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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87화 (87/298)

87화 정의의 여신(1)

미치겠다.

진짜 미치겠다.

정말 너무 미치겠다.

동시에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일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였다면 나는 지금쯤 쥐구멍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무조건 쥐구멍에 들어간 뒤 땅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다.

-나는 대체 어쩌자고 우리 성균관의 유생님들에게 그따위 말을 했을까?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고자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께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했을 리는 없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렇게 생각이 짧았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거의 나를 찾아가서 싸대기를 날리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미친 말을 안 들어주신 귀를 비싼 값에 구하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하늘이 돕는 사람이었기에 그러한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대감.”

나는 멋쩍은 미소를 감추며 유생들을 바라봤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반항적인 시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코를 막고 있었다.

왜……?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악취가 공간을 아예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취의 원인은 바로……

“대감. 성균관의 지척에 인분으로 이뤄진 강과 산이 만들어졌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인분이었다.

과거 삭주에서 만난 인분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절대적인 수량을 떠나서, 여기는 단기간에 협소한 공간에 집중되어 있었다.

진짜 악취가 사람을 죽이려고 덤벼들 정도였다.

삭주의 그것과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정신이 어지러웠다.

나오는 건 한숨뿐인데 나오지도 못했다.

숨 쉬는 게 어려울 정도로 악취가 심했으니까.

아니, 이 정돌 인분이 쌓일 동안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동부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성균관이 지척인데 말이다.

“갑자기 2천여 명의 유민이 동부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도 내심 당황하였으나 어쩔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나라 전체가 재해로 어지러우니 중대본에서도 고민이 많았겠지요.”

“예. 심지어 주상전하께서 친히 선언하셨는데 소생들이 어찌 우려의 말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부터인가 악취가 조금씩 나긴 했으나 그러려니 했습니다.”

“조금 더 심해졌을 때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모여 원인을 탐구하였고, 결과 이곳을 발견하고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참지 말지.

그냥 바로 확인하지.

그러면 이 사달이 나기 전에 확인했을 거 아니냐고.

“어디 이뿐인 줄 아십니까?”

더 있나 보다.

“반촌에도 유민의 인분이 있습니다.”

“…….”

“엄격하게 법도를 적용하면 모조리 벌할 수 있다는 걸 어찌 모르십니까.”

반촌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유민이 들어가서 볼일을 보고 왔다고 한다.

그냥 미치고 싶었다.

“대감. 이를 대체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아니, 성균관의 지척에 이런 사달을 만들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성균관은 공자와 유가의 성인들을 모신 성화한 곳입니다!”

“성균관은 아무리 고관대작이라고 할지라도 범할 수 없습니다.”

……

“반촌은 문표의 행랑이며, 금리와 순라군들이 감히 들어와 소란을 피울 수 없습니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지당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책임자를 따지고 들어가면 내 탓이 맞으나, 이 지역의 책임자는 허목과 유형원이었다.

이 사달의 원흉은 내가 아니라 허목과 유형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중대본의 본부장은 나였기에 유생들의 항의도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다만, 갑자기 말이 없어진 유형원이 너무 재수 없을 뿐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대한민국에서도 문제가 터지면 본부장이나 장관이나……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아랫사람을 내세우지 않는 법이다.

나는 낮게 한숨을 쉬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 문제는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것이니 아무쪼록 너그럽게 양해해주게.”

“조속하게 해결책을 제시하시어 처리해주시길 바랍니다.”

“예. 도저히 책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더 장기화하면 과거 시험을 미뤄주셔야 합니다.”

진짜 과거 시험의 일정에 영향이 가면 나는 탄핵이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럽게 탄핵당하는 것이다.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였다.

“아니, 이 사람아. 이미 손해를 본 시간이 있지 않나? 장기화가 아니라 당장 미뤄야 하지 않을까?”

“그렇긴 한데 쉽사리 꺼내기가 어렵지 않을까?”

