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봄 겨울 봄 그리고(7)
원 역사의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뉜다.
통상 노론의 영수를 송시열, 소론의 영수를 윤증이라고 한다.
서인이 이렇게 분열된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임팩트 있는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송시열과 윤증의 불화였다.
원 역사에서 윤증의 부친이자 송시열의 벗이었던 윤선거가 사망한다.
이후 윤증은 스승이자 부친의 벗인 송시열에게 묘갈명을 부탁한다.
이때 두 사람의 대화가 아주 걸작이다.
-스승님. 선친의 묘갈명을 작성해주시겠습니까.
-장례에 남인의 윤휴가 왔다고 들었다.
-감사하게도 그리되었습니다.
-감사……? 허. 윤휴에게 써달라고 해라.
-……스승님. 어찌 이러십니까. 선친과 스승님은 벗이지 않습니까.
-장례에 남인의 윤휴가 왔다며?
-……그렇습니다.
-그에게 써달라고 해라.
-…….
그러나 어찌 계속 거절만 할 수 있겠는가.
송시열은 세상의 눈도 있고 이러니 쓰긴 쓴다.
쓰긴 쓰는데 아주 미친놈이 아닐 수 없었다.
-스, 스승님. 어찌 묘갈명을 이리 작성하셨습니까?
-무릇, 군자는 거짓을 말할 수 없다. 춘부장께서 병자호란 때 순절하지 않고 제 몸만 챙기지 않았더냐. 이를 상세하게 적은 것이니라.
-이,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수정하여 주십시오.
-너는 지금 내게 거짓을 적으라는 것이냐?
-수정하여 주십시오.
-어림도 없다.
-스승님!
-좋다. 묻겠다. 춘부장께서 병자호란 때 순절하였더냐?
-…….
-홀로 살겠다고 도망 다니지 않았더냐?
-스승님!
-사실이니라. 썩 물러나거라.
아주 그냥 미친놈이었다.
참고로 묘갈명은 작성자가 아니면 누구도 수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송시열은 윤증에게 사실상 패드립을 날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쨌든 이 일로 윤증은 스승인 송시열과 완벽하게 결별하게 된다.
그나저나 나는 왜 이곳에서 발생하지도 않은 치욕을 알고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미칠 정도로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되새길수록 송시열은 미친놈이 분명했다.
아주 그냥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패악질을 하였으니 말이다.
이런 걸 되새기면 처음 사람들이 나만 보면 의심하고 욕한 게 이해가 됐다.
또, 유형원이 내게 까칠했던 것도 다 이해할 수 있고.
됐다.
중요하지 않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여전히 윤증의 선창과 성균관 유생의 후창이 이어졌다.
참으로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윤증은 성균관의 유생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위정척사파의 수장이다.
어렵지 않게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윤증은 원 역사에서 문묘에 배향되었던 김집, 송준길, 송시열 3명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학문을 배운 사람이다.
당연하겠으나 본인도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그 수준이 동년배와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더 정확하게는 나를 비롯한 붕당의 영수급이 아니라면 윤증보다 뛰어난 학자는 조선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여기에 원 역사에서 소론의 역사를 개막하였을 정도로 지도력.
이 모든 것이 묶여서 이곳의 윤증은 위정척사파의 수장이 된 것이다.
우습게도 아버지인 윤선거는 사문난적의 수뇌부인데 말이다.
“스승님.”
사색을 일거에 날리는 낭랑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윤증의 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이글거렸다.
나도 모르게 피할 뻔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송시열의 육체는 역시나 뻣뻣했다.
“소생이 감히 스승님께 문답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일세.”
“일찍이 스승님께서는 삭주부의 백성을 벌하였습니다.”
“그리하였네.”
“벌한 백성 중 군포가 부담스러워 고환을 자르려던 백성이 있었습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결정의 단호함은 변함이 없습니까.”
“그러하다.”
“무려 1만여 명의 기민을 유발한 대기근입니다. 지금도 생각이 같으십니까.”
