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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24화 (124/298)

124화 희망은 있다(2)

학송(鶴松) 전유형(全有亨).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문과에서 장원 급제할 정도로 뛰어난 성리학자였다.

심지어 전유형은 의술에 밝았고 의서까지 저술하였다.

그는 임진왜란 때 길거리에서 시체 세 구를 해부하였고, 이후로 의술이 더욱 정통하게 되었다.

이후, 이괄의 난 당시 반란군과 내응했다는 모함을 받아 처형되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가 시체를 해부하였기에 비명에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그의 저서를 백광현이 소지하고 시체를 찾은 것이다.

단도와 함께.

“대, 대감…….”

백광현은 무릎을 꿇은 채로 덜덜 떨면서 읍소했다.

“소, 소인이 다 설명하겠습니다.”

이 시절 해부는 용납되기 어렵다.

아니, 해부는 그 자체로 죄악이었다.

인술을 행하고자 목적의 수단으로 인체를 해부할 수는 있을지라도 해부 자체는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러하니 백광현의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조선은 고작 백광현을 해부라는 죄악에서 용서해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심지어 목격한 사람이 성리학의 정점에 있는 나 송시열이지 않은가.

나는 덜덜 떨고 있는 백광현을 지그시 쳐다봤다.

“백광현.”

“대, 대감. 소인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백광현.”

재차 부르자 백광현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공포 그 자체가 느껴졌다.

말했다.

피식 웃으며.

“잘했다.”

“예……?”

“따라오지.”

“예……?”

잘했다고.

진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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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하게 걸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등을 돌렸다.

뒤따르던 백광현이 흠칫했다.

“길게 묻지 않겠네.”

“이, 이르십시오. 대감.”

“해부학을 익힐 생각인가?”

“그, 그것이 아니라…….”

“나는 분명 잘했다고 말했네만.”

딱 잘라서 의사를 표현했다.

백광현은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내 의도를 정확하게 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마른침을 넘기더니 말을 꺼냈다.

“실은 그렇습니다.”

“어째서?”

“침술과 탕약이 중심이 된 기존의 의술은 한계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계기는?”

“위생국 의원으로서 많은 병자를 만나며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서책을 접하게 되었나?”

“그렇습니다.”

“쉽게 구하기는 어려웠을 건데?”

“못 구할 건 아니었습니다. 수백 년 전의 의서도 아니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미래의 대한민국에는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이 시절이라면 흔적이라도 남았을 것이니 말이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정확하게 답하게. 한 치의 과장이나 거짓도 용납하지 않겠네.”

“물론입니다.”

“해부학을 집대성하면 어찌 되나?”

“10명의 죽을 목숨을 5할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근거는?”

“신형, 정기신, 각 신체 부위, 경락, 오장육부, 삼초 등을 파악한다면…….”

“됐네.”

“예?”

내가 다 알 필요는 없다.

자신이 있다고 하는데 믿으면 그만이다.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집대성할지라도 언행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해부학이라는 건 언급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죽을 때까지 소인만 알겠습니다. 제자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음. 그나저나 시체가 필요하겠군.”

“그, 그렇습니다.”

그 순간 백광현의 눈에는 엄청난 희열이 담겼다.

느낄 수 있었다.

단지 병자를 구하고자 해부학에 접근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개인의 성취감도 엄청난 요소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를 탓할 수는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성리학자들도 학문적 성취에 열광하지 않던가.

“얼마나?”

“서너 구 정도면 충분합니다.”

“혼자 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발각되면 너만 죽는다.”

“대감의 이름을 언급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니지.”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백광현은 멈칫하더니 황급히 말했다.

“소인은 대감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자네에게 매장 책임을 맡기겠네. 인적이 드문 곳에 매장 장소를 찾게.”

“감사합니다. 대감.”

“자네가 왜 감사한가. 매장 장소 선정이라는 귀찮은 일을 떠넘겼는데, 내가 고맙지.”

“소, 송구합니다.”

“가보겠네.”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렸다.

해부학이 집대성된다면 기쁜 일이다.

당연히 반길 일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해부학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이건 나, 아니 송시열의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할 도박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고작’ 해부학의 집대성에 무언가를 걸어야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는 오직 백광현의 일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필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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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자마자 곧장 매장 장소 변경을 지시했다.

워낙 위생을 강조하였기에 탈은 없었다.

나머지는 백광현이 알아서 잘 해낼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성부 관리가 다가왔다.

먼저 물었다.

“몇 명인가.”

“400여 명에 육박합니다.”

“밤새 100여 명이 늘었나?”

“유독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밤길을 따라 이동하는 유민이 많았습니다.”

“…….”

“혹시 걸리시는 게 있습니까?”

“밤새 넘어온 백성 중 시체 매장지를 지난 이가 있는가?”

관리는 조금 당황하더니 생각을 곱씹었다.

