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뉴타운(2)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들 왜 저러는지 알고 있었다.
나와 유민의 일을 전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씩 해명할 필요와 이유는 없다.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시작하지요.”
단호하게 딱 잘라서 말하자 다들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무슨 말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다 불필요할 뿐이다.
“유민의 거주지역을 새로 선정해야 하오. 정확하게는 더 확장해야겠지요.”
먼저 운을 띄웠다.
당연하겠으나 이 명제를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참으로 묘할 뿐이었다.
이해한다.
조금 전까지 유민과 드잡이질을 하고 왔는데 거주지를 확장하자고 하였으니 미친놈처럼 보일 것이다.
다들 어색하게 웃으며 한마디씩 보탰다.
“그렇지요. 전하께서 권능을 행사하셨는데 원안을 고수하는 건 곤란하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
“문제는 어디로 결정하느냐는 것이오.”
다들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따로 고민은 해봤겠으나 쉽사리 답을 내리는 게 어려운 문제였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수정안을 논의할 때 지적되었던 문제가 사라진 게 아닌지라 당연하기도 했고.
그러나 이대로 시간을 끄는 건 곤란했다.
차라리 이럴 때는 빠른 결정과 집행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아주 과감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대감. 동부 12방 중 한 곳인 숭교방을 개방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유형원이 과격하게 나왔다.
깜짝 놀란 허적이 황급히 나섰다.
“설마 전역을 유민에게 내어주자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숭교방이라면 유민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겁니다.”
“허…….”
허적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낙후한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1개 방을 아예 내주자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유라도 말이다.
하지만 유형원은 멈추지 않았다.
“원안의 관기교, 옹란교와 지척인 곳입니다. 이곳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소생이 해당 지역에 상주하며 유심히 살폈습니다. 능히 가능합니다.”
“반계의 말대로입니다. 어차피 숭교방은 민가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윤휴가 훅 치고 들어오면서 유형원의 편을 들었다.
허적은 일단 신중론을 꺼냈다.
“자네들 말에도 일리가 있네.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네.”
“물론이지요. 하지만, 대감. 왜 고려해야 합니까.”
“허. 백호. 그게 무슨 말인가.”
“현재 우리 중대본이 가장 중시해야 하는 건 조정과 사대부의 여론이 아닙니다. 재해로 터전을 떠난 유민을 보듬어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어심을 살피는 것이지요.”
윤휴답게 과격하였으나 내용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백성을 살피고, 어심도 살핀다.
가장 중요한 원칙 2가지를 모두 꺼냈으니 말이다.
이 거대한 명분 앞에서 발생 가능한 반발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숭교방 외에 대안은 없었기에 반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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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그런 사람이 있다.
하나를 하려고 하면 열을 하려고 덤비는 사람.
일을 한도 끝도 없이 키우니 주변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하니 뭐라고 할 수도 없다.
한마디라도 하는 순간 내가 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형원이 딱 그렇다.
집무실까지 쫓아온 그를 반쯤 풀린 눈으로 쳐다만 봤다.
“대감. 소생을 믿어보십시오.”
“내가 다 믿어도 자네는 믿을 수 없지 않을까? 그동안 우리 사이의 역사가 있는데 말일세.”
“어찌하여 공사를 엮으십니까.”
“……애초 너무 진하게 엮여 있었네만.”
“소생은 모르는 일입니다.”
“허.”
“이렇게 소생을 괄시할 거면 대체 왜 삼고초려를 했습니까.”
“왜긴? 자네가 제갈량의 화신이니 삼고초려 정도는 해야지.”
유형원은 멈칫했다.
자기가 한 미친 짓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유비가 없는데 제갈량만 있어 봐야 의미가 없지요. 해서, 삼고초려는 미완입니다.”
“…….”
더 말해서 뭐 하겠는가.
이 인간은 애초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데 또 능력은 있다.
이럴 때는 빨리 대화를 끝내는 게 옳다.
