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위정척사(衛正斥邪)(2)
청계천 인근의 폐가였다.
이곳에 몸을 의탁한 박세당은 갈수록 기세를 더해가는 폭우를 빤히 바라만 봤다.
빗속은 참으로 어둡고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작금의 정국은 더한 혼란이었다.
하늘 아래 이보다 큰 혼란은 없었다.
그렇게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번뇌를 얻었다.
“주자의 말이 모두 옳다고 여긴 적은 없다.”
거북한 느낌은 없었다.
거부감도 생기지 않았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진리를 한 명이 다 깨우칠 수는 없다는 아주 간단한 명제였다.
하물며 성리학이 만들어진 것이 오래전이니, 작금의 문제에 무조건 대입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연스레 번뇌는 현실로 이어졌다.
아니, 제 삶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대안을 고민하지도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경전의 내용 몇 구절을 비판한다고 하여 어찌 넘어설 수 있겠는가.”
말 몇 마디 보태는 일은 절대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성리학 경전의 틀린 점을 지적한다고 하여 성리학을 대체할 수 있는 학문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여, 박세당은 주자를 비판하되 주자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하였기에 그저 학문을 익히고 홀로 비판하며 세월을 보냈다.
“사문난적이라…….”
옳고 그름을 떠나서 너무나도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시발점이 군왕이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수준이었고.
하지만 가장 주목한 건 송시열의 말이었다.
“창과 방패…….”
성리학이라는 도구가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서 일국의 모습이 어찌 귀결되는지, 송시열은 명확하게 설명하였다.
참으로 놀라웠다.
또, 경탄했다.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성리학의 사지를 찢어버리는 광경은 전율스러울 정도였다.
“…….”
특히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하나 있었다.
“대체 왜……?”
남인의 사족과 함께 송시열의 사가를 찾았다.
개인의 입장을 떠나서 당색을 따라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한데, 자신을 바라보는 송시열의 눈빛과 표정이 너무나도 묘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어찌 표현해야 할지 고민됐다.
아니, 알고 있다.
다만, 너무나도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묘하게도 그 감정은 노여움, 분노, 경멸…….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건 명확한 ‘실망’이라는 감정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태어나 학문을 익히면서 자연스레 갈라진 사이였다.
서인의 영수와 남인의 학자였기에 두터운 친분을 쌓을 수 없었다.
아니다.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조선 성리학의 태두였기에 감히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러한데, 그는 대체 왜 실망이라는 감정을 표출하였을까.
“…….”
그나마 도출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근거는 과거 진행하였던 녹봉 삭감 연좌의 일이었다.
그때 송시열은 녹봉이 인상되어야 마땅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요구했다.
부끄럽지 않을 정책을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답보상태였다.
정책은커녕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였다.
“……창과 방패를 논하였어. 정책은 창이며, 우리의 방문은 방패였구나.”
쓴웃음이 감돌았다.
녹봉 인상 이후 지금까지 한 행동 중 가장 도드라진 것이 주자를 지키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우스웠다.
송시열이 왜 그토록 자신에게 기대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실망할 만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계. 홀로 뭘 그렇게 중얼거리나?”
부름에 박세당의 상념은 마무리되었다.
담담하게 웃으며 등을 돌렸다.
남인의 사족들이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숨을 쉬고 있었다.
박세당은 가슴 어딘가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문뜩 그랬다.
그냥 그랬다.
지금 말이다.
“청계천 역사를 집행한다고 하였으니 필시 이곳으로 오지 않겠나?”
“아마도 그러할 것입니다. 폭우로 범람이 발생하였으니 말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네. 어찌 그토록 무례하고 오만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선생. 고정하시지요.”
“내가 고정하게 생겼나?”
사족들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송시열의 발언은 선을 넘어선 것이었다.
-성현은 한 번도 너희를 성리학자라 이르지 않았다.
-너희는 수백 년 전 죽은 주희의 말을 그저 필사한 서책에 불과하다.
내용도 대단하였고, 존칭을 모조리 걷어낸 반말이었으며, 주자의 본명을 내뱉었다.
단지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아리는 날카로움이었다.
그러니 사족들의 불평과 불만은 당연하였다.
비록 이들이 송시열의 위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문전박대를 당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니, 사대부라면 누구라도 그런 치욕을 당할 수 없었다.
연배나 경륜 그리고 학문의 경지 등 모든 부분에서 말이다.
그러니 불쾌함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세당은 섣불리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불쾌함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침착함을 애써 유지할 수 있었다.
“소생이 어찌 선생들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날이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만하게. 어찌하여 자네는 서인의 영수를 편드는 것인가.”
“선생. 중대본에는 남인의 영수이신 허적대감과 여러 선생께서도 계십니다.”
“이보게!”
“또한, 사문난적은 주상께서 천명하신 것입니다.”
“…….”
“하여, 소생은 당색으로 편을 갈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면, 자네의 생각은 무엇인가.”
“소생은…….”
박세당은 말을 끌었다.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기에 구체적으로 언어를 창출하기 어려웠다.
결국, 말끝을 흐렸다.
“대안도 없이 반대만 하는 건 대체 무슨 경우인가.”
“…….”
“자네는 자리만 지키게. 그와 논쟁하는 건 우리 몫이니까.”
“…….”
박세당은 속이 영 불편했다.
사족들의 언행이 너무나도 모순적이라고 느껴졌기에 그러했다.
이토록 결심이 두텁다면 어찌하여 송시열의 사가에서 무기력하게 물러났을까.
이곳까지 찾아올 정도라면 애초 사가를 지켰으면 될 일이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기에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상당한 인원이 도착하였다는 걸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기어이 때가 도래한 것이다.