내 표정에는 작은 미동도 없었으나 심장은 무서울 정도로 뛰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없습니다.”

“확실한가?”

“예. 애초 위생국에서 매장지를 선정할 때 유민이 오기 힘든 곳으로 하였습니다.”

“혹시 그 책임자가 백광현인가?”

“어찌 아셨습니까?”

진짜 보통이 아니구나.

피식 웃으면서 적당하게 대꾸했다.

“아. 눈에 띄는 의원이 아니던가.”

“하하하. 대감께서도 그리 보셨군요. 실은 소인도 그리 여겼습니다. 이만하면 소인의 눈썰미도…….”

“가보게.”

“예?”

“일 보게.”

“예.”

이만하면 백광현이 해부학을 익히는 데 문제가 될 요소는 없을 게 분명했다.

이토록 치밀한데 내가 무슨 걱정을 더 하겠는가.

그저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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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자 유민의 수는 사실상 고정됐다.

수치로 나온 결과를 확인하자 헛웃음만 나왔다.

“600여 명…….”

정확하게는 582명이었다.

삼삼오오 늘어나기는 하였기에 600여 명이라고 표기하였을 뿐이었다.

애초 김서경의 예측은 500여 명이었다.

그러니까 이는 거의 정확하다고 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감탄만 나왔다.

“정말 대단하오.”

“그렇긴 하오만. 감당하실 수 있겠소?”

“끌. 막상 현실이 되니 버겁긴 하오.”

허목의 씁쓸한 웃음은 수학 천재의 탄생과는 별개로 600여 명의 유민을 감당해야 하는 건 현실을 반영하였다.

이는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역시나 식량이 문제요.”

“휴…….”

낮게 한숨을 쉴 때였다.

“대, 대감!”

황급히 외치며 미친 듯이 달려오는 한성부 관리가 보였다.

그에게 대꾸하려던 찰나 저 멀리에서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

“…….”

눈을 비볐다.

또 비볐다.

다시 비볐다.

그런데 계속 들렸다.

그리고 이제 보였다.

나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엄청난 규모였다.

허목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에도 충격이 가득했다.

저 정도 규모의 유민이라면 일대는 물론 도성도 마비된다.

생각이 미치자 그 즉시 외쳤다.

“단 한 명도…….”

온 힘을 다한 고함을 이어가려고 할 때 눈에 보이는 게 있었다.

……깃발이었다.

저들은 바로 훈련도감이었다.

이완과 훈련도감이 드디어 당도했다.

아니, 10만 석의 군량이 도착한 것이다.

드디어.

미칠 듯이 반가웠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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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이완이 등장했다.

신이 개입해도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직면한 어려움은 훈련도감이 가져온 10만 석의 군량으로 일소됐다.

물론 여유가 생겼다고 하여 탕진할 수는 없으나, 당장 오늘 한 끼는 흰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아니, 넉넉했다.

600여 명의 유민에게는 6천여 석의 구휼미를 베풀 수 있었다.

몇 달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또, 평안도로 보낼 구휼미도 빠르게 준비했다.

그래.

되었다.

딱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따질 건 확실하게 따져야 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열받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발끝에서 올라오는 짜증을 그대로 표출했다.

“참으로 일찍 오셨소?”

“하하하. 보아하니 가장 시의적절할 때 도착한 것 같소만.”

“웃음이 나오시오?”

“선왕께서 늘 이르셨지요. 무릇 군자란…….”

“됐소.”

그냥 말을 잘랐다.

하. 정말 미친놈일까.

생글생글 웃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인간이 대체 왜 훈련대장일까?

나는 목울대로 치솟는 욕을 겨우 가라앉히며 말했다.

“이토록 오래 걸린 사유가 분명하여야 할 것이외다.”

“내가 비록 졸장이라고 할지라도 심장에 새긴 것이 있소.”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이오?”

“선왕의 말씀이외다.”

“공은 어찌하면 사람의 노기를 끌어 올리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소.”

“선왕께서 늘 이르셨소. 무릇, 병사(兵士)란 백성의 곤욕을 지켜만 보지 말 것이며, 늘 직접 거들어야 한다고 말이외다.”

“아. 그래서 훈련도감이 떠났을 때 백성이 환호하였소?”

“부족함이 있었으나 내 심장에 새겨진 선왕의 유훈(遺訓)은 그대로요.”

“…….”

기승전 선왕이었다.

저승에 있을 효종은 너무나도 듬직할 것 같다.

이토록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신하가 있으니 말이다.

“군량을 운송하는 기간 내내 어명을 받들어 전투에 임하는 장수의 심정이었소.”

“오. 남한산성에 오랑캐가 출몰이라도 했소?”

