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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09화 (109/298)

109화 또 다른 희망(1)

마음은 심란하고, 몸은 바쁜데 이연이 불렀다.

정말 이럴 때마다 아무나, 아무 때나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미쳤구나.

송시열 정도 위치면 만족해야지.

아. 이래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는구나.

정신을 맑게 한 뒤 극진한 예를 취하고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앉았다.

“내가 그간 생각을 해봤소. 중대본이 참으로 많은 활약을 하는데 마땅한 대우를 하지 못한 것 같소.”

“전하. 어인 하교이시옵니까.”

“중대본을 수립하였는데 마땅한 관직도 내리지 않았으니 어찌 대우를 제대로 하였다고 할 수 있겠소.”

아.

그래. 이건 맞는 말이긴 했다.

윤선거, 허목, 유형원은 관직이 없었다.

허목이 위생국의 국장이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대본에 속한 임시기구에 불과하였기에 품계가 있는 정식 관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연이 실소를 머금었다.

“본부장은 평소 그리 생각하였다면 언질이라도 하지 그러셨소? 중대본의 수장인데 말이외다.”

“황공하옵니다. 신이 결례를 범하였사옵니다.”

“참으로 뻔뻔하오.”

“황공하옵니다.”

적당하게 받아치며 고개를 숙였다.

이연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조만간 교지를 내릴 테니 그리 아시오.”

설마 이거 말하려고 부른 거야?

눈을 껌뻑이며 쳐다봤다.

그러자 이연이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할 말 없소?”

“신이 불민하여 어심을 헤아리지 못하옵니다.”

“대사헌이 찾아왔소만.”

“윤선거의 일이옵니까?”

“그렇소.”

“이 모든 건 용상의 권능이 아니겠사옵니까.”

“인사(人事)를 물어본 게 아니외다.”

“가능성을 이르신 것이옵니까?”

“그렇소. 청이 내어주겠소?”

“내부의 반발은 우려하지 않으시옵니까?”

“경이 방패인데 왜 걱정하오?”

“…….”

내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이 모든 건 내가 불러온 재앙인데 말이다.

쓰게 웃으려다가 재빨리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청이 어찌 나올지는 가늠할 수 없사옵니다. 하오나 해볼 만한 사안이라고 사료 되옵니다.”

“근거가 있소?”

“예조판서 윤선거가 근거이옵니다.”

무한한 신뢰를 표출했다.

그리고

“좋소. 해보지요.”

이연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런 호쾌함이라니.

역시 기근 극복을 위해서라면 국호 빼고 다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대화가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으니 편안했다.

그런데 이연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느낌 봤다.

필시 축객령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려니 뭔가 아쉬웠다.

……솔직히 인사안이 궁금했다.

아니, 상식적으로 내가 이조판서인데 초안 정도는 상의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눈치를 슬쩍 보면서 시간을 끌었다.

“궁금하오?”

“끙. 그러하옵니다.”

“하하하. 선왕께서 이를 보셨다면 기함하셨을 거요. 안을 올리는 게 아니라 알려만 달라니. 다른 사람도 아닌 경이 말이외다.”

“끙…….”

내가 궁색한 표정을 짓자 이연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예조판서 윤선거.”

“…….”

대관절 지금 뭐 하자는 걸까.

그러나 군왕의 농은 천금(千金)이라고 하였다.

나는 방긋 웃으면서 화답했다.

“가장 합당하옵니다.”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오.”

“…….”

“그러니 평할 필요는 없소.”

“신이 어찌 감히 군왕의 인사권에 첨언을 하겠사옵니까. 그저 감탄하였을 뿐이옵니다.”

“…….”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 대 때려줬다.

이연은 고개를 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공조판서 윤선도.”

“전하. 공조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사옵니다. 이러한데 윤선도를 공판에 제수하신다면 한직으로 내치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사옵니다. 이것은 마치…….”

회사에서 나가라고 화장실에 책상을 배치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사옵니다……라고 할 뻔했다.

“마치?”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였던 초야의 선비를 발탁한 것과 같사옵니다. 윤선도라면 공조의 위상을 전처럼 살릴 것이니 어찌 합당하다 하지 않겠사옵니까.”

