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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67화 (67/298)

67화 역사에 기록될 자격(2)

눈을 껌뻑이며 천장을 바라봤다.

그래야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체 무슨 놈의 팔자가 이렇게 흉악한지 모르겠다.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왔다.

이 순간에도 유형원의 말은 내 심장을 후려치고 있었다.

“선왕 시절 대감께서 그토록 협잡을 펼치지 않았다면 어찌 태평성대가 미뤄졌겠습니까.”

협잡이라고 했다.

과거 송시열이라는 인물의 평가가 어떠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단어였다.

나로서는 억울했지만, 억울하게만 여길 부분이 아니었다.

이어진 유형원의 말이 너무나도 냉철했기 때문이었다.

“경세가로서 대감의 역량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대감의 협잡은 정당한 정책까지도 진영논리로 접근하게 만든 만악의 근원이었습니다.”

“아니, 뭘 만악의 근원이라고까지…….”

“조선이 변화의 길을 걷는 걸 완벽하게 막았으니 만악의 근원이지요.”

“아니, 뭘 또 그렇게 정색까지 하면서 말하나?”

“압니다. 대감은 대감의 길을 간다는 걸. 하지만, 협잡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짙었습니다. 대감이 대동법을 찬성하면 남인은 반대하고, 대감이 반대하면 남인은 찬성한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이런 풍토를 만든 사람은 바로 대감입니다. 부정하실 수 없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다 알겠다.

그런데 유형원은 번지수 잘못 찾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때를 잘못 잡았다.

나는 계속 이어지는 유형원의 말을 차단하고자 손을 내저었다.

그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소인의 입을 막으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나도 말을 좀 하자는 걸세.”

“소인은 막지 않았습니다. 하십시오.”

“엎드려서 절 받는 기분이군. 어쨌든 물어보겠네. 자네 말이 다 옳다고 한들, 나더러 대체 뭘 어쩌라는 것인가?”

“어쩌라는 것이 아닙니다. 소인은 왜인지 여쭤볼 뿐입니다.”

“이제라도 정신 차린 것일세. 그러면 다행이지.”

“소인은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해서, 여쭙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변화를 꾀하시는 겁니까.”

천재는 천재인 이유가 있다.

정말 어지간히도 말이 안 통했다.

그냥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재능이라면 재능이군.”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사람의 말도 좀 듣게.”

“듣고 있습니다.”

“그래. 듣긴 들었겠지. 귀가 열려 있고, 내 말을 자르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말을 조금이라도 곱씹어볼 생각은 아예 없나?”

“곱씹어볼 만한 말을 꺼내긴 하셨습니까?”

“…….”

대체 누가 송시열이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라고 했던가.

내가 송시열이 된 이후 나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어려워하는 사람은 무명의 관리들밖에 없었다.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나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였다.

당장 눈앞의 유형원만 하더라도 또박또박 따지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지금 나는 영의정은 아니지만 사실상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였고, 원 역사와는 달리 군왕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지 않은가.

송시열은 이토록 외로운 사람이었다.

모두 자기가 자초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러했다.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만하면 유형원의 살풀이는 충분히 들어준 것 같다.

더 들어주다가는 내가 삐뚤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뭐가 잘못됐나?”

“벽을 보고 말해도 이보다 답답하지는 않겠군요.”

“그런가? 그런데 말만 하니 답답한 거 아닌가?”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그들이 서인인지 남인인지 모른다네.”

“예……?”

유형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심리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나 역시 할 말은 아주 많았으니까.

“그들은 그저 조선의 관리일 뿐이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성정은 여전하시군요.”

“들을 필요가 없으니까. 적어도 자네의 말은.”

“아무래도 못 올 곳을 온 모양입니다.”

말과 동시에 몸을 추스른다.

일어날 생각으로 보였다.

나는 그 꼴을 빤히 쳐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네. 그러나 이건 알고 있어. 그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누구처럼 대단한 지혜와 능력이 없더라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세. 누구처럼 말만 지껄이지 않는다는 거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던 유형원의 몸이 멈칫했다.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 입가의 비릿한 미소도 확인하였을 것이다.

나는 더 진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말했다.

“천하를 경영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대 최고의 학자라고 할지라도, 재야에 은둔하며 홀로 떠들고 붓이나 움직이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후대를 위하여 붓을 끄적거리며 당대를 비판한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 대체 후대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금, 이 순간을 힘겹게 살아가는 백성을 위해야지.”

비판이 아니었다.

비난이었다.

대놓고 유형원을 비난했다.

그의 얼굴색이 새빨갛게 변했다.

볼은 씰룩였고, 입술은 떨렸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그런 인사는 백 명이 있더라도 무명의 미관말직 한 명보다 못해. 한스러운 건, 후대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보다는 낙향하여 편하게 붓이나 끄적거리는 이들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지.”

“지금 소인을 빗대시는 겁니까?”

“알면 다행일세.”

“하!”

유형원의 입에서는 냉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 털썩 앉으며 나를 노려봤다.

“소인이 어찌하여 낙향하였는지 압니까?”

“내가 왜 알아야 하나?”

“개혁의 의지조차 없는 조정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허구한 날 다투는 조정에 아무런 희망을 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주도한 건 바로 대감이었습니다.”

