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현대인과 송시열이 만났을 때(4)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가장 밑바닥에서 기본이 된 건 누가 뭐라고 해도 불편함이었다.
분명 의기로 일어난 연좌이거늘 내가 조롱하자 심기가 상한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해만 할 수 있다.
공감까지는 할 수 없고.
손을 내저으며 단호하게 일갈했다.
“녹봉의 삭감은 사대부로서, 관리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녹봉을 삭감하여 백성을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책임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높은 책임감을 앞세운 것입니다.”
“틀렸다. 그건 무책임함의 발로다.”
“!!!”
차갑고 날카로운 내 말에 장내는 어수선해졌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박세당을 향하던 나의 시선은 웅성거리는 관리들로 이동했다.
한 명씩, 한 명씩 살폈다.
대부분 어색하게 웃으며 내 시선을 피하거나 황망함에 고개를 돌렸다.
아마도 구시렁거리는 꼴을 내가 불쾌하게 여겼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저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천천히 말을 꺼냈다.
“얼마나……?”
“예?”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소직들의 녹봉을 감액한다면 족히 1만 석은 확보할 수 있습니다. 10만 석에 육박하는 비축 군량과 비교할 수 없으나, 작금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관리의 녹봉은 대략 3만 석이었다.
여기서 무려 1만 석을 삭감하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다.
다시 듣고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라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가 듣고자 한 답변은 아니었다.
“작금의 위기를 극복한다고 가정하지. 하면, 자네들의 위기는 어찌 극복할 수 있나?”
“예……?”
“녹봉을 감액하면 관리는 대체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예상의 범주를 벗어난 물음이었을까?
꼿꼿하게 답변을 이어가던 박세당은 멈칫했다.
또한, 다른 관리들도 눈을 껌뻑이며 당혹감을 보였다.
“경국대전에 이르기를 종9품의 관리에게는 조미 8석, 전미 1석, 황두 2석, 소맥 1석, 정포 2필, 저화 1장을 지급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고작 미 8석, 황두 4석을 지급할 뿐이다.”
정1품을 기준으로 해도 마찬가지였다.
경국대전은 정1품의 관리에게 중미 14석, 조미 48석, 전미 2석, 황두 23석, 소맥 10석, 세포 6필, 정포 15필, 저화 10장을 지급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나 현재는 미 44석, 전미 8석, 황두 16석을 지급하는 수준이었다.
물가의 변동 따위를 고려하지 않고 한눈에 봐도 큰 차이가 있다.
심지어 그 옛날에는 20두를 1석을 계산하였는데 지금은 15두를 1석으로 정하였다. 즉, 같은 1석이라고 해도 5두가 부족한 것이었으니 무려 25%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참으로 지독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런데 지금 맹점은 조선이 가난한 나라라는 게 아니었다.
조선의 가난함이 관리의 궁핍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경전을 읽고 수신제가에 힘을 쓰면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더냐?”
“…….”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면 굶어도 된다더냐?”
지극히 현실적인 물음이었다.
박세당의 얼굴에서 난처함이 보였다.
지금의 침묵은 논리의 부족이 아니라 허가 찔린 결과였다.
그래서 나는 슬펐고 가슴이 벅찼다.
감정을 추스르며 과거 허적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우리 조선은 관리의 녹봉조차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나라이외다. 한데, 어찌 구휼미를 크게 확보할 수 있겠소? 근본적인 제도의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오. 유일한 길은 관리들에게 오직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오. 사대부라면 응당 화답해야 할 것이오.
지금 생각해도 살이 베어질 정도로 날카로운 신념이었다.
-이 나라 조선의 관복에 실린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기 때문이지요.
참으로 무서운 신념이었다.
그랬다.
지금이야말로 허적의 말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순간이었다.
단지 녹봉의 삭감만을 주장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관리의 삶을 걱정하자 당혹감이 표출된 것 자체가 그러했다.
이들은 이 엄중한 순간에 생존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호의호식이 아니라 지극히 기본이 되어야 할 생존조차 던지고 정사(政事)에 임한 것이다.
아니, 던진 게 아니라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말해야 한다.
오직 사대부로서 그리고 관리로서 가져야 할 최고의 도덕성에서 비롯한 책임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래서 가슴이 뭉클하였다.
또 알게 됐다.
이 나라 조선이 사대부의 수명을 자양분으로 버티고 있다는 걸.
그래서 슬펐다.
“녹봉을 받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관리도 있을 것이다. 선대로부터 많은 가산을 물려받았다면 녹봉 따위는 필요하지 않겠지. 그러나 모든 관리가 그런 것은 아니다. 녹봉을 받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을 이들의 수가 과연 적다더냐?”
조정에는 생계형 관리가 많다.
그들은 진짜 녹봉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데 녹봉의 감액은 이들의 생존을 조정이 박탈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용인할 수 없다.
조선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재해가 아무리 끔찍할지라도 승인할 수 없다.
“대감. 모두의 결의를 모아낸 것입니다.”
“하! 내 눈앞에 있는 관리는 고작 수십 명에 불과하다. 자네들이 모든 관리를 대변한다는 오만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냐?”
“우리 조정은 언로가 열려 있습니다. 반대하는 이가 있다면 어찌 침묵하겠습니까.”
“자네들이 의기를 앞세우고 나섰네. 만일 반론을 제기한다면 녹봉이 아까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것인데, 누가 쉽사리 나설 수 있겠는가.”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라.
