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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10화 (110/298)

110화 또 다른 희망(2)

퍽퍽했다.

공기가 너무 퍽퍽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퍽퍽했다.

“600여 명…….”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끔찍한 수치였다.

정확하게는 625명이었다.

다시 침묵이 시작되려 하였으나 내가 밀어냈다.

“625명이오. 사망자는 40명이고.”

나는 다시 읊조리듯 말했다.

“625명이라…….”

“본부장. 노파심이오만 개성부는 삭주와 다르오.”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다.

나는 삭주에서 역병에 걸린 병자를 모두 죽였다.

허적은 이를 우려하는 것이었다.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알지요. 사정이 다르지요. 개성부와 삭주의 사정이 다른 게 아니라, 도성의 지척이니 급파할 수 있는 의원을 확보할 수 있고 약재도 넉넉하니 다르오. 같은 방법으로 일을 도모할 일은 없소. 그러니 괜한 걱정은 넣어두시오.”

“좋은 말씀이시오. 우선 의원을 급파해야 하오. 약재는 당연하고.”

“그렇긴 하오만.”

“어찌하여 머뭇거리는 것이오?”

“유민이 발생할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시오?”

“유민……?”

뜬구름 잡는 말이 아니었다.

내 생각에 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이미 우리 중대본은 도성에 유민을 수용한 사례가 있소.”

애초 2천 명의 유민이 도성으로 달려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10만 석의 구휼미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들의 이성을 잃게 했다.

결과, 중대본은 쇄환의 원칙을 내리고 유민을 수용했다.

명백한 전례가 있으니 또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기근과 역병의 창궐이오. 개성의 백성이 도성으로 올 수도 있지 않겠소?”

“본부장.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수용할 수 있소?”

“…….”

“인정하리다. 내가 틀렸고, 박세당이 옳았소. 완벽한 오판이었소.”

“참으로 우습소. 대체 왜 본부장이 그 무게를 홀로 감당하시오?”

“호판…….”

“본부장이 발의한 내용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소.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동의한 내용이외다. 만일 책임이라는 것이 발생한다면 모두가 나눌 것이오. 그러니 괜한 소리는 하지 마시오.”

날카롭고 투박한 말이었는데도 괜히 심장이 울렸다.

그새 허적은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모두 냉정해져야 하오. 감정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오. 또한, 이번 재해는 지금껏 우리 중대본이 쌓은 역량을 검증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오. 다른 뜻이 아니외다. 최선을 다하여 막아야 한다는 의미외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혼자 감상에 빠져서 판단력을 흐리게 할 뻔했으니 말이다.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만일 개성에서 유민이 발생하면 도성으로는 들어올 수 없소. 병자가 있을지 모르니 어쩔 수 없소. 그러나 이는 어떤 경우라도 좋은 일이 아니외다. 우리는 유민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게 옳소. 봉쇄가 아니라 우리의 역량으로 말이외다. 하여…….”

막아야 한다.

최고 수위의 방책으로.

“개성부에서 요청하는 모든 물자와 인력을 지원하도록 하오.”

“물론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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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이었다.

개성 유수는 진땀을 흘리며 사방을 뛰어다녔으나 도저히 방책이 없었다.

이미 관청의 쌀은 바닥을 보였고, 구황을 도모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불처럼 번지는 역병은 도저히 멈출 기미가 없었다.

“영감. 병자들을 모두 격리하였습니다.”

“의원과 약재는 어찌 되었느냐?”

“송구합니다.”

“어서 말하라.”

“의원은 역병의 소식을 접하자 대부분 도주하였습니다.”

“허.”

“약재도 병자의 수와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합니다.”

개성 유수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었다.

이대로라면 병자는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오는 건 한숨밖에 없었다.

그냥 관복을 벗어 던지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견뎌야 한다.

조정에 장계를 올렸으니 대대적인 지원이 올 것이다.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의원은 모두 격리 지역을 보내게. 약재도 모조리 들어서 옳기고.”

“그리하겠습니다.”

“영감!”

다급히 달려오는 관원이었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사자의 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

“영감. 십자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불미스러운 일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하늘이 노래졌다.

