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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55화 (55/298)

55화 중앙재해대책본부(3)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다음 날 중대본 회의가 소집됐다.

지금부터 가장 중요한 건 조선 사대부의 역량과 열의를 하늘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허적에게 상석도 양보하고 말석에 앉았다.

구석에서 차분하게 이들의 논의를 경청할 생각이었다.

맑은 마음으로 딱 앉아 있는데, 허적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을 걸었다.

“본부장께서 내게 하실 말씀이 있소?”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아까부터 내 눈치를 계속 보고 있지 않소이까.”

“아…….”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하시오. 한참 논의가 이어질 때 괜한 말을 해서 흐름을 끊지 말고.”

눈치가 귀신이다.

할 말이 있긴 했다. 바로 투자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머뭇거려졌다.

전면적 무역을 시행하는 것을 떠나서,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하나같이 청나라에 대한 감정이 절대 우호적이지 않은 인물들이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는 걷잡을 수 없이 두들겨 맞을 수가 있었다.

사실 그리고 이토록 중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맛있는 거 먹으면서 하는 게 옳다.

그전에는 빌드업에 집중해야 한다.

즉, 변승업의 재력이 없으면 중대본이 휘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전면적 무역의 시행을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적당하게 말을 돌렸다.

“변승업이라는 역관이 있소.”

“알고 있소. 조선 최고의 거부라고 들었소.”

“그가 중대본의 일에 보탬이 되고자 나섰소.”

“어찌 되었소? 변승업이 동의하였소?”

허목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그의 얼굴은 아주 크게 상기된 상태였다.

나는 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성 내 목욕치법을 집행할 수 있는 재원을 보태기로 했소.”

“오.”

“허.”

“이럴 수가.”

“어찌…….”

곳곳에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시절 누가 감히 백성을 상대로 목욕치법을 꾀할 수 있겠는가.

진짜 전 재산을 내던진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게 끝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기존에 내가 진행한 의료 시설 역시 그가 모든 재원을 감당하기로 하였으며, 뜻있는 의원에게 품삯을 주어 운영하기로 했소.”

여기까지 이르자 호조의 수장인 허적은 특히 더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휘둥그레진 그의 눈을 통하여 심리 상태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아무리 조선 최고의 거부라고 할지라도 쉽게 감당하는 건 어려울 것인데, 참으로 대견하오.”

“……뭐. 할 수 있으니 나선 것이 아니겠소?”

“중대본으로서는 좋은 일이니 어찌 반대할 수 있겠소.”

여기까지.

변승업이 의료 시설과 목욕치법의 재원을 책임진다.

그런데 나중에 돈이 부족하다면서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러면 중대본은 난리가 난다.

이때 전면적인 무역을 시행한다.

거기서 쌀도 가져오고.

딱 좋다.

머릿속으로 아름다운 생각이 아름답게 흘렀다.

그리고 위생국의 수립과 허목이 수장으로 임명되는 건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다 좋은 일인데 뭐하러 반대하겠는가.

특히 조정의 재원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로써 변승업은 음지에서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구휼미 4천 석을 투척한 것과 위생국의 유일 최대 투자자로 존재하는 건 아예 결이 다르다.

후자의 역할에 괜한 시비를 거는 무리가 있으면 바로 압살해버릴 생각이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고약한 심보가 아니었다.

또 모처럼 좋은 소식에 허적의 표정은 밝았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윤휴를 바라봤다.

“양잠의 일은 어찌 되고 있나.”

“아직은 따로 말할 수준이 아닙니다. 대략적인 흐름을 잡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집행해야지요.”

“음. 양잠의 성과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일세. 한시라도 빨리 일을 집행해야 할 것이니 최대한 서두르는 게 좋을 것인데…….”

“소생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최대한 속도를 내보겠습니다.”

허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낮게 한숨을 쉬면서 송준길을 바라봤다.

“재해를 대비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오. 현재 국고로는 어림도 없소. 물론 위생의 일에 변승업이라는 변수가 등장하였으나 아주 특별한 일이지요. 혹시 대사헌께서 백호를 거들어주실 수 있겠소?”