“10만 석의 군량을 보급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으나, 눈에 보이는 백성의 어려움을 지나칠 수가 없었소. 나는 군량의 보급을 맡을 병력과 백성을 도울 병력으로 분군하였을 뿐이외다. 하여, 시일이 예상보다 더 소요되었소.”

그러니까 대민 구제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건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완의 역할은 군량의 운송이었다.

주된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인사가 너무 당당하다.

“공은 제 역할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였소.”

“무릇, 대군은 승리를 위하여 다양한 전투를 수행해야 하오. 지엄하신 어명은 오직 적을 궤멸하는 것이라고 하셨기에, 세세한 사정은 편의종사권으로 결정할 수 있소.”

“…….”

“장수로서 작은 승리에 도취하여 경거망동할 수 없기에 세세한 사정을 장계로 올리지 못하였을 뿐이오.”

“…….”

“선왕께서는 이리 이르셨소.”

이 정도면 그냥 파직하는 게 옳다.

그러니 더 이상의 대화는 생략한다.

나는 싸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전시였으면 공은 참수요.”

“…….”

“조선 최고의 정예군을 책임지는 장수가 이따위 결과를 도출하고도 도체찰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바와 다름이 없는 내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는 그 배포를 높게 살 뿐이외다.”

“…….”

사실상 축객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의외였다.

발끈하여 선왕이 어쩌고, 훈련도감이 어쩌고 하며 따질 줄 알았는데 말이다.

“차라리 전시였다면 좋았을 것 같았소.”

“뭐요……?”

“하면, 지엄한 군령으로 나를 삭탈관직하고 목을 자를 수 있지 않았겠소?”

“그런 결의라면 사직 상소라도 올리시오.”

“그리할 생각을 하였소.”

“…….”

참으로 의외였다.

멈칫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버겁더이다.”

“이건 또 무슨 경우요?”

“큭.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소.”

“…….”

“군량을 들고 도망치는 병졸이 한둘이 아니었소.”

“…….”

이완의 입에서 그간의 일이 빠짐없이 새어 나왔다.

듣는 게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대체 누가 훈련도감을 최고의 정예군이라고 하였는지는 몰라도, 당장 찾아가서 입을 틀어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일전에 궐에서 본 일사불란한 훈련도감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이완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지엄하신 어명을 수행하는 장수로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였소.”

“…….”

“이런 불충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소. 참으로 부끄럽소. 너무나도 부끄럽소.”

“…….”

“승하하신 선왕께서 이를 보시면 나를 얼마나 꾸짖으실지…….”

어느새 이완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사직 상소를 올리고 싶소.”

“그 말은 하셨소?”

“말려주시오.”

“…….”

“파직이 거론된다면 막아주시오.”

“…….”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소.”

“…….”

“죽어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소.”

“…….”

절절한 회한으로 가득하던 목소리가 어느 순간 바뀌었다.

목울대부터 꽉 막힌 열의였다.

이완은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었다.

“할 수 있소.”

“…….”

“그러니 말려주시오. 막아주시오. 기회를 주시오.”

“주상께서 기어이 벌을 내리신다면 어찌할 생각이시오?”

“신하로서 어찌 군왕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소? 비록 능력이 부족하여 어명을 잘 수행하지 못하였을 뿐, 한시도 거스르고자 한 적은 없소. 그러니 따를 것이오.”

“기회를 청하지도 않소?”

“끌. 나는 장수요. 전시이거늘 장수가 지엄한 군령을 어찌 어길 수 있겠소?”

나는 이완을 빤히 바라봤다.

여전히 붉은 눈시울이었으나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기어이 막아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됐소.”

“무슨 말씀이시오?”

“적어도 공은 나보다는 나은 것 같으니 되었소.”

“…….”

“나는 군왕의 뜻을 거스른 게 아니라 꺾고자 하였던 삶을 살았으니 말이외다.”

“…….”

“물론 과거이지만.”

이완의 표정이 묘하게 뒤틀렸다.

지그시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공은 선왕 시절 모든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소. 반면, 나는 선왕의 발목을 잡는 걸 넘어서 내가 원하는 길만 취하시게 하였소.”

“…….”

“나는 금상께 모든 걸 내어드렸소. 반면, 공은 금상의 치세에 누가 되었소.”

“…….”

내가 아니었으나 송시열이었으니 나였다.

지독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송시열의 삶은 이토록 나를 괴롭혔다.

하여, 오늘 털어내고자 하였다.

“그러니 내가 공을 지키고 공이 나선다면, 내가 선왕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며, 공이 금상의 길을 닦을 수 있지 않겠소?”

이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마지막 남은 송시열의 지독한 과거를 털었다.

“같이 갑시다.”

다시 말했다.

“훈련대장.”

그런데 이완이 고개를 떨궜다.

절대로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섣불리 나서지는 않았다.

이럴 때는 말없이 기다리는 게 옳다.

그리고 이완은 끝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되었다.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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