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조선을 노래하라(4)
관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으나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니, 어쩌면 평생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눈을 몇 번이나 비볐다.
볼도 여러 번 꼬집었다.
멍하게 바라만 보다가 이구동성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보게.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이보게.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관리들은 눈을 껌뻑이며 앞을 바라봤다.
눈동자가 담아낸 장면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우암 대감이 상투를……?”
“우암 대감의 의복이……?”
“우암 대감이 들고 있는 건 거적때기가 맞나?”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는 바로 송시열이었다.
그리고 그냥 송시열이 아니었다.
“연좌 아니지?”
“이 사람아. 딱 보게. 연좌가 아닐세.”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가 봐도 석고대죄가 맞지?”
“필시 석고대죄일세. 정확하게 석고대죄의 정석이야.”
그랬다.
지금 송시열이 석고대죄에 나섰다.
그러니까 연좌도 아니고 석고대죄였다.
“내가 지금 역모보다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보고 있네.”
“나도 지금 전쟁보다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보고 있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관리들은 금세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현상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형식만 석고대죄일 것일세.”
“필시 그러할 것이네. 비변사 축소 등의 정치적 주장을 쏟아낼 것이네.”
“석고대죄의 형식을 취하였으나 결국 연좌일 것이네.”
“마지막에는 사직 상소까지 다시 언급할 것이니, 주상 전하를 압박하기 위한 최고의 묘수로군.”
“참으로 지독하지 않은가.”
“더 말해 뭐하겠는가.”
관리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필시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있을 것일세.”
“우리에게 말하고 싶을 것이야.”
“이 순간을 본인에게 맡기라고.”
“참으로 지독하지 않은가.”
그때 송시열이 거적때기를 휘리릿 펼쳤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외쳤다.
“신 이조판서 송시열, 죄를 청하옵니다.”
“!!!”
“!!!”
“!!!”
이는 장내를 충격의 도가니로 밀어 넣은 일성(一聲)이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신이 불민하고 무지하여 비변사 축소를 청하여 어심을 어지럽게 하였사옵니다. 나라 전체에 재해가 일어나고 백성은 기근에 허덕이고 역병이 창궐한 이 엄중한 시국에 혼란을 유도하였으니, 어찌 죄를 청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송시열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하늘 아래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믿는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청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선이나 악으로 규정할 수 있을 사람의 본성보다 더 명백한 송시열의 본성이 바로 오만함이었다.
그는 오만함이 하늘을 뚫었을 것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지금 진짜 석고대죄에 나섰다.
“나는 오늘 귀신을 보았네.”
“나도 오늘 귀신을 보았네.”
“나는 지금 귀신을 보았네.”
“나도 지금 귀신을 보았네.”
관리들은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제 잘난 맛에 살던 송시열이 죄를 청하고 있다.
대체 무슨 꿍꿍인지 알 수가 없다.
혼란 그 자체였다.
송시열의 석고대죄는 이토록 궤를 벗어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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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의 사가에 모인 이들은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누구와 비교하여도, 넘치지는 않을지라도 부족하지는 않다고 여겼다.
그랬기에 이들이 만들어낸 침묵의 묵직함은 참으로 생소했다.
다른 이들이 아니었다.
바로 윤선도, 허목, 허적, 윤휴였다.
조선의 정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이 모였으나 작금의 상황만큼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
“…….”
“…….”
“…….”
침묵이 지배하는 시간은 하염없이 이어졌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침묵이 흩어진 건 전혀 뜻밖의 방문객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바로 송준길과 윤선거였다.
“허심탄회하게 말하고자 하오.”
인사를 생략한 송준길의 말이었다.
시선이 집중됐다.
송준길은 당혹스러웠던 과거를 회상했다.
-가끔 상상합니다.
-…….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지 않고 경쟁하는 조선을요.
-뭐……?
-이 나라 조선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때를…… 간절히 바랍니다.
-…….
그 이후 늘 생각했다.
송시열이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지 고민했다.
치열하게 살폈다.
그렇게 얻은 결론을 입 밖으로 꺼냈다.
“우암의 행보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소. 그러나 금상께서 즉위하신 이후 우암의 행보에는 어떠한 정략도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하오.”
송준길은 송시열과 교감을 나눈 허목과 윤휴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동자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허적을 바라봤다. 약간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반면 윤선도의 얼굴에는 냉소만 가득했다.
송준길은 이 상황이 참으로 묘했다.
송시열이 누구였던가.
강경파인 윤휴와 허적은 말할 필요도 없고, 온건파로 분류되는 허목조차도 치를 떨 정도로 말이 통하지 않고 답답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들이 송시열과 뜻을 함께한다.
그래서 또 묘했다.
뜻을 도모하기로 한 이들끼리도 제대로 뭉치지 못하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입가에 살짝 쓴 미소가 감돌았다.
아무리 변했다고 할지라도 송시열은 송시열이었다.
지독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판을 구축하였을 뿐, 동지들을 화합하게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송준길은 제 역할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역할은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을 모아내는 것이오.”
“참으로 괴이한 말이외다. 그게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오? 어처구니가 없소. 다들 안 그렇…….”
