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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50화 (50/298)

50화 조선을 노래하라(3)

성리학은 무결(無缺)하다.

작금의 천하에서 성리학을 대리(代理)할 수 있는 통치 이념은 없다.

하여, 이 시절 성리학은 치국(治國)을 위한 최고의 학문이다.

그저 수백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성리학자만의 전유물이 되어 그들의 논리를 대변하였을 뿐이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최전선에 있다.

“작금의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가 아니오.”

나는 멈추지 않기로 했다.

최선을 다하여 칼을 휘두르기로 했다.

내 눈앞에 있는 이 오만한 학자들을 향하여.

“작금의 조선은 성리학자의 나라에 불과하오.”

선전포고라고 해도 무방한 말이었다.

급격하게 싸늘해진 공기를 온몸으로 만끽했다.

나의 힐난은 윤선도의 말문조차 막히게 했다.

어쩌면 도를 넘은 무례함에 말문이 막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윤선도의 사정에 불과하다.

“도리(道理). 사람이 행해야 할 마땅한 길.”

윤선거는 병자를 고쳐야 할 의원들의 의술에 담긴 도리가 소도라고 했다.

이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질병을 치료할 때 음양오행의 조화를 회복하라. 그러나 이는 병자 한 명에게만 국한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저 병자 한 명을 치료하는 건 소의(小醫)에 불과하다. 역병은 기근과 함께 다가오며, 천기의 부조화로 발생하므로 의원의 일이 아니다. 이는 성리학의 일이다.”

조선의 상식이었다.

나는 이렇게 시작하고자 했다.

“참으로 우습소. 하늘 아래 이보다 우스운 일이 어디 있소? 병자 한 명을 살리는 것이 어찌 소의라고 할 수 있소? 그들은 한 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뿐이오. 또한, 의원은 그저 병자 한 명, 한 명을 살리는 것으로 제 역할은 모두 끝났소. 이 과정에 대체 성리학이 왜 필요하오?”

나는 이 시절 조선 사대부의 상식을 조롱하듯 말했다.

아예 송곳으로 후벼파기로 했다.

“기근의 발생은 막을 수 없더라도 조정이 유능하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소. 역병도 마찬가지요. 성리학이 필요한 건 바로 이와 같은 통치의 영역이오. 재해와 역병에 대처하는 조정의 능력이란 말이외다. 한데, 병자를 고치는 의원이 대체 왜 지고한 성리학의 경지를 익혀야 하오? 나는 도저히 모르겠소.”

윤선도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의 반론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놀랍게도, 막상 성리학을 익힌 이가 의술을 펼치는 건 체통과 체면을 운운하며 경계하오. 왜……? 대체 왜……?”

여기까지 송시열이었다.

지금부터는 나다.

나는 개똥조차 통치로 변모시킨 눈앞의 무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대중지정지도(大中至正之道). 군자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예견하고 위험해지기 전에 방비한다. 일이 발생하기 전에 예견하면 예상치 못한 근심이 없을 것이며, 위험해지기 전에 방비하면 풀기 어려운 폐단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작금의 조선이 의료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의료인을 양성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었다.

이들은 성리학, 아니 위정자의 부족함을 교묘할 정도로 무섭게 포장하고 있었다.

“수양을 통하여 병을 예방하라는 말이외다. 한데, 정말 그렇소? 사대부는 수양을 부지런히 하여 장수하고, 역병으로부터 안전하오? 백성은 수양하지 않았기에 단명하며 역병에 노출되었소? 그렇지 않소. 사대부가는 청결한 곳에서 살기에 역병으로부터 안전하지만, 백성은 아니지요. 참으로 가소롭소. 천지의 부조화는 어찌하여 백성의 터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오? 혹시 백성은 경전을 익히지 않았기에 필연적인 일이라고 할 것이오? 또한, 사대부는 늘 배를 채우고 약탕을 가까이하기에 장수하며, 백성은 늘 배고프고 약탕을 볼 수 없기에 단명하오.”

조선은 질병의 본질적인 예방과 해결책을 수양(修養)이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대체 백성이 무슨 수로 유학 경전을 익혀 수양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절에 가서 불공을 올리거나 무당을 찾아서 절을 하면 질병에서 벗어난다는 말이 더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그랬다.

조선은 애초 가능하지 않은 방법을 백성에게 권하고 있었다.

백성은 죽을 때까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양이라는 방법을 말이다.

왜……?

대체 왜……?

“백성이 헐벗고 굶주리는 건 오직 통치의 문제요. 그러나 성리학자는 통치의 미숙함으로 병마와 싸우는 백성을 구제할 수 없소. 그러나 위정자가 아닌 수양의 문제라고 일갈하오.”

이 시절 의료는 백성과 멀다.

다수의 백성은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사대부는 아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의료의 권능에 빌붙어 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위정자다.