“음. 조금 더 지켜보는 게 나을까?”

“일단 의견을 모아보지.”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는 건 덤이었다.

조선이나 한국이나 시험을 미루고 싶은 건 같은 것 같다.

그러다가 내가 귀담아듣고 있는 걸 눈치챈 유생들은 민망한 듯 잠시 어색하게 웃더니 딱 정색하며 말했다.

“소생들의 당락이 대감의 손에 달렸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네.”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의 관복과 생명이 이번 일에 달렸다.

-----

파악은 끝났다.

상황은 복잡하지 않고, 정말 간단했다.

유민들은 낮은 수위의 위생 수칙을 잘 지켰으나, 역시나 배변이 문제였다.

백 보 양보하여 소변은 어떻게든 눈감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도성 아니, 동부의 지력은 2천여 명의 소변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대변이었다.

위생국과 내금위가 시퍼렇게 눈을 뜨는데 대놓고 대변을 해결할 수는 없었던 이들은 외곽으로 이동했다.

결과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한 가지는 그냥 거주지만 아니면 볼일을 보고 다닌 것이다.

물론, 고작 2천 명이 도성 전체를 똥통에 집어넣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적하던 동부를 어찌하기에는 충분한 인원이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어떤 ‘특별한’ 장소가 대변을 처리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특별한 장소가 바로 성균관의 지척과 반촌 내부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껄끄러운 장소가 유민의 화장실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

“…….”

“…….”

모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은 위생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사람이 모이면 배변을 처리할 시설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흡했다.

물론, 장기적인 계획이 아니라 모든 게 급작스럽게 진행되었다는 걸 고려할 때 충분히 정상을 참작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책임을 따지고 경질하지 않을 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그것도 조기에 처리해야 했다.

안 그러면 성균관 유생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젊은 혈기에 명분까지 갖춘 그들은 중대본으로서는 아주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이건 이연이 와도 못 도와준다.

또, 그들의 항의 민원을 떠나서 원론적인 문제도 있었다.

현재 허목과 유형원은 동부를 도성 위생 사업의 메카로 설정하여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유형원이 도시 설계를 하고 있다면, 허목은 위생국의 인력 5할 이상을 투입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인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 위생 정책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다.

어째서……?

위생 수칙의 가장 핵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청결한 길거리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성균관의 민원과 중대본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인 위생국 사업의 성과를 동시에 챙겨야 하는 상황과 직면한 것이다.

그러니까 더 쉽게 말하면, 조선 최고의 사대부가 모여서 유민의 대변을 어찌 처리할 것인지를 논의하게 된 것이다.

이는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사에 기록되면 후대가 참으로 흥미로워할 것이다.

젠장.

“책임을 따지지 말고 곧장 일을 처리하는 방편을 마련하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모두 고개를 끄덕일 뿐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원래 나서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 일은 죽어도 하기 싫은 게 분명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누군가는 해야지.

그리고 나만 아니면 된다.

나는 중앙재해대책본부의 본부장이니 이번에야말로 가진 권한을 사용하고 말 것이다.

권위를 최고로 끌어 올린 뒤 매서운 눈으로 적임자를 물색했다.

그런데

“경험상 본부장이 인분 처리에는 아주 재능이 있소.”

허목이 내던지듯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황당해서 말이 바로 안 나왔으나 인생 최대의 위기와 봉착한 나의 뇌는 세 치 혀를 맹렬하게 움직이도록 조치하였다.

“허 국장. 말이야 바른말로 이번 일은 허 국장의 책임이 아주 크오.”

“조금 전에 책임을 따지지 말자고 한 사람은 본부장이외다.”

썩을.

책임론을 부각했어야 했다.

아니, 이놈의 주둥아리는 왜 맨날 불필요한 말을 지껄여서 삶을 어렵게 하는 것인가.

잘라버릴 수도 없고.

