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거병(擧兵)(4)
성균관 유생들은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청운(靑雲)의 꿈을 꾸며 여기까지 달려왔건만 이토록 허망할 수가 없었다.
여태껏 쌓은 학문이 대체 무슨 소용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사문난적…….”
“사문난적…….”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감히 우러러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웠던 대학자들이 일제히 사문난적을 결의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그 시작은 조선의 지존이었다.
하여, 섣불리 말을 꺼내는 것도 어려웠다.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두 그러했다.
2명의 장의를 비롯한 유생들은 침울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침울함……?
아니, 어쩌면 황망함일 수도 있으며, 허탈함일 수도 있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듣지도 못하였고, 경험하지 못한 아예 새로운 영역이었기에 그러했다.
“학문을 익혀 왕실에 충성하고 백성을 살피고자 하였네. 이것이야말로 성리학자로서 관리가 되려는 이유였어.”
“어찌 아니겠는가. 이 자리에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모두 그러하였네.”
“진실로 그러하였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네.”
내용은 단호하였으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이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러하였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구체적인 언어로 구현되었다.
“그런데 아니었네.”
“그래. 아니었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하겠네. 나는 서인 일색의 조정을 원하였네.”
“나 역시 마찬가지일세. 남인 일색을 꿈꾸었네.”
“하여, 성균관에서도 자네와 늘 대립하였어.”
“나 역시 사사건건 자네의 발목을 잡았네.”
“우리는 늘 분열되어 숨을 쉬었어. 이는 경쟁이 아니라 대립이었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제압하려고만 했으니까.”
“이미 주상께서 보위에 오르실 때 사화가 없노라고 이르셨으나, 우리는 바뀌지 않았네.”
“되돌아보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힘겹게 내뱉었다.
“논쟁에는 붕당의 이해관계를 앞세웠을 뿐이었네. 한 번도 백성을 운운한 적이 없었어.”
“그랬지. 늘 상대의 허물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하였으니까.”
“근거는 성리학적 이해였네.”
군왕과 송시열의 문답은 너무나도 잔인한 현실이었다.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심장이 따갑고 미치도록 아팠다.
“자네, 그거 아나? 우리가 처음으로 손을 잡은 건 반촌의 쇠고기를 외부로 유출하는 일을 도모할 때였다네.”
“어찌 모르겠는가. 그때만큼은 아주 잘 단합하였지. 한순간도 붕당의 이해관계를 꺼내지 않았어.”
“분명 법도를 어기는 일이었으나 괜찮다고 여겼네. 오히려 합당하다고까지 생각하였어.”
“큭……. 한 번도 단결하지 못하였던 우리가, 공동의 이권을 바라볼 때는 너무나도 쉽게 손을 잡고 뭉쳤어.”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무서울 정도로 끔찍한 소름이었다.
대체 무엇을 위하여 성균관을 사수하고자 한 것이었을까.
이 물음에 봉착한 유생들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만일 성균관이 아니었다면…….”
참으로 무서운 전제였다.
그리고
“성균관이 아니라 조정이었다면…….”
끔찍한 가정이 새어 나왔다.
“서인과 남인이 참으로 단단하게 대동단결하였을 것이야.”
“손을 굳게 잡고 놓지 않았겠지.”
“이 나라 조선을 개혁할 수 있는 정책일지라도 막았을지 모르지.”
“사대부의 이권을 지키고자 괴이한 짓을 했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이미 성리학으로 공고한 성벽을 쌓은 것이지.”
“성리학이 방패가 되는 세상, 이미 지독할 정도로 경험하고 말았네. 조정에 출사하기도 전에 말일세.”
유생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과연 이러한 조선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내일의 조선이었다.
이미 성균관에서 끔찍한 조선은 잉태되고 있었다.
하여, 참혹했다.
그러나 더 심장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었다.
“자네, 그거 아는가? 우리의 일은 아예 언급조차 없었네.”
“알지. 어찌 모르겠는가. 한데, 그 모든 것은 결국 우리의 일이었네.”
“참으로 비루하지 않은가.”
“너무나도 비루하지.”
군왕과 송시열의 문답에서 성균관과 쇠고기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조선의 비루함이 두드러지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비루함은 모조리 성균관을 질타하는 것이었다.
하여, 더 고통스러웠다.
다시 침묵은 시작되었다.
침묵의 끝이 언제일지, 어떤 결론이 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기에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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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문난적들의 표정은 정말 어두웠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시름시름 앓기도 했다.
흐름에 몸을 맡기며 일제히 커밍아웃하였으나 세상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하였던가.
난리도 난리가 아니었다.
사문난적들의 입에서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임진년의 난리는 난리도 아니외다.”
“병자년의 난리도 난리가 아니었소.”
결의의 현장에 있던 이들은 군왕과 나의 절절한 문답에 감히 반론을 펼치지 못하였으며, 감읍함을 전하였다.
그러나 문답이 생중계되는 것은 아니기에, 결의와 감동이 사대문을 넘으면서 아예 사라졌다. 결과 사족들은 ‘사문난적’이라는 충격적인 단어에 매몰되어 대대적으로 항의의 뜻을 밝힌 것이다.
나를 비롯한 사문난적이 아무리 압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성리학이 존재하는 세상의 일이다.
보라.