“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가.”
“원래 유민의 거주 정책은 소생의 역할이었습니다.”
“알고 있네. 한데, 그건 유민이 1,000명일 때의 역할이지. 지금은 사정이 바뀌지 않았는가.”
“소생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죽기 전에 자네를 믿어보도록 노력하겠네.”
“어찌하여 이번 일에 소생을 배제한 것입니까.”
“위생국의 일이니까.”
일부 지역에 1,000명의 거주지를 설계하는 것과 넓은 지역에 2,000명의 거주지를 세우는 건 아예 다른 일이다.
심지어 군왕의 권능과도 관련한 일이다.
이처럼 중대한 일을 유형원에게 도맡길 수는 없다.
그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고루한 원칙일 수도 있으나 세상사의 이치를 따른 것이었다.
아쉽지만 유형원은 아직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책임질 권한이 없었으며, 그럴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하여, 자연스레 유형원이 아니라 위생국의 국장인 허목이 책임자로 내정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송준길 정도는 되어야만 무게감이 실릴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다. 그런데도 허목이 내정된 건, 기존의 역할 분담을 아예 무시하고 일을 집행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크게 반영된 결과에 불과했다.
이러한데 유형원이 총책임자가 된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이 대목에서 내가 제일 어처구니가 없는 건, 유형원이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나쁜 놈이라 할지라도 대놓고 ‘너는 중량감이 부족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대화가 허공에서 헛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알기라도 하는지 유형원은 거침이 없었다.
“소생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응?
갑자기 이런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이 인간이 무슨 일이래?
“그러나 스승님은 소생이 설득할 수 있습니다.”
“하. 그러면 그렇지.”
“예?”
“아닐세. 그런데 자네는 왜 매사 인맥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나?”
“사제 간의 일이거늘 어찌 인맥이라고 합니까?”
“그렇게 붕당이 시작되는 걸세.”
“산림의 영수께서 그리 나오시니 참으로 당황스럽군요. 조선 땅에서 학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 대감 아닙니까?”
“아쉬운 말을 하러 온 사람이 너무 당당하니 어처구니가 없군. 자네는 청탁의 기본도 모르나?”
유형원은 헛웃음을 짓더니 나를 빤히 쳐다봤다.
참으로 거슬리는 눈빛이 아닐 수 없다.
“소생더러 대감께 뇌물이라도 바치라는 겁니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아니, 대화가 왜 또 그렇게 흘러가나? 그런 뜻이 아니지 않은가.”
“소생은 중대본의 대사에 의욕을 보이며 나선 것인데 청탁을 운운하며 뇌물을 바라시니, 어찌 당황스럽지 않겠습니까.”
“거. 말을 왜 계속 그렇게 하나?”
“됐습니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꼭 공론화해야지요.”
그래. 이 새끼는 이런 인간이었지.
내가 내 발등을 찍었구나.
거세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겨우 짓누르며 말했다.
“진정하고 일단 사유라도 들어보면 안 되겠는가? 자네가 기어이 이번 일을 수행하고 싶은 이유 말일세.”
“그렇게까지 청하시니 소생이 어찌 거절만 할 수 있겠습니까.”
“……서두가 길군.”
“대감. 동부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잠재력?”
“동부 지역은 도성 변화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그냥 출사표(出師表)를 한 장 쓰지 그러나?”
“가당치도 않은 발언은 삼가시지요.”
“그만큼 자네 말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걸세. 동부는 도성에서 가장 낙후한 곳이네.”
진심이었다.
무슨 뉴타운 사업이라도 하려는 걸까?
천지가 개벽하기 전에는 동부는 도성의 중심지가 될 수 없다.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으나 유형원이 이렇게 말하니까 일단 들어는 봐야 할 거 같다.
재수가 없고 짜증이 나지만 능력은 역사가 검증했으니까.