나는 궁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나오는 건 정도가 아니지요.”

“험험. 사실을 말하였을 뿐이외다.”

내 눈치를 보며 기어이 제 할 말은 하는 허목이었다.

진짜 내가 내 발등을 찍었구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손바닥에는 땀이 차올랐다.

거세고 빠르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확실하오. 내가 봤소. 삭주에서.”

“이보시오. 허 국장.”

“사실 유민을 도성에 수용하자고 처음 발의한 것도 본부장 대감이지요.”

급기야 유형원 새끼까지 끼어들었다.

황당해서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무리 난세라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도의와 정의가 사라진 세상이 이렇지 않겠는가.

어찌 사람들이 이토록 양심이 없고, 자기반성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조선이 어떤 나라이던가.

무려 성리학자가 통치하는 성리학의 나라다.

아예 정의가 사라졌을 수는 없다.

해서, 나는 이성을 가지고 있을 나머지 인사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모두 내 시선을 피하며 툭 내뱉듯 한마디씩 했다.

“아니, 본부장이 그토록 뛰어난데 어찌 반대할 수 있겠소이까.”

“그렇습니다. 경험도 있다고 하니, 누구보다도 잘 해내지 않겠소?”

“우암. 나는 자네에게 이런 재주가 있는지 미처 몰랐네. 나는 자네가 자랑스럽네.”

“우암. 이번만큼은 자네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네.”

돌아가면서 미친 소리를 하고 있다.

대관절 성리학은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모습을 보였단 말인가.

고작 이 정도 정의밖에 품지 못하면 대체 왜 태동했단 말인가.

“이미 중의가 모였으니 이대로 결정하는 게 어떻겠소?”

“참으로 지당한 말이 아닐 수 없소. 모처럼 중대본이 화합하여 대사를 결정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소이까.”

“하하하. 그렇소이다. 긴급하고 무거운 사안에 가슴이 철렁하였는데 이토록 빠른 결정과 통 큰 화합이라니 참으로 감격스럽소.”

“예. 그러하니…….”

저들은 성리학자의 탈을 쓴 악마다.

아니면, 성리학의 악마의 학문이거나.

그렇게 나는 인분 처리의 최전선에 우뚝 서게 되었다.

참담한 결론을 맞이하며 힘없이 중대본을 나섰다.

“…….”

내가 이러자고 송시열이 되었나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은 원래 그렇다.

정말 개똥 같은 상황에 직면하였는데 내가 개똥이 되어버리면 어떻게든 합리화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정신승리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주 강도 높은 정신승리를 구현했다.

“그래. 대승적인 차원으로 보면 이건 좋은 일이다.”

……내 머릿속은 최선을 다해서 논리를 만들었다.

사실 나를 비롯하여 중대본에 속한 사람들은 조선 사대부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존 질서로 볼 때 인분 따위를 직접 치우는 작업에 투입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하게 됐다.

내가 하겠다고 나서서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허목과 유형원이 나를 추천했고, 다른 이들이 동조하며, 만장일치로 내가 수거 작업의 책임자가 된 것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중대본은 재해 방비에 귀천을 두지 않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완벽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

그런데 왜 계속 마음이 적적하고 허한지 모르겠다.

이보다 더한 정신승리는 없는데도 말이다.

나도 모르게 본심이 새어 나왔다.

“정말 하기 싫다.”

미치도록 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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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한 시간은 흘렀고, 허약한 내 다리는 기어이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악취는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정말 압도적이었다.

평생 이런 악취는 처음이었다.

천으로 코를 막았으나 될 일이 아니었다.

“…….”

보고 있노라면 눈이 썩어버릴 것 같았다.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엄청난 인분을 대체 어디로 치우냐는 것이다.

삭주의 인분을 치운 것과는 결이 다른 문제였다.

퍼 담아서 도성 밖으로 옮기려니 시일이 걸리고, 도성 내부에 묻어버리자니 마땅한 장소가 없고.

