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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49화 (49/298)

49화 조선을 노래하라(2)

돌아가는 사정이 예상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났다는 걸 파악한 송준길의 표정은 어두웠다.

마음도 천근만근이었다.

나오는 건 한숨이었고, 늘어나는 건 근심이었다.

한숨만 내뱉어도 목울대는 퍽퍽하고 건조했고, 근심은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다 알겠는데 왜 여기서 그러시오?”

“아니, 호판.”

“바쁘오. 이곳은 나라의 곳간을 책임지는 호조판서의 집무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괜한 말을 들어줄 상대를 찾는다면 다른 곳을 가시오.”

“호판. 참으로 서운하오.”

송준길의 눈동자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서운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허적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보면 대사헌과 내가 관포지교(管鮑之交)라도 되는지 알겠소.”

“대의를 위하여 의기투합하였거늘 관포지교가 아니 될 건 또 무엇이오? 참으로 섭섭하오. 아니, 뭐가 그렇게 바쁘오?”

“바쁩니다. 주상께서 소금 생산과 관련한 개혁안을 요구하셨소. 물론, 원안을 하달하면 되겠으나 단지 그대로만 집행한다면 대신들이 왜 존재하겠소? 그러니 여러 장계와 사례를 참고하여 더 좋은 방편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오. 소금 생산지의 수령들에게도 사람을 보내어, 살펴볼 만한 일이 있는지 확인하여 보고하라고 했소. 그러니 어찌 바쁘지 않겠소이까.”

“크게 감탄하였소.”

“최근 들어서 크게 과한 것 같소만.”

두 사람이 지금껏 당색이 다름에도 원만한 관계였던 건 사실이었으나 경우가 과하다.

그러니 허적이 괜한 말을 한 게 아니었다.

물론, 송준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응수했다.

“말하지 않았소이까. 관포지교는 아닐지라도 동지는 될 수 있다고요. 정확하게는 동지의 동지겠지만 말이외다.”

“동지라. 같을 동(同), 뜻 지(志). 뜻이 같은 이를 동지라고 하지요. 예. 대사헌의 말대로 나는 이판과 의기투합했소. 한데, 그는 여전히 뜻을 나누지 않으니 동지가 맞는지 모르겠소. 혹시 대사헌은 그의 속내를 아시오?”

“실은 요즘 우암의 일로 너무 답답하오. 이를 상의할 수 있는 이가 호판밖에 없으니 어찌 찾아오지 않을 수 있겠소.”

“사사롭게는 동생의 일이거늘 왜 내게 상의하오?”

“붙잡고 아무리 말을 해도 도통 듣지 않소. 언제부터인가 나를 피하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요.”

“피하는 것 같은 게 아니라 피하는 거 맞소. 이판은 대사헌을 무척이나 싫어하오.”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하오?”

“되었소. 어쨌든 비변사 축소와 의정부 복원을 청한 이판의 일로 찾으셨을 것이외다. 하지만 나 역시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소이다.”

허적이 고개까지 저으며 난색 하자 송준길은 알만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직까지 운운한 걸 보니 그냥 물러설 생각은 아닌 것 같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소. 지금까지 주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는데 갑자기 이러니 말이외다.”

“이판의 속은 이판만 알지요. 나는 이판의 행보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기로 하였소. 평가는 추후의 일이니까.”

송시열을 비판하는 듯한 말이었으나, 다시 곱씹으면 전혀 아니었다.

어떤 행보를 하더라도 의도를 살피지 않고 지지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래서일까?

송준길의 눈에는 이채가 띄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남인의 영수인 허적이 이 정도의 신뢰를 보이는 건지 참으로 묘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송시열이 말이다.

그때였다.

호조의 관원으로부터 급보가 전해졌다.

송준길과 허적은 황당함을 숨길 수 없었다.

“비변사와 사직 상소를 운운하더니…….”

“백주에 시전 행랑에서 의원 흉내를 낸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의 성질은 절대 우호적이지 않았다.

허적은 볼을 씰룩이며 조소를 날렸다.