명쾌한 방책이었다.

아무리 윤휴라고 할지라도 전국적으로 양잠을 일괄 집행하게 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송준길이라면 사정은 완벽하게 달라진다.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조선 최고 수준인데 관직도 대사헌이다.

또 중대본이 원래도 전권을 부여받았는데 송준길이 직접 양팔을 걷고 나서기까지 하면 일사천리다.

“물론이오.”

송준길은 거절하지 않았다.

허적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최근 흥미로운 장계가 올라왔소.”

“오. 나도 서둘러 흥미로워지고 싶소.”

“본부장은 빠지시오.”

“…….”

“쇄염법이오.”

쇄염법……?

아예 처음 들었다.

참으로 흥미로운 조선 생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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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원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웃음이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그의 눈은 기특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네 말이 참으로 옳다. 염장이란 소금을 생산하는 모든 시설 따위를 총칭한다. 그래. 계속해 보아라.”

“무엇을 이르십니까.”

“네가 염장에 대해서 운을 띄웠지 않느냐. 무릇 염장을 설치하자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하는 법이다. 이를 일러보라는 말이었다.”

유형원의 말에 제자는 어색하게 웃었다.

멋쩍은 표정으로 좌우를 살피더니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이런. 아직 세세한 내용을 익히지 못하였느냐?”

“부끄럽습니다.”

제자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모처럼 스승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는데 딱 여기까지였으니 민망한 것이었다.

물론, 유형원은 탓할 생각은 없었기에 부드럽게 미소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배우지 않은 걸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조금 전 내가 크게 칭찬한 건, 가르치지 않은 염장에 대해서 네가 알고 있기에 그러한 것이다. 이는 필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들으면서 깨우친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모두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성현께서 여러 말씀을 하셨으나 세상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삶을 익혀야만 지혜로워질 수 있다.”

“예. 사부님.”

“뼈 깎는 노력을 하거라.”

“…….”

유형원은 제자들을 한 명씩 살펴보면서 말했다.

“염장을 설치하자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로 평탄한 갯벌과 미세한 토사가 염장 근처에 많아야 한다.”

“어째서 그러합니까.”

“그래야만 농후한 함수(鹹水, 바닷물)를 채취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염장 부근에 땔감이 풍부해야 한다. 땔감은 자염업의 흥망과 직결하지. 바닷가 근처의 산에 수목이 적으면 땔감의 값이 오르기에 종사자들의 생존은 크게 위협받게 된다.”

유형원의 말이 이어질수록 제자들은 바쁘게 붓을 움직였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학구열이 참으로 대단했다.

흐뭇하게 웃으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형원은 유려하게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셋째로 염장 부근에 굴을 비롯한 조개류가 풍부하여야 유리하다. 이는 함수를 끓이는 염부(鹽釜) 가운데 철부는 연료 소비가 많기에 사용을 억제하고, 그 대신 토부를 권장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염부는 바닷물을 고아 소금을 만들 때 쓰는 큰 가마를 의미했다.

오랜 세월 염부는 철로 만든 가마인 철부를 사용했다. 그런데 철부는 장시간 강하게 끓여야만 하기에 땔감의 소비가 크다. 반면, 조개껍데기를 태워 만든 토부는 땔감의 소비가 덜하다.

“넷째로 생산한 자염의 운송과 필요한 물품의 조달이 편해야 한다. 즉, 여러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어야 하는 법이다. 우리나라는 우마(牛馬)가 마차(馬車)보다 못하고 마차는 선박(船舶)보다 못하다. 또한, 동서 남쪽이 모두 바닷가이므로 배가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니 자염을 크게 일으키려면 수운을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이어야 한다.”

“하면, 대표적으로 어떤 곳이 유리합니까.”

“낙동강이 흐르는 경상도 김해가 아주 유리하다. 장차 김해의 명지도는 자염 생산의 중심지로 성장할 것이다.”

“스승님께서 대체 어찌 그 많은 걸 알고 계십니까.”

“재능이다.”

“…….”

