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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90화 (90/298)

90화 정의의 여신(4)

성균관 내에는 재회(齋會) 또는 유회(儒會)라고 부르는 유생들의 자치기구가 있다.

이 기구를 통해 전체 유생을 대표하는 장의를 선출한다.

주로 생원들이 거재(居齋)하는 동재를 대표하는 장의 1인과 진사들이 거재(居齋)하는 서재를 대표하는 장의 1인 등 2명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생원의 대표인 동재의 장의가 형식적 서열이 앞섰다.

사실 현임 장의의 천거와 전임 장의들이 완전 합의로 결정하니 선출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뭐.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두 사람에게서 며칠 전 원칙을 앞세워 강하게 항의하던 기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내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자신들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 알면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나는 장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작 남는 고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

“대수롭지 않게 쇠고기를 외부로 빼돌렸겠지. 당연하겠으나 누군가에게 적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도를 이토록 우습게 여기고 남을 도울 생각을 하였다면 유민의 인분에 그토록 열을 내지는 않았겠지. 하면, 너희는 사사롭게 이익을 취하고자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다.

변명할 여지도 없다는 의미였다.

나 역시 씁쓸하거나 안타깝지도 않았다.

그저 화가 날 뿐이었다.

“조선의 내일을 책임질 성균관의 유생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하여 법도를 어겼다. 한데, 유민의 인분 탓에 학업에 열중할 수 없다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참으로 가소롭고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너희의 위선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다. 또, 묻겠다. 혹시 대사성도 개입되었느냐?”

“…….”

“침묵은 긍정으로 여길 것이다.”

“……아닙니다. 소생들의 일입니다.”

“대사성은 모른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사성은 정3품으로 당상관에 이르는 성균관의 책임자였다.

그가 개입되어 있다면 정치적 사안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에 큰일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니 정치적으로 번질 일은 아니겠으나, 또 그래서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학생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장의가 주축이 되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니, 성균관의 기강 자체가 엉망이라는 걸 의미한다.

이는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체 언제부터 성균관이 나라의 미래를 그리는 게 아니라 제 주머니를 채우는 추악한 집단으로 변질하였는지 모르겠군.”

“대감. 소생들도 사정이 있었습니다. 우선 이를 들어주십시오.”

“하!”

나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매섭게 장의들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법도를 어긴 사정을 내가 듣고 이해해야 하나? 듣고 싶지 않다.”

“죄가 있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죄는 있다.”

“성균관의 존폐와 직결하는 문제였습니다.”

쇠고기가 성균관의 존폐와 관련이 있다……?

헛웃음도 안 나왔다.

지랄도 성의를 보태야 하는 법이다.

“대감의 탓이 없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

……이런 지랄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중대본이 모든 염전을 전수조사하면서 시작된 일입니다.”

이건 또 무슨 괴상한 지랄일까?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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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로 시작하여 성균관의 현황까지 폭넓게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도 송시열이 무리하여 쇠고기를 확보하려고 한 의도를 파악하는 건 무리였다.

아니, 어쩌면 의도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결론도 나왔다.

삭주에서부터 송시열을 가까이서 지켜본 허목의 여러 증언이 제법 힘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순전히 유민을 위해서 쇠고기를 확보하고자 하였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겠군요.”

“참으로 믿기 어렵지만 그런 가능성이 제법 크다는 게 현실일세. 이거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네.”

유형원과 허적은 헛웃음까지 지을 정도였다.

허목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오늘 괜한 기력을 낭비하였을지도 모르오.”

“선생의 말대로요.”

“한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화의 끝자락에서 유형원이 의문을 다시 제기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규모입니다. 20명이 아니라 2,000여 명입니다. 확보해야 할 쇠고기의 수량이 실로 엄청날 것인데, 구태여 이렇게 무리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소생이 볼 때는 과합니다.”

“이런. 자네가 다시 의문을 원점을 돌렸어. 이 대화가 거기서 시작하지 않았는가.”

“송구합니다. 그런데도 굳이 재차 언급한 이유는, 지금도 조정은 성균관의 운영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안정적 수급이 이뤄지는 것이 쇠고기입니다. 그 정도 규모의 쇠고기를 확보하려면 반드시 성균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 길의 끝에는 모종의 갈등이 발생하니 말입니다.”

이 또한 합당한 의문이었다.

딱 그때였다.

“서, 선생! 본부장 대감께서 노발대발하고 있습니다!”

황급히 들어온 유민 한 명.

허목과 허적, 유형원은 그를 쳐다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본부장이 노발대발하는 건 늘 있는 일이지 않나?”

“이보게. 늘 있는 일을 전하려고 그리 급하게 뛰지 말게.”

“숨 쉬는 걸 놀라워하나?”

“그, 그게 아니라 유생들이 쇠고기를 빼돌려서…….”

이어진 말에 세 사람은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듯 일어나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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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결연한 표정이었다.

내가 조선에 온 이래 이런 비장함은 경험하지 못했다.

과거 홀연히 연좌에 나섰던 허목도 이토록 결연한 비장함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를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우스웠다.

신념을 위하여 목숨을 던지는 연좌가 아니라 법도를 어기게 된 사연, 아니, 그냥 변명을 지껄이는 상황이 아닌가.

