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정의의 여신(3)
사사롭게는 제자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수재는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의 사지를 찢어 왜 하나인지 철저하게 분석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세상은 이러한 능력을 보이는 이를 향해서 천재라고 불렀다.
유형원이 바로 이러했다.
제자의 재능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심장을 일렁이게 하는 능력이었다.
무엇이 나올지 궁금하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현실에 적용하면 세상이 어찌 바뀔지 너무나도 알고 싶게 하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기대했다.
그래서 기다렸다.
유형원이 관복을 입는 날을 너무나도 간절하게 기다렸다.
늘 그 재능을 아꼈고, 같은 곳을 바라봤으며, 함께 걸어가고자 했다.
갈망했다.
가르침에 보람을 넘어 희망을 느끼게 해준 제자와 함께 조선의 국호를 심장에 새기는 날을.
그러나 조선은 유형원을 품지 못했다.
모르는 이는 유형원이 조선을 버렸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조선이 유형원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단지 출사를 원한 게 아니었다.
관복을 입기 전에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량을 유심히 살폈다.
배운 것을 뜯어서 새로운 하나를 만들었던 것처럼 조선의 모든 걸 살폈고,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하였고 끝내 고개를 저으며 낙향했다.
그저 웃으며 시원하게 떠난 게 아니었다.
좌절에 울었고 끝내 조소를 날리며 고통스럽게 떠났다.
스승으로서 제자의 좌절과 고통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러나 낙향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괜한 위로의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그저 한을 품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경직된 조선을 너무 원망하지 않기를 바라였다.
그랬던 유형원이 중대본이 출사하였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파격적인 행보에 심장이 너무나도 울렁였다.
허목은 제자의 앞길에 모든 지원을 하겠노라 다짐했고 또 다짐했다.
그 오랜 세월 담아두었을 개혁에 대한 열의를 모두 꺼낼 수 있게 돕겠노라 백번을 다짐했다.
그러한데 유형원의 입에서 인분을 거름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나왔다.
하마터면 헛웃음을 내뱉을 뻔했다.
분명 인분을 이용한 시비법은 제법 효과가 있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례도 많다.
그러나 허목은 이 방법을 선호하지 않았다.
과거였다면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위생국의 방침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인분을 퇴비로 만들 생각이라면 차라리 재원을 확충하여 도성 곳곳의 인분을 수거하여 퇴비화 작업을 하면 된다.
한마디로 재원만 확보한다면 복잡한 절차가 전혀 없는 일이었다.
당혹스럽고 의아하였으나 내용의 본질을 듣는 게 우선이었다.
유형원이라면 필시 방책이 있을 것이다.
늘 그랬듯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조선의 변화를 끌어낼 것이니까.
“그러자면 재원이 필요합니다. 막대한 재원이지요.”
구체적인 방책이 궁금하였으나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유형원에게 실망이라는 감정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드럽게 웃으며 적절한 답변을 꺼냈다.
“자네의 계획을 잘 설명한다면 호판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네.”
“하여, 그저 기록으로만 남길까 합니다.”
“허. 반계.”
스승의 다급한 우려에 유형원은 부드럽게 웃었다.
늘 벽을 만났을 때 회피하였던 과거가 만든 반응이었으니 그저 송구할 따름이었다.
“심려치 마십시오. 스승님. 괜한 말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가능하지 않은 일을 붙잡지 않고, 후대를 위해서 골격을 만들 것입니다. 때가 되면 언젠가는 도모할 수 있겠지요.”
“반계. 진심인가.”
“물론입니다. 더는 회피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낼 것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하면, 말해보게. 자네가 진실로 품은 뜻이 무엇인지.”
잠시 고민하던 유형원이 운을 띄우려고 할 때였다.
“호조판서 대감께서 오셨습니다.”
허목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군.”
“하하하. 그렇습니다. 스승님.”
“허 국장께서도 계셨소?”
“어서 오시오.”
“어서 오십시오. 대감.
“사제 간에 무슨 대화를 하셨소?”
“아. 그냥 담소나 좀 나눴소. 한데, 호판께서는 어쩐 일이시오?”
“큰일은 아니외다. 다만, 본부장에 대해서 상의할 게 있어서 왔소.”
“그게 가장 큰 일이오.”
가벼운 농을 주고받으며 허적의 시선이 움직였다.
유형원이 의아한 듯 쳐다보자 곧장 말했다.
“자네, 쇠고기에 대해서 알고 있나?”
“쇠고기라고 하셨습니까?”
