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교화(敎化)(2)
미룰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한시라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다.
나는 허목이 제안한 위생 규칙을 곧장 보급할 수 있게 집행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동이 트자마자 중대본을 소집했다.
말 그대로 비상 소집이었다.
모두 모였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고단함이 잔뜩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확하게는 ‘모두’가 아니었다.
특히, 윤선도와 윤선거는 평소와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송준길과 유형원도 별 차이가 없었고.
허적과 윤휴만 반쪽이 되었다.
이는 업무의 양과 강도의 차이로 인하여 발생한 일이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중대본의 인사 중 원래 관원이 아니었던 이도 있다.
예를 들자면 허적은 호조판서와 중대본 실무 책임자로서의 일을 동시에 관장한다.
물론, 윤선도가 전날 정책을 제안하긴 하였으나 하루 만에 일이 진행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너무 바쁜 사람과 정말 한가한 사람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중대본의 태생적인 성격에서 비롯하였다.
군왕의 결단으로 중대본이라는 초법적 기구가 수립되었으나 종래 비변사나 의정부처럼 조정을 총괄하는 기능을 가진 건 아니었다. 딱 재해와 관련한 영역에서만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인사권 등 종래 비변사가 가진 권한은 아예 없었다.
결과적으로 우습게도 초법적 기구인 중대본의 인사이지만 관리가 아닌, 지금과 같은 괴이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연의 결단도 결단이지만 비변사에 똬리 튼 대신들과의 영역 다툼도 있기 때문이었다.
정치적인 영역으로 꼬아진 실타래를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나를 환기하듯 낮게 숨을 내쉬면서 허목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위생 규칙을 수립하였소.”
본격적으로 허목의 말이 시작됐다.
세세하게 언급하였다.
그런데 말이 이어질수록 중대본의 분위기가 희한해졌다.
-그러니까 대체 왜……?
뭐. 이런 분위기였다.
알게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거 위생 규칙을 시작도 하기 전에 중대본에서 좌초될 것만 같았다.
나는 잘게 입술을 깨물었다.
자연스레 상황을 보며 허목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사대부가 이를 백성에게 교화한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소.”
허목의 말이 끝났다.
나는 재빨리 나서고자 자세를 고쳐잡았다.
하지만 미수에 그쳤다.
“비상 소집이라고 하여 긴급한 일이라고 생각했소만, 참으로 당혹스럽소.”
“별거 아닌 일에 본부장이 요란 떠는 건 몇 번 겪었소만 이번은 유독 심하오.”
“대감. 대체 왜 이게 비상한 일입니까?”
“우암. 자네 왜 그러나? 날이 갈수록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네.”
“……우암. 이건 아닐세. 휴.”
여기저기서 말이 터져 나왔다.
유형원만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를 꺼내고자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수에 그쳤다.
“본부장. 아름답고 좋은 일이라는 걸 어찌 모르겠소? 한데, 비상으로 소집할 정도로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 아니지 않소이까.”
응……?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허적.
“매사 이렇게 일을 진행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중대본에서 숙식하라고 하시오. 참으로 답답하오. 긴급하다고 하여 도성의 지척에서 역병이라도 창궐하였는지 알고 얼마나 서둘러 달려왔는지 모르오.”
진심이 담긴 짜증을 내며 나를 탓하는 윤선도.
“위생 규칙을 교화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바쁜 사람들을 급히 소집할 일은 아니지요.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대감께서는 안 바쁘십니까? 실제로 안 바쁘신 거 같긴 한데……. 아니, 중대본의 본부장이며, 이조판서인데 대체 왜 안 바쁜 겁니까? 비결이 뭡니까?”
타박타박 따지는 윤휴.
“산림의 영수라는 사람이 이런 일을 긴급이라고 하나?”
한숨을 쉬며 나를 힐난하는 송준길.
급기야 혀까지 차면서 말을 이었다.
“이는 관료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설마 이를 수령들에게 맡길 생각이었나? 허. 정신 차리게. 우암.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가나? 아니, 양잠과 쇄염법으로 할 일이 많은 수령에게 어찌 교화의 일까지 맡길 수 있나? 설령 가능하다 할지라도 백성을 교화하는 건 사대부의 일이며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거늘. 아니, 자네는 산림의 영수라는 사람이 이토록 사족에 대한 믿음이 없나?”
“예……? 아니, 그게 아니라…….”
“됐네! 나는 오늘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네. 아주 실망일세!”
“……나도 자네에게 또 실망했네. 대체 언제까지 실망해야 하나? 평생 실망만 하는군.”
분위기 보고 물 타듯이 쓱 끼어드는 윤선거였다.