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중대본이 수립되고 염분을 모두 전수조사하였습니다.”

“결과, 모든 세수가 호조와 중대본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장의 두 명이 돌아가면서 개소리를 떠들었다.

그러니까 중대본이 염전의 수익을 취하면서 도둑질을 했다는 말이지 않은가.

성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따위 변명을 지껄이는 무리가 조선의 내일을 책임지는 성균관의 유생이라는 상황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조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말을 똑바로 하라. 호조와 중대본이 세수를 징수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

“대감. 소생들은 그 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는가? 호조와 중대본이 세수를 징수하는 상황이 무슨 문제냐고 물었다.”

“……법도와 절차로만 접근한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한데, 너희는 법도를 어긴 이유가 법도를 따른 중대본의 탓이라고 하고 있다. 참으로 우습구나.”

“대감. 어찌 법도에 한쪽 면만 있을 수 있습니까. 소생들은 중대본의 방침이 만들어 낸 또 다른 결과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결과?”

“성균관을 운영하려면 염전의 수익이 필요합니다. 한데, 중대본의 방침으로 염전의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성균관이 가져가야 할 이권을 중대본이 가로챘기에 부득이하게 쇠고기를 팔아 사익을 취하였다는 것이군.”

“대감. 사익이 아닙니다. 성균관의 운영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어찌 단지 사익이라고 매도하십니까.”

“법도를 어겨서 이익을 취하였는데 사익이 아니면 무엇이더냐. 너희의 논리대로라면 중대본의 결정으로 운영이 어려워졌을 무수한 관청도 법도를 어겨야 한다. 한데, 그리하였느냐?”

“…….”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너희가 성균관에서 배운 학문은 상황에 따라서 법도를 어겨도 된다고 하더냐?”

나의 뻣뻣한 태도에 장의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누구였던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조선 사대부 중 가장 혈기가 넘치는 성균관 유생들이었다.

나의 고압적인 태도 따위는 이들의 세 치 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예. 하면, 여쭙겠습니다. 성균관은 대감의 말씀대로 나라의 동량을 양성하는 곳입니다. 한데, 조정에서는 대체 어찌하셨습니까? 소생들이 편히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까?”

“아니지요. 사실상 방치하셨지요. 성균관이 무탈하게 운영될 수 있는 지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방치만 했다면 다행입니다. 조정의 노회한 대신들은 성균관의 이권을 빼앗고자 여러 수를 사용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소생들은 이를 감당할 수 없었지요.”

“그들이 소생들에게 뭐라고 하였는지 아십니까? 유생은 75명이고 반촌의 반인은 2천여 명이니 어찌 어려움이 있겠냐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습니다.”

“어찌하여 75명입니까. 과거 때가 되면 75명이었던 재유(齋儒)가 2백 명을 상회합니다. 이 모든 식사에 필요한 쌀, 땔감, 기름 등도 모두 반인의 몫입니다. 이를 모를 리가 없는 대신들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 소생들이 항변해도 고작 200명이라고 하겠지요.”

“대감. 모르십니까? 반인은 반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한, 성균관의 역을 제외한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습니다.”

“중대본이 염전의 수익을 모두 취하고 한 달이 지나자…….”

한 유생이 말을 하다가 멈췄다.

정확하게는 말끝을 흐렸다.

거의 동시에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소생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관비가 목을 매고 자결하였습니다.”

“뭐……?”

“이유는 식비(食費)였습니다.”

아니, 이건 무슨…….

찰나 말문이 막혔다.

나를 지켜보던 유생들은 맹렬하게 토로하였다.

“대감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이조판서이신 대감께서 이를 모르신다는 건 결국, 조정은 성균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겁니다.”

“조정의 무관심으로 사람이 죽었습니다. 노비라고 할지라도 엄연한 사람이었습니다.”

……

“예. 이러한데 소생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반촌의 반인에게, 이 또한 너희의 일이기에 그저 감내하라고 강요해야만 합니까?”

유생들은 핏대를 세우며 따졌다.

언제부터인지 논리는 사라지고 감정적인 항의가 공간을 지배했다.

듣고 생각하니 그럴 만도 했다.

학생들이 학교를 지키자고 도둑질을 할 수도 있지.

그런데 도둑질하면 어떻게 하나?

“너희의 말은 참으로 타당하다. 한데, 이 나라 조선은 너희를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

원통함이 가득 담긴 눈빛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보고 있노라면 원통함에 숨긴 다양한 감정의 편린도 느껴졌다.

그러나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할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범죄자(犯罪者).”

“소생들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법도를 어기고 저지른 잘못을 범죄라 하고, 이를 행한 자를 범죄자라 한다. 하여, 너희는 범죄자다.”

“소, 소생들은…….”

나는 손을 내저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유생들을 돌아보며 한마디씩 천천히 꺼냈다.

“군역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백성이 고환을 자르고자 하였다. 나는 이를 발본색원하여 모두 벌하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 너희에게 이 사안의 정당성을 묻지 않겠다. 너희는 이를 논할 위치가 아니며,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묻고자 하는 건 다른 것이다.”

나는 오늘 유생들의 위선, 아니 오만을 벌할 것이다.

“조선의 법도에 눈이 있더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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