폭우가 내려 범람을 막아야 할 순간에 이뤄질 고루한 논쟁을 떠올리니 벌써 속이 답답하였다.
한숨을 쉬며 사족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송시열과 격한 논쟁을 펼칠 듯 말하던 이들 중 먼저 나서는 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곁눈질로 옆 사람을 슬며시 살피기까지 하였다.
여기까지.
박세당은 심장이 차갑게 식는 것만 같았다.
그냥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치솟았다.
표정을 모두 거두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앞장섰다.
“서계. 자네가 앞장설 생각인가?”
묘한 기대가 담긴 물음.
박세당은 대꾸조차 하기 싫었다.
그저 걸어갈 뿐이었다.
그런데
“아니, 허목 선생이 아니신가.”
“허. 정말이군.”
멀리 보이는 인파의 선두에 남인의 지도부인 허목이 있었다.
그 순간
“서두르지.”
“암. 가세나.”
몸을 사리던 사족들이 앞다퉈 나서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앞장선 그들의 등을 바라보는 박세당의 눈빛은 너무나도 차갑게 내려앉았다.
심장에서 흐르는 피에 환멸이 담긴 것만 같았다.
그냥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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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니, 노기가 치솟았다.
느닷없이 제철도 아닌 시절에 위정척사가 튀어나온 이유 따위를 고려할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구한 말 들불처럼 일었던 위정척사의 가치를 폄훼하는 게 아니었다.
작금의 조선에서 위정척사라는 넉 자가 가지는 의미는 오직 하나였다.
기어이 성리학을 절대적으로 지키며 앞세우겠다는 선언이었다.
즉, 사문난적의 결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
됐다.
중요하지 않다.
위정척사가 거론된 이상, 사상전은 최악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상대는 내심 가장 먼저 중대본의 결의를 따를 것으로 여겨졌던 성균관 유생들이다. 한마디로 대진운이 최악이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게 되었다.
“무릇, ‘정’이라 하면 성리학을 이릅니다.”
어쩌면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당연히 예상했다.
성리학의 나라에서 사문난적을 선언한 이상, 영원한 싸움을 펼쳐야 하는 건 기본이다.
그러니 더 들어볼 필요가 없다.
나는 단호하기 나서기로 했다.
“너희가 기어이…….”
“아울러, ‘사’라고 하면 성리학을 일컫습니다.”
“…….”
뭐……?
대관절 이게 무슨 말인가.
‘정’이 성리학인데, ‘사’가 어찌 성리학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아니, 굳었다.
“이미 주상께서 사문난적의 길을 천명하였으나 소생들은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
“만일, 이를 불충이라 하신다면 기꺼이 감내할 것입니다.”
이건 들어봐야 했다.
이 나라 조선의 내일을 책임질 유생들이 내린 결론을.
고작 폭우 따위가 막을 수 없는 저들의 결기를.
“소생들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무엇을 부정하지 않는가.”
“조선의 성리학을 부정하지 않을 겁니다. 기어이 작금의 조선이 이룬 성리학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입증할 것입니다.”
“어찌 입증할 것인가.”
“성리학을 바로 세워 성리학을 내칠 것입니다.”
“성리학을 어찌 바로 세울 것인가.”
“모순을 뚫는 창으로 세울 것입니다.”
“성리학을 어찌 내칠 것인가.”
“최고의 창을 휘둘러 방패를 치울 것입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논리였다.
바로 내가 제창한 사문난적의 그것이었으니까.
“하여, ‘정’이 성리학이지만 ‘사’ 또한 성리학입니다.”
“…….”
“불충하게도 소생들은 위정척사로 사문난적을 이겨낼 것입니다.”
하늘 아래 이보다 아름다운 결론이 어디 있겠는가.
군왕과 중대본이 세운 사문난적에 성균관 유생이 위정척사로 맞서겠노라 선언하였다.
그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상전이 아니겠는가.
심장이 간지럽게 뛰었다.
가슴이 포근하게 뛰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묻겠다. 위정척사는 사문난적을 어찌 이겨낼 것인가.”
“100일.”
“100일?”
“조선의 성리학이 옳다는 건 이미 익혔습니다. 남은 건 이를 입증하는 것이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2명의 장의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허공을 향해 던졌다.
폭우를 뚫고 허공을 향한 건 바로 서책이었다.
“100일간 소생들은 선지후행(先知後行)의 길을 걷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100일은 후행의 시간입니다.”
70여 명의 유생도 후창하며 일제히 서책을 던졌다.
70여 권의 서책이 폭우를 뚫고 날아오르는 장면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거친 폭우와 바람이 서책을 때리는 소리가 무척이나 거대했다.
그렇게 강우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서책은 일제히 하강하였다.
-퍽!
-퍽!
-퍽!
……
-퍽!
-퍽!
무거운 물기를 잔뜩 머금고 바닥에 펼쳐진 서책은 종류도 참으로 다양했다.
한눈에 봐도 유학의 경전을 총망라한 수준이었다.
거센 빗물은 경전에 새겨진 글자를 빠르게 지웠다.
그야말로 찰나에 백지처럼 변했다.
이는 참으로 참으로 장엄하였다.
장엄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현판을 든 두 명의 장의가 다가왔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위정척사가 옳았다는 걸 입증할 때 현판을 다시 받을 것입니다.”
“허.”
“이를 주상전하께 고하여주십시오.”
“직접 고하면 크게 반기실 것이다.”
“훗날 현판을 다시 하사하실 때 알현할 것입니다.”
최고의 영광을 내리고 기본에서 다시 시작한다.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는 최고의 결의였다.
오늘 하루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