개성 유수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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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말하였다.

조선은 화폐가 통행되지 않는데 개성부에서만 유독 화폐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집집마다 풍족하고 여유가 있으며, 부유한 상인과 큰 장사치가 많다.

그러나 지금 개성부의 심장부인 십자로에는 멀쩡한 몰골을 한 이는 찾기 힘들었다.

연신 기침하며 겨우 걸음을 옮기거나, 바닥에 몸을 기대어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이가 대다수였다.

길가의 곳곳은 오물이 가득하였고, 각종 벌레가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를 치고 있었다.

특히, 악취는 너무나도 심하여 코를 막아도 따갑고 어지러운 수준이었다.

사람의 온기나 생기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곳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담한 광경이었다.

눈을 감더라도 끔찍한 참상이 전해지는 곳이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인세에 펼쳐진 지옥이었다.

“…….”

“…….”

백성들은 십자로에 퍼질러 앉아 넋이 나간 듯 멍하게 하늘만 바라봤다.

몸에 힘이라고는 없었다.

움직이는 건 그야말로 사치였다.

이대로 있어야 했다.

선택지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유일한 생명 연장의 길이었다.

“소식 들었나?”

“……병자들은 다 격리되었다더군.”

“그건 당연한 일이고. 의원들이 다 도망갔다는 말이 있어.”

“큭……. 도망가야지. 살려면.”

삼삼오오 모인 백성들의 시선은 여전히 하늘을 향하고 있었으나 귀는 누군가의 대화에 집중하였다.

목에서 무언가 긁어내는 듯한 거친 목소리였으나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 그러하였으니까.

“양반 놈들은 도망 안 갔나?”

“야반도주했겠지.”

“큭……. 맞아. 그놈들이 제일 먼저 도망갔을 거야.”

“평소 그렇게 위세를 부리며 양반이 어쩌고, 백성이 어쩌고. 그래놓고 난리가 나면 제일 먼저 사라지고.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지. 개보다 못한 놈들이야.”

“……내 손으로 찢어버렸어야 했네. 못한 게 한으로 남아.”

“큭…….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하자고.”

“찢어 죽이는 걸 눈으로라도 봤으면 여한이 없을 건데…….”

“차라리 지금 죽이러 갈까?”

“…….”

“배고파서 더 말할 기운도 없나?”

“…….”

“응?”

“…….”

여전히 대꾸가 없자 옆을 바라봤다.

그런데 입을 벌린 채로 멍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

가만히 쳐다봤다.

그냥 그렇게 쳐다봤다.

“…….”

이상했다.

무언가 이상했다.

눈을 뜨고 있는데 껌뻑이지 않았다.

눈을 뜬 채로 계속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입은 왜 계속 벌리고 있단 말인가.

힘겹게 손을 움직였다.

굶주려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손이 덜덜 떨렸다.

그의 몸에 손이 닿았다.

그리고

“!!!”

힘없이 고개가 내려갔다.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모두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

“…….”

“…….”

사람이 죽었건만 누구도 곡을 하거나 울지 않았다.

그냥 침묵만 발생했다.

참으로 괴이한 상황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멍하게 바라만 보던 이들이 조금씩 그리고 힘겹게 움직였다.

그들의 종착지는 시체의 지척이었다.

“진짜 죽은 건가?”

“죽었어.”

“다시 확인해봐.”

“숨이 멈췄어.”

공기는 끈적끈적해졌다.

피부가 질퍽해졌다.

분위기는 스산해졌다.

그렇게 모두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했어.”

“나는 노모가 계시네.”

“누구는 없나.”

“딸린 식구가 10명이야.”

“안 그런 사람은 없어.”

묘한 느낌으로 이어지던 대화는 점차 격해졌다.

“내가 제일 먼저 발견했네.”

“내가 먼저 봤어.”

“하. 내가 확인했어.”

“어쩌라는 건가.”

“비키게.”

“어림도 없어.”

분위기는 흉악해졌다.

당장이라도 사달이 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이, 이번은 내게 양보해주게!”

