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또 다른 희망(7)
일찍이 허목이 말하였다.
-의술이 한계에 이르면 어찌 되는지 아시오? 사람과 돼지의 똥을 사용하여 처방하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니 민간의 처방으로 돌아가오. 역병이 창궐한 지역에 유독 미신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외다.
이건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병을 고치는 수단인 의술로 해결할 수 없다면 인간은 미신에 기대게 된다.
이곳이 조선이라고 하여 그러한 게 아니었다.
현대국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미신을 무조건 배척할 일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묶어 내는 게 옳다.
하여, 나는 이 또한 분명하게 살폈다.
개성부에서 이름이 알려진 무당들을 대부분 모았다.
그 수가 수십 명이었다.
곧장 운을 뗐다.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에 괴력난신(怪力亂神)이 있다.”
괴력난신(怪力亂神).
괴이와 용력 그리고 패란과 귀신 따위의 일을 이르며, 이는 유학에서 철저하게 배격되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내 눈앞에 있는 이들이 바로 괴력난신이었다.
무당 말이다.
“역병이 창궐하여 많은 백성이 너희를 찾아갔을 것이다. 부적도 쓰고 굿도 하였을 것이다.”
“대감. 소인들은 그저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듬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대감.”
누구도 귀신을 몰아내야 한다거나, 부적의 효능을 말하지는 않았다.
모두 헛짓이라는 걸 알 수도 있고, 일단 내 앞이니 납작 엎드린 걸 수도 있다.
다만, 공통점은 모두 내 눈치를 살핀다는 것이다.
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으나, 사대부의 정점에 있는 나를 상대하는 자체가 부담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들을 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시간을 길게 끌 일도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앞으로도 계속하라.”
“예……?”
“역병의 공포에 휩싸인 백성은 수시로 너희를 찾을 것이다.”
“예, 예.”
“너희가 그들을 잘 위로해야 할 것이다. 굿도 하고, 부적도 써주고.”
내가 거두절미를 너무 해버렸을까?
불신 혹은 의아함, 이런 감정을 넘어선 오직 황당함만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반응을 보아하니 내가 너무 불친절했던 거 같았다.
조금 친절해지기로 했다.
“역병을 해결하는 건 의원의 일이다.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음. 아니군. 이리 묻지. 너희는 굿과 부적으로 역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감.”
“그것이…….”
“만일 그리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병자들의 격리장소로 보내주겠다. 부적을 안고 살아남도록 하라.”
순식간에 모두 조용해졌다.
일제히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지만, 화가 난다거나 불쾌한 것도 아니었다.
“역병은 참으로 두렵기에 백성은 이를 이겨내고자 너희를 찾을 것이다. 이때 잘 위로해주라는 말이니라.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다. 너희의 굿을 의원의 말보다 권위를 높이려고 하거나, 너희의 부적이 의원의 처방전보다 더한 신뢰를 얻도록 수를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그저 백성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까지만 허락하겠다.”
“…….”
“그 과정에서 백성의 재물을 탐하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면 곤란하겠지. 이것들만 지킨다면 관은 절대 너희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기어이 굿이라도 해야 한다면 관의 허락을 받도록. 역병이 창궐하였는데 다수가 한 공간에 모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니 말이다.”
슬쩍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 무당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심란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들 중 상당수는 혼란을 틈타서 백성의 고혈을 짜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엄격하게 잣대를 세웠을 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범주에 들어간다.
행위의 원인을 냉정하게 고려할 때 결국, 제 이익의 창출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여기까지 챙겨줄 이유나 의무는 없다.
기본만 하면 된다.
밥만 먹여줄 생각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 말을 어기면 참으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니 새겨듣도록.”
단서를 하나 달았다.
“평시에는 너희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예……?”
“참으로 아둔하구나. 부적을 베풀고, 굿을 하여 백성을 평안하게 하라. 역병은 의원이 제압할 것이다. 한데, 생각해보라. 우리는 때가 되면 돌아갈 것이다. 하면, 누가 남겠느냐? 너희다. 역병이 창궐하자 뒤도 쳐다보지 않고 도주하였던 개경부의 의원과 너희 중에 누가 백성의 마음을 가지겠느냐.”
“아.”
“허.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야 하느냐?”
“송구합니다. 소인들이 이제 이해했습니다.”