이는 무서운 일이었다.

현대국가처럼 빈부의 차이로 발생하는 의료의 질 따위가 아니었다.

작금의 조선은 백성에게 의료의 영원한 박탈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조선이 백성에게 허락한 건 통치의 범위에 있는 국가기구의 의술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냥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나는 단언했다.

“통치는 멀고 병마는 가깝소. 통치하는 성리학자는 두려우나 병마를 고치는 의원은 고맙소. 하지만 작금의 조선은 백성을 의원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소. 이는 참으로 교활한 방법이외다. 의술을 소도로 간주하고 병자 개인의 치료를 소의로 규정하여, 의원을 천시하는 풍토를 만들었으니 말이외다.”

조선은 참으로 무서운 나라였다.

백성을 독점하고자 하는 위정자의 노력은, 백성들에게 더 빨리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의원의 사회적 위치를 철저하게 격하하고, 의술을 말본으로 삼아 지독할 정도로 발전을 억제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두려운 일인가.

통치를 위하여 의술을 장려하는 게 아니라 무자비하게 짓눌렀다.

결과, 조선의 의술은 오직 사대부를 위한 행위가 되었고, 백성에게는 의술을 펼치지 않은 채 수양을 운운한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은 사대부가 의술을 펼치지 않는 나라가 됐다.

나는 비웃었다.

이들을.

“차라리 작금의 사대부가 개국을 주도하였던 사대부들처럼 의술을 독점하여 직접 병자를 만나기로도 했다면 내 이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외다. 한데, 성리학을 대성한 이가 의술을 펼쳐야 한다고 이르면서 막상 이를 행하지는 않소. 대저 도리란 어디에 있는 것이오?”

여말선초 사대부 역시 이들과 시야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때 사대부는 직접 의술을 펼치며 백성에게 다가가는 시늉이라도 했다.

하지만, 작금의 사대부는 의술을 펼치는 것조차 천시하며 비아냥거린다.

이건 미친 짓이다.

“하여, 이 나라 조선은 한 줌도 되지 않는 성리학자의 나라에 불과하며, 만백성을 품어야 할 성리학이 작금의 조선에서는 성리학자를 대변할 죽은 글자에 불과하오.”

“참으로…….”

윤선도였다.

그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노기가 흘러넘쳤다.

“참으로 듣기 거북한 말이외다. 평생 이처럼 해괴한 말은 들어보지 못했소.”

예상했다.

고작 이 정도 말로 윤선도를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가능했다면 서인과 남인의 첨예한 대립도 없었다.

되돌아본다.

내가 송시열이 되었을 때를.

내가 송시열이라는 걸 인지하고 행동에 나섰을 때 다짐한 것이 있다.

그랬다.

나는 처음 송시열이 되었을 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송시열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지는 무게감은 조선 왕조를 짓누를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다 쉽게 될 줄 알았다.

서인과 남인의 지겨운 대립도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을지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송시열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있긴 하다.

그것은 서인과 남인의 첨예한 대립을 유발한 뒤 피를 철철 흘리며 승리할 힘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단번에 상대를 제압할 힘은 없었다.

만일, 지금이 태평성대라면 상관없다.

싸워서 이기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작금의 조선에서 이런 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뭐하나 진행할 때 미친 듯이 싸운다면 뭐가 어찌 되겠는가.

그래서 물었다.

진심으로.

“대체 내가 어찌하면 되겠소?”

너무나도 노골적인 물음이었을까?

윤선도는 멈칫했다.

하면, 다시 나의 시간이었다.

“선왕께서 승하하신 이후 나는 줄곧 한 가지 길을 걸었소. 서인의 학맥을 뽑아내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소. 이를 부정하시오?”

“하하하. 그 모든 건 귀공의 계책이었다는 걸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소. 또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기어이 비변사를 축소하고 의정부를 복원하고자 하오. 이 길이 한 가지 길이오?”

“그만하시오.”

“또한, 오늘에 이르러서는 백주에 의술을 행하는 괴이한 짓을 일삼고 있소.”

“…….”

“한 가지 길이라고 하셨소? 나는 귀공의 길이 대체 몇 개인지도 무엇인지도 모르겠소. 다만, 확실한 건 있소. 귀공은 불만이 있을 때마다 사직 상소를 올려 군주를 압박하였소. 지금의 일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켜 조정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수가 아니오?”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갈했다.

“그만하시오!”

“이게 대체 무슨 무례한 행동이오? 귀공이야말로 더는 정국을 어지럽히지 마시오.”

지겹다.

정말 지겹다.

핏발선 눈으로 바라봤다.

아니, 노려봤다.

그리고 일갈했다.

“나는!”

숨을 내뱉으며 힘겹게 말했다.

“나는 백성을 죽였소.”

“……뭐요?”

“살 수도 있었을 백성을 구령보에 가둬서 죽였소.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처방도 하지 않았소.”