“물론이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법도이기에 그러하다.”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문답이었다.
모르는 이가 보면 절대 사제관계로 여기지 않을 정도였다.
또, 윤증의 날카로운 기세에 나 역시 순간적으로 이미 묘갈명을 작성하였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법도라고 하셨습니까.”
“법도라고 하였다.”
“조선의 법도에 죽은 자에게 군포를 징수하는 내용이 있습니까.”
“없다.”
“조선의 법도에 갓난 아이에게 군포를 징수하는 내용이 있습니까.”
“없다.”
“조선의 법도에 이웃과 친척이 도망가면 대신 군포를 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까.”
“없다.”
“한데, 어찌하여 이는 현실입니까.”
“법도를 집행하는 무리가 간악하기 때문이다.”
나의 말에 성균관 유생들은 움찔하였다.
이러한 논제는 이미 쇠고기 반출로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윤증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스승님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하여, 소생은 다시 여쭙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제자의 청을 어찌 마다하겠느냐. 허락하겠다.”
“법도를 어긴 건 백성입니까, 집행하는 무리입니까.”
“당연히 후자다.”
“한데, 어찌하여 백성은 벌하고 집행하는 무리는 벌하지 않습니까.”
“물음이 틀렸다.”
“무엇이 틀렸습니까.”
“어째서가 아니라 언제까지다.”
나의 답변이 너무나도 의외였을까?
아니라면 같은 생각을 하였기 때문일까.
윤휴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활활 불타오르던 윤증의 기세가 멈칫했다.
“태조께서 천하의 기백으로 이 나라를 세우셨다. 어찌 되었더냐.”
“백성을 위하였고 난신적자(亂臣賊子)와 무도한 이들을 일거에 벌하셨습니다.”
“네 말대로다.”
“예?”
“법도를 세우시어 잣대를 세우시기 전에 썩은 귀족을 척결하셨다. 백성의 생존은 법도가 아니라 위정자가 어떤 무리인가에 따라 규정된다. 하여, 태조께서 주창하셨던 민본의 대업은 찬란하였다.”
“스승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여, 다시 여쭙지요. 어찌하여 법도에 없는 내용을 집행하여 백성을 괴롭히는 무리는 벌하지 않습니까.”
“무슨 수로 벌하느냐?”
“…….”
“이 나라의 관리를 모조리 압송하여야 하느냐?”
“…….”
“전하께서 대군을 이끌고 위화도까지 진군하신 뒤 회군이라도 하셔야 하느냐?”
억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진실로 이처럼 여겼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나의 답변과 물음이었을까?
윤증의 말문은 아예 막혀버렸다.
“어찌하여 백성은 벌하고 집행의 무리는 벌하지 않느냐고 물었느냐? 나는 백성을 벌하지 않았다. 내가 벌한 이들은 죄인이다. 하여, 벌하였다.”
“…….”
“대관절 이것이 어찌하여 법도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법도다. 어찌하여 이러한 법도를 중시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이는 유일한 기준이기에 그러하다.”
“…….”
“위화도 회군은 할 수 없다. 그러니 오직 법도를 세울 수밖에 없다. 더 꼿꼿하게 세워야만, 벌해 마땅한 무리를 벌할 수 있지 않겠느냐.”
나의 말이 이어질수록 성균관 유생들은 고개를 숙였다.
일부러 탓한 건 아니다.
그저 저들의 부끄러운 과거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묻습니다. 하면, 어찌하여 백성은 당해야만 합니까. 법도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지 않습니까.”
“법도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게 아니다.”
“하면, 무엇이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였습니까.”
“우리.”
“우리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바로 우리가 법도를 올곧게 세우지 않았고, 회피하였으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백성은 괴로웠다. 만일, 우리가 동서남북으로 나뉘지 않았다면 어찌 백성이 괴롭겠느냐.”
“만일, 우리가 나뉘지 않았다면 법도는 어찌 되었습니까.”
“무릇, 올바른 법도란 백성을 지키고 위정자를 괴롭힌다.”
