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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08화 (108/298)

108화 수기치인(修己治人)

변승업의 입가에는 웃음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황당해서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참으로 존경합니다.”

“…….”

“안 그래도 하늘을 찌르던 대감의 위명이 이제는 하늘을 뚫었으니, 어찌 흠모하며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자네 뭐 하나?”

“존경하고 있지요.”

“…….”

헛웃음도 안 나왔다.

그냥 계속 빤히 쳐다봤다.

“험험. 왜 그렇게 보십니까. 대감.”

“희한하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아서 말일세.”

“소인은 전매권을 확보했으니 어찌 아쉬움이 있겠습니까.”

쇠고기 전매권은 변승업에게 주어졌다.

그간 변승업이 세운 공도 대단했고, 빠른 집행을 위해서라도 거상에게 맡기는 게 옳다는 내부적인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이견도 없었다.

물론, 지금 이 문제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비축을 단행하여 국경의 전면 개방이 미뤄졌네.”

“소식은 접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아서 말일세.”

“소인이 어찌 감히 조정의 중대사에 아쉬움을 피력하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뭔가 걸리는 게 있단 말이지?”

“오해이십니다.”

“말했으면 좋겠는데?”

“아.”

여전히 빤히 쳐다보며 재촉했다.

변승업은 머쓱한 웃음을 보이더니 은근슬쩍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럴 의도가 보이기에 내가 먼저 말했다.

“말하게.”

“험험. 실은 대사헌 대감께서 다녀가셨습니다.”

“형님이? 왜?”

“그것이…….”

변승업은 내 눈치를 살피면서 송준길과의 일화를 빠짐없이 말했다.

별 내용은 없었는데 영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러니까 형님이 국경의 전면 개방을 늦추라고 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유는 모르나?”

“소인이 어찌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음. 알겠네. 한데, 이 내용을 내게 함구한 이유는 더 궁금하군.”

“아.”

“응?”

“송구합니다. 별 탈이 없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탈은 없었네만…….”

변승업의 말을 듣고 떠올려보니 중대본 논의 때 송준길의 태도가 묘하기도 했다.

“대감. 소인이 결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내가 말을 끌며 생각에 잠겨 있자 변승업이 알아서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이 정도 일로 변승업을 타박할 필요는 없다.

다만, 확실히 해둘 필요는 있다.

“강행하게.”

“예?”

“비축과는 무관하게 강행하라는 말일세.”

“하, 하지만 대감. 국고가 넉넉하다면 전면 개방이 이뤄질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대사헌 대감께 여쭤봐야겠지?”

아무래도 송준길이 무슨 생각인지 들어봐야겠다.

송준길, 딱 기다려.

지금 만나러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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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길은 뒷짐을 쥔 채로 미동도 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사가에서 바라보는 하늘만큼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건 없었다.

또, 모처럼 맑은 하늘이었기에 더 편안했다.

“대감.”

인기척과 함께 들린 호명에 엷게 웃었다.

“미촌. 오셨는가.”

“대감께서 이러고 계실까 싶어 일부러 왔습니다.”

“하하하. 보시게. 참으로 하늘이 높고 맑지 않은가?”

“대감께서는 고민이 길어질 때마다 사가에서 하늘을 바라보셨지요.”

“끌. 그렇지. 오랜 습관일세.”

윤선거는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절로 포근한 미소가 나오는 날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도성의 하늘만큼 좋은 곳은 없지.”

“도성의 하늘이야말로 조선의 오늘이니까요.”

“허. 자네 뭘 그렇게까지 정치적으로 말하나? 나는 진심으로 도성의 하늘이 최고의 절경이라는 의미였네.”

“이런. 크게 실언했습니다.”

가벼운 농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송준길의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애써 참고 있었으나 절로 튀어나오려는 한숨이 너무나도 버거웠다.

그러나 윤선거 앞에서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자네에게 너무 큰 짐을 주는 게 아닌가 싶네.”

“하하하. 어찌 이러십니까. 저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심려치 마십시오.”

