 경멸한다는 것에 동의하라고 강제하지도 말고. 이 두 가지만 약조한다면 나는 즉시 돌아가겠네.”

아. 송시열이여.

당신은 대체 왜 이런 인생을 살아온 것인가.

휴.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송시열이 경멸한다고 하니 두려운 것이었다.

내가 여기저기 소문을 낼까 봐.

또, 분위기 조성해서 왕따시킬까 봐.

나는 이마에 솟구치는 힘줄을 꽉 누르며 말했다.

“싫네.”

“우, 우암.”

“택일하게. 여기서 약재를 나누거나, 돌아가서 나의 중상모략에 당하거나. 무엇을 선택해도 상관없네. 나 역시 병마와 싸우는 백성을 뒤로하고 제 체면만 챙기는 사람을 그냥 두고 싶지는 않으니까.”

“!!!”

윤선거의 눈동자는 파르르 떨렸다.

그의 답변이 이어지기 전에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그러니까 내가 기다리던 사람 중 한 명이 온 것이다.

바로 허목이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크게 반겼다.

“어서 오시오. 선생.”

예상과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허목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 꼴이 너무나도 정겨웠다.

허목은 주변을 세세하게 살피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백주에 노상에서 이게 무슨 짓이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내가 무슨 짓을 할 때 선생의 동의라도 얻어야 하오?”

“하! 누가 그걸 물었소?”

맞는데……?

그걸 물어본 것 같은데?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무엇을 물으셨소?”

“하!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고 하여 서둘러 달려왔거늘!”

“이왕 왔으면 협조적으로 행동하실 수 없소? 안 왔으면 모를까, 이리 오셨지 않소이까. 나는 서찰을 보냈을 뿐, 선택과 결정은 선생이 하셨소. 내 말이 틀렸소?”

“……큰일이 났다고 하여 구경하러 왔을 뿐이오.”

“뭐. 알겠소. 그런데 어차피 할 일도 없지 않소이까?”

“뭐, 뭐요?!”

“그렇지 않소이까. 허구한 날 방구석에서 서책이나 읽지 않소?”

너무 맞는 말을 했을까?

허목의 얼굴은 시뻘게졌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그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아주 흡족했다.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해서, 나를 부른 이유가 뭐요?”

“시간은 많고 재주도 많소. 그러니 나누면 좀 어떻소이까.”

“……뭐요?”

“일전에 보니 의술에 재능이 있었소. 나누는 게 어떻소?”

“하!”

“이른바 재능기부(才能寄附)라고 하오.”

“이보시오!”

“험험. 우암. 이건 내가 봐도 조금 과한 처사일세.”

허목을 잘 설득하고 있는데 윤선거가 살짝 끼어들었다.

이 사람은 그냥 눈치만 볼 뿐,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냥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미촌. 자네는 빠지겠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네.”

“참으로 우습소이다.”

“미촌이 원래 좀 웃기오.”

“우암. 말이 과하네.”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소.”

복잡한 대화가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며 이어졌다.

허목은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더 자극하지 않고 그에게 시간을 줬다.

딱 10초 정도 주고 말을 보탰다.

“내키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물러나시오.”

장사진을 친 병자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들도 돌려보내면 되니까.”

허목의 얼굴은 야차처럼 흉악해졌다.

그러니까 안 간다는 뜻이다.

진짜 이만하면 허목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왜……?

허목은 이미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병자들을 두고 돌아갈 정도로 야박한 인사가 아니다.

그리고

“대감.”

드디어 가장 기다리던 변승업이 왔다.

사실 변승업이 아니었다면 이번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한 조정을 대신하여 막강한 금권(金權)을 휘두를 수 있는 인물이니까.

나는 크게 웃으며 격하게 환영했다.

허목이 왔을 때보다 더 열렬하게 환영했다.

“하하하! 어서 오게. 괜히 바쁜 사람 부른 건 아닌지 모르겠네.”