“알지. 너무나도 잘 알지. 참담할 정도로 엉망이었어. 한데, 이 참혹함을 버티며 하루를 살아가며 내일을 기약하는 우리 관리는 대체 뭔가? 그들은 눈이 없어 보지 못하고, 귀가 없어 듣지 못하며, 입이 없어 말하지 못하나? 그들 역시 자네처럼 환멸을 느꼈을 것이고, 희망도 품지 못했을 수도 있네. 하지만 그들은 자네처럼 물러서지 않았네.”

나는 확신했다.

그래서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조선의 역사는 바로 그들이 만들어 가는 것일세.”

역사는 역사를 마주 보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라도 바라보지 못하였다면 주체가 될 수 없다.

그저 제 삶을 살아갈 뿐이다.

“조선의 백성은 바로 그들이 책임지는 것이네.”

재야에 은둔한 이는 백성을 책임질 수 없다.

제 주변의 누군가를 보살필 수는 있으나, 그들은 백성이라는 명사로 묶어 낼 수 없다.

그저 그의 지인일 뿐이다.

“자네는 귀양을 간 게 아닐세. 제 발로 낙향한 것이네. 그러니 말하겠네. 세상의 부조리함을 견디기 어렵고, 환멸이 치솟는 고통스러움을 감당할 용기가 없기에 물러섰다면 그저 그렇게 살아가게. 더는…….”

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통을 삼키고 인내하며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 보며 살아가는 이들을 단 한 명도 욕되게 말하지 말게. 숨소리도 내지 말고 재야에 은둔하게. 쥐 죽은 듯이. 그것이야말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시대의 부조리함에 낙향하였다면 부조리함을 만든 주체를 탓해야 하는 법입니다.”

“내가 제일 우습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아나?”

나는 같잖다는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같잖은 사례였다.

“조선이 건국되자 낙향한 무리가 있네. 뭐. 고려를 배신할 수 없다던가? 우습게도 역사는 그들을 충신이라고 하더군.”

“무슨 말씀이 하고 싶은 겁니까.”

“그들이 왜 충신인가?”

“예……?”

“그들은 충신이 아니지. 조선의 건국을 반대한 역적의 무리지.”

“!!!”

“아직도 전설처럼 회자하는 그들의 명언이 있네. ‘나는 고려의 신하이기에 조선에 출사할 수 없으나, 후손의 출사는 막을 수 없다.’ 멋지지 않나?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어.”

유형원의 눈동자는 미친 듯이 흔들렸다.

왜……?

그들의 후손이 바로 우리였기에 그러했다.

아무리 변방으로 물러났다고 한들 정상적인 조선인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정상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비판이나 비난이 아니라 아예 짓밟을 수가 있었다.

내친김에 부관참시를 해버리기로 했다.

이 시절 조선 사대부의 직계 선대를 말이다.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게 무엇인지 아나? 새 나라를 세웠는데 이를 욕하는 무리를 그냥 살려둔 것일세.”

“!!!”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역사를 반복할 생각이 없네.”

“……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 겁니까.”

“지금껏 말한 그대로일세. 물론 죽일 수는 없겠지. 그러나 조선의 역사에, 조선을 위하여 땀 흘리지 않은 이들이 고평가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네. 약조하지. 앞으로의 조선은 작금의 조선을 위한 이들만을 기릴 것이네. 재야에서 같잖은 훈수나 두는 인사는 절대 기록하지 않을 것이네. 그런 이들은 역사에서 가장 차가운 자리에도 앉지 못할 것이야.”

“…….”

“기록될 자격 자체를 박탈할 것이네.”

“대감이 무슨 자격으로요?”

유형원의 목소리는 미세하게나마 떨렸다.

심리적 동요를 감당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어쩌면 내가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건 너무나도 유치한 방법이니까.

“작금의 조선을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책으로 남기고자 하겠지. 후대가 보고 이 시절에도 치열한 고민을 한 명사가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을 것이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길은 다르니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대감의 말씀을 들어보니, 이를 막으실 생각인 것 같군요.”

“하하하. 내가 왜?”

“…….”

“뜻대로 하게. 장담하지만 자네가 저술한 책은 후대로부터 아무런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니까.”

“어찌해서요?”

“작금의 조선을 살아가는 우리 관리들은 피하지 않고 시대와 싸울 것이네. 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여 이 나라를 위하며 숨을 쉬고 살아갈 것일세. 방구석에서 편안하게 붓을 움직인 자네의 고민은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을 만큼의 열의를 보일 것이네.”

나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최고의 자신감을 담았다.

“역사의 기록될 자격을 박탈한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일세. 이제 내 말을 알아듣겠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잘할 것이네. 이처럼 시대와 싸운 이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거늘, 어찌 재야에서 지껄인 잡소리가 인정받을 수 있겠나?”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나는 이미 확인했네. 이러한 자신감을 가져도 될 근거를. 하여, 이는 나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이 나라 조선에 대한 자신감일세. 이를 자부심이라고 부르면 더 좋겠군.”

“…….”

유형원의 눈동자에 복잡함이 담겼다.

나는 더 복잡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붓을 움직이는 건 자네 마음이지. 100권, 아니, 500권의 저서를 남겨 보시게.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일세.”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때가 됐다.

나는 유려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알아두게. 작금의 조선은 우리의 시대이네.”

덧붙였다.

“아쉽지만 자네는 우리가 아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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