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위기 혹은 기회(3)
도성의 문이 열렸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
이들은 세상의 모든 고생을 한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망진창 꾀죄죄한 몰골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흙과 먼지가 덮은 얼굴의 절반은 땀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몸에 걸친 의복을 보면 누가 감히 우리를 백의민족이라고 하였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걸음에는 생기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도성을 향해 오는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지금 이뤄지는 도성으로의 진입은 저들에게 그저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 분명했다.
그러니 가슴이 벅차오를 것이다.
어쩌면 내일에 대한 작은 기대와 희망이 있을지도 몰랐다.
스며들듯 느껴졌다. 중대본의 방침이 큰 위로가 되었다는 걸.
또, 보고 있노라면 저들의 고생이 너무나도 크게 와닿았다.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간지럽히듯 일어났다.
가타부타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뭉클하며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놀란 이유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그러니까 정말 아예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나는 점차 다가오는 유민을 보며 황당함을 토로했다.
“아니, 대체 어떤 눈을 가지고 있으면 저 인원을 1,000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랬다.
통제를 받으며 다가오는 유민의 수는 그냥 딱 봐도 1,000명이 아니었다.
무조건 넘었다.
아예 넘었다.
그래서 나는 정확한 보고가 올 때까지 계속 황당해하고 있을 계획이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한 계획이기도 했다.
“대감.”
유민의 수를 파악한 한성부의 관리가 다가왔다.
뻘쭘하게 웃는 꼴을 보니 상황의 심각함이 놀라운 수준인 게 분명했다.
“조금 전 인원 파악이 끝났습니다. 정확하게 2,342명입니다.”
“…….”
“하하하…….”
“처음 수백 명이라고 한 관리는 어디 있나? 내가 직접 그 입에 사약 한 사발을 넣어 버릴 테니까. 그걸로 부족하면 될 때까지 넣어버릴 것이야!”
“그건 좀 어렵게 됐습니다.”
“뭐라?”
“그자는 조금 전 사직하였습니다. 다시는 관직에 출사하지 않을 것이며, 도성 쪽을 쳐다보지 않을 것이며, 후손들도 영원히 도성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할 테니 부디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어렵다면 가문의 명맥이라도 유지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고요. 그러고는 아예 낙향했습니다.”
“…….”
됐다. 내가 지금 한성부 관리와 실랑이한들 뭐하겠는가.
어차피 2,000명이 넘는다고 하여 내칠 것도 아니었고.
아니, 그래도 예정 인원보다 2배나 많은 건 미칠 노릇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
이거라도 안 하면 허공을 보며 욕설을 퍼부을 것 같아서였다.
1,000명과 2,342명은 아예 달랐다.
단순하게 2배 이상이라는 산술적인 차이가 아니라 서로 전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숫자였다.
한마디로 초과 비용이 엄청난 수준으로 발생한다는 걸 의미했다.
한숨을 쉬며 속을 진정시키자 머릿속에서 허목의 위대한 선언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떠올랐다.
-위생국은 그간 백성에게 구황을 꾸준하게 전하였소. 위생국도 구황 작물을 따로 확보했소. 유민의 규모가 1,000명이라고 한다면 위생국이 확보한 구황 작물로 족히 한 달은 버틸 수 있소.
한 달이면 훈련대장 이완이 군량을 가져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도성 백성을 살필 최소한의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유민의 상태를 살핀다면, 역병의 의심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외다.
다 좋은 말이었다.
그러나 허목이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이게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도성에 거주하게 하여 위생 규칙의 확고한 선례를 세워보고자 하오.
그랬다.
유민을 상대로 진행할 위생 정책보다 더 확실한 사례가 어디 있겠는가.
허목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모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뜻을 밝혔다.
물론 격려의 말 따위가 있긴 했으나,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와중에 나는 혹여라도 걱정할 사람들을 달래고자 한마디를 보탰다는 것이다.
-발생하는 문제는 반드시 내가 책임지겠소.
그랬다.
그러니까 괜히 그랬다.
시작부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그 문제가 물리력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아예 없는 인원수 초과였다.
무려 2배 이상.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본부장.”
다급함과 황망함이 잔뜩 담긴 목소리였다.
허목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너무 안쓰러워 조만간 가마 한 채 뽑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민의 규모가 처음 보고보다 많소.”
“한성부가 사고를 제대로 쳤소. 두 배 이상으로 많소.”
“유민의 수가 많다는 건 초안을 폐기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오. 당장 위생국의 구황 작물로 버틸 수 있는 기한은 10일 전후로 줄어들 것이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소. 유민이 거주지로 선정한 곳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봇물 터지듯 발생할 것이오. 이를 어찌해야 좋겠소?”
그랬다.
초과 인원이 1,000명을 훌쩍 넘기면서 발생한 최대 문제는 바로 거주지역 선정이었다.
세세한 호구조사는 다시 해야겠으나, 통상 1,000여 명이라고 하면 대략 120호~130호 수준이다.