“하! 나도 바쁘오!”

“대감. 바쁜 것과 중요도는 다릅니다. 무릇, 중요할수록 바쁘기도 하고요.”

역시 변승업.

어떤 경우라도 예상을 넘어선다.

이 얼마나 기쁘지 않겠는가.

방긋 웃으며 얼마 전 변승업과 나눈 대화를 상기했다.

-자네, 고관대작들에게 뇌물도 주나?

-……송구합니다. 부끄러운 일인 줄 알지만, 소인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뭐. 어차피 뺏길 수밖에 없는 돈이니 자발적으로 내놓고 있다는 걸 알고 있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냥 그 돈 나 주게.

-예?

-그만큼 내게 투자하라는 말일세.

-……무슨 말씀입니까?

-대의를 위하여?

-솔직히 걱정이 큽니다.

-이런. 이 말을 미리 하지 않았군. 앞으로 자네를 도모하려는 모든 모략을 막아주겠네.

-저, 정말입니까?

-전하께서 자네의 이름을 기억하겠노라 이르셨네.

-!!!

-어떤가?

-소인은 오직 대감만 바라보면 달릴 것입니다.

-이런. 전하께서 자네의 이름을 기억한다니까?

-속으로 매일 천세를 천 번씩 외칠 것입니다.

-과연 충신이군.

-별말씀을요. 우리 전하…….

-아직 그 정도는 아닐세.

-송구합니다. 소인이 너무 흥분하여 크게 실언했습니다.

-처음은 괜찮네.

아주 부드럽고 아름다운 기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앞으로 많은 약재가 필요할 것이네. 어떤가. 모두 구해올 수 있겠나?”

“이미 상시로 사용할 약재는 모두 챙겨왔습니다.”

“오.”

“또한, 조선에서 소인이 구하지 못하면 누구도 구할 수 없습니다.”

“오오.”

“과장 좀 보태서, 시간만 넉넉하면 내의원보다 뛰어난 약재 창고를 세울 수 있습니다.”

“참으로 듬직하군. 늘 자네를 보면 고마운 마음뿐일세.”

“이런. 대감. 우리끼리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닙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변승업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한 윤선거와 복어처럼 얼굴이 부풀어 있는 허목을 바라봤다.

아주 듬직했다.

싱그러운 미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이제 드디어 시작이다.

그리고 선언했다.

“병세가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와서 줄을 서도 된다.”

한 가지 단서를 덧붙였다.

“단, 양반은 열외이니라.”

그 사람들은 알아서 의원을 부르니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허목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아주 기분이 좋다.

-----

정갈한 백의를 입은 허목은 길게 늘어진 줄을 쳐다봤다.

얼추 눈으로 봐도 100명은 넘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많은 인원을 살펴야 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동안 의원으로부터 아무런 보살핌을 받지 못한 이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쓴 미소가 감돌았다.

그동안 백성들이 참으로 고달팠다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맞다.

바로 가여운 백성을 위하여 남은 것이다.

다른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화급을 다툰다고 하여 여기까지 달려온 건 송시열의 난처함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딱 그 이유뿐이었다.

정말이었다.

“흥!”

“소, 송구합니다. 소인이 선생께 누를 끼쳤습니다.”

가장 앞에 선 백성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허목은 내심 당황하며 애써 웃었다.

“자네 들으라고 한 게 아닐세. 일단. 앉게.”

“가, 감사합니다.”

“그래. 보아하니 눈에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서, 선생. 으…… 눈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눈병에 걸린 것 같은 게 아니라 눈병일세.”

“아.”

“눈이 붉게 충혈되고 동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 눈병일세. 이럴 때는 우황 2푼을 물에 섞어서 복용하면 괜찮아질 것이네.”

처방을 내렸는데 반응이 없다.