그나저나 이토록 의기로 불타오르는 건 좋은 일이었다.
갑론을박 없이 위생 규칙을 교화하는 걸 동의하니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 그렇긴 한데, 이 인간들은 내 말을 듣지도 않고 틈만 보이면 물어뜯으려고 하니 감동은 너무나도 짧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짧은 게 아니라 아예 생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제일 이상한 건 유형원이 여태껏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계속 묘한 표정과 눈빛을 고수하는데, 너무 꼴 보기 싫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우매한 이들의 말다툼을 지켜보는 현자처럼 행동한다고 할까?
딱 이때였다.
“한데, 스승님. 그 정도면 되겠습니까?”
느닷없이 훅 치고 들어온 유형원의 말.
허목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당연히 부족하다. 그러나 어찌 첫술에 배가 부르겠느냐. 위생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 없는 백성을 교화하는 것이니 시작부터 복잡하게 진행하는 건 어렵다. 또한, 우리 사대부라고 하여 다를 게 없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익힌 성리학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건 능수능란할지라도 위생은 또 다른 일이 아니겠느냐. 우선 우리부터 위생 규칙을 철저하게 지켜야겠지.”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대부부터 위생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백성을 교화하기 어려우니 막연하게 접근할 일은 아니겠지요.”
“하하하. 네 말이 참으로 옳다.”
“반계. 혹시 더 보탤 것이 있나?”
나는 사제 간의 정겨운 대화에 난입해줬다.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한마디씩 최선을 다하던 유형원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주 불순한 인사가 아닐 수 없다.
“없습니다.”
아닌데? 분명 있을 건데?
느낌이 딱 왔는데?
나는 유형원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알겠네.”
“…….”
“허 국장. 차후 집행할 규칙이 있을 것이외다.”
“그렇긴 하오.”
“백성에게 전하는 건 단계를 밟아야 하지만 사대부는 그럴 필요가 없소. 교화와 별개로 사대부는 즉시 이행하도록 해야 하오.”
“그 말이 옳소.”
2단계 위생 규칙도 크게 다른 건 없었다.
쉽게 말하면 지켜야 할 규칙이 늘어나는 것이다.
말이 길었는데 간략하게 요약해봤다.
-무더위에 찬 것, 덜 익은 과일, 과음, 상한 어육 따위를 최대한 피하기.
-노숙 금지.
-청결한 물로 음식을 청결하게.
-생수를 마시지 말고, 설거지는 끓는 물에.
-신선한 음식이라도 익혀 먹기.
……
-집을 습하게 하지 말고 주기적으로 청소하기.
-이불 세탁을 자주, 특히 유아의 의복은 더 자주 세탁.
-땀에 젖은 의복을 그냥 두지 말고 곧바로 씻어서 악취 제거.
-목욕 자주.
이 시절의 기준으로 볼 때 만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이 정도면 사대부라고 할지라도 쉽게 지키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니, 당장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다르지 않았다.
“쉽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릴지라도 기어이 해내야 하오.”
허목의 말대로 이 모든 걸 보급하려면 오랜 세월 사대부가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뛰어다녀야 한다.
이건 성리학처럼 보이지 않는 사상의 영역이 아니다. 성리학적 교화는 행위의 구현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이를테면 효라는 영역도 평생을 걸쳐서 지켜봐야 했고, 사정도 따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위생 규칙은 말 그대로 생활의 영역이었기에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걸 이뤄내려면 사대부들의 발바닥에 땀이 날 것이다.
눈에 불을 켜고 백성을 살펴야 할 것이니 말이다.
반면, 이래서 다행이기도 했다. 위생 규칙의 보급이 사상투쟁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성리학자의 기득권에 균열이 생기는 일이 아니었다.
귀찮고 고단한 일이긴 하지만, 불가함을 역설하며 싸우려는 무리는 없을 것이다.
“끝으로 당장 백성으로서는 어렵겠지만 온천욕도 권장해야 하오. 통상 6월~8월, 3개월간은 온천욕이 큰 효과를 낼 수 있소. 노인은 1일 1회, 장년은 2, 3회 정도.”
이는 참으로 원대한 목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허목은 목욕치법까지 준비하는 사람이었으니 스케일이 남다를 수밖에 없긴 했다.
물론 백성이 온천을 이용하는 건 어렵지만,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는 있다.
깨끗하게 씻으라는 식으로.
이 자체만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또, 온천이 아니라면 물을 끓여서 씻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시절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어차피 산에서 땔감 구하는 건 마음대로 하게 하였으니까.
“혹시 소생이 한두 가지를 보태도 되겠습니까?”
따로 할 말이 없다던 유형원이었다.