“선례가 있습니까.”
“태조와 우리의 선대께서 그러시지 않았더냐.”
명백한 선례를 제시하였다.
윤증은 침묵으로 동의하였다.
“네가 물었다. 삭주의 백성은 어찌하여 벌하였냐고. 나는 답하였다. 법도였다고.”
“…….”
“대저 법도란 무엇이며, 선정이라는 또 무엇이더냐.”
“…….”
“법도는 오직 지키는 것이며, 선정은 법도의 틀 안에서 백성을 가엽게 여기는 것이다.”
“…….”
“한데, 법도를 어기는 선정은 어찌 해석해야 하느냐.”
“…….”
“묻겠다. 선정을 베풀면 법도를 어겨도 되는 것이며, 법도를 지키면 백성을 괴롭혀도 되는 것이더냐? 대관절 이 기준은 무엇이냐.”
윤증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 말하였다.
차분하게.
“일찍이 성균관은 법도를 어겼다. 한데, 그 이유가 부당하였나? 아니었다. 타당하였다.”
“타당하다고 하였습니까.”
“옳다. 너무나도 타당하였다. 성균관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유생들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과정이 틀렸다.”
나의 시선은 윤증을 넘어 성균관 유생에게로 향했다.
“옳다. 너희의 연좌는 이리되어야 한다. 명재.”
“예. 스승님.”
“부족한 스승이 제자에게 문답을 청해도 되겠느냐.”
“소생이 어찌 감히 거절하겠습니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윤증은 예의를 차렸으나 자신감이 가득했다.
오만함이 아니었다.
나는 엷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내일의 거인(巨人)이 되어 조선을 책임질 오늘의 걸물(傑物)에게 말했다.
“위정척사라고 하였다. 정과 사를 어찌 나누었더냐.”
“군포를 내는 법도는 옳습니다. 조선은 이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군포를 면제할 수는 있습니다.”
“너희는 법도를 어기는 선정이 아니라 법도를 지키는 선정을 하고 있다.”
“법도를 어기는 선정은 배척할 것이며 법도를 지키는 선정을 지킬 것입니다. 이는 위정척사의 길입니다.”
“성리학의 원리주의가 사족을 감화하여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교화의 영역이다. 나는 간절하게 바라였다. 혹시 무엇인지 아느냐?”
“통치의 영역에서 성리학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이를 누가 하겠느냐?”
“위정척사가 할 것입니다.”
나는 찬사를 내뱉었다.
진심을 담아서.
“훌륭하다.”
“하여, 청합니다.”
“무엇이냐.”
“군포의 면제를 논의하여 주십시오.”
순식간에 연좌에서 정치적 논의로 성질이 바뀌었다.
이런 정치력은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리하겠네.”
“긍정적인 답을 기다리겠습니다.”
“기대하게.”
그때였다.
“대감!”
다급함이 가득한 목소리.
나를 향해 달려오는 관리.
어두운 표정.
나는 이런 느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번에도 예상은 적중할 것이다.
입술을 깨물었다.
세게 깨물었다.
그러나 의연하게 버틸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대감! 유민이 도성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흔들릴 수 없다.
좌우를 돌아보며 단호하게 외쳤다.
“모두 흔들림 없이 맡은 역할을 다하라.”
덧붙였다.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걸었다.
중대본으로.
“그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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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유민의 발생은 당연한 일이다.
막을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예상되었던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유민의 규모와 위치 그리고 동선이었다.
“규모는 어찌 되는가?”
“그, 그것이 파악이 어렵습니다.”
“허. 어찌 여태껏 파악조차 하지 못하였단 말인가.”
“일전의 유민처럼 대규모로 접근하는 게 아닙니다. 소수의 무리가 흩어진 상황이라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 500명은 넘는다는 게 중론입니다.”
최소 500여 명.
딱 우리의 역량이었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준비한 대로 집행하겠소.”
우리는
“해낼 수 있소.”
해내야 한다.
할 수 있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