허목은 헛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눈알을 굴리며 부지런하게 서성이는 윤선거가 보였다.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비록 당색은 달리했으나 인간적으로 윤선거라는 인사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 무엇보다도 윤선거도 송시열의 괴이한 짓에 휘말렸다는 걸 알기에 안쓰럽기도 했고.

“……우황 2푼이라고 하였소.”

“아. 우황 2푼이라고 하셨소?”

“그렇소.”

윤선거는 힘없이 웃으면서 약재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허목은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

기가 막혔다.

진짜 기가 막혔다.

“산후에 발열과 오한이 있고 머리와 몸이 아프며 흉협과 팔다리 관절이 아플 때는 육군자탕(六君子湯)에 혈을 조화시키고 기를 움직이는 약재를 약간 더하여 10첩을 처방해줄 것이네.”

모르는 게 없었다.

어떤 병자가 와도 막힘없이 처방했다.

“양 손발에 작은 부스럼이 많이 생기는 건 조 때문일세. 방치하면 팔꿈치와 무릎까지 부스럼이 생기며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고 열이 나는 법이네. 다행스럽게도 지금 내게 보여 빨리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진탕에 건강과 부자를 빼고 강활과 연교를 20첩 내어주겠네.”

아니, 의술에 이토록 해박할 수가 있을까?

명의(名醫)란 바로 허목을 위해서 존재하는 말이 분명했다.

진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역시 허빈치였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윤선거를 바라봤다.

“강활과 연교……. 잠시만 기다리게.”

“한데, 얼굴이 어찌 그리도 붉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닐세.”

여전히 부끄러움을 이겨내지 못하였으나 충분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시작이 아주 좋았다.

“한데, 이판은 어찌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소?”

허목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 원래 지도부는 실무에 나서지 않는 법이오.”

“하! 광기가 골수까지 미치셨소?”

“잘 보셨소.”

“…….”

시작은 아주 성대했다.

물론 조선에도 기존의 의료 시설도 있다.

그건 그대로 돌아가고, 여기도 이대로 돌아가면 될 일이다.

처음에는 그쪽을 강화하는 방편도 생각해봤으나 여러 절차가 필요했다.

재정도 그렇고.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만든 의료 시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의사 허목과 약사 윤선거 그리고 자본가 변승업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아. 가장 중요한 총괄이사인 나.

흐뭇하게 웃으며 상황을 살폈다.

“허목 선생과 미촌 대감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참으로 감탄하였습니다.”

“……혹시 이 판을 주도한 나의 대단함은 느끼지 못했나?”

맑게 웃던 변승업은 멈칫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찰나였다.

순식간에 나를 바라보더니 존경의 눈빛을 창조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자네는 늘 바른말만 하는군. 조정의 대간과 사관이 자네를 보고 배워야 할 것인데.”

“무릇, 세 치 혀를 가진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바람직하군.”

훈훈한 대화를 이어갔다.

마음이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

이연의 시선은 장계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내관이 들어왔으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여전히 장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고하라.”

“구관당상 송시열의 행보가 묘하옵니다.”

“묘하다?”

“시전행랑에서 백성의 병세를 살피고 있사옵니다.”

장계를 살피던 이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비변사 정계 개편을 운운하며 조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는 태연하게 백성을 만나고 있다.

심지어 일전에 모종의 경고를 하였는데도 말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내관을 바라봤다.

“동행은 누구인가.”

“윤선거, 허목, 변승업이옵니다.”

“…….”

참으로 괴이한 조합이었다.

서인의 중추인 윤선거, 남인의 중추인 허목 그리고 역관 변승업.

특히, 허목은 어명이 아니라면 송시열과 같은 자리에 있을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경우일까.

그 순간 이연의 뇌리로 스치는 게 있었다.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허…….”

장계를 내리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런 흉악한 인사를 보았나.”

“저, 전하.”

“하하하. 이런 인사를 보았나. 이런 인사를.”

이연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만, 그 모습이 참으로 괴이하였기에 내관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눈치만 살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