그냥 우문현답이었다.

제자들은 그저 붓을 움직일 뿐이었다.

“끝으로 염장 배후지에 많은 사람이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부를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자염을 판매하기도 어려워진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던 제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슬며시 붓을 내렸다.

분명 ‘끝으로’라고 했으니 더 나올 말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형원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뼈 깎는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고 했건만.”

이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 즉시 제자들은 일제히 붓을 들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거의 동시에 유형원의 말이 이어졌다.

“기존의 염전식은 함수통을 제작하고 써레, 나래를 작업하고 함수를 채취한 뒤 염분에 함수를 끓이는 방식으로 아주 복잡하였다.”

제자들은 붓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기존의 방책을 언급하면 반드시 더 좋은 방법을 언급했다.

지금도 필시 그러할 것이다.

하면,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적어야 했다.

이는 어떤 책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용이 될 것이니 말이다.

“천하를 유랑하면 여러 기인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대부분은 일자무식이다. 그런데도 기인이라고 칭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그들은 서책에는 나오지 않는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느냐.”

“예. 스승님.”

“많은 걸 보고 듣고 배워야 한다. 스승인 내가 가르치지 못한 건 세상의 많은 이가 알고 있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직접 봐야 하느니라. 성현의 가르침으로는 배울 수 없고 더 좋은 게 얼마든지 있으니까.”

갑자기 시작된 잔소리에 제자들은 당혹스러웠으나 감히 표출할 수는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붓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 유형원은 본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천하를 유랑할 때 소금을 햇볕에 졸이는 법을 사용하는 것을 봤다.”

“소금을 햇볕에 졸인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지. 참으로 독특한 방법이었어. 제방을 막아 도랑을 파고 저수지와 5개의 구덩이를 연달아 만들어 제염하는 방법이었지. 첫 번째 웅덩이에서 5~6일 동안 바닷물을 햇볕에 쬔 후 두 번째 웅덩이에 주입하여 다시 쬐고, 이를 반복하다 네 번째 웅덩이에 이르면 맛이 짠 함수로 변하더구나.”

“…….”

“그렇게 얻은 함수는 다섯 번째 웅덩이에 주입하여 햇볕에 쬐면 서리와 눈과 같은 하얀 소금을 얻을 수 있는데, 대략 20~24일 동안 이러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쇄염법이라고 들었다.”

“기존의 방법보다 더 효율적입니까?”

물음을 들은 유형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쇄염법이라는 방식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무조건 좋다고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또 이리 답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했다. 쇄염법이 안 좋다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확실한 건, 기존의 방식보다 땔감의 사용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는 것이다.”

유형원은 더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시간을 가졌으나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다만, 묘한 건 그의 표정에 여러 고민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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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적의 장황한 말이 끝났다.

나는 눈을 껌뻑였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내가 원리는 모르지만 들어도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쇄염법.

이건 바로 천일제염업이었다.

그러니까 낮은 수준의 천일제염업 즉 조선판 천일제염업이다.

나는 천일제염업의 원리를 전혀 모른다.

학창 시절 소금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도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충 말로 전하면 누군가가 해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절 사진으로만 보고 대충 외운 방법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을 수준도 아니다.

애초 중고등학교 입시 수업은 내가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 과목에 불과했기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천일제염업의 원리를 파악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러나 들으면 안다.

들으면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도 안다.

그래서 느낌 왔다.

쇄염법은 지금 조선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방책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말했다.

“호판. 쇄염법을 과감하게 집행하면 큰 성과가 있지 않겠소이까.”

수년 내로 양잠이 성과를 내고 쇄염법을 집행해낸다면 중대본의 재원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무릇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법이다.

허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급보가 전해졌다.

“영남과 동북의 기근이 심하여 풀과 나뭇잎을 먹으며 연명하는 백성이 허다합니다. 백성의 목숨이 다해가며 시체가 구렁을 메울 지경이라는 장계입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작금의 조선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까지 시절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국력을 모아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경신 대기근까지 조용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수시로 발생하는 재해와 싸워야 하며, 재원도 확보해야 했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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