외침과 함께 시체로 달려가는 이가 있었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대경실색하여 서둘러 움직였다.

격한 몸싸움이 발생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야, 양보해주게!”

“미쳤어? 역병에 안 걸린 시체가 얼마나 귀한데!”

“더 굶으면 당장 죽을 거 같아서 그러니 양보해주게!”

“큭. 그건 좋은 일이지. 너도 병자가 아니니까.”

“!!!”

“모두 들었나? 이 새끼도 오늘 죽을 수 있다는군.”

“큭. 잘됐군.”

“어서 죽어.”

“!!!”

참으로 험악하고, 참담한 내용이었다.

더 두려운 건 십자로의 모든 이가 동참하였다는 잔인한 현실이었다.

홀로 시체에 달려간 이는 두려움이 온몸을 떨며 뒷걸음질 쳤다.

더 버티다가는 더 험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산 채로 찢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물러섬이 다툼의 종결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비켜!”

“네놈이 비켜!”

시체는 한 구였고, 탐하는 사람은 수십 명이었다.

멀리서 개입하지 않고 바라만 보며 기회를 살피는 사람까지 보태면 족히 세 자리는 되었다.

지금 개성의 십자로는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믿지 않아야 할 지옥도가 펼쳐지고 말았다.

“비키라고! 이 새끼야!”

“오냐! 오늘 산 사람도 한번 먹어 보자!”

“이 새끼가 진짜 죽고 싶나!”

결국, 육탄전까지 발생했다.

그러자 관망하던 이들이 미친 듯이 시체를 향해서 달려갔다.

“저, 저 새끼들이!”

“그러니까 비켜! 이 새끼야!”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분명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이들이었건만 개처럼 바닥을 기었다.

그렇게 온몸으로 시체를 잡고 당겼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니겠는가.

“멈추게.”

“너 이 새끼! 오늘 내가 죽인다!”

“비켜! 비키라고!”

“…….”

“다 죽어! 이 새끼들아!”

누군가 호미를 들어서 휘둘렀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물러섰다.

그러나 그조차 찰나였다.

금방 일제히 달려들어 그를 제압했다.

“이 새끼부터 죽여!”

“죽여!”

“멈추라고 하였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였다.

십자로를 가득 메웠던 탁함이 가득한 긁어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위엄을 가득 담은 외침이었다.

그제야 백성들은 다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복색을 보아하니 사대부였다.

세상은 사족(士族)이라고도 불렀다.

분위기는 기괴해졌다.

“뭡니까.”

“아직도 도망을 안 가셨습니까?”

“나리도 시체를 탐합니까.”

“아니면 가던 길 가십시오.”

“어차피 오늘 아니면 내일 죽을 놈들입니다.”

평소라면 강상죄로 처벌되고 남을 말들이 쏟아졌다.

이는 작금의 기근과 역병이 개성부를 얼마나 참혹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또한, 예사롭지 않은 기세와 분위기는 경고가 단지 말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분명하게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대부는 오히려 사대부는 매섭게 백성들을 노려봤다.

“네놈들이 진정 실성하였구나.”

“허.”

“어찌 감히 사람이 사람의 고기를 탐하느냐!”

호통이었다.

막상 이리되자 백성들은 주춤했다.

겁을 먹어 눈치를 살피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무겁게 말했다.

“오늘의 일은 덮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인간으로서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배가 고플 것이다. 나를 따르거라.”

“예……?”

“10명이면 10명의 식량을 내어줄 것이다.”

“!!!”

지금 저 양반이 무슨 말을 한 것인가.

식량이라고 하였다.

분명했다.

시체를 탐하던 무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100명이면 100명의 식량을 내어줄 것이다.”

“저, 정말입니까?”

“비록 내가 굶더라도 너희가 굶는 일은 없을 것이야.”

“나, 나리.”

“그러니 싸우지 말라. 모두가 먹을 수 있을 것이니.”

공기는 축축해졌다.

백성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온몸이 떨릴 뿐이었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니 너희가 사람이라는 걸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그 말과 함께 모두가 대성통곡하였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의 울음이었다.

사대부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가 너희를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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