“…….”

“음.”

윤선거는 가볍게 웃으며 넘기려고 했으나 송준길의 표정이 너무나도 어두웠다.

“대감의 짐보다 무겁지는 않습니다.”

“미촌…….”

“때로는 역할의 수행보다 제안이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대감께서는 더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정말 괜찮습니다.”

“……고맙네.”

신뢰를 담은 잔잔한 대화가 따뜻하게 공간을 채웠다.

또, 포근한 웃음도 평화롭게 울렸다.

참으로 고요하고 좋았다.

“자네 벗은 이런 분위기를 진심으로 반기지 않는 거 같더군.”

“하하하.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자연스레 송시열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형님! 계십니까?!”

송시열이 왔다.

두 사람은 피식 웃었다.

몸을 돌려 바라보니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왔는가.”

“잘 오셨네.”

“이건 뭡니까? 모종의 음모를 꾀하는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자네는 무슨 말을 그리하나?”

“허. 우암. 남을 의심하는 버릇 좀 고치게. 어찌 평생 그러시나. 내가 자네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송준길과 윤선거가 돌아가며 타박하자 송시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모습에서 참으로 대단한 고집이 느껴졌다.

하늘 아래 이런 불통이 또 어디 있을까.

“이리 물어야겠군요. 국경의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음. 변승업이 자네에게 먼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과하게 타박하였나 보군.”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형님과 미촌은 분명 동의하였습니다.”

“그가 말을 어찌 전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반대한 적이 없네.”

“허. 소제와 농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하면, 다시 여쭤보지요. 시일을 늦추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생각해보니 얻어내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서 그러하네.”

“예?”

“외교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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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얻어내다니?

대관절 이게 무슨 말일까.

눈을 껌뻑거렸다.

송준길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에서 어떤 무게가 느껴졌다.

“조선은 이겨왔네.”

“무슨 말씀입니까.”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조선은 생존의 끈을 놓지 않았어. 하여, 조선의 역사는 이어졌네.”

“…….”

“부족할지라도, 어려울지라도, 버거울지라도…… 조선은 버텼어.”

“…….”

“이 고된 역사는 나 송준길의 자부심이었다네.”

대체 송준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러나 도저히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송준길이 너무나도 고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데 말일세. 중대본이 수립된 이후 이 나라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네. 내가 옳다고 여겼던 조선의 역사에 가려진 그림자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조선이라는 국호가 유지되는 대가.”

송준길의 목소리는 더 무거워졌다.

경청하던 윤선거는 그저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는 아직 더 들어야 했다.

“조선이라는 국호를 남기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희생을 하였나?”

‘우리’라고 하였다.

이는 백성이 아니라 사대부와 왕가를 이르는 말이었다.

“우리는 아무런 희생도 하지 않았네. 모든 희생은…….”

송준길의 시선이 담벼락으로 향하였다.

그의 입가에는 자조적인 미소가 감돌았다.

“저들이 하였네.”

당대 최고의 사대부라고 할 수 있는 송준길이 백성을 ‘저들’이라고 하였다.

이는 기어이 백성을 모두 살피겠노라고 이 땅에 똬리 튼 역사와는 너무나도 괴리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국호를 유지하고자 저들의 피와 땀을 탐하였어. 저들은 자신들의 희생에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였네. 대관절 저들에게 조선이라는 국호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

“저들의 희생으로 명맥을 이어온 조선은, 저들에게 구휼미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하지 않은가. 우리는 저들에게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너무나도 무능력한 존재였네. 나는 중대본에서 이를 보았어.”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고 했다.

이는 그야말로 살을 자르고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었다.

내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따가웠다.

“거두절미하고 얼마 전 주상께서 이르셨지. 조선은 비루하게 역사를 이어왔다고.”

“…….”

“신하로서 감히 첨언(添言)할 수는 없으나 어찌 하교를 되돌아보지 않겠는가.”

에둘러 말했을 뿐이다.

이미 송준길은 조선의 역사가 비루하다고 여겼다.