“음. 전혀 모르나 보군. 실은 조금 전 본부장이 나를 찾아와서 쇠고기를 언급했네.”
“예……?”
유형원은 의아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대관절 송시열이 쇠고기에 왜 관심을 보일까?
허적은 유형원을 살피며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말했다.
“본부장이 멀쩡한 소를 도살하지는 않을 걸세. 필시 남는 고기를 구하고자 하겠지. 이는 참으로 체통 없는 행동이지만 본부장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을 것이네.”
“…….”
“그리하면 구휼을 명분으로 주상께 청하면 어찌 윤허하지 않으시겠나. 다만 내가 의아한 건 다른 것일세. 보시게 본부장의 평소 행보와는 너무나도 다르지 않은가. 그는 백성에게 직접 다가가지 않아. 또, 법도를 어기는 걸 그토록 경멸하면서 유민에게 쇠고기를 내어주고자 이런 절차를 밟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대감의 말씀대로 참으로 괴이한 일이군요.”
“하여, 차분하게 이를 논의하고자 찾아왔다네. 자네가 최근 본부장과 합을 맞추기도 했으니 무언가를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으니. 아니,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건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의구심과 더불어 가벼운 농이 새어 나왔다.
잔잔한 웃음이 감돌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형원은 천천히 그리고 진중하게 말을 시작했다.
“쇠고기는 반촌의 반인들이 취급하는데 이는 오직 성균관에 복무하기 위해서입니다.”
“암. 원래 성균관의 재정은 학전(學田)의 세수(稅收)와 외거노비의 신공(身貢)에 기반했지.”
“그렇습니다. 그러나 직전제가 폐지되면서 상황은 변하였지요. 토지의 사적 소유를 촉진하는 분수령이라고 해도 무방하고요. 직전제 폐지의 옳고 그름이나 현실적인 요소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세상은 변하였으니까요. 결과, 여러 관청은 어전(漁箭)과 염분(鹽盆)을 절수(折受)받고자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성균관이라고 하여 예외가 될 수는 없었지요.”
“시작은 나쁘지 않았을 것이네. 성균관의 위상을 고려할 때 최소한의 양보는 얻어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상황은 완벽하게 달라졌네. 종묘사직이 흔들렸던 전란이었기에 나라의 토지와 여러 이권이 대폭 축소하였지. 양난 이후 토지와 어장을 확보하려는 아문(衙門), 궁방(宮房)과의 경쟁은 그야말로 아귀다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네.”
“예. 성균관은 그 경쟁에서 도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한 현상이지. 노회한 대신들이 있는 여러 관청을 성균관 유생들이 감당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이권을 다투는 일은 정직한 혈기로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철저한 계책과 수 싸움이 필요했다.
성균관이 아무리 중요한 기구라고 할지라도, 이권을 둘러싼 첨예한 다툼에서 존중이라는 가치는 아주 사치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성균관은 궁방과 아문의 노회한 정치인들에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성균관을 구성하는 이들은 정치적 계산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 성균관은 어물전과 생선전에서 어물을 세수할 수 있는 권한을 상실했고, 노비의 신공도 대폭 줄어들었다.
“성균관은 유생들의 식사를 위해 어물전과 생선전 등의 시전에서 어물과 채소를 거두어가는 규제가 있었지요. 이는 성균관이 절수한 어전에서 거두어진 생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수익이 성균관을 지탱하는 재원이었으며 반인의 생계도 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렸으니 성균관은 존폐의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자네 말대로 성균관의 현주소는 그러하다네.”
유형원의 말은 뼈아픈 것이지만 분명한 현실이었다.
남인의 영수이자 호조의 수장으로서 알면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기에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었을 뿐이다.
“성균관도 많은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촉발한 경쟁에서 뒤처졌으나 성균관의 역사는 이어져야 했으니까.”
유형원의 말에서 양난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비루하게 생존하였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의 재원도 조정에서 제대로 담보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는 걸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성균관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반촌의 반인에게 성균관 유지의 비용을 모두 떠넘기는 것이었습니다. 성균관 유생은 75명, 반촌의 반인은 2천여 명. 숫자로만 본다면 반인이 해결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2천 명이 어찌 75명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까. 소생은 이런 고민을 들으면서 참으로 통탄했습니다. 어찌 이런 얄팍한 수를 쓰는 이들이 이 나라의 내일을 책임질 동량인지 개탄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아니, 성균관은 대체 유생들에게 무엇을 알려주는 건지 본질적인 의문이 치솟았지요. 서책에 적힌 성현의 말을 익히기만 하면 국정을 책임질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인 오만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걸 말해주니까요.”
