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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92화 (92/298)

92화 거병(擧兵)(1)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성균관에 있는 서인 출신 유생에게 보따리 싸라고 일갈하고 싶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으며,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왜? 나 송시열은 산림의 영수였으니까.

이 시절 내가 가진 힘이라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과장 좀 보태서 서인 사족(士族)들에게 내 말은 왕명보다 우선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과장이 아닐 수도 있고.

그러나 그런 상황은 연출하지는 않았다.

산림의 힘을 이연에게 바치겠다고 한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성균관 유생을 벌하라?”

이연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나저나 본부장. 대체 이게 무슨 냄새요?”

“아. 전하. 그것이…….”

“경은 군주를 알현하러 오면서 어찌하여 이런 냄새를 동반하셨소?”

“아…….”

“이것이 기군망상이 아니면 무엇이 기군망상이겠소?”

이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급기야 용포를 움직여 코를 막았다.

쓸데없이 동작은 유려했고.

“전하. 우선 신의 상황을…….”

“불충도 이런 불충이 없소. 당장 퇴궐하였다가 다시 오시오.”

“아니, 전하. 무슨 불충까지 언급되옵니까.”

“허. 군왕의 어명이 들리지 않소?”

아니, 뭐 이런 일에 어명씩이나…….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명은 어명이니 말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썩 물러가시오!”

“…….”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퇴궐했다.

그리고 씻었다.

빡빡.

새 옷을 입고, 새 신을 신고 나가려는데 비가 왔다.

“내일 갈까?”

하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곧장 이연을 만나는 게 옳기에 바로 입궐했다.

그런데 장벽이 하나 있었다.

사실 장벽까지는 아니고 그냥 돌멩이 정도였다.

“본부장.”

일인지하 만인지상 영의정 정태화 대감 되시겠다.

비도 오고 그러는데 여기서 뭐 하는지 모르겠다.

요즘 계속 인상을 쓰고 다니더니 주름살이 늘었다.

하지만 안쓰러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볼 때마다 시비를 거니 나의 이런 마음 씀씀이는 당연했다.

“긴히 할 말이 있소.”

비도 오고 그래서 할 말이 없는데?

나는 옅게 웃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송구합니다. 대감. 소직은 전하를 알현하여야 합니다.”

“대체 본부장과 대화를 하려면 어찌해야 하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정태화.

나는 황당해서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하! 대체 며칠을 기다려야 대화를 할 수 있소? 순번이라도 정해져 있소?”

“이건 참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이군요. 대감께서 소직에게 대화를 하자고 제대로 청하기라도 하셨습니까? 늘 대뜸 나타나셔서 혼자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본부장! 내가 언제 혼자 말했소?”

정태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따지듯 말했다.

“기어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을 이토록 가볍게 여기시오?”

“누가 또 그렇다고 합니까.”

사는 게 힘든지, 만날 때마다 퍽퍽한 말을 한다.

뭐. 어차피 이연이 어디로 출장 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니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정태화와 대화를 나누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러면 허구한 날 갑자기 귀신처럼 나타날 것이니 내 심장 건강에 별로 좋지 않을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허. 지금 이렇게 서서 대화하자는 것이오? 본부장은 내가 그렇게 가벼우시오?”

“내가 언제 그러자고 했습니까. 무슨 일인지 물어본 겁니다. 그리고 비도 오고 그러는데 안으로 들어가야지요. 적당한 곳으로 이동하지요.”

“됐소!”

뭐. 어쩌라는 거야?

물론, 나는 비와 함께 시간을 더 보낼 생각이 전혀 없어서 그냥 걸었다.

“참으로 오만하도다.”

따라오면서 구시렁대는 정태화는 가볍게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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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비변사였다.

좀 웃긴 게, 여기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정태화의 어깨에 힘이 쫙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홈그라운드라서 힘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여튼 그랬다.

나는 적당한 곳에 대충 앉았다.

정태화는 당연히 상석에 앉고.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정태화도 나를 빤히 쳐다본다.

실소가 나올 뻔했다.

“대감께서 소직을 보자고 하셨습니다만.”

“그렇소.”

“예.”

“…….”

“예?”

“더는 본부장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기 때문이오.”