정말 부지런히 부적 써주고 굿도 열심히 해준다면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어쩌면 위기가 지나고 개성부가 안정을 되찾을 때 위로를 받은 백성은 무당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개별적으로 무당을 섬기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그러나 여기까지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나는 샤머니즘의 힘이라도 빌릴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빌릴 것이니까.
“썩 물러가도록.”
무당들의 얼굴에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졌으나, 축객령이 내려졌기에 곧장 물러났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일할 시간이었다.
때마침 멀찍이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백광현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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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현.
몇 번 보지는 못하였으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는 조선에서 미천한 출신이 이러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았다.
제 실력에 대한 압도적인 자부심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타고난 천성도 크게 한몫하였겠지만.
어쨌든 왜 이다지도 놀라우냐면, 조선 최고의 거상이라고 불리는 변승업도 이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풍기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성과가 제법 괜찮은 거 같네만.”
“아. 대감. 송구합니다만 소인은 원래 이러합니다.”
“음.”
“송구합니다. 한데, 성과도 나쁘지 않습니다.”
“나는 원래부터 자네를 높게 평가했네. 그러니 서둘러 말하게.”
“목욕통이 너무 부족합니다.”
“어?”
“예. 소인이 여러 번 요청하였으나 전혀 집행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개성 유수가 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을 부라리며 관원들을 바라봤다.
기겁한 관원들이 황급히 말했다.
“아, 아닙니다.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서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는군. 백 의원.”
“허. 대체 그 목욕통은 도성에서 만들어 옵니까? 조선 최고의 장인을 찾아서 말입니다.”
“백 의원. 그게 아니라 목수를 구하느라 시간이 걸렸네.”
“다시 말합니까? 지금 우리가 필요한 목욕통은 물이 새지 않고 사람이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통입니다. 생긴 건 전혀 상관없고, 장인의 손길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사지 멀쩡한 이를 잡아서 제작하면 될 일을 어찌…….”
백광현은 말하다가 울분이 터졌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 보니까 성질도 보통이 아니다.
불꽃 남자 윤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조선에서 본 사람 중에서 화가 제일 많다.
그나저나 관리는 죽을상을 지었다.
무려 나 송시열 앞에서 이런 말이 나왔으니 얼마나 미치고 환장하겠는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네.”
“괜찮습니다. 덕분에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을 병자가 오늘의 밤하늘만 보면 되는 겁니다.”
와.
워딩 진짜 장난 아니다.
아까 말한 성과라는 게 공무원들의 관성을 파악했다는 말이었구나.
그리고 오늘 찾아온 건 민원을 넣으러 온 것이고.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개성 유수.”
“예, 예. 대감.”
“목욕통 만들게. 관복 입은 이들까지 다 동원해서.”
“그리하겠습니다.”
“자네는?”
“아. 소직까지 나서면 탈이 나지 않겠습니까?”
“훌륭하군.”
내가 오자마자 대차게 뭐라고 해서 눈치를 살피긴 하였으나 무능한 이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유능한 편에 속하는 인사였다.
그러니 이 분위기에서도 자신은 목욕통 제작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당연하겠지만 개성 유수가 못질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사실상 컨트롤타워이니 말이다.
“한데,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물론 아닙니다.”
“이제는 듣고 싶네만.”
찰나 백광현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엄청난 자신감이 주렁주렁 달린 미소였다.
“여러 약탕과 목욕치법을 시행한 결과…….”
“결과?”
“몇 명의 병자가 완치되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예.”
뿌듯했다.
진심으로 뿌듯했다.
이보다 더 뿌듯할 수는 없었다.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벌떡 일어서서 백광현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아. 대감. 이리 서두르지 마십시오.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합니다.”
단호하게 이어진 말.
눈을 껌뻑이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완치되었다고 하였기에 나도 모르게 나섰네.”
“미연의 사태를 대비하여야 하기에 그들은 따로 격리하였습니다.”
“아.”
“하지만, 탈은 없을 겁니다. 말 그대로 미연의 사태를 대비한 마지막 확인 작업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하면……?”
“예. 목욕통의 수급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역병은 종결됩니다.”
“!!!”
“감축드립니다. 이제 목욕‘통’만 남았습니다. 대감.”
“참으로 훌륭하네. 참으로!”
백광현의 말이 끝나자 내 목소리는 커졌다.
희열과 흥분이 가득 담겼다.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개성의 관리들을 쳐다봤다.
“뭐하나! 당장 목욕통 만들게!”
“당장 만들겠습니다!”