“우암. 우리는 비루하였어. 우리 사대부는 아무런 희생도 하지 않고 그저 떠들었을 뿐이네.”

“형님.”

“오랑캐.”

“…….”

“우리는 만주족을 오랑캐라고 여기며, 청국을 진심으로 섬기지 않아.”

“…….”

“이 얼마나 모순된 행동이란 말인가. 이를 알면서도 우리는 울분을 토하며 그들을 경멸하였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 말일세. 그리고 또 우리는 저들에게 희생을 요구하였네. 늘 그랬듯이 당연하게 어떠한 대가도 내어주지 못하면서. 이렇게 우리 사대부가 비겁하다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송준길이다.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송준길이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형님.”

“그냥 섬기면 되는 거 아닌가?”

“!!!”

“그리하여 구휼미 10만 석 받아오면 좋지 않은가?”

“!!!”

“암. 이리하는 게 더는 비겁하지 않은 것이지. 그래야 우리도 저들이 희생할 때 말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

이런 결론이 도출될 줄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솔직하게 반가운 말이지만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건 진짜 미친 짓이기 때문이었다.

청나라와 국경을 개방하여 자유 무역을 도모하는 것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한데, 알아서 머리를 숙이고 외교로 구휼미를 얻어온다?

그랬다가는 전국의 성리학자가 죽이려고 할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절대 아니 될 일이다.

“형님. 소제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하여, 나는 주상께 미촌을 예조판서로 천거(薦擧)할 것이네.”

“!!!”

“반대하지 말게. 당색을 가르는 건 아니지만, 남인이 개혁을 주도하는데 우리 서인이 뭐라도 해야지. 이 정도는 나서야 체면치레라도 하지 않겠나? 실은 이래서 일전에 유형원과 적당한 합의를 보았네. 청계천 준설을 막을 수 있겠느냐고. 그는 방책이 있다고 하였지. 물론, 그런 건 줄은 몰랐고. 나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송준길의 얼굴에는 일부러 만든 익살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무조건 만류해야 하는 일이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자네는 한발 물러서 있게. 자네까지 손가락질받을 필요는 없네.”

“그럴 수 없습니다. 미촌. 자네는 뭐하나? 당장 거절하게.”

“이래서 자네에게 말하지 않은 걸세. 그러니 노여워 말게. 이는 우리의 배려일세.”

“대체 무슨 배려입니까.”

“자네는 미촌의 벗이 아닌가.”

“…….”

멈칫했다.

송시열의 피가 온몸을 미친 듯이 흘렀다.

그새 송준길의 말이 이어졌다.

“작금의 조선에서 청국에 쌀을 청하는 건 엄청난 지탄에 노출될 위험이 있네. 이를 벗에게 제안할 수 있나? 어렵다고 생각하네. 하여, 내가 말하였고 주상께서 윤허하시기 전에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네.”

“…….”

“오랑캐에게 구걸한다고 다들 손가락질을 하겠지.”

느닷없는 말에 쳐다보니 윤선거는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필시 마음을 굳힌 게 분명했다.

심장이 어지럽게 뛰었다.

“우암. 후대가 오늘의 우리를 이리 말하였으면 한다네.”

“어찌 말인가…….”

“이 시절 성리학은 현실을 바라봤다고 말일세.”

윤선거의 눈동자는 참으로 청아했다.

작은 두려움도 없었고, 한 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그냥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결국 시선을 피했다.

“버거우면 찾아오게.”

“위로라도 해주려고 하나?”

“나보다 더 못되게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하는 말일세.”

“하하하. 그건 그렇지.”

“무엇보다…….”

하늘만 바라보며 힘겹게 말했다.

“하늘 아래 자네를 욕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나 송시열밖에 없으니까.”

다시 말했다.

“그러니 꼭 찾아오게.”

이는 애절한 진심이었다.

그리고 답변이 들렸다.

“물론일세. 자네는 나의 벗이 아닌가.”

“벗은 무슨…….”

“하하하!”

……하늘이 참으로 뿌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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