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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17화 (117/298)

117화 봄 겨울 봄 그리고(2)

이미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진짜 바글바글했다.

중대본과 유관기관의 관리까지 다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제일 늦었다.

곁 눈길로 느껴지는 질책의 눈빛 따위는 가볍게 무시했다.

원래 최고 책임자는 마지막에 오는 거라고 배웠다.

“호판.”

“기다리시오.”

“험험. 허 국장.”

“분위기 살피시오.”

“…….”

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서 또 섣부르게 행동하는 건 나의 위명에 누가 되는 것이기에 과감하게 멈췄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전방주시를 실시했다.

몇 대의 수레가 보였다.

“이는 사람이 타는 수레로 태평거(太平車)입니다. 그리고 물통을 수레 위에 설치하여 싣고 다니는 급수거(汲水車)이며…….”

청국에서 사용하는 수레를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우리 조선의 현황에 맞게 변형까지 이뤄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아쉬운 부분이 아니었다.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기술자 유학을 추진한 건 일단 모방부터 하자는 취지였으니까.

“또한 이건 떡과 과일을 파는 행상이나 거름을 싣고 다니는 농부가 사용하는 소형 외바퀴 수레인 독륜소거로써…….”

유학생 대표의 말이 대충 마무리됐다.

그와 동시에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나는 안다.

이리된 이유를.

이는 이공계 학생이 문과 그것도 철학과 학생 앞에서 ‘기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발표 수업한 상황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슬쩍 돌아봤는데 진심으로 수레 기술에 대해서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어쩌면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자연스레 우리 유학생 대표도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고된 유학 생활을 마치고 성과를 발표했는데 반응이 없으니 얼마나 무안하겠는가.

어색함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음.”

그때 마침, 성큼성큼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우리 반계 유형원 선생 되시겠다.

그는 양팔을 걷어 올리더니 수레를 꼼꼼하게 살폈다.

일제히 시선이 집중됐고, 유학생 대표는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음.”

여전히 말은 하지 않고 수레의 여기저기에 손을 대며 살폈다.

우리는 흥미롭게 보고 있으나 유학생 대표단은 숨이 턱턱 막힐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선생. 혹시 어떤 문제라도…….”

“바퀴의 크기가 모두 다르군.”

“수레 자체의 무게에 차이가 있기에, 이를 버텨야 할 바퀴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훌륭하군.”

“예?”

느닷없이 유형원의 입에서 찬사가 새어 나왔다.

유학생들은 기뻤으나 당황했고, 철학과 학생들은 그냥 당황했다.

그새 교수님의 평가가 시작되었다.

“조금 전에 보니 바퀴가 움직이는데 좌우로 요동치지 않고, 무거운 짐을 실어도 빨리 움직일 수 있으니 어찌 훌륭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는 아무것도 아닐세. 대저 수레 보급의 가장 핵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바퀴 축의 길이라고 할 수 있네.”

“허. 역시 선생께서는 안목이 다르십니다.”

“대단하십니다.”

“감탄하였습니다.”

유학생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대관절 이건 무슨 현상일까?

그나저나 바퀴 축……?

나도 모르게 다가가서 수레의 바퀴를 유심히 살폈다.

다른 이들도 나를 따랐다.

순식간에 청자는 목수만이 아니라 관리까지 확장됐다.

이리되자 유형원의 화법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험준한 산을 넘을 정도로 튼튼할지라도 도성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반계. 산을 넘을 수 있다면 널리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데, 어찌하여 도성에서 활용할 수 없는 경우의 수가 존재한단 말인가.”

“조금 전 언급하였던 바퀴 축의 길이 때문입니다. 수레는 무거운 짐을 싣고 움직이기에 도로에 바퀴 자국을 남깁니다. 한데, 수레마다 바퀴 자국이 다르면 어찌 되겠습니까. 100대의 수레가 모두 다른 바퀴 자국을 남기면 과연 어찌 되겠습니까.”