같이 논의할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모두 발을 빼고 말았다.

허목과 유형원도 당장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우니 기다려달라는 기약 없는 말만 하고 서둘러 도망쳤다.

결국, 이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일이 되고 말았다.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썩은 표정을 한 무리가 보였다.

바로 유민이었다.

아무래도 똥 치우는 데 불러서 기분이 안 좋은 거 같았다.

얼마나 기분이 더러웠으면 내 앞에서도 표정 관리를 못 하는 걸까.

나는 방긋 웃지는 않고 썩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너희가 싼 똥을 치우는 일이거늘 아주 불만이 많아 보이는군.”

“대감. 소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윗분들께서 싸우시니 숨도 못 쉬겠습니다.”

“솔직히 이런 말씀을 어찌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찌 소인들의 똥만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똥도 있습니다. 소인이 두 눈으로 분명히 봤습니다. 옷차림새가 분명 사대부였습니다.”

“예. 그런데 어째서 소인들만 똥을 치워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 차라리 소인들이 유민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인데 말입니다.”

대충 억울하다는 말들이었다.

아니, 그런데 엄격하게 따지면 내가 제일 억울하지 않나?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두 명이 눈치를 보면서 말하더니 이제는 여러 명이 그냥 따지는 수준이다.

정말 하기 싫은 건 나도 알겠는데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순간적으로 머리가 빡 돌아버렸다.

-동의 못 하면?

-예……?

좋게 좋게 가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다.

왕이 웃어주고, 유형원이 잘해주니까 미쳐서 돌아가고 있다.

이쯤 되니 나는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웃음기 싹 지우고 정색했다.

기승전결 버리고 딱 거두절미해서 핵심만 꺼냈다.

-양반이 얼마나 악랄한지 보고 싶나?

-대, 대감.

-쥐도 새도 모르게 황천길 초입까지 다녀오고 싶나? 아니, 아예 그 길로 가고 싶나?

-아,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부탁해야 할 사람으로 보이나?

-송구합니다.

-또 내가 너희에게 설명 따위나 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송구합니다.

-하.

결국, 유민들은 납작 엎드렸다.

제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애초 싸움이나 논쟁 따위가 성립될 수 없는 관계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누가 싼 똥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내 똥은 없다는 거야. 나보다 기분 더러운 사람 있으면 나와. 제외해줄 테니.

-…….

당연하겠지만 누구도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간단하게 군기는 잡았……너 뭐하냐?

드디어 미쳐가고 있구나.

“…….”

진짜 미쳐가고 있구나.

이따위 상상이나 하고.

나오는 건 정말 한숨뿐이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쉬며 유민들을 바라봤다.

정말 생각처럼 독하게 뭐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법도의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건 사실이지만 분명한 철칙이 있다.

지금 내가 저들에게 무슨 말을 한다면 원칙이나 법도가 아니라 그냥 화풀이에 불과하다.

그러니 한숨만 쉴 수밖에 없었다.

또 매립지 생각이 다시 났다.

“휴…….”

일단은 고민을 조금 더 해봐야 할 듯싶었다.

그렇다고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왕지사 여기가 똥 밭이 되었으니 어쩌겠는가.

일단 여기로 다 모아야겠다.

이게 맞다.

시간을 끌다가 만일, 다른 곳에서도 민원이 들어오면 정말 피곤해진다.

성균관 유생들은 합리적인 인사들이니 사정을 말하면 약간의 시일은 줄 것이다.

매립 장소 및 방법은 그 뒤에 생각한다.

나는 적당하게 유민들을 달래고 작업을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복병이 있었다.

“대감. 사정은 알겠으나 거주지를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본부장. 인분 수거와 거주지의 일을 병행하는 게 옳지 않겠소?”

유형원과 허목이었다.

그러니까 노동력을 나누자는 말이었다.

참으로 뻔뻔한 인간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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