그새 유형원은 나를 슬쩍 바라보더니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조건 흉악한 짓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삐뚤어진 게 아니다.
그간의 서사가 이를 입증했다.
“숭교방이 시작입니다. 철저하게 계획하여 거주지를 배치한다면 시기는 더 빨라질 겁니다.”
진짜 뉴타운 사업을 언급할지는 몰랐다.
본능적으로 이 대화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타운을 중대본에 언급하는 순간 나는 허적이 보낸 자객에게 죽을 수도 있다.
지금쯤이면 요동에 당도했을 국비 유학생들의 비용만으로도 제대로 찍혀 있으니, 더 일을 펼치면 진짜 한밤의 이슬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몸을 사리는 게 아니다.
아니, 말이야 바른말로 재해를 방비하는 기구인데 비변사처럼 일하려고 하는 유형원이 이상한 것이다.
“반계.”
“최대 3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그냥 사기꾼이다.
3만 명이면 북부와 중부보다 많은 인구수인데 이를 동부 지역에서 해낸다는 것이다.
뉴타운이 아니라 천지창조다.
차라리 나라를 세우자고 해라.
“상업의 중심 지역으로 말입니다.”
“반계. 그만하게.”
“시작부터 끝까지 조선 최초로 위생 정책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거주지역이 될 겁니다.”
하. 나 진짜.
아니, 조선 사람들은 왜 제일 중요한 걸 맨날 마지막에 배치할까?
이건 너무 기분 좋게 짜증 나잖아?
나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기승전결,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다고 여기겠네.”
“물론입니다.”
유형원은 자신만만했다.
그 미소를 보고 있노라니 듬직하기는 한데, 재수가 없다.
그리고 유형원의 호언장담만으로 세상사를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실무를 그가 보더라도 공식적인 책임자는 허목으로 정리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이만하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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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방문한 숭교방 곳곳은 활기가 가득했다.
처음 도성에 진입하였을 때 느꼈던 분위기와는 아예 달랐다.
유민들의 입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눈에는 희망도 보였다.
공기조차 달콤한 듯 실실 웃고 다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나 역시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뒷짐을 지고 적당한 속도로 걸으며 살펴보는데,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가옥을 짓기 위해서 분주한 백성들의 움직임에 어떤 규칙 같은 게 보인 것이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답변은 걸작이었다.
“소,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누가 자네에게 뭐라고 했나?”
“무조건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
누구를 탓하겠나.
다 내가 자초한 일이거늘.
정확하게 다시 물었다.
“가옥과 가옥 사이에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 같은데?”
“한 가옥당 5칸씩 가지게 되었습니다. 딱 맞춰서 집을 지어도 되고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들었습니다. 넘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며 진땀을 흘린다.
이곳도 나의 악명이 자자한 모양이다.
이 불쌍한 사람을 놓아주려고 할 때였다.
-소문 못 들었나? 마음에 안 들면 잡아 묶어서 종일 두들겨 팼다는군.
-엄청나군.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채찍을 휘둘렀대. 우리도 눈 밖에 나면 무슨 일이 생길 줄 모르니 조심해야 해.
-맞아. 어차피 임금님은 또 오시기도 힘들 건데, 저 높은 양반은 허구한 날 와서 트집 잡을 게 없는지 살피고 있으니까.
누군가가 날조한 유언비어가 들렸다.
슬쩍 시선을 돌리며 조용하게 압박을 줬다.
과연 속닥거리던 무리는 순식간에 해산했다.
뭐. 이것도 스트레스만 안 받으면 제법 편했다.
걷기만 해도 알아서 다 비켜주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고독을 씹으며 고독함을 즐기며 걸었다.
이제 막 기초 공사를 시작한 인원이 보였다.
땀을 뻘뻘 흘렸으나 입가의 미소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보고 있노라니 절로 기분이 좋아져서 다가갔다.
“험.”
“!!!”
“!!!”
“!!!”