의기로 불타오르는 동료를 향해서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결국, 반대하기가 어려우니 그저 위축될 뿐이다.
속앓이하면서.
세상만사가 다 이러했다.
나는 감정을 다시 가다듬었다.
시선을 돌려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지금 내가 이들에게 해줄 말을 다시 되새겼다.
아니, 해줘야 할 말을 떠올렸다.
오늘 이들이 내게 보여준 건 희망이었다.
그러니 나 역시 화답하는 게 옳다.
나는 오늘 이들의 심장에 다른 걸 심어줄 것이다.
“태조께서 민본의 대의로 이 나라 조선을 세우실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하셨는지 아는가?”
무려 태조 이성계를 언급했다.
누구라도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답변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사전혁파를 단행하셨다. 역사는 이를 과전법이라고 한다.”
조선의 사대부 중 과전법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나는 관리들을 바라보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엄지를 접었다.
“사전을 몰수하셨기에 썩은 귀족의 무리가 더는 백성을 수탈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검지를 접었다.
“또, 많은 백성이 제 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평안해졌다. 한데, 묻겠다. 오직 이것뿐이었는가?”
말이 끝날 때 모든 손가락을 접었다.
“모두가 알고 있으나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오른손 검지를 뻗었다.
모든 시선이 내 손가락에 집중되었다.
힘을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바로 개혁을 이끌어갈 사대부의 생계를 도모하신 것이다.”
고요했다.
참으로 고요했다.
너무나도 뻔한 말이었음에도 고요해졌다.
과전법은 대의로서는 귀족의 백성 수탈을 원천적으로 막아낸 개혁이었다.
정치적으로 귀족이 소유한 사전을 몰수한 것이었다.
이 땅의 역사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최고 수위의 개혁이 단행된 것이다.
하여, 사전을 혁파한 과전법을 민본의 정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위대한 개혁은 오직 민본만을 품어야만 했다.
그 외의 것은 모두 불필요하다.
실제로 존재하였던 사례라고 할지라도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내가 불필요한 역사를 대놓고 언급했다.
과전법이 조선 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으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흔들리는 눈동자가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분명하게 말하겠네. 민본의 과실은 오직 백성이 취해야 할 것이야. 그것이야말로 태조께서 썩은 귀족의 수탈에 병들어가던 이 땅에 조선(朝鮮)이라는 글자를 아로새긴 이유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조선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글자가 될 수도 없네. 태조께서는 단 한 순간도 사대부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라지 않으셨어.”
“…….”
“밤낮을 지새우고 끼니를 거르고 피를 토하며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고자 애를 쓴 사대부의 노고는 그대로 존중되어야 마땅했네. 하여, 과전법은 백성을 구한 위대한 개혁임과 동시에, 사대부의 생존까지 도모한 현실에 존재하는 개혁일세.”
“…….”
“누가 감히 태조께서 세우신 이 위대한 뜻을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말을 멈췄다.
천천히 좌우를 살피며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묘하게 축축했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든 것이 끝나면 알게 될 것이다.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재해가 이 땅을 어지럽히고 있건만 하늘을 참으로 푸르고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리고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사대부는 백성을 위하여 존재하게 한시도 쉴 수 없네. 그 고됨이야말로 우리의 존재 이유가 아니겠는가. 하여, 우리는 웃을 수 있네. 왜? 우리의 시간이 바로 조선의 역사이기 때문일세.”
“…….”
“역사를 만들어가는 위대한 장정을 함께 하건만 어찌하여 대가를 바라지 않는가. 이는 탐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일세. 사대부의 생존이 도모되어야만 백성의 삶도 윤택할 수 있으면 조선의 역사가 고고하게 이어지지 않겠는가.”
“…….”
“오늘 자네들의 의기는 참으로 대단하였네. 나 역시 가슴이 뭉클해졌어. 그러나 이는 태조의 뜻과 정면을 충돌하는 것이며, 조선의 역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갈 뿐일세.”
“하면…….”
박세당이 쥐어짜듯 힘겹게 말을 꺼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쳤다.
혼란스러운 눈동자는 그의 복잡한 속을 너무나도 투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소직들은 대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의기로는 안 된다고 하시니 길을 잃었습니다.”
“무릇, 사대부는 수기치인에 힘써 백성을 교화하네. 하여, 젊은 사대부가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의기가 옳지. 그러나 관리는 아닐세. 사대부는 직접 만날 수 있는 백성을 교화하지만, 관리는 조선의 만백성을 보살펴야 하는 법이네. 볼 수도 없고, 보지 못할 이들의 삶을 책임지는 자들이 바로 조정의 관리이기 때문일세. 하여, 자네들이 가져야 할 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내쉬었다.
또 들이쉬었다.
그리고 내쉬었다.
그렇게 말했다.
“열의(熱意).”
“……열의라고 하셨습니까.”
“옳다. 지금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필요한 건 열의다.”
“어찌하여 열의라고 하십니까.”
“사대부가 입신하고 양명하여 조정에 출사하였다면 숨을 쉬는 모든 순간에 오직 백성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 법일세.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을 백성들도 만끽할 수 있는 세상을 그려야 하네. 하여, 이 나라 조선의 관리에게 필요한 건 오직 열의일세.”
“……열의.”
박세당은 홀로 곱씹었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시선을 움직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두 글자를 곱씹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