중대본은 철저하게 이를 고려하여 거주지를 결정하였으나 상황이 고약하게 꼬여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150호 전후의 가구가 거주할 ‘집’ 아니 최소한 ‘집터’라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오는 건 진짜 한숨뿐이었다.
그러나 이건 중대본이 해내야 한다.
위생 정책을 진두지휘해야 할 허목에게 떠넘길 일이 아니었다.
원칙은 허목이 이 문제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허 국장. 지금 당장 어찌할 방도는 없소. 우선 유민을 최초 거주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게 옳소. 그 뒤 방안을 모색해야 하오. 이 문제는 내가 반드시 해결할 것이니 허 국장은 위생국을 잘 이끌어주시오.”
“알겠소. 본부장을 믿겠소.”
휴.
어깨가 무거워졌다.
나는 서둘러 이동했다.
중대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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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한숨이 땅을 뚫었다.
옆에서 숨만 쉬고 있어도 귀가 따갑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쌀을 준다더니 이따위 풀이나 먹고 있으라고요?”
“지천으로 널린 게 소나무 잎이라고요. 이런 건 도성밖에 더 많습니다.”
“우리가 소나 돼지도 아니고!”
“설마 우리는 쌀을 안 주려고 이 구석에 처박아 두는 건 아니겠지요?”
“대체 쌀은 언제 줍니까?”
말투는 거칠었다.
표정은 험악했다.
눈빛은 싸늘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민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평범한 백성은 아니었다.
조정에서 엄격하게 통제하는 거주지 이탈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평범이라는 단어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무릇, 유민은 언제라도 손에 흉기를 들고 도적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지금 당장 뛰쳐나가 백주에 도둑이 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건 갈대보다 쉽게 흔들리는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었다.
이뿐이겠는가.
어쩌면 이들 중 누군가는 이미 사람을 죽여봤을지도 모른다.
그 행위에는 타당한 이유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또, 생존을 위하여 인육을 취해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을 죽여서 취하였을 수도 있다.
그랬다.
이들은 도성에서 흔히 만나는 백성과는 아예 다른 존재였다.
간단한 의술을 베풀어도 감격하며 눈물을 보이던 선량한 백성과는 전혀 달랐다.
거칠었고 날카로웠다.
“하! 우리가 우습소?”
“아니, 그게 아니라…….”
“당장 치우시오!”
의원들이 건네는 구황 작물이 땅에 패대기쳐지는 건 너무나도 흔한 일이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소?”
“위생국의 방침이 그러하다네. 일단…….”
“하! 의원이 뭔데 나더러 씻으라 말라 하오? 내가 어디 아픈 사람으로 보이시오?”
“일단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게.”
“됐소! 내가 우습소?!”
위생 규칙을 권하는 의원들을 향한 험악한 분위기는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심해졌다.
“구휼미 안 주면 여기서 떠나겠소.”
“자네 정말 좋은 생각일세. 암. 맞는 말이지. 쌀을 안 주는데 뭐하러 여기에 있나?”
“이왕 도성에 들어왔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 만한 곳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암. 품삯을 받을 만한 일이 있는지도 알아봐야지.”
아예 이곳에서 떠나겠다는 말도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아직은 행동에 옮긴 사람은 없으나 시늉을 하는 이는 너무나도 많았다.
결국, 사색이 된 의원들은 서둘러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의원들로부터 사정을 전해 들은 허목의 미간은 와락 일그러졌다.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위생 규칙의 보급에 교화가 우선이라는 건 원칙이 분명하다. 하지만, 혼란이 뒤덮은 유민을 상대로 어찌 교화가 제대로 이뤄지겠는가.”
“하, 하면 어찌합니까.”
“강제 집행해야지.”
허목의 단호한 답변에 의원들의 얼굴은 핼쑥해졌다.
지금까지 유민들과 있었던 마찰이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목울대로 마른침을 넘기며 허목의 눈치를 살폈다.
“서두르지 않고 뭐 하고 있나?”
“서, 선생께 말씀드렸듯이 충돌이 잦습니다. 소인들은 도저히 그들을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부끄럽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미 의원 중에는 유민들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밀쳐진 사람도 있습니다. 저희는 유민을 감당할 자신도, 능력도 없습니다.”
“예. 부끄럽지만 어쩔 방도가 없습니다.”
“더 나섰다가는 소인들을 어찌할 기세였습니다.”
의원들의 절절한 호소에 허목도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이런 문제는 재촉한다고 하여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더욱이 유민의 규모가 무려 2,000여 명이 아닌가.
“선생. 차라리 병력을 동원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무리 유민이 험악하더라도 군사들에게 어찌하지는 못할 겁니다.”
어쩌면 가장 현명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력의 동원은 허목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도성 내부에서 병력을 움직이는 건 중대본도 할 수 없다.
이건 오직 군왕의 권능이었다.