순식간에 공기는 얼었고, 분위기는 경직됐다.
흥얼거리며 장대석과 모래 따위를 옮기던 이들은 곧바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저 내가 등장하였을 뿐인데 고된 훈련을 거친 정예군보다 더 일사불란했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이것은 바람직하다.
나는 씰룩이는 볼을 겨우 진정시키며 말했다.
“도성의 흔한 민가와는 조금 다른 거 같은데?”
“소, 송구합니다.”
“그냥 물어본 걸세.”
“반계 선생이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하였기에 따르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소인들은 그저 시킨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반계가 뭐라고 했나?”
“크게 여섯 가지였습니다. 첫째, 집이 꺾여 있는 부분에서는 늘 물이 새고 기둥이 썩는 현상이 발생하니 삼가고…….”
-‘ㅁ’자형 집은 마당이 좁아 지붕의 그늘이 서로 드리워진 까닭에 곡식이나 과실을 말리기에 불편하다
-사면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안마당에 모여드는데, 낙숫물을 빼는 방법이란 문이나 광 섬돌의 바닥에다 보이지 않는 구멍이나 작은 도랑을 만드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데 물길은 늘 모래와 진흙으로 막힌다.
-집에 에워싸여 있어서 통풍이 안 된다.
-집에 불이 나면 집이 연결되어 있어 무너뜨리지 못한다.
-집의 안과 밖을 구별하여야 한다.
이 조건을 그대로 정리하면 종래 조선의 민가처럼 짓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낙수받이는 꼭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하여 사면을 만들고, 내부에 모래를 깔고서 얇고 넓은 돌을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낙수받이에 떨어진 물이 연결된 배수로를 따라서 동쪽에 있는 길로 이동할 것이라고요.”
“뭐……?”
그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렸다.
이제 확인해 보니 길 쪽으로 연결한 배수로가 있었다.
내부는 모두 작고 얇은 석재를 이용하여 바닥 석을 깔았고, 다듬은 석재를 이용하여 바닥 석 양 측면에 배수로 면석을 세웠다.
“배수로는 누가 작업한 것인가?”
“유민 중에는 석공이나 손재주가 뛰어난 이가 제법 있습니다. 반계 선생이 그들을 선출하여 곳곳에 배수로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대신, 그들의 가옥은 나머지 사람들이 거들기로 했습니다. 이곳도 석공의 집입니다.”
“…….”
“혹시 소인들이 잘못한 겁니까?”
“하던 일이나 하게.”
기가 막혔다.
-위생 정책을 기준으로…….
유형원의 호언장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그는 지금 진짜 뉴타운 공사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알고 보니 숭교방의 길에는 배수로가 설치되고 있었다.
“배수의 기본은 건물이나 사람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물을 이동시키는 것이지요.”
터벅터벅 걸으며 배수시설을 확인하던 내 귀로 들리는 낭랑한 목소리, 보나 마나 유형원이었다.
나는 등을 돌리지 않고 여전히 배수시설을 바라봤다.
유형원의 목소리는 점차 다가왔다.
“흙 또는 돌로 바닥을 깔고 좌우로 옆막이 석을 촘촘히 세워 유도하는 방법이 첫 번째이지요. 이때 옆막이 석은 바른 면이 서로 마주 보게 축조되기에, 배수 방향을 따라서 가로 또는 세로 방향으로 일관되게 축조해야 합니다.”
“…….”
“둘째로 건물 기단석 혹은 축대 석을 활용하여 옆막이 석을 1열만 설치하는 겁니다. 옆막이 석은 바른 면이 건물의 기단이나 축대를 바로 보게 놓이며, 대부분 바닥 석을 깔지 않고 흙바닥에 옆막이 석을 축조합니다.”
“…….”
“이 두 가지 방법은 덮개 석이 없이 노출되어 있으므로 청소나 보수가 간편하며 재원이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의문이 생겼다.