분위기는 축축해졌다.

윤선도의 말문도 닫혔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오? 식량도 제공하지 않았소. 예. 맞소. 나는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죽기를 바랐소. 왜……? 그들의 생존 기간이 길어질수록 다수가 역병에 노출될 수 있으니까.”

“…….”

“그들이 죽어가던 그 시간에 삭주의 백성은 생존을 도모했소. 벌목을 하고 물을 끓이고 저자의 인분 따위를 치웠소. 철저하게 통제했소. 누구라도 통제를 벗어날 수 없게 했소.”

윤선도의 말대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여러 개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길 중 하나를 말했다.

“밤을 지새웠소. 그 결정을 내린 이후 단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짓눌렀으나 그 길을 선택해야만 했소.”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잊고자 했던 괴로움이 온몸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벗어나고자 했던 고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는 나의 업보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소. 아니, 후회할 수 없소. 그저 나는 그 외로운 밤길에 서서 걸어가고자 하오. 만백성으로부터 욕을 듣더라도 역병과 싸우고자 하오. 진심으로 선생께 묻겠소. 대체 어떻게 해야 서인과 남인, 남인과 서인의 이 지겨운 대립을 멈출 수 있소? 내가 어찌해야 다른 속내가 있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소?”

“…….”

“대체 백성을 구호하고자 의술을 베푸는 일에 어떤 당리당략이 있소? 어찌하여 나의 길은 늘 오해가 있소? 내가 대체 어찌해야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소?”

화가 났다.

너무나도 화가 났다.

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만 이 지긋한 불신과 다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너무 아까웠다.

미치도록 아까웠다.

그래서 외쳤다.

“적어도!”

윤선도, 윤선거, 허적, 허목 그리고 송준길을 한 명씩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적어도…… 나는 이 자리에 앉아서 붓을 움직이고 세 치 혀를 움직여 수천, 수만의 백성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오.”

“……살릴 수 있는 백성을 죽인 건 귀공이시오.”

“도저히 안 되겠소?”

“뭐요?”

“그토록 인정하기 싫소? 그냥 인정하시오.”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말했다.

“조선이 백성 모두를 살릴 수는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시오.”

“이보시오!”

“그 오만에서 벗어나시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오?”

“성리학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소.”

“참으로 무도하도다.”

“조선의 성리학이 만백성을 지켜낼 수 있다는 그 오만이 나라를 병들게 하오.”

이 시절 성리학은 통치의 근본이다.

국가로부터 백성을 향하여 펼쳐져야 할 의료기구는 성리학의 통치로써 접근함이 옳다.

그러나 의술 자체가 성리학에 종속될 수는 없다.

의술은 통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

“내가 삭주에서 병자를 구하지 않은 건 의술의 역량을 명확하게 진단한 통치의 영역이었소. 성리학이 똬리를 틀어야 할 곳은 병자를 구해야 할 의원의 머릿속이 아니라, 만백성을 아우르는 잣대와 기준이오.”

통치로서 병자를 포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원은 병자를 포기할 수 없다.

의원이 병자를 포기하는 순간은 통치의 영역으로 국한되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조선은 의원의 권능 자체를 박탈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미친 짓이다.

하여, 말했다.

“나는 이번에 기어이 의술을 성리학으로부터의 해방을 도모할 것이외다.”

“!!!”

“그리하여 반드시 백성이 병마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 것이오.”

아직 남았다.

“이를 어찌 입증할 것인가.”

나는 오늘 조선의 미래를 선언할 것이다.

“백성의 입에서 통곡과 절규가 아닌 노래로 입증할 것이오.”

그들은 무엇을 노래하는가.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비록 달과 별이 없어 밤길이 어둡더라도 길이 없는 게 아니오. 그저 등불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 뿐이오. 미증유의 재해가 닥칠지라도 기어이 극복될 것이라는 신뢰, 비록 오늘 끼니를 굶더라도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역병이 창궐하였을지라도 죽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 오늘의 조세가 내일의 구휼미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바람…….”

“…….”

“신뢰, 믿음, 역병, 희망, 바람, 꿈, 소원 등…… 감히 셀 수도 없는 많은 것들이 있소. 조선의 백성은 이를 노래할 것이오. 이 모든 걸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소.”

“……무엇이오?”

“조선이오.”

흔들리는 윤선도의 눈동자.

나는 말을 이었다.

“만백성이 조선을 노래하는 나라로 입증할 것이외다.”

“…….”

“이 나라의 국호, 조선은 백성이 일어날 수 있는 글자가 될 것이오.”

덧붙였다.

“기어이.”

조선(朝鮮)

이 두 글자의 가치가 이 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더는 누구도 언어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나의 실수는 내가 바로 잡겠소.”

뜻 모를 소리를 던진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선도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엷게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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