“그렇군. 뒤따르는 수레는 앞선 수레가 남긴 바퀴 자국에 잡힐 것이니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겠군.”

“그렇습니다. 한데, 보십시오. 우리 목수들이 제작한 수레바퀴의 크기가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오직 축은 일정하니 어찌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진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설명은 끝났다.

남은 건 우리가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다.

과연 유형원의 말대로였다.

사방에서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이를 해낸 목수들도 훌륭하고, 파악한 유형원도 대단했다.

이제 남은 건 집행이었다.

그리고

“곧장 제작에 착수하게.”

호조판서 허적의 한마디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오늘부터 당장.”

우리는 한시도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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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묘했다.

관리들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거칠게 말하는데 백성들은 고개를 뻣뻣하게 치켜들고 있었다.

평소라면 고개를 숙이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였을 건데 오늘은 유독 달랐다.

대놓고 욕설을 하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절대 호의적이지 않았다.

통상 백성이 노여워하는 관리에게 표출하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는 걸 고려할 때, 이는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허. 자네들 어째서 대답을 하지 않나?”

“…….”

“내 말이 들리지 않나?”

“…….”

“하!”

기어이 화가 터졌다.

공기는 퍽퍽했고,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여전히 대꾸하지 않고 빤히 쳐다만 봤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의 연속에 관리의 안색은 시뻘게졌다.

이런 소란이 이어졌기 때문이었을까?

어느새 주위로 오가던 백성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리의 안색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하……. 다시 묻지. 내 말이 들리지 않나?”

“……귀가 멀쩡한데 왜 안 들리겠습니까.”

“한데, 왜 대답하지 않나!”

“대답하면 뭐가 바뀝니까?”

“뭐, 뭐라?”

“싫다고 하면 안 해도 됩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냥 있는 겁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겠지만 내키지 않으니 그냥 있었습니다.”

“감히!”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시키는 거 하겠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네, 네놈들이 실성하였느냐!”

“답답해서 그럽니다. 답답해서.”

“예. 답답합니다.”

“정말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결국, 백성들이 집단으로 항의했다.

관리의 눈동자는 거세게 흔들렸다.

“하루 살아가기도 힘듭니다. 입에 풀칠할 풀떼기 찾는 것도 지칩니다.”

“숨을 쉬는 게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눈을 뜨는 게 괴롭고 잠을 자는 게 가장 행복합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데도 쌀 내놓으라고 하시면 다 가져왔습니다.”

항의의 불길은 활활 타올랐다.

분위기는 고조됐다.

그리고

“내 새끼 굶어도 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잔뜩 눌린 목소리였다.

울분이 새어 나오는 목소리일까?

어쩌면 악만 남은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멀쩡한 뒷간의 똥을 퍼내라고요?”

“언제요?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종일 일해야 하는데 똥을 퍼내라고요?”

“심지어 멀쩡한 뒷간은 없애고 새로 만들라니요!”

“유민들은 똥을 싸지르고 다니는데 우리는 뒷간을 치우라고요? 이게 뭡니까?”

“게다가 똥을 도성 밖으로 옮기라고요?!”

“사방 천지에 널린 게 똥입니다! 왜요? 그냥 밖에 던지면 안 됩니까?”

“대체 왜 그래야 합니까?”

거센 항의였다.

막상 이리되자 관리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이마에서 샘솟은 식은땀이 순식간에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그러니 이대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또, 그랬다가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마음 독하게 먹고 고함부터 지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게 무슨 말이야?”

“뒷간의 똥을 퍼서 도성 밖으로 옮기라고?”

“이게 말이야 똥이야?”

“세상이 어찌 이렇게 흉악하게 돌아가?”

……

“그런데 애초에 똥을 왜 치우나?”

구경하던 백성들이 웅성거렸다.

순식간이었다.

그야말로 일파만파였다.

말을 꺼내는 백성만 이미 두 자릿수였다.

침묵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백성의 수는 두 배였다.

관리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걸.

그러나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이는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백성들에게 일갈했다.