“내 생각이 바로 그러하오. 때마침 위생국에서 여러 일을 펼치고 있소. 이때 윤선도가 공판이라면 어찌 좋은 효과를 내지 않겠소이까.”

“바로 그러하옵니다.”

“하여, 위생국의 국장을 판서의 반열에 올릴 것이외다.”

“예……?”

“그 반응은 무척이나 불쾌하오만.”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이연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

아니, 허목이라면 능히 재상을 역임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설 기구이자 임시기구인 위생국을 6조의 반열에 올리고 국장을 정2품에 배치하겠다고 하였다. 심지어 위생국은 중대본의 산하 기구인데 말이다.

이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정치적 의미가 새겨져 있었다.

즉, 중대본이 군왕의 성은이 만발한 기구가 된다는 걸 의미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말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명심하시오. 오늘부터 중대본의 실패는 나의 실패가 되는 것이외다.”

“심장에 새길 것이옵니다.”

부담감이 커졌다.

일하러 가야겠다.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서둘러 나가려고 할 때였다.

“한데, 본부장.”

“예. 전하.”

“사실상 모두 남인인데 아무런 거부감이 없나 보오?”

“전하? 아직도 당색이 보이시옵니까?”

“내가 실언했소.”

내가 이겼다.

이연은 민망한 듯 웃었다.

오늘 잠이 잘 올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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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는 달랐다.

이를 굳이 표현한다면 ‘웅성웅성’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파격에 가까운 인사가 단행됐으니 말이다.

슬쩍 봤는데 우리 사문난적과 박세당의 얼굴이 제법 상기된 상태였다.

비록 부담스러울 수는 있으나 승진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나는 여유롭게 우리 공조판서 윤선도 대감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쳤다.

다소 민망한 듯 먼 산을 쳐다보는데, 참으로 정겨웠다.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공판 대감. 감축드리오.”

“험험.”

“공판 대감?”

“참으로 고약하시오.”

“하하하. 감축드리오. 진심이외다.”

“끙. 고맙소.”

“국장 대감도 감축드리오.”

“……되었소.”

“국장 대감?”

“……고맙소.”

승진한 이들이 부끄러워하였으나 분위기는 훈훈했다.

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서로를 축하해줬다.

딱 한 사람, 유형원이 자리에 없어서 훈훈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는 퇴비형 화장실 집행과 청계천 공사, 위생 사업 등을 도맡게 되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안쓰럽지는 않았다.

공조판서 윤선도가 알아서 잘 도와줄 것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일이라는 시작하여야 했다.

이연의 인사에 성과로 보답해야 하니 말이다.

그나저나 허적의 얼굴이 밝았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부드러운 미소였다.

“내가 긴히 살펴보니, 이번에 확보한 재원을 모두 퇴비 작업에 사용하는 건 어불성설이외다.”

“아니, 호판. 끝난 이야기를 왜 다시 꺼내는 것이오?”

“기다려 보시오.”

손을 내저으며 여유롭게 나를 물리쳤다.

“쇄염법과 가장 적합한 염전을 확보할 수 있었소.”

“실은 호판의 말만 기다리고 있었소. 대체 그곳은 어디란 말이오?”

“낙동강이 바다로 흘러가는 위치에 있는 명지도요.”

“참으로 바람직하오.”

“가만히 듣기만 하시오.”

“응당 그리할 생각이었소.”

문서를 나누는 허적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보고 있노라면 위대함에 흠뻑 취해버릴 것만 같았다.

“일찍이 우리는 염전에 대해 여러 논의를 하였소.”

염전이 발달하기 위한 조건 크게 5가지가 있다.

1. 평탄한 갯벌과 미세한 토사가 염장 근처에 많아야 한다.

2. 염장 부근에 연료, 즉 땔감이 풍부하여야 한다.

3. 염장 부근에 굴을 비롯한 조개류가 풍부하여야 한다.

4. 생산된 자염의 운송과 필요한 물품의 조달에 쉽도록 교통이 편리하여야 한다.

5. 염장 배후지에 인구가 조밀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력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바꿔 말해서 명지도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며, 낮은 수위의 천일제염업인 쇄염법을 집행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파악한 바에 의하면…….”