한 소리 해주고 싶었으나 나는 군자이기에 그런 유치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새 할 말이 떠올랐나 보군. 그래. 말해보게.”
아주 너그럽게 허락해줬다.
“……교화하되 강제할 영역도 있을 겁니다.”
“강제라고 하였나?”
“그렇습니다. 백성은 교화의 대상이지만 이익 집단은 법도를 적용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이익을 취하고자 상행위를 하는 상단과 상인에게는 위생 규칙을 권장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준수하게 해야 하는 게 옳습니다. 이를테면 팔아야 할 채소 따위를 오물에 씻는다면 엄히 벌해야지요.”
정확한 지적이었다.
“또한, 다수의 인원이 상시로 모여 있는 곳이라면 더욱 강제해야 합니다. 특히 수천 명 이상이 늘 존재하는 군영은 엄격한 군율로 통제되어야 하기에, 위생 규칙을 강제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기도 하고요.”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위생수칙이 교화와 별개로 법도로도 존재한다면 효과는 몇 배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물 끓여 먹는 걸 국법으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끓이지 않은 물을 손님에게 제공할 때는 벌할 수 있다.
또, 군영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먹으면 군율로 다스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확 쏠리지 않겠는가?
이걸 떠올린 유형원은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반계의 말이 참으로 지당하오. 본부장. 군현의 수령이 고생하겠으나 이 또한 시행하는 것이 어떻소?”
교화는 우리 선에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법도는 이연의 결제가 필요하기에, 본부장인 내게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물론 나 역시 동의하는 내용이었기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논의가 끝나는 대로 주상께 고하겠소.”
이만하면 됐다.
논의를 마무리하려고 할 때 문뜩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남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익살스럽게 말했다.
“우리 내기 하나 하지요.”
“내기라니요?”
“서인과 남인의 사족 중 누가 더 잘하는지 말이외다.”
“뭐요……?”
“본부장. 지금 뭐라고 하셨소?”
“본부장 대감. 설마 서인의 소인배…… 험험. 서인의 사족으로 우리 남인과 겨뤄보자고 하셨습니까?”
“본부장. 설마 겨뤄볼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 훤히 결과가 보이는 경쟁이거늘.”
미소가 진해졌다.
나의 제안에 남인의 거두들이 한마디씩 하였으나 단 한 명도 정쟁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이라고 했다.
그랬다. 이는 경쟁이었다.
확실하게 느껴졌다.
작금의 붕당은 전인미답의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이런 경쟁이라면 백번이라도 괜찮지 않겠소?”
“하하하! 우암! 경쟁도 상대를 봐가면서 하는 것일세. 백번을 겨뤄도 우리 서인이 이길 것인데 무슨 경쟁을 하겠는가. 그래도 해보려면 우리가 어떻게든 한 수 접고 들어가야지.”
“……해보나 마나 우리가 압도할 것일세. 이건 자네가 실언할 걸세. 우암. 나는 갈수록 자네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는 것 같네.”
송준길과 윤선거의 말에 남인들은 발끈했다.
이마에 핏줄까지 세우고 고함을 질렀다.
특히 윤선도가 발언이 강경했다.
“참으로 우습소이다. 양지에서 호의호식한 서인의 사족이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씀이시오?”
“뭐, 뭐요? 양지라니? 호의호식이라니?”
“아니, 대사헌. 왜 그리 발끈하시오?”
“흥! 내가 언제 발끈했소? 됐소. 말을 길게 해서 뭐하겠소이까. 이 승부, 피하지 않겠소.”
“하하하! 피하게 될 것이오. 우리 남인이 서인을 압도할 것이니까.”
윤선도의 호탕한 기백에 송준길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서인이야말로 백성을 가장 가깝게 지내며 교화가 일상이오.”
“그 교화, 별로 탐나지 않소이다.”
“!!!”
역시 윤선도의 세 치 혀는 비수보다 날카롭고 아팠다.
이건 누가 봐도 송준길이 졌다.
자신도 이를 인지했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으며 수염은 휘청거리듯 흐트러졌다.
“대사헌. 이건 내기요. 괜히 무리하다가 어찌 감당하시려고 그러오?”
“하! 내가 할 소리요! 선생이야말로 감당하실 수 있소?”
“감당을 왜 하오? 무조건 우리가 이길 것인데.”
“!!!”
송준길과 윤선도를 필두로 서인과 남인은 신경전을 펼쳤다.
보고 있노라니 입가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런 신경전은 언제나 환영이며, 영원히 이어져도 되지 않겠는가.
이제 하늘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점차 조선 사대부의 의기가 미친 듯이 찌를 것이니까.
많이 아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