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대청외교(大淸外交)(2)
평안 감사는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겨우 갈무리했다.
연륜이 조금만 부족했다면 처참히 이지러뜨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 거기까지였다.
목울대로 넘어가는 마른침에 수백 가지 욕설이 담기는 것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허. 내키지 않으신가 봅니다?”
“…….”
청 사신단 통관(通官) 이일선의 오만한 목소리는 불쾌함을 절로 유발했다.
비웃음과 조롱이 담긴 입가의 미소와 탐욕이 번들거리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칼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구쳤다.
평안 감사는 힘겹게 화를 억누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이미 말하지 않았소이까. 기근으로 상황이 너무 어렵소.”
“해서요?”
“…….”
“몇 번을 말합니까. 귀국에서 주회인을 환송하지 않는 등 천금과도 같은 정축약조를 어겼기에 파견된 사신단입니다. 원래 없을 행사였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일선은 태생(胎生)이 조선이었다.
미천한 출신이었으나 전쟁 이후 청의 통관으로 출세하였다.
호가호위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청의 위세를 업더니 조선을 집요하고 지독하게 괴롭혔다.
지금도 그랬다.
“사정을 좀 봐주시오.”
“기근이 어렵다고 하여 의주부터 이곳까지 군말 없이 왔습니다. 이 정도면 귀국의 사정을 충분히 봐준 게 아닙니까?”
어처구니가 없었다.
의주부터 전해진 이일선의 패악질은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토록 태연하게 나온다.
“그러한데 평안 감사께서 이리 나오시면 심히 유감입니다?”
“나 역시 백방으로 알아봤으나 금이나 은을 구할 수가 없는 형편이니 오죽 답답하겠소.”
“뭐. 좋습니다.”
이일선은 순식간에 얼굴이 표독스러워지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소인이 미천한 출신인지라 지체 높은 평안 감사께서 이러시는 거군요?”
“아니외다.”
“예. 아니지요. 어찌 감히 소인이 양반과 대화라는 걸 하겠습니까.”
“…….”
“허……. 이런 침묵이라니. 좋습니다. 곧장 본국의 정사께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대로라니요?”
“말 그대로지요. 예. 말 그대로입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일선의 말에 담긴 뜻을 모를 수가 없다.
밑도 끝도 없는 이간질을 할 게 분명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평안 감사의 낯빛은 하얗게 질렸다.
문드러지는 속을 겨우 부여잡으며 말했다.
“나의 언행에 불쾌한 부분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죄드리오.”
“음.”
“너그럽게 사정을 봐준다면 어찌 은혜를 잊겠소.”
“음. 좋습니다. 사과는 받지요. 그러나 사정을 더 봐줄 수는 없습니다.”
“……알겠소. 하지만 시일을 조금만 주시오.”
“허. 대국의 일을 해결해야 하거늘 변방에서 시간을 더 보내야 합니까?”
“섭섭하지 않게 준비하겠소. 그러니 다시 청하오. 사정을 조금만 더 봐주시오.”
“그래요? 한데, 오늘 연회는 잘 준비하셨습니까?”
“…….”
“그때 결정을 하겠습니다.”
“……감사하오.”
“하하하. 아닙니다.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그래도 정이라는 게 있으니 말입니다.”
이일선은 간사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평안 감사의 얼굴은 참혹할 정도로 틀어졌다.
“영감…….”
“제 놈도 조선의 백성이었거늘 어찌 저토록 흉악할 수가 있는가.”
“…….”
분통이 터졌으나 참아야 했다.
조선에서 이일선의 위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연회…….”
너무 답답했다.
억장이 무너지고 미칠 듯이 갑갑했다.
기근으로 모든 게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다.
이럴 때 청국 사신단의 연회를 이일선의 성에 차도록 준비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해야 하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영감. 예조에서 모든 요구를 수용하라고 하였습니다.”
“하……. 그래야겠지. 쥐어짜서라도 마련하게.”
“……영감. 실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하게.”
“실무적인 내용은 이미 전달받았는데…….”
“받았는데?”
관리는 문서를 미적대고만 있었다.
불안함이 엄습한 평안 감사는 문서를 곧바로 낚아챘다.
그리고
“!!!”
내용을 확인한 눈동자가 커졌고 입술은 덜덜 떨렸다.