“덮개 석을 설치하면 더 좋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덮개 석을 설치하면 좋겠으나, 조정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지요. 해서, 이리 진행하였습니다.”
“…….”
“이상하군요. 왜인지는 모르지만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소생의 착각입니까?”
진짜 아쉽다.
자고로 도시 건설은 한 번 하면 다시 뜯어고치기가 어렵다.
이왕 이런 수준의 뉴타운이었다면 큰마음 먹고 대대적으로 진행하는 게 더 좋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애초 재원의 지원에 난색을 보인 건 나인데.
아니, 그런데 평소에는 그렇게 사기를 치더니 이럴 때는 왜 또 정직한 건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스승님께서는 한시라도 빨리 낮은 수위의 목욕 정책을 시도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배수시설이 미흡하니 어찌 섣불리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또, 그렇다고 하여 아예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은 배수시설에 집중하되, 집마다 반드시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마련하라고 일렀습니다.”
스치는 말이 있었다.
-목욕은 아직 무리요. 그러나 하지 않을 수도 없지요.
너무나도 단호한 허목의 말에 담긴 뜻은 이것이었다.
2천여 명이 섣불리 목욕하면 사용한 물을 처리하기가 곤란하다.
또 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소규모로 점진적인 집행할 계획하겠다는 의도였다.
완벽하게 배수시설을 설치되었을 때는 이미 한 단계 위의 위생 사업을 완성되었을 것이다.
역시 유형원 정도의 천재는 현대 기술 따위가 없어도 되는구나.
감탄을 절로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색하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재수 없는 인간이 더 기고만장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대감!”
“우암 대감!”
“본부장 대감!”
나와 유형원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약간의 미간을 찌푸리며,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응?
고함을 지르며 엄청난 기세로 등장한 무리는 ‘감히’라는 부사를 무색하게 하는 존재들이었다.
바로 이 나라 조선을 이끌고 갈 동량들, 성균관의 유생들이었다.
그러니까 가뜩이나 말 많은 조선 사대부 사회에서 가장 혈기 넘치는 무리였다.
저들이 이토록 폭발적인 기세로 다가오니 불안함이 엄습했다.
하지만 나는 무려 송시열이었기에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오히려 위엄을 갖추며 바라봤다.
과연 성균관 유생들은 움찔하며 예를 취했다.
그런데 공손함과는 달리 그들의 말은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대감. 송구합니다만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예. 송구하지만 유민은 어찌 통제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참으로 송구하지만 애초에 유민을 왜 이곳에 들이신 겁니까?”
“참으로 송구하지만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여 글자를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성균관 근처에 유민이 득실거리니까 기분 나쁘다는 의미……?
이 같잖은 항의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대감께서 언짢으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소생들은 이 문제를 절대 가볍게 넘기지 않을 겁니다.”
“……자네들 지금 중대본의 정책에 항의하는 것인가?”
“안됩니까? 조선은 언로가 열린 나라입니다. 아무리 본부장 대감이라고 할지라도 소생들을 이렇게 탄압하실 수 없습니다.”
“아니, 내가 뭘 또 탄압까지 했다는 건가? 그리고…….”
유생들의 뒤로 불안한 눈빛의 유민들이 보였다.
저들은 성균관이라는 지고한 집단에서 유생들이 단체로 나와 항의하는 것 자체가 두려울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건 아니었다.
목울대까지 올라오는 노기를 잠시 멈췄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하자는 것일세. 결론은 오갈 데 없는 유민을 성균관 코앞에 거주하게 하였다고 항의하는 것이 아닌가.”
답변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확인 사살은 중요하다.
나는 오늘 이들의 정신을 아예 고쳐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감. 소생들과 함께 가실 곳이 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직접 보신다면 소생들을 이해하실 겁니다.”
“가시지요. 소생들이 모시겠습니다.”
어쩌면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확인 사살을 시도한 건 신의 한 수일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 아주 빠른 속도로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