유형원의 입가에는 서늘한 모소(侮笑)가 걸렸다.
오랜 세월 가졌던 조선을 향한 타기(唾棄)가 꿈틀거리며 올라온 것이다.
또, 이를 감출 생각도 없었다.
“반인이 성균관의 물자를 책임지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인데 말입니다.”
점차 커지는 조소(嘲笑)에 허적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송시열의 의도가 의아하여 시작한 대화였다.
굳이 불필요한 감정을 키울 필요는 없다고 여겼기에 다독인 것이다.
“자네 말대로일세. 모순이지. 세상에 그보다 더 큰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반인은 반촌을 벗어날 수도 없으며,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행상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한데, 반인이 어찌 유생의 생계와 성균관의 운영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독임 때문이었을까?
유형원의 입가를 지배하던 비웃음의 자리에는 침착함이 대신했다.
“물론, 현재 조정에서 성균관의 운영을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참으로 터무니없는 규모이지요. 기본적으로 한 달에 쌀 40여 석을 내리지요. 이는 유생 75명의 양식이나 될 뿐입니다. 다른 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달리 말하자면 반인의 생계는 아예 책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규모가 2,000여 명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조정은 점차 성균관을 내리고자 할 겁니다. 바라보면 볼수록 반인의 생계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성균관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나, 1년 뒤 혹은 2년 뒤는 어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해서, 소생이 성균관의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화폐로 환산하였더니 매달 150냥이며 1년이면 1,800냥에 이릅니다. 반인은 이를 해결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지금 성균관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
“소생 역시 그것이 너무나도 의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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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엄격한 우금정책(牛禁政策)을 실시하였기에 소 도살을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라였다.
법도에 의하면 소와 말을 도살한 1명을 잡으면 면포 10필을 주고, 추가되는 1인마다 2필을 더 주어 최고 50필까지 포상을 내릴 정도로 엄격했다.
그러나 늘 예외라는 건 존재하는 법이다.
바로 반인(泮人)의 거주지 반촌(泮村)이었다.
반인은 성균관의 노복, 즉 노비 집단으로 공노비였다.
이들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통하여 반촌에 거주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반인이 조선에서 합법적으로 소를 도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라는 명쾌한 사실이었다.
반인이 대단한 존재라서 예외가 된 건 아니다.
예외는 바로 성균관이었다.
조선에서 쇠고기는 금육이지만 성균관 유생들에게 쇠고기를 제공하는 건 오랜 전통이었고, 성균관의 제사에서도 쇠고기가 사용되었기에 자연스레 성균관의 역을 전담하는 반인이 예외가 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반인은 원래 백정(白丁)이 아니었으나 소를 도살하였기에 사회적으로 천시되었다.
그런데 이 사실도 주목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나라고 할지라도 반촌에 들어가서 반인을 불러 소를 도살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허적이 당황한 건 필시 여기까지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나라고 할지라도 수백 년간 이어진 법도를 어길 수는 없다.
심지어 나는 중대본의 본부장이었기에 괜한 짓을 했다가는 아주 큰 정치적 파급이 발생할 것이니 허적의 반응은 당연했다.
그런데 내가 노리는 건 바로 틈새시장이었다.
소를 도살하고 성균관에 보내고…… 이러다 보면 반드시 고기는 남는다.
나는 이 고기를 조금 얻어볼까 싶었다.
멀쩡한 소를 도살하는 게 아니라, 남는 고기다.
물론, 남은 고기라고 할지라도 반촌을 넘을 수는 없지만 늘 그렇듯이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즉, 이번 사례는 유민의 구제라는 명분과 금상 이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기에 능히 행할 수 있다.
허적의 상상력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한 건 당연했다.
설마 나 정도 되는 사람이 남은 고기나 구걸할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랬다.
그랬는데…….
“뭐? 남은 고기가 없다니?”
고기가 없다고 한다.
이건 참으로 당황스러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소를 도살하는 왜 고기가 남지 않나? 이는 과거를 치르면 서책이 사라진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말이네. 어서 해명해보게.”
격한 내 반응을 본 성균관 역을 수행하는 사령의 총책임자인 도사령(都使令)은 연신 눈을 비벼대면서 말했다.
“송구합니다. 그런데 정말 남은 고기가 없습니다. 모두 사용했습니다.”
“허. 참으로 해괴한 말이 아닐 수 없구나. 차라리 내가 까막눈이라고 하게.”
“송구합니다.”
“허. 하면, 소 한 마리를 도살하면 살 한 점 남기지 않고 성균관의 행사에 사용한다는 말이더냐?”
