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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88화 (88/298)

88화 정의의 여신(2)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감. 인분 수거의 일은 소수의 인원을 배치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유형원, 이 새끼는 진짜 양심 없다.

나보고 소수의 인원을 데려가라고 한다.

-험험. 본부장이니 전체 상황을 잘 봐야 하지 않겠소?

전체 판을 봐야 할 본부장에게 이따위 일이나 시켜놓고?

정말 재수가 없지만 뉴타운 건설도 시간을 마냥 미룰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뉴타운 건설이 더 시급하긴 했다.

성균관의 항의는 그냥 나만 두들겨 맞으면 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를 알고 있는 허목과 유형원이었기에 감히 이 시국에 나를 찾아와서 미친 소리를 하는 것이다.

정말 열이 올랐으나 어쩌겠는가.

적당하게 합의를 본 뒤 신체 건장한 정남 300명 정도를 선출해서 인분 수거 작업을 진행했다.

물론 선출된 이들의 표정도 정말 똥 같았다.

모두 다 같이 하는 것과 일부만 하는 것의 차이는 바로 이러했다.

저들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표정 정도로는 별말 하지 않았다.

그냥 한숨만 쉬며 그들을 인솔했다.

“우선 동부 지역을 돌며 인분을 수거할 것이다.”

“예…….”

“열 명씩 나눠서 움직일 것이니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야.”

“예…….”

나는 쓰게 웃으며 호미를 들었다.

빡빡 긁어낼 생각이었다.

앞장서서 걸으려고 할 때 유민들의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대감께서 호미를 왜 들고 가십니까?”

“나도 같이할 것이네.”

“예, 예?!”

“장담하는데, 나보다 인분 수거에 능통한 사람은 조선 하늘 아래 없을 것이네.”

“!!!”

유민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설마하니 내가 같이 작업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사실 이곳은 삭주처럼 변방이 아니라 도성이었고, 당시 허목처럼 나 대신 전체 판을 지휘할 사람도 없다. 그러니 악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당한 곳에 본부를 설치하여 변수에 대비하는 게 옳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백 번을 생각해도 변수에 대비하려면 내가 직접 호미 들고 일하는 게 옳았다.

내 판단이 맞다면 말이다.

“서두르지.”

“예, 예. 대감.”

나를 바라보는 유민들의 눈빛이 전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중요하지 않았다.

-----

순식간에 온몸은 땀범벅이 됐다.

몸의 여기저기에 좋지 않은 냄새가 잔뜩 묻은 건 당연했다.

생각보다 여러 골목을 인분이 점령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며 모두 점령된 상태였다.

욕이 치밀어 올라서 참지 않았다.

“미치겠군.”

“…….”

“…….”

내 한마디에 모두 눈치만 살폈다.

“신경 쓰지 말고 일하게.”

“예, 예. 대감.”

“앞으로 내 입에서는 여러 험한 말이 나올 것이네. 자주 나올 것이니 아무도 신경 쓰지 말게. 다들 알겠나?”

“예, 예. 대감.”

나는 호미로 바닥을 긁으며 인분을 채취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유민들이 정말 부지런하게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천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이 골목, 저 골목의 청결을 완성해나갈 때였다.

“허!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것이냐?”

갑자기 들린 고함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성균관 유생들이었다.

그리고

“악취가 성균관을 뒤덮었거늘! 일에도 순서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본부장 대감?”

“자네들 왔는가?”

이럴 줄 알았다.

성균관의 민원은 위생의 완성이나 골목의 청결이 아니었다.

성균관 내부로 전해지는 악취를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그 엄청난 인분을 처리할 방책이 없어서 잠시 미뤘으니 필시 민원을 다시 넣을 것으로 예상했다. 심지어 현장에 직접 찾아와서 말이다.

“대, 대감께서 어찌 직접 호미를 들고 계십니까.”

“하면……?”

“예……?”

“이 또한 법도에 어긋나는가?”

“그, 그것이 아니라…….”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이만 가주겠는가?”

“아.”

“응?”

“예, 예. 대감.”

사실 요즘 품이 좀 떨어져서 그렇지, 나는 무려 송시열이다.

냉정하게 각 잡고 말했을 때, 성균관 유생들이 다 덤벼도 성리학적 경지로 송시열 한 명을 감당할 수 없다.