“이거 대사헌의 아우님께서 아주 제대로 실성을 하셨나 보오?”

“끙. 일단 가서 상황을 봐야겠소. 말만 들어서는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말이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 어처구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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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봉사활동은 순탄했다.

장사진은 끝없이 펼쳐졌고, 허목과 윤선거는 부지런히 일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알 수 없는 불만이 상당하게 쌓여 있는 것 같았으나, 내가 알 필요는 없다.

아니, 구체적으로 말을 하는 것도 아닌지라 알 수가 없다. 이럴 때는 말을 안 한 본인들이 잘못한 것일 뿐, 안 물어본 내가 잘못한 건 없지 않겠는가?

또, 굳이 물어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도 없고.

흐뭇하게 웃으면서 내가 맡은 질서 유지에 힘을 썼다.

원래 질서 유지는 가장 포악한 사람이 해야 하기에 내가 맡았다.

그런데 아주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는 쌍교가 보였다. 하면, 고관대작이라는 걸 의미한다.

가뜩이나 복잡한 곳에 굳이 쌍교를 타고 나타나는 고관대작이 어떤 놈인지……. 어떤 분이구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너무나도 익숙한 쌍교의 주인은 바로 나를 가장 피곤하게 하는 송준길이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피곤한 일이기에 대충 손을 내저었다.

그 즉시 내 눈치를 보며 줄을 섰던 백성들이 부지런히 움직였고 송준길의 쌍교를 차단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100명이 넘는 백성들의 장사진에 포위되었으니 제아무리 송준길이라도 쌍교에서 당분간 하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자리를 피할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송준길의 끝없는 잔소리로부터 적어도 오늘은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흡족하게 웃으면서 적당하게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딱 그랬는데 반대편에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노인이 있었다.

보자마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윤선도였다.

꼬장꼬장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피해야 한다는 걸.

등을 돌렸다.

그런데 또 다른 쌍교가 다가왔고, 익히 잘 아는 이가 내렸다.

허적이었다.

아주 반가운 등장이라고 잠시 여겼는데, 어째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나의 도주로는 조기에 차단되고 말았다.

“우암.”

어느새 송준길이 지척까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표정이 정말 심각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왜 왔습니까?”

“나라고 오고 싶어서 왔겠나?”

“잘 오셨습니다. 오신 김에 일이나 하십시오.”

“답답하군. 지금 난리가 났네.”

“난리라니요?”

“주상께서 자네의 일로 크게 노하셨네.”

이연은 왜 자꾸 노여워하는 걸까.

비변사 때문일까?

대충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또 그 이야기입니까? 소제가 알아서 한다고 했습니다.”

“어디 그뿐만이겠나? 백주에 노상에서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병자를 살피고 있습니다만.”

“누가 그걸 몰라서 묻나?”

“그러면 대체 왜 묻습니까? 말 좀 제대로 하십시오.”

“…….”

송준길의 말문이 막혔다.

나도 어느새 송준길의 잔소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체득한 것 같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백주에 이토록 괴이한 일이라니?”

어느새 허적과 윤선도도 말을 보탰다.

그러자 허목과 윤선거도 다가왔다.

한숨을 쉬며 좌우를 슬쩍 돌아봤다.

갑자기 등장한 성리학의 거장(巨匠)들로 백성들의 분위기가 아주 흉흉했다.

다들 눈치도 살피고.

나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군요.”

이건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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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행랑 근처에는 제법 괜찮은 주막이 하나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은지라 멀리 가지 않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마주한 이들을 한 명씩 쳐다봤다.

남인의 허적, 윤선도.

서인의 송준길, 윤선도 그리고 나.

그러니까 조선 정계를 쥐락펴락하는 인사가 모두 모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윤휴가 안 따라온 건 다소 의외였다.

그렇다고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윤선도의 기세가 워낙 매서웠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우호적이지는 않았지만, 그중에도 윤선도는 정말 매서웠다.

이쯤 되니 이제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대체 왜 여기까지 다들 달려왔는지 말이다.

최선을 다하여 썩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는데 윤선도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주자께서 이르시길 성리학과 의술은 대도와 소도라고 하셨소.”