“소직이 뭘 했습니까?”

“역시 잘 아시오. 과연 수기치인(修己治人)이 훌륭하시오. 그렇소. 본부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어째 듣기가 좀 그렇습니다?”

“속이 옹졸하니 남의 말을 꼬아 듣는 것이외다.”

“알겠으니 본론이 뭡니까.”

“흥!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문제요.”

“그렇군요. 소직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공백이 참으로 클 수밖에 없겠군요. 크게 반성하지요.”

“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 금상께서 즉위하신 이후 비변사 논의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소! 나는 이를 빗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외다.”

아. 그렇긴 하네.

내가 한 번도 안 갔구나.

그런데 중대본에 나 말고 비변사에 가야 할 사람들이 있을 건데, 그 사람들은 갔나?

가면 나도 좀 데려가지.

“중대본이 수립되더니 본부장과 뜻을 함께한 대신들도 모두 불참하고 있소.”

아. 다들 안 갔구나.

역시 캐릭터들 분명하다.

어쩌면 중대본 일만으로도 바쁘니 갈 시간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어지간한 일은 다 중대본에 결정권이 있는데 비변사까지 갈 필요도 없고.

게다가 거기는 복잡한 논의를 거쳐야 하지만, 중대본은 빠른 결정과 집행이 이뤄지니 성취감이 더 들기도 할 거고.

“비변사는 조정 최고 기구요. 한데, 무슨 의도로 이리 행동하는 것이오?”

“의도라니요?”

“되돌아보면 본부장은 비변사 폐지를 거론하였소. 그 직후 중대본을 수립하였고. 이것이 중대본에 속한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여 조정을 좌지우지하려는 속셈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라는 말이오?”

“아닌데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시오!”

정태화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느낌이 딱 왔다.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그동안 왜 나를 보면 헛소리를 했는지.

공적으로는 밥그릇 싸움이고, 사적으로는 피해의식이었다.

중대본이 출범하면서 조정의 모든 업무를 독식하던 비변사의 위상에 금이 갔다. 이로 인하여 공적 위상에 타격이 갔다.

또,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으로서 중대본의 일에 전혀 관여할 수가 없다. 여기서 피해의식이 미친 듯이 샘 솟은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은 결국 내가 모르는 사이, 전혀 다른 곳에서 권력 다툼으로 비화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나와 중대본 모르게 비변사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실소를 머금고 있을 때 정태화가 일갈했다.

“비변사 대신들의 결의를 말해주리다.”

“아니 무슨 결의까지 합니까.”

“하!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오!”

“됐습니다. 어서 내용이나 전해주시지요.”

“우리 비변사의 대신들은 더는 중대본의 독단과 독주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정당한 권한으로 행한 일인데 어찌 그러십니까.”

“저, 정당한 권한?!”

정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여차하면 기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훈련도감의 일이 어찌 정당하오! 그건 엄연히 비변사의 일이오!”

“전하께 고하여 교지를 받았습니다.”

“고하기 전에 논의를 비변사에서 해야지요! 또, 유민을 도성에 들어오게 했소. 나와 비변사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유민은 재해로 발생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중대본의 일이 아닙니까?”

“도성의 치안은 비변사의 일이오!”

“안 그래도 그건 협조 요청을 하려고 했습니다. 치안 좀 담당해주시지요.”

“하! 지금 비변사가 중대본의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오? 진정 그리 생각하시오?”

“일의 권한과 책임을 운운하여 한 말입니다.”

“아니, 지금 나를 가르치시오?”

“뭘 또 그렇게 말씀합니까.”

“됐소. 오만함이 단전에서 올라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태조께서 이 나라를 세우신 이래 영의정을 이토록 무시하는 인사는 본부장이 유일하오!”

“말이야 바른말로, 중대본 본부장도 정1품입니다.”

“!!!”

“심지어 구관당상을 역임하였을 때도 그랬고요.”

“!!!”

“사실이지 않습니까.”

“지, 지금 임시직을 거론하며 당연직 정1품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과 빗대는 것이오?”

“그게 아니라 규정이 그렇다는 겁니다.”

“갈!”

거의 사자후였다.

