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살리고자 하였다
비나 눈 따위를 막기 위해 기름에 절인 종이나 천으로 만든 옷을 유삼(油衫) 혹은 유의(油衣)라고 했다. 이는 몸 앞부분을 가리며 손으로 안에서부터 잡아내어 가슴 앞부분에 대어 입었다. 소매가 없는 망토의 형태였다.
반면, 도롱이(사의)라고 하여 짚으로 만든 비옷도 있었다.
당연히 유삼은 상대적으로 고가였기에 사대부가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물론, 도롱이를 사용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비를 막는 효과에서는 비교할 수 없었다.
유삼을 걸친 유형원은 진땀을 흘렸다.
흐르는 땀이 폭우에 희석되어 눈이 따갑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상황은 최악이었다.
범람하는 청계천에서 토하듯 올라오는 오물을 보면 숨을 돌릴 여유조차 없어졌다.
고개를 돌렸다.
낡은 도롱이를 겨우 입은 유민들이 보였다.
2,000여 명의 유민 중 건장한 장정 500여 명부터 도롱이를 구해 입혀 이곳까지 서둘러 왔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사기는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낮게 한숨을 쉬며 서둘러 작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선생!”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레 고개가 움직였고, 유형원은 헛웃음을 지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남인의 사족이었다.
유형원은 한숨을 쉬며 스승 허목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이내 피식 웃었다.
누구보다도 스승의 성정을 잘 안다.
사족들의 등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소임에 집중하면 될 일이었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오물을 한곳으로 모아내는 것이네. 알겠나?”
“선생. 이미 강물이 넘쳐 곳곳으로 흘렀습니다. 이를 어찌 모아낼 수 있습니까.”
“어려운 일이지. 그런데 어찌하겠느냐.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람을 동원하여 퍼담고 옮기는 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
“고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해야 할 일이니 모두 최선을 다하도록.”
“……알겠습니다.”
장정들은 한숨을 쉬며 답변했다.
유형원은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먼저 움직일 뿐이었다.
-----
허목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사족을 보며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잔뜩 힘을 준 예의 바른 인사였다.
비록 영수는 아니지만 남인 내에서 허목의 위상은 그에 준하였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사족의 인사를 받은 허목은 언짢음이 여과 없이 치밀어 올라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이곳은 무슨 일로 왔소?”
왜 왔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물었다는 건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 것이었다.
“서, 선생.”
“빗소리가 거세더라도 내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닐 것이외다.”
예상 밖의 냉대에 사족들은 멈칫했다.
더불어 차가운 빗물과 바람까지 맹렬하니 더 몸 둘 바를 몰랐다.
“사문난적…… 맞소. 중요한 문제요. 한데, 이 논쟁이 촌각을 다툴 정도로 심각하오?”
“선생.”
“안 보이시오?”
허목은 날카롭게 노려보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향한 곳에서는 청계천이 범람하여 지천에 오물이 흐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미간이 찌푸려졌고, 절로 코를 막을 만큼 악취가 진동하였다.
“지척에서 이 사달이 났는데 기어이 이리하셔야 하오?”
“선생. 그것이 아니라…….”
“참으로 부끄럽소. 공들과 나의 당색이 같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럽소.”
허목의 장탄식에 사족들의 안색은 시뻘겋게 변했다.
폭우의 위력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혀를 차던 허목은 다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의외의 인물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서계. 관복을 입은 자가 이리도 생각이 없나? 참으로 당혹스럽군.”
“송구합니다. 선생. 소생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더 탓하지 않겠네. 이만, 물러나게.”
“선생께서 허락하신다면 소생도 거들겠습니다.”
“…….”
허목이 빤히 쳐다보자 박세당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괜한 말이 아닙니다.”
“그리하게.”
“감사합니다.”
등을 돌리는 허목은 피식 웃으며 읊조렸다.
“그래도 남인에 쓸 만한 인사가 한 명은 있군.”
입가에는 진심이 담긴 흐뭇함이 묻어났다.
-----
서책을 던진 유생들의 첫 번째 선택은 놀라웠다.
동부 지역의 오물을 직접 치우겠다며 나선 것이었으니 진심으로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평소 그들의 행보를 고려할 때 이건 가히 혁명이라고 불러도 될 일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절대 말리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너무 기쁜 일인데 뭐하러 그러겠는가.
윤선거가 제기하였던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된 것이니 환장할 듯 좋아해도 모자란데 말이다.
기쁘고 뿌듯한 마음이 가득하였기에 일찍 퇴청하여 푹 쉬고 싶었으나 청계천의 상황도 살펴야 하기에 뒤늦게 현장에 당도했다.
부지런히 다가가려는 데 나를 노려보는 무리가 있었다.
남인의 사족들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얌전했다.
뭐. 원인은 안 물어봐도 뻔했다.
허목에게 이미 한 소리 들었을 것이다.
내 사가까지 찾아왔기에 제법 강단은 있는 인물들인 줄 알았는데, 딱 저 수준에 불과했다.
하긴, 내가 반말로 모욕을 줬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인사들에게 뭘 바라겠는가.
또 그래서 안타까웠다.
고작 저들의 모습의 조선의 수준인 듯해서 씁쓸할 뿐이었다.
그대로 지나쳐서 허목에게로 가려고 할 때였다.
“이, 이보게! 위험하네!”
“어?! 어?!”
소란이 일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쏠렸다.
청계천 지척에서 일하던 장정 한 명이 발을 헛디뎠다.