만일 원 역사에서 송시열이 ‘나는 성리학이 싫다!’ 이렇게 선언하였다면 그의 위상이 어찌 되었겠는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엄중한 상황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인도 난세요?”
“더 말할 필요가 있겠소? 각지에서 서찰이 빗발치고 있소. 예부터 군왕들이 상소를 싫어한 이유를 알아버렸소. 진심으로 미칠 지경이외다.”
몰골이 아예 반쪽이 된 허적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호조와 중대본의 방대한 실무와 막중한 책임감에도 굳건하였건만, 사족의 대대적인 반발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서인은 어떠하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소. 난세요.”
정말 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한마디로 기근과 싸워야 할 엄중한 정세에 사상전까지 펼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위생 수칙이 중단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연이 선두에서 제창한 일이긴 하였으나 지도부도 동참하였기에 사족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상소로까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문난적은 사문난적이고 왕명은 왕명이 되는 현상이 펼쳐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인과 남인의 지도부가 함께 커밍아웃하였기에 붕당 간의 첨예한 대립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린 이걸 위로라고 하고 있었다.
물론, 딱 여기까지였다.
송준길이 윤선도를 바라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서, 감당하기 어렵소?”
“허.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아. 서인은 그러하오?”
“하하하. 농이 과하시오. 남인이 그러겠지요. 우리 서인의 사족은 그저 의견 개진에 불과하오. 한데, 남인의 사정이 너무 안타깝소.”
“하. 말씀이 과하시오. 우리는 자유롭게 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을 뿐이외다. 서인처럼 경직된 게 아니란 말이오.”
“하하하. 그렇소? 한데, 너무 자유로워 보이오만.”
“이보시오.”
“아. 표정이 지나칠 정도로 어두워 보이기에 진심으로 걱정하였소.”
“하!”
음. 이번에는 송준길의 판정승이었다.
물론, 서인과 남인의 사정에 차이가 있다는 건 그냥 오십보백보였다.
아니, 그냥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미친 성리학자가 밑도 끝도 없이 사문난적에 동의하고 나서겠는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에게 우리는 주적이 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럴 수도 있고.
“……내 생각에 이 문제는 더 끌고 갈 필요가 없는 것 같소.”
조용하게 끼어든 목소리, 바로 윤선거였다.
정말 낮은 목소리였으나 내용은 예사롭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그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계속 생각해봤소. 그런데 말이오. 중대본이 사족과 논쟁이라도 할 것이오?”
짧지만 정확했다.
정확하게 심장을 찌르는 핵심이 아닐 수 없었다.
괜히 티격태격하던 송준길과 윤선도는 거의 동시에 먼 산을 쳐다봤다.
“그 논쟁은 생산적이지 않을 것이외다. 시작은 어떨지 몰라도 점차 성리학적 논쟁에 그칠 것이니,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소. 우암의 말처럼 이는 성리학이 만든 성벽 안에서 이뤄질 위정자들의 논쟁에 불과할 것이니 말이외다.”
어쩌면 윤선거는 소심한 게 아니라, 생각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말을 더 아끼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상념이 뇌리를 지배했다.
“물론, 사족의 반발이라는 게 쉽사리 잠재워지지는 않겠으나, 이미 주상께서 전인미답의 길을 걸으셨소. 어심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으나 적어도 성리학적 논쟁을 원하시는 건 아니지 않겠소이까. 이는 회피가 아니라 확전을 경계하자는 의미외다. 나의 식견으로는 중대본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 될 것이라고 보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라고 반론이 나올 수는 없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상전의 확전이 아니라 기근과의 전면전이었으니까.
나는 엷게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미촌의 의견이 참으로 지당하오. 중대본은 중대본의 길을 가는 게 옳소.”
물론, 사상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사족의 여론을 떠나서 기근 극복에는 그들의 힘이 필요했다.
그러자고 호포제도 덮었지 않은가.
“그러나 사족의 반발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소. 만일, 기어이 그리하면 사족은 중대본에 적개심을 가질 것이외다. 이는 결국 중대본 정책에 대한 비우호적인 태도로 귀결될 것이니 어찌 우려하지 않겠소?”
한 가지가 더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언제라도 주상께 상소를 올릴 수 있는 자격과 담력을 가지고 있소.”
다른 사안이 아니다.
무려 사문난적이었다.
이는 전국의 성리학자를 공고하게 단결시킬 수 있는 사안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당장에야 지도부의 공백으로 어수선하겠으나, 시간이 더 흐르면 어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만일, 그들이 조직적인 단결에 성공하고 조정에 정식 상소를 대거 올린다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아쉽지만 전국의 성리학자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
이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불가능하다.
윤선거가 이를 모를 수는 없다.
그는 중대본이 반석에 오르면 사상전을 펼치는 게 옳다고 말한 것이니까.
그래서 윤선거의 말은 옳지만 틀렸다.
경신 대기근의 공포를 모르니 그러했다.
하여, 사상전 또한 누군가는 책임지는 게 옳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서인과 남인 사족의 모든 화살을 내게로 집중시키시오.”
나 송시열이다.
“내가 모두 감내하리다.”
모두를 바라보며 가벼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미 나는 개혁의 방패가 되겠노라 주상께 고하였소.”
내가 저들의 공격을 막아낼 것이다.
하여, 지킬 것이다.
“기쁘게 사문난적의 방패가 되리다.”
사문난적의 결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