갑자기 주자가 왜 튀어나와?

그냥 윤선도를 빤히 쳐다봤다.

“물론 소도가 이단은 아니오. 소도 역시 도리이긴 하지만 그 도리가 적을 뿐이외다. 농포, 의복, 백공 따위도 도리를 내포하고 있지만, 한쪽으로만 도리를 구하려고 하므로 크게 통하지 않소.”

“……병자를 구하는 의술이외다. 진실로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도리는 충분하오만.”

그 순간 모든 시선에 내게로 쏠렸다.

뭐라고 할까?

마치 귀신…… 아니, 미친놈을 보는 듯한 눈빛이라고 할까?

느낌 왔다.

뭔가가 있다는 걸.

또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하! 주자께서 의술의 도리는 작으므로 철학에 의존해야 한다고 하셨소. 무릇, 성리학은 인체보다 우주를 이해하오. 하여, 의방유취에서조차 의원은 성리학을 익혀야 한다고 하였소. 바람직한 의원은 경전을 읽어 성리를 밝힐 줄 아는 사람이외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성리에 밝으면 무엇이든지 다 통할 수 있기 때문이오. 또한…….”

그러니까 의사도 철학자가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 무슨 철인(哲人)국가야?

그냥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허목 선생은 성리학에 통달하였으니 의원의 자질이 충분하오만.”

내가 귀찮다는 듯 말하니 윤선도의 얼굴이 뻘게졌다.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보기 좋았다.

“인체는 선험적인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규정되오. 하여, 철학은 근본이 되고 의술은 말단이외다. 성리학의 본말론에 의하면 의술은 말업(末業)이 될 수밖에 없소.”

“…….”

“이를 모르지 않을 건데 대체 그런 허무맹랑한 언행을 하는 건 저의가 무엇이오?”

“저의라고 하셨소?”

“하면, 아니오?”

윤선도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심각한 표정으로 열변을 토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헛웃음도 안 나왔다.

그러다가 문뜩 떠오르는 게 있었기에 썩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허목 선생만이 아니라 나와 미촌도 멈추라는 것이오?”

“당연하오.”

“…….”

“아무리 당색을 달리할지라도 사대부로서 품위를 손상할 수는 없소. 양사의 대간이 이판을 탄핵하여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일이외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당장 멈추시오.”

“하면, 저들은 어찌하오?”

“의원의 일이오.”

“의원의 일이 아니라 의술을 아는 모든 이의 일이오.”

“하! 참으로 답답하오. 같은 말을 또 해야 하오?”

정말이지…… 진짜 개소리도 최선을 다해서 하는구나.

이래서 조선 사대부가 무섭다.

개소리를 철학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더 듣고 싶지도 않았다.

목울대로 욕설이 치솟았다.

정확한 언어로 구현되기 직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머릿속은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러워졌다.

숨이 턱턱 막혔다.

식은땀이 흘렀다.

등이 축축해졌다.

어지러웠다.

손가락을 꽉 쥐고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호흡이 곤란했다.

이 순간 든 생각은 오직 한 가지였다.

지금 숨을 내뱉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필사적으로 숨을 내뱉고자 했다.

그러나 숨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죽음이 떠올랐고 악을 쓰며 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지금껏 간헐적으로 인지되었던 송시열의 방대한 지식이 무서운 속도로 뇌리를 흔들었다.

“!!!”

전율.

그랬다.

바로 전율이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당대 최고의 학자 송시열의 모든 것이 오밀조밀 배치됐다.

지금 내가 느끼는 방대함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 떨릴 정도였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내게 벌어졌는지 궁금해할 여유는 없었다.

송시열의 모든 것을 취하게 된 이 순간 나는 알게 됐다.

정확하게 알게 됐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대동단결하여 나를 압박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썩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를 절대 용인할 수 없다.

그래서 말했다.

정확한 내용을 담은 말을 던졌다.

“나는 선생처럼 백성의 죽음을 경전과 붓으로 정당화하지 않소.”

그러니까 정확한 핵심이었다.

싸늘하게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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