군왕이 윤허할 줄도 알 수 없을뿐더러, 절차를 밟으며 일을 진행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중대본에 말을 전달할 필요는 있으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저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유민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순간 위생국이나 위생 규칙이 아니라 중대본이 송두리째 뿌리 뽑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허목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럴 때 방책은 하나밖에 없었다.
“따라오게. 내가 직접 할 테니까.”
담긴 뜻은 아주 간단하고 명쾌했다.
양반이라는 신분을 앞세워 통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으나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서, 선생!”
관기교 방향에서 의원 한 명이 대경실색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허목은 불안함이 엄습했다.
필시 무슨 변고가 터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어진 말은 예상의 궤를 아득하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저, 전하께서 납시었습니다.”
“!!!”
“!!!”
“!!!”
“!!!”
차라리 변고가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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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리지는 않았다.
내가 뛰어가는 것보다 가마꾼이 달리는 가마를 타는 게 백 배는 더 빨라서였다.
승차감이 별로여도 좋으니 그냥 막 달리라고 했다.
순식간에 중대본에 도착했다.
“본부장!”
멀찍이서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영의정 정태화가 보였으나 무시하고 그냥 등청했다.
역시 모두 모여 있었고, 상황의 엄중함을 이미 숙지하고 있는 거 같았다.
“최초 유민의 거주지로 선정한 곳은 도성의 동부지역이었으나 관기교에서 응란교의 범위로는 저 규모의 유민을 수용하는 건 불가능하오.”
허적은 도성 동부를 그린 지도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할 수도 없소. 모두 알다시피 도성도 포화상태요.”
“후보로 선정할 지역이 있소?”
“끙. 결국, 동부의 어떤 지역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소?”
당연한 말이었다.
유민을 왕족과 양반이 즐비한 서부, 북부로 이주시킬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중대본의 부동산 정책을 규탄하는 왕족과 양반의 연합 집회가 발생할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또, 그들의 반발을 떠나서 신분제가 있는 나라에서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짓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하여 남부도 어렵다. 차후 얼마간 유민은 철저하게 통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하오. 유민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순간 치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백번을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오.”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일단 허 국장에게 일러 기존 선정지에 유민을 모두 집결시켜 위생 정책을 집행하라고 하였소.”
“참으로 현명한 판단이외다.”
당장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낸 건 아니었다.
중대본의 모든 눈은 동부 지도를 맹렬하게 쳐다보며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동부 지역과 관련한 모든 자료가 도착했다.
모두 미친 듯이 서적을 뒤적거리며 초과 인원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역을 모색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전하께서 관기교에 납시었습니다!”
“!!!”
“!!!”
이연이 유민을 만나러 갔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우리는 대경실색하여 일제히 일어났다.
그런데 이어진 말이 걸작이었다.
“중대본의 누구도 자리를 비우지 말고 대안을 수립하라는 하교를 내리셨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연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현대 국가에서도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나 장관급 공무원이 등장하면 실무를 봐야 할 공무원들이 다 달려가서 의전에 집중하느라 막상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폐단이 심했다.
이연은 이 폐해를 정확하게 내다봤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다.
1. 행여라도 발생할 수 있는 유민의 불만은 군왕이 등장하여 잠재워버린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불평불만이 많을지라도 왕이 직접 와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어떤 미친놈이 계속 구시렁거리겠는가. 만약에 있다면 역사에 그 이름 석 자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
2. 그새 중대본은 완벽한 대책을 수립한다.
정확하게 이연의 의도는 이것이었다.
놀라운 정치력에서 비롯한 명쾌한 해결책이었다.
내가 이래서 이연을 싫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내가 이래서 이연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이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모두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였으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너무나도 훈훈한 군신 간의 믿음과 의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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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식경(食頃) 전만 해도 하늘을 찌르고 땅을 뒤덮던 불평과 불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도적이 되겠노라며 떠들던 흉악한 분위기는 아예 없어졌다.
눈을 부라리며 오만상을 찌푸리며 험한 말을 쏟아내던 유민은 사라졌고 선량한 백성 2,342명만 존재했다.
이 모든 변화의 원인이자 조선의 지존인 이연은 몸을 낮게 낮추어 어린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군왕의 충격적인 행동은 사방의 모든 공기를 순식간에 흡수했다.
모든 이는 숨을 쉬기도 버거웠다.
그러나 이연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옥수(玉手, 어수)를 뻗어 노인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노인은 황망함에 어쩔 줄 몰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으나 이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너의 손에서 지난 세월이 고됨이 느껴지는구나.”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덜덜 떨리는 노인의 말을 들은 이연의 입가에는 아주 짧게 쓴 미소가 감돌았다.
그야말로 찰나였기에 다른 이는 미처 볼 수 없었으나 노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노인의 얼굴은 아예 창백해졌다.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만 감당할 수 없는 이 대화를 끝낼 수 있을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군왕이 의지였으니, 노인은 그저 이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