또, 저들 중 서인에 속하는 6할~7할의 유생들은 내 말 한마디면 그냥 머리 박아야 한다.

나는 산림의 영수니까.

그러나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데 아무리 성균관 유생들의 민원이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호미를 직접 들고 인분을 치우는 나를 보고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그냥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같이 호미 들고 일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저들로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계속 이렇게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다.

한시라도 빨리 매립 장소를 선정해야 한다.

“…….”

한숨만 나왔다.

그냥 막 답답했다.

애써 매립 장소를 찾으면 뭐 하나 싶었다.

사실 이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 시절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수로 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대안으로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하는 것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이건 너무 비위생적이었다.

실제로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위생국까지 설립한 조선에서 그 짓을 하는 건 후대가 박장대소하며 손가락질할 일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덮었다.

높은 확률로 놀림을 당할 게 분명하니까.

물론, 도성의 다른 지역도 인분으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나름의 질서가 있기에 탈이 없다.

수백 년간 수만 명이 배설을 해결한 역사가 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갑자기 2,000여 명이나 하늘에서 떨어진 이곳 동부와는 아예 사정이 다르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일했더니 피로가 밀려왔다.

고개를 슬쩍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봤다.

허둥지둥거리면서도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기도 했다.

사실 저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정치가 어지러워 유랑을 시작했고, 조정의 말을 믿고 도성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먹었으니 배설하였을 뿐이다.

다시 호미를 잡으려고 했는데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렸다.

-꼬르륵!

-꼬르륵!

천둥과도 같은 소리였다.

되돌아보면 저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긴 했다.

이 시절 누가 배불리 먹을 수 있겠냐마는 아예 풀떼기만 먹었다.

문뜩 든 생각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갈수록 육체노동의 강도가 강해지니 따뜻한 쌀밥을 잘 지어서 내어주는 게 옳지 않겠나 싶다.

그러자면 곳간 열쇠를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협상을 할 필요가 있다.

평소라면 쉽지 않겠으나 지금은 아니다.

2천여 명의 인분과 사투 중인 내 앞에서 제아무리 허적이라고 할지라도 무슨 말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수틀리면 인분을 중대본 앞에 쌓아버릴 거니까.

낮게 한숨을 쉬면서 일어났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네. 자네들끼리 할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대감.”

구시렁거리면서 걷다 보니 다시 의문이 떠올랐다.

유형원과 허목은 왜 그토록 호언장담했을까.

대체 무슨 수를 사용할 생각일까?

“진짜 인분으로 거름 만들자고 하면 그냥 안 둘 테다.”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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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허적의 집무실은 문서로 가득했다.

호조의 문서만 해도 엄청난 수량인데, 중대본의 일까지 떠맡게 되었으니 전과는 아예 비교 불가였다.

전에는 이 엄청난 수량의 문서가 주는 압박감에 압도되어 자연스레 허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서 허적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 앉기 전에 소매를 가볍게 휘저어 악취를 사이좋게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과연 허적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호판. 우리 인간적으로 대화를 해보지요.”

“……하하하. 필요한 게 있으면 모두 말씀하시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최선을 다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소.”

세상에.

일이 이렇게 쉽게 진행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호조판서 허적의 이름값이 있는데 말이다.

심지어 허적의 입에서 나온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과장된 미사여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토록 쉬운 상대였다니……. 나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판. 거두절미하고 말하리다. 쌀을 좀 내어주시오.”

“쌀……? 갑자기 쌀은 왜 필요하오?”

“허. 설마 반대하시오? 내가 쌀을 횡령이라도 할 거 같아서 그러오?”

“무슨 말씀을 그리도 섭섭하게 하시오? 그저 궁금하여 그러오. 궁금하여.”

“유민들 말이오. 고생하는데 따뜻한 흰 쌀밥 좀 해서 먹이려고 하오. 허구한 날 풀떼기만 먹으니 힘을 쓸 수나 있겠소?”

소매를 휘젓지도 않았는데 허적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쌀이 아까워서 이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다.

늘 핏대를 세우며 나를 구박하고 경계하였으나 그 모든 행위는 사대부로서, 대신으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니, 애초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지.

어쨌든 그는 이 땅의 백성을 알뜰하게 살피는 사대부였다.