“뭐라도 가져올 테니 기다리십시오!”
사실상 역병의 종결을 알린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다들 환하게 웃으며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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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유수의 지도로 목욕통은 굉장한 속도로 확보되었다.
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무당들 몇 명은 눈치껏 부적을 배포하거나 적당한 규모의 굿을 진행하기도 했다.
과거 삭주부와는 다르게 개성부의 재해는 극복되어갔다.
심지어 더 압도적인 규모의 재해였는데도 빠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였다.
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중대본의 역량이었다.
하여, 조선의 재해 대책은 중대본 수립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
물론, 나도 양심이 있으니 박세당의 원리주의에 영향을 받은 개성 사족들의 선행에 숟가락을 올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할 뿐이었다.
“냉정하게 따져보지. 중대본이 아니었다면 자네가 원리주의를 생각이나 했겠나?”
“허.”
“그 반응은 뭔가? 설마 부정하나?”
“하. 대체 소생에게 무슨 말씀이 듣고 싶으십니까?”
“감사의 말씀.”
“…….”
박세당의 눈동자에는 경멸의 의미가 아주 강렬하게 담겼다.
아쉽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주 시원하게 웃으면서 말을 보탰다.
“생각해 보게. 앞만 보고 달리던 자네를 멈추게 한 게 누구인가. 내가 아니었나?”
“…….”
“사족과 함께 내 사가에 왔을 때 명연설로 심금을 울린 것도 나일세.”
“…….”
“백성과 만날 수 있게 배려한 것도 나일세.”
“…….”
“원리주의는 8할을 내가 키웠네.”
내 말이 이어질수록 박세당의 얼굴에는 살기까지 감돌았다.
그러나 전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아무런 위협도 안 되니 말이다.
그저 감사의 말을 듣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경멸과 노여움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박세당의 감정이 더 거세지려고 했다.
“대감.”
“그래. 어서 말하게. 기다리느라 너무 늙어버렸네.”
“참으로……”
“이만하면 큰 성과일세.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어. 주상께서 참으로 흡족해하실 것이네. 안 그런가?”
“…….”
“응?”
“……소생이 감히 어찌 어심을 논하겠습니까.”
“알겠네.”
“…….”
나는 방긋 웃으며 대화를 끝냈다.
박세당의 감정이 노여움으로 귀결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나가지. 모두 기다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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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유수는 내 눈치만 살폈다.
위생 수칙을 집행하지 않은 원죄가 있기 때문이었다.
뭐. 나도 이대로 그냥 마무리할 생각은 없었기에 말을 꺼냈다.
“자네의 죄는 두 가지 있네.”
“새겨듣겠습니다.”
“신하로서는 불충이며, 목민관으로서는 태만이었네.”
개성 유수는 자라목이 되었다.
그래도 목이 붙어 있으니 다행이지 않을까?
잠시 잡생각을 하는 동안 절절한 반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길 것입니다.”
“무엇을 새기겠다는 말인가.”
“…….”
나는 타이르듯 말했다.
물론, 여전히 건조한 목소리였다.
“신하로서 군주의 어명을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세. 목민관의 일은 늘 많고, 일손은 부족하지. 하지만 자네는 목민관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어. 그러한데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제대로 접해보지도 못한 위생 규칙이 내려왔으니 어찌 쉽사리 일을 집행할 수 있었겠는가.”
“소직이 부족하였습니다. 대감. 어명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데…….”
“듣게.”
“송구합니다.”
“작금의 조선은 재해와 싸우고자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네. 하여, 주상께서 권능을 내리신 교지는 그 모든 싸움의 지침일세. 그저 전처럼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닐세. 이를 새기게.”
“꼭 그리하겠습니다.”
개성 유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직 새겨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만일, 위생이 제대로 집행되었다면 600여 명은 아니었을 것이네.”
“송구합니다. 대감.”
“그래야 할 것이네.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
“새기겠습니다. 열 번 새기고, 백 번 새기겠습니다.”
또 말했다.
“작금의 조선에서 주상께서 내리시는 교지는 전선 그 자체일세. 이를 새기게. 반드시.”
“꼭 그리하겠습니다. 대감.”
이만하면 됐다.
나는 좌우를 돌아봤다.
많은 이가 보였다.
한 명씩 눈을 마주쳤다.
여러 감정이 읽혔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개성부는 다시 전과 같은 성세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나는 엷게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