동의를 구하고자 좌우를 살피던 윤선도는 멈칫했다.
자신과 뜻을 함께해야 할 이들의 표정에서 다른 감정이 읽혔기 때문이었다.
이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윤휴가 말을 꺼냈다.
“일전에 소생이 세종의 길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랬지.”
“실은 우암 송시열이 소생에게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뭐……?”
“뭐라?!”
쥐어짜듯 당혹감을 내뱉은 윤선도와 달리 팔짝 뛴 사람은 바로 허목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 자네, 그 이야기를 왜 지금에서야 하나?”
“우암 대감은 이를 함구하길 바라였습니다.”
“하! 어째서?”
“송시열이라는 이름 석 자가 거론되면 시작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더군요. 자신에 대해서 참으로 잘 알고 있으니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
“한데, 어찌하여 이토록 흥분하십니까.”
괜한 물음이 아니었다.
지금 허목은 누가 보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답변보다 먼저 나온 말이 있었다.
“나는 대사헌과 뜻을 함께하겠소.”
호조판서 허적이었다.
윤선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아무리 온건파로 불릴지라도 엄연히 남인의 영수다.
그런데 대놓고 이리 나온다. 세간에 알려지면 파급은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윤선도의 목소리는 격하게 흔들렸다.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나는 확신합니다.”
“확신……?”
“우암 송시열의 행보에는 그 어떠한 정략도 없다는 것을요.”
“하! 대체 자네가 언제부터 그를 이토록 믿었나.”
“믿는 게 아니라 그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뭐……?”
“선생. 우암 송시열은 그저 학문이 뛰어나거나 몇 가지 사안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에 불과합니다. 그런 그를 대단한 정략가나 정치인으로 바라보면서 모든 일이 복잡하게 꼬인 겁니다. 단언하지요. 우암 송시열은 정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치적 안목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조선에서 누가 이토록 송시열에 대해서 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괴이한 건 지금의 인물평이 송시열을 공격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용은 박하였으나 분명히 송시열을 편드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우암 송시열은 그저 제 길을 갈 뿐입니다. 그 길에는 어떠한 계산도 없으니 어찌 함께 걷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하여, 나는 그를 동지라고 부릅니다.”
“!!!”
동지(同志).
목적이나 뜻이 같은 사람.
지금 남인의 영수 허적이 서인의 영수인 송시열을 일컬어 동지라고 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허목이었다.
허적은 그를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이미 선생께서도 그리 여기시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그리 여기는가.”
“세종의 길을 주창한 이를 알았을 때 어찌하여 당황하셨습니까.”
“…….”
“구관당상으로서 송시열의 행보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본 선생입니다. 최근 의술을 행할 때도 그와 함께하셨지요. 누구보다도 원리 원칙을 준수하였던 선생께서 말입니다. 또 누구보다도 우암 송시열을 적대하였던 선생께서요. 한 번이라도 우암 송시열에게 세종의 길을 제안할 생각을 품지 않으셨습니까?”
“…….”
“압니다. 보기에 따라서 참으로 괴이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윤휴를 통하여 세종의 길을 언급하여 남인의 중추를 흔들었고, 남인의 중심적인 인물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여 결국 뜻한 바를 얻어내고자 한 것이지요. 한데, 아닙니다. 그는 이런 수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제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우습게도 작금의 송시열은 너무나도 순수합니다. 보십시오. 지금까지 그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습니다. 구관당상으로서 일을 수행할 때도 그는 단 한 명의 백성들의 마음도 품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제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틀림이 있습니까?”
허적의 물음과 동시에 침묵이 시작됐다.
그리고 답해야 할 허목은 엷게 웃으며 말했다.
“늘 품었던 생각이 있었네.”
“무엇입니까.”
“동지란 꽤 괜찮은 단어라고 말일세.”
허목의 말에 허적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동지가 된 것 같습니다.”
연결고리는 송시열이었다.
하루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론이 나왔다.
어디서 시작이었을까?
잔잔하게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다.
허목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만약 이를 우암 송시열이 의도하였다면 귀신도 놀랄 정략일 것이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제 길을 갈 뿐이지요.”
믿을 수 없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준길은 엷게 웃었다.
송시열의 처세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투명하게 최선을 다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은 비로소 남인의 정객들에게 완벽히 스며들었다.
송준길의 시선은 자연스레 윤선도에게로 향했다.
이 자리에서 송시열을 의심하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윤선도는 곤혹스러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더 나서지도 않았다.
그저 짧게 말했다.
“……지켜보리다.”
“꼭 함께하실 수 있을 것이오.”
“……대체 무엇을 함께 하자는 것이오?”
“개국 초 우리의 선대들이 보였던 열의를 우리가 이뤄내는 것이오. 딱 그것이며 되오.”
송준길은 진심으로 말했다.
“오늘 우리는 조선의 붕당 역사를 새로 쓴 회합을 가진 것이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서인과 남인, 남인과 서인의 화합.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오. 하지만 확실한 건, 시작은 했다는 것이외다. 누구도 이뤄내지 못한 탕평을 우리가 해내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