비록 유민이 법도를 어겼다고 하여도 가엽고 안쓰러운 백성이라고 여기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더 해주지 못하여 마음이 쓰일 뿐, 무언가를 내주는 걸 아끼지는 않는다.

“왜 그렇게 놀라오? 내가 유민을 챙기는 게 그리도 놀랍소?”

“실은 그렇소. 본부장이 백성을 살피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매번 놀라운 건 어쩔 수 없지 않겠소이까.”

“뭐.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 않겠소이까. 어쨌든 내어주실 수 있겠소?”

“물론이외다. 한데, 쌀만 있으면 되오?”

“고기도 먹일 것이오.”

“고기라고 하셨소? 음.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소?”

“물론이오. 쇠고기요.”

“쇠, 쇠고기라고 하셨소?”

“아주 잘 들으셨소.”

허적은 눈을 껌뻑였다.

“아니, 본부장.”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소매를 내저었다.

악취가 풀풀 풍겼기에 허적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거의 요동치는 수준이었다.

“가여운 백성들이외다. 먼 길 걸어 도성에 왔는데 풀떼기만 먹고, 이제는 똥이나 치우고 있소.”

“그러니 내가 쌀을 내어주겠다고 하였소. 한데, 쇠고기라니? 대체 무슨 말씀이시오?”

“따뜻한 흰쌀밥에 쇠고기 정도는 먹이는 건 나쁘지 않을 것이오. 어쨌든 많이 바라지는 않겠소. 딱 오늘 저녁에 한 끼 먹을 정도면 되오.”

“아니, 그러니까 쌀은 내어주겠다고 했소. 그런데 2천 명이 먹을 쇠고기라니요?”

“아. 내가 실언했소.”

“다행이오.”

“구워 먹는 게 아니라 국이라도 끓일 생각이오.”

“구워……? 아니, 뭐가 됐더라도 쇠고기라니요? 그건 법도로서…….”

“그건 내가 알아서 구하리다. 또, 알아서 할 수 있고요.”

허적은 여전히 눈을 껌뻑였다.

나를 빤히 보더니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그 설마가 맞소. 뻔하지 않소이까? 도성에서 쇠고기를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 말이외다.”

허적의 입술이 들썩거렸다.

필시 나를 만류하기 위한 논리를 장전 중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세게 소매를 내저었다.

거센 악취가 허적을 습격했다.

순식간에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가끔 이래 줄 필요가 있다.

내 일에 반대하려고 할 때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상기시키는 효과가 아주 제대로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하거든 당장 오라고 전해주시오. 호미 따위를 들고 말이외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반론을 어찌 듣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하하하……. 누가 감히 반대하겠소이까.”

허적은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속사정이야 알 수 없으나, 전인미답의 길을 가는 내게 압도된 것이 분명했다.

엷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면, 오늘 당장 준비해주실 것이라고 믿겠소이다.”

“물론이외다.”

나는 더 진하게 웃으며 옷소매를 다시 휘저었다.

허적의 눈동자는 더욱 생동감 있게 흔들렸다.

코를 틀어막고 싶겠지만, 생각이 있으면 내 앞에서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이만하면 됐다.

그러면 쇠고기 구하러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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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이 인분을 처리할 동안 허목과 유형원이 방관만 한 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송구합니다. 스승님. 소생이 미처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되었네. 어찌 자네 탓이겠는가. 엄밀히 따지면 위생 전하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일세. 자네는 거주 지역을 세우는 일에 전념하면 될 일이네.”

사실 이번 상황의 책임소재는 딱 잘라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허목은 위생 수칙을 집행해야 하기에 길거리에 배설하는 행위를 금지하였으나, 아직 집이 완성된 상황이 아니었기에 대안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유형원이 위생 수칙을 전하는 역할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서둘러 배변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니 탓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매립지를 찾는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미봉책에 불과하니 그저 답답할 뿐일세.”

“스승님. 소생이 백 번을 생각해봐도 배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위생 수칙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손을 씻고, 옷을 자주 삶아도 길거리에 인분이 가득하거나, 집 근처에 인분통이 있어 벌레가 들끓으며 악취가 진동한다면 어찌 청결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생각해둔 방법이 있나? 필시 그러니 꺼낸 말이 아니겠는가.”

유형원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스승님. 인분은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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