“……예. 그렇습니다.”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혹시라도 화를 입을까 두려워하는 기색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나를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이들을 참으로 많이 만났다.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문무백관이 그러했다.
삭주에서 만난 백성들은 나를 두려워했다.
유민도 마찬가지다.
그들로부터 느꼈던 그 어떤 무언가를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말과 눈빛에서 느껴지는 나에 대한 두려움 속에 숨겨진 짜증을.
그런데 도사령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기계적이었다.
마치 연기자가 연기를 하듯.
나는 여태껏 이런 부류의 사람을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여 너를 곤란하게 했구나.”
“대감마님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소인은 그저 상황을 이해해주신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니라. 그 많은 쇠고기는 어디로 갔느냐.”
“예……? 어디로 가다니요?”
느닷없이 추궁하자 도사령은 당황했다.
놀라운 건 흔들리던 그의 감정이 찰나에 그쳤다는 것이다.
빤히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면 감정의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 포커페이스라면 어지간한 하급 관리는 절대 당해낼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수가 보통을 넘는다는 걸 의미했다.
아래로는 많은 사령을 통제하고 위로는 성균관 유생을 모셔야 하는 위치였기에 어느 정도의 처세와 정치력은 필수라는 걸 고려할지라도, 보통은 넘는 인물이었다.
내 판단은 옳았다.
남은 쇠고기가 없다는 황당한 상황과 도사령의 처세를 확인하니, 뭔가 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치솟았다.
참으로 괘씸하지 않은가.
나는 웃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리지도 않았으며, 눈에 힘을 주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물끄러미 쳐다봤을 뿐이었다.
“자네가 뭔데?”
“예?”
“혹시 자신을 굉장하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기나?”
“예, 예?”
“우습군. 사령의 우두머리, 도사령. 많은 권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네가 감히 법도를 어기면서까지 독단으로 쇠고기를 유용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치지 않은 이상 그러할 수는 없겠지.”
“대감마님.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쇠고기는 모두 성균관에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 성균관에서 사용하였겠지.”
“예……?”
“하면, 고작 반촌의 도사령 따위가 이 나라의 법도를 우습게 여기겠느냐?”
“!!!”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도사령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도사령도 나름의 처세를 배우며 여기까지 왔겠으나, 나는 그가 겪은 질서에서 아득하게 벗어난 사람이다.
길게 말할 필요는 없다.
상황을 파악하고자 말을 돌릴 필요도 없다.
정치적인 수 싸움이라는 건 동등한 위치에 있는 정객과 하는 것이다.
아예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끼리는 할 필요가 없다.
이를테면 조선 사대부의 정점에 있는 내가 고작 반인의 수장과 투덕거릴 이유는 아예 없는 것이었다.
“필시 성균관이 개입되었겠지. 무슨 연유인지는 성균관 대사성을 추포하면 될 일이고.”
“대, 대감마님.”
“혹시 할 말이 있느냐?”
“오해가 있으십니다. 일단 소인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나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라도 법도를 어기는 걸 경멸한다. 지위고하를 떠나서 법도는 지켜야 한다. 그런데 너와 대화라는 걸 하며 크게 벌하지 않는 건 네 처지가 고작 노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내가 허락하는 관용은 여기까지다. 또다시…….”
여전히 큰 감정의 기복을 내보이지 않았다.
상대는 내가 화를 낼 필요조차도 없는 존재였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속에서 노기가 자라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저 갈무리할 뿐이었다.
“되묻거나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네놈은 내일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때로는 덤덤하게 내지르는 말이 더한 압박이 될 수도 있다.
평생 윗사람을 모시며 눈치와 처세를 배웠을 도사령이었기에 지금 나의 심리상태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도사령의 안색은 하얗게 탈색됐다.
양반의 노여움에 직면한 노비의 표정, 딱 그것이었다.
도사령은 점차 몸을 떨었고, 목울대는 미친 듯이 울렁였다.
“먹지 않을 쇠고기를 억지로 입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지내지 않은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면, 그 많은 쇠고기가 어디로 사라졌겠는가. 필시 외부로 반출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내 말이 틀렸느냐?”
“소, 송구합니다.”
참으로 쉽다.
모든 걸 실토하는 한마디였다.
사실상 확인이 끝나자 내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절로 걸렸다.
“어처구니가 없군.”
시작은 소소했다.
유민들에게 쇠고기나 한번 먹이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조직적으로 쇠고기를 외부로 반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성균관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데려와.”
나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함께 작당한 무리를 당장 데려와.”
이 자리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