게다가 정태화의 눈은 터질 듯 핏발이 섰다.

“지금부터 우리 비변사는 중대본의 모든 일에 협조하지 않겠소.”

비변사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무슨 말이야?

그리고 치안 좀 잘해달라니까 나 몰라라 하더니마는.

솔직히 타격감이 전혀 없다.

내가 뻣뻣한 태도로 일관하자 정태화는 눈을 부라리며 한마디를 더했다.

“성균관의 일도 들었소.”

“들으셨다니 아시겠군요. 소직은 그들에게 반드시 죄를 물을 것입니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이외다.”

“분명히 말하지요. 재해와 관련한 일은 중대본의 소관입니다. 비변사에서 개입할 일이 아닙니다.”

“기가 막히는군. 쇠고기가 어찌 재해와 관련한 일이오?”

“그 쇠고기를 구휼에 사용할 계획이었으니까요.”

더 길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 더 기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대충 권위로 눌러버리기로 했다.

“대화를 더 나누고 싶으나 불충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불충이라고 하셨소?”

“이미 전하였습니다. 알현을 청하러 가던 길이라고요.”

재차 언급하였으니 더 잡지 못할 것이다.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그런데

“기다리시오.”

정태화가 다시 내 발목을 잡았다.

입술을 깨물며 등을 돌렸다.

“뭘 어쩌자는 겁니까?”

“허. 이보시오.”

“됐습니다. 혹시 원하는 게 이런 겁니까?”

나는 거칠게 소매를 내저으며 말했다.

“서인과 남인으로 분열되어 피비린내 나던 과거처럼 중대본과 비변사로 편을 갈라 거하게 겨뤄보자는 겁니까?”

“말 함부로 하지 마시오!”

“지금 도성 전체가 난리가 났습니다. 또 성균관의 유생은 법도를 어겼고요. 누구의 책임인지를 묻기 전에 이를 해결해야 합니다. 한데, 지금 영상 대감은 이를 기회로 중대본을 공격하려고 하고 있소이다. 왜요? 이참에 흠을 잡아 사화라도 일으키려고요?”

“!!!”

솔직히 정태화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 엄중한 시국에 위치, 권한, 책임을 따지며 중대본의 행보에 시비를 거니 짜증이 확 솟구친 것이다.

마음 진짜 독하게 먹었다.

여기서 더 덤비면 그냥 치워버릴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이연도 설득할 수 있다.

“거. 누가 그러자고 했소?”

이건 또 무슨 전개?

갑자기 꼬리를 내려?

정태화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왜 이래? 갑자기?

이건 무슨 전개일까.

살짝 아니 제법 당황하여 나도 모르게 자리에 앉았다.

눈을 껌뻑이며 정태화를 쳐다봤다.

“커흠.”

“예.”

“거. 같이 좀 하는 게 어떻소.”

“예……?”

“아니, 중대본만 나라 걱정하고, 백성을 아끼오?”

“아.”

“갈수록 소외되고 있으니 어찌 불평불만이 없겠소이까. 나 역시 이를 다독이느라 늘 애를 먹고 있소.”

아. 이런 아름다운 고민이라니.

아니, 대관절 조선의 사대부들은 왜 계속 핵심을 마지막에 배치한단 말인가.

처음부터 저 말을 꺼냈으면 그간의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겠는가.

또, 저런 고민을 하면서 평소 그렇게 날 볼 때마다 구시렁거린 것도 놀라웠다.

또 막상 이렇게 나오니 조금 전에 날카롭게 타박한 게 살짝 미안했다.

많이 미안하지는 않았고, 정말 살짝이었다.

어색한 공기가 무럭무럭 자라날 때 정태화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상당히 두툼한 문서였다.

의아하여 빤히 쳐다봤다.

정태화가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태시오. 요긴하게 쓰일 것이외다.”

“예? 대, 대감.”

뭐라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정태화가 너무 쿨하게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이건 너무 놀라운 캐릭터 변화가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내용이……!”

단 한 장을 펼쳤는데 온몸이 굳었다.

그냥 바라만 봤다.

[성균관과 반촌의 쇠고기 반출에 대하여]

간결한 시작이 내 머릿속도 간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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