“혹시 파악만 하셨소?”

“듣기만 하라고 하였소.”

“송구하오. 너무 기쁜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해서 그러오.”

나의 설레발에 허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종래 염전과는 달리 편평하지 않은 바닥에 규칙적으로 골을 이루고 있으며, 이 골에 바닷물이 급수되오. 급수의 형태는 대형의 수로에서 소형의 수로를 거쳐 염전까지 연결되게 하였소.”

“해서요?”

“허. 끼어들지 말라고 했소. 이미 중대본에서 논의한 대로 연이어 만들어진 구덩이 5개로 바닷물을 연차적으로 증발시켰소. 결과 인력을 크게 줄이고, 소금은 획기적으로 많이 구하였으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소이까.”

이건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드디어 중대본의 정책이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니 말이다.

“겹경사군요.”

윤휴였다.

“겹경사라고 하였나?”

“실은 양잠업의 성과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보게. 반계. 어찌 머뭇거리는가. 서둘러 말하게.”

“우선 각 군현의 길쌈 풍속이 제법 자리 잡았습니다. 종래 12곳 정도였는데, 현재 파악한 바에 의하면 30여 곳에 이릅니다.”

“허. 2배 이상 증가하였나?”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인 증가였다.

이 시절 조선의 조정이 이 정도로 군현에 대한 장악력이 높았는지 미처 몰랐다.

“애석하지만 조정의 명이 군현을 확고하게 장악하여 생긴 현상은 아닙니다.”

“음. 내 속내가 그렇게 잘 보였나?”

“물론입니다. 대놓고 이상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대감.”

“거. 꼭 그렇게 말해야 하나? 됐네. 계속하게.”

“단적으로 경상도 영천 지방에만 뽕 묘목 수백 그루를 확보한 사대부가 있습니다.”

“관청의 지침으로 행한 것이 아니군.”

“그렇습니다. 이는 양잠업이 항산(恒産)의 수단으로 명확하게 인지되고 있는 증거이지요.”

애초 양잠업도 국고를 증진하는 방책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양잠업 자체의 수익성을 민간에서 인지하는 건 더 좋은 현상이었다.

여기서 발생하는 의문이 하나 더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경상도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길쌈 풍속을 권장하여 자리 잡은 군현도 대부분 경상도이지요.”

“그러니까 어째서 그러한지 말해주게.”

“김근행이라는 역관이 있습니다.”

우리 김근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언급되는 걸까?

“그가 면화 따위를 구하니 자연스레 시장의 유통이 활발해진 현상이지요.”

“…….”

아니 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생겨 먹은 나라일까.

조정에서 난리를 쳐도 꼼짝도 안 하다가, 상인 한 명이 돌아다닌다고 집행이 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경상도 전역에 들썩인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그 상인이 변승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의 의도를 알 수는 없으나 중대본으로서는 반길 일이지요. 덕분에 양잠업이 활성화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 역시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김근행의 행보가 빨라진 이유를 말이다.

어쨌거나 훈풍이었다.

모처럼 좋은 소식이 중대본을 감쌌다.

포근했다.

늘 오늘만 같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는 정말 찰나였다.

“대감!”

관리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중대본의 문이 열렸다.

일제히 그에게 시선이 쏠렸다.

허구한 날 발생하는 기근이다.

하여, 어지간한 수준은 담당 부서에서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중대본으로 바로 보고가 올라온다는 건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 의미했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긴장감이 고조됐다.

“개성부에 기근이 발생하고 염병이 크게 창궐하였습니다!”

“!!!”

“!!!”

“!!!”

진짜 헛웃음도 안 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관리가 올린 문서에 손을 뻗었다.

-본부는 기근이 매우 심하고 염병이 크게 번졌습니다. 앓고 있는 사람이 모두 합해 625명이며, 사망한 이는 40명입니다. 날마다 죽을 끓일 곡식을 청하는데, 쌀과 콩을 약간 모아 준 외에는 달리 손을 쓸 데가 없습니다.

이런 미친……!

종합선물 세트도 이 정도는 아니다.

개성부는 도성의 지척이다.

그곳에서 기근에 이어 염병(染病), 그러니까 역병이 창궐했다.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중대본 수립 이후 최대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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