그리고
“!!!”
“!!!”
“!!!”
“!!!”
순식간에 청계천이 그를 삼켜버렸다.
대경실색하여 황급히 달려갔다.
장내는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떠내려가는 장정을 구하기 위해서 밧줄이며, 장대며 모든 걸 들고 움직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장정이 아직 살고자 버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절절함을 담아 내게 말하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구, 구하라! 저자를 반드시 구하라!”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리고 물에 빠진 장정이 밧줄을 잡았다.
유민들은 일제히 당겼다.
-----
나는 본능적으로 다가갔다.
축 늘어진 장정의 몸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뭐, 뭘 해야 했지?
뭘 확인해야 했지?
복잡한 머릿속의 저 멀리에서 실타래가 잡혔다.
우선 심장의 박동을 확인해야 했다.
얼굴을 내려서 귀를 가져갔다.
지독한 악취가 밀려왔으나 그저 느껴질 뿐, 나의 다가감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심장이 뛰었다.
곧장 코의 호흡을 확인했다.
천운이었다.
미약하지만 숨을 쉰다.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폭우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움직임은 굼뜨고, 시선은 복잡하게 허공을 오가고 있었다.
다들 당황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하지 못했다.
됐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이자를 물에서 구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머릿속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대한민국의 지식이 스치듯 지나갔다.
-의식이 없는 환자의 경우 혀가 뒤로 말리면서 기도가 막힐 수 있으므로, 환자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 턱을 들어주면서 기도를 열어준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병졸에게 외쳤다.
“이자의 목을 뒤로 젖히게!”
“예?”
“어서!”
매서운 기세로 외치자 병졸은 황급히 움직였다.
기도가 열렸다.
덜덜 떨리는 손을 움직였다.
힘을 꽉 주고 윗옷을 찢듯이 벗겼다.
곧장 오른손을 아래로, 왼손을 위로하여 깍지를 꼈다.
그리고 병자의 가슴에 올렸다.
다음은……?
다음은……?
찰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런데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가슴압박을 시작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
하나, 둘!
이를 악물고 쥐어짜듯 소리를 내며 가슴압박을 이어갔다.
이게 맞는 방법이었나……?
제대로 하는 중인가……?
모른다.
모르겠다.
대체 뭘 어찌해야 하는지.
일단 했다.
미친 듯이.
이미 백지장이 된 머릿속은 내 몸이 움직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했다.
쉬지 않았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
하나, 둘!
폭우가 온몸을 때렸다.
따갑고 뜨거웠다.
얼굴에는 비가 퍼부었으나 땀이 그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허약한 몸은 가슴압박을 더 감당하기 어려운지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너무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내가 멈추면 이자는 죽는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
하나, 둘!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온몸에서 기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냥 이대로 이곳에 눕고 싶을 정도였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
가슴압박의 속도는 현저하게 느려졌고, 강도는 약해졌다.
“……대감. 숨을 거두었습니다.”
기도를 확보하던 병졸의 말.
나는 쳐다도 보지 않고 거칠게 외쳤다.
“그 손을 놓으면 자네는 내가 죽일 것이네!”
기겁한 병졸은 다시 기도를 확보했다.
나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가슴압박을 이어갔다.
“본부장…… 이미 늦었소.”
“대감. 숨을 거두었습니다.”
허목과 유형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하지만, 무시했다.
“참으로 흉측하군.”
“시체를 저리 험하게 다룬단 말인가.”
사족들의 개소리.
무시했다.
이대로 두면 이 사람은 무조건 죽는다.
“대체 이게 무슨 흉악한 일이래?”
“이미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러면 산 사람에게는 저리해도 된다는 건가?”
누군가의 목소리.
무슨 말을 듣더라도 살려야 한다.
그런데 희망이라는 단어가 점차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아, 안 돼…….”
나도 모르게 나온 절규와도 같은 희미한 목소리.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래도 미친 듯이 움직였다.
온 힘을 다했다.
“이, 일어나!”
발악하듯 외치며 가슴압박을 이어갔다.
그때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허목이었다.
“본부장. 숨을 거두었소.”
“아, 아니외다. 아직 아니오.”
“늦었소.”
늦었나……?
이미 끝났나……?
그 순간 눈물이 흘렀다.
아니, 이미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칠 것만 같았다.
손에 힘이 빠졌다.
정말 이대로 죽은 것일까……?
아니, 너무 힘들어 멈추고 싶은 게 아닐까……?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현대인의 지식은 간결했다.
-2분.
그래.
2분이었다.
어차피 나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2분은 해야 한다.
아직 2분은 지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아직 2분도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반드시 아직 2분이 지나지 않아야 했다.
아직은.
정신을 차렸다.
이를 악물었다.
죽을힘을 다하여 힘을 주었다.
진짜 온 힘을 다하였다.
미친 듯이 장정의 가슴을 압박했다.
“조금만…….”
하지만 내 몸은 이미 기력을 다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드디어 내 심장이 경고했다.
그만하라고.
터질 것만 같다고.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아직 2분은 지나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더……!”
버텨다오.
송시열이여.
그때
“콜록……콜록…….”
“!!!”
“!!!”
“!!!”
“!!!”
살렸다.
기어이 살렸다.
그런데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미친 듯이 흘렀다.
폭우가 내렸기에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미친 듯이 내리던 폭우가 멎었다.
다만, 내 눈에서 내리는 폭우는 여전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