“어찌 관리로서 백성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네들의 의견을 수렴하였으니 내 다시 오겠네!”

이만하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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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본이 발칵 뒤집혔다.

중대본 수립 이후 이런 충격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사문난적들과 눈치 없는 원리주의 한 명은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침묵과 친분을 쌓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쥐어짜서라도 말을 꺼내야 했다.

결국, 이는 내 몫이었다.

“백성의 항의가 거세오.”

“…….”

“관리의 말에 의하면 수십 명이 집단으로 항의했다고 하오.”

그랬다.

퇴비형 화장실을 집행하고자 본격적으로 업무에 나선 관리들은 대부분 백성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경험하지 못한 현상에 기겁한 관리들은 속수무책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과장 좀 보태서 민란과 비교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민란이 아니고서야 백성이 관리를 쫓아내는 사달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도성에서 말이다.

그런데 더 난처한 건 백성의 항의가 상당히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에 논리가 있다는 게 아니라, 상황이 그러하였다.

어쨌든 내가 운을 뗐으니 책임자의 항변이 나올 때였다.

“송구합니다.”

유형원의 첫 일성은 진중한 사과였다.

“태조 이래 최대 개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행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여, 진심으로 부끄럽습니다.”

다시 이어진 말은 진실이 담긴 자기반성이었다.

충격에 어수선하였던 중대본의 공기는 무거워졌다.

유형원은 낮게 한숨을 쉬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반발은 예상하였으나 강도가 참으로 매섭습니다. 시간을 두어 백성을 달래며 상황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겠으나, 냉철하게 판단해볼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

“냉철한 판단이라. 무엇을 의미하나?”

“태조 이래 최대 개혁을 내려야지요.”

“뭐……?”

자신감.

압도적인 자신감.

이보다 유형원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내가 봐도 그랬다.

그런데 이리 나온다.

너무나도 낯설었다.

“오래전 개국 공신들께서는 열의로써 이 나라의 도성을 세우셨지요. 소생은 자신 있었습니다. 능히 해낼 수 있다고요.”

말의 흐름이 이상했다.

그 옛날 도성을 세웠는데 갑자기 자신이 있다고 한다.

대관절 무슨 말일까.

“도성의 설계자가 될 기회가 없으나 감히 비교할 수 있는 환골탈태를 이뤄낼 수 있다고 자신하였습니다. 하여, 태조 이래 최대 개혁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생은 이제 부끄러움을 배워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

“대감. 도성 전역을 대상으로 한 소생의 개혁을 멈춰주십시오.”

“반계…….”

“모든 역량을 동부의 설계에 집중하겠습니다.”

이상과 현실이 있다.

유형원은 이상을 품고 살았기에 저 높은 곳에서 내려봤다.

그리하여 현실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기어이 현실이 이상을 만나게 하려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과연 유형원이 맞을까?

유형원이 어찌하여 이상을 끌어내리고 있는가.

어찌하여 유형원이 나와 같은 땅에 두 발로 서 있는가.

너무나도 놀랍고 당혹스러웠다.

“음. 편히 생각하겠습니다. 현실은 늘 실패와 물러남이 반복되니 이를 품겠습니다. 그러니 멈춰주십시오. 소생의 개혁을. 또 거둬주십시오. 태조 이래 최대 개혁이라는 무거움을.”

두 발로 땅을 밟으며 이상을 끌어 내려 현실에 접목했다.

단지 시야가 조금 높을 뿐이다.

세상은 아니 역사는 이를 거인(巨人)이라고 칭하였다.

내가 어찌 새로운 거인의 탄생을 막겠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려고 할 때였다.

“대, 대감!”

외부에서 묵직하며 황급하고 불안한 목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철렁였다.

다들 눈동자가 흔들렸다.

우리는 이와 같은 목소리에 담긴 의미를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중대본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평안도에 기근이 발생하였습니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구체적인 상황 파악이 중요했다.

그리고

“기민의 규모가 1만여 명을 넘었습니다!”

“!!!”

“!!!”

“!!!”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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