뇌물을 받지 못하자 조선을 노골적으로 괴롭히려는 이일선의 의도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
“광수무(廣袖舞)를 5작, 6작, 7작, 8작, 9작……. 하! 이런 무도한 인사를 보았나. 어찌 이곳에서 조정의 사신연을 똑같이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실은 차비 관원을 따로 두어 꽃, 탕, 과일뿐 아니라 차와 술 및 찬안, 소선까지 올리기를 요구하였습니다.”
“하!”
격분한 평안 감사는 문서를 거칠게 찢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항의할 기세였다.
그러나 종2품에 이르는 평안 감사라는 자리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입술을 세게 깨물다가 힘겹게 쥐어짜듯 말했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재주가 있는 이를 수소문하더라도 시일이 촉박할 것인데.”
“그간 영감께서 선정을 베풀어 평양부를 떠나지 않은 재주꾼들이 제법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군.”
“한데, 막상 연회를 마련할 형편이 아닙니다. 중식도 겨우 마련하여 내었는데 크게 봉변을 당하였습니다.”
“……구휼을 중단하게.”
“영감…….”
“백성의 굶주림을 외면하자는 게 아닐세. 일단 화를 피하자는 말이야.”
평안 감사의 판단은 백성으로서는 가혹하겠으나 조선의 관리로서는 적절하였다.
지금은 청국의 위세를 등에 업고 패악질하는 이일선을 달래는 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무거운 한숨이 동반되었다.
이어질 말을 짐작한 관리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민가마다 모두 확인하여 쓸 만한 재물을 모두 징발하게. 필요하다면 사대부가의 재물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것이니까.”
“…….”
“만일, 저항한다면 엄히 벌하게. 이 또한 내가 안고 가겠네.”
“예. 모든 관리와 병졸을 동원하여 진행하겠습니다.”
“그리하게. 그래야지. 그래야만 이 악몽이 빨리 끝나겠지.”
평안 감사는 탄식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그 모습은 참으로 애달프며 처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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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목민관의 선정과 사족의 구휼이 있다고 할지라도 기근은 기근이었다.
굶어 죽는 이는 생길 수밖에 없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근이었기에 아끼고 또 아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잔잔한 웃음이 감돌던 숭양서원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최근 경험하지 못한 흉흉함이었다.
느닷없이 난입한 관리와 병졸들이 구휼미를 다 거두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대,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가, 갑자기 쌀을 왜 가져가시다니요?”
“이, 이유라도 말씀해주십시오.”
백성들의 목소리에는 조급함이 가득했다.
병졸들도 난처하여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엄히 다스릴 것이다.”
관리의 꾸짖음에는 결연함마저 담겨 있었다.
백성들은 멈칫했고, 병졸들은 굳은 안색으로 구휼미를 다시 거두었다.
그때였다.
“멈추시오!”
뒤늦게 나타난 사족들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보시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영감께서 내리신 명이오.”
불쾌할 정도로 딱딱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간 선정을 베풀던 평안 감사를 떠올린 사족들은 섣부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혹시 청 사신단의 일이오?”
“…….”
침묵으로 대신한 긍정이었다.
사족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구휼미는 우리가 마련한 것이오.”
“필요하다면 사대부가의 재물도 징수하라는 엄명이 있으셨소.”
“뭐요……?”
“협조까지 바라지는 않겠소. 그러나 저항하면 서로 곤란할 것이오.”
“허. 어찌 이럴 수가 있소? 청국 사신단의 연회를 챙기고자 사대부가 마련한 구휼미를 거두다니. 하늘 아래 이런 법도는 없소.”
“……하면, 어찌하오?”
너무나도 직관적인 물음이었다.
찰나 사족들의 말문이 막혔다.
관리는 장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공들께서 이해해주시길 바랄 뿐이오.”
“그럴 수는 없소.”
“…….”
“우리 곳간에서 나온 쌀 한 톨도 청국 사신단의 입에 들어가게 할 수는 없소.”
강경한 태도였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관리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사족들의 입장과 백성의 어려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복을 입었기에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저항하는 이는 모두 진압하라.”
“!!!”
“!!!”
“!!!”
아비규환(阿鼻叫喚)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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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으나 평온하였던 평양부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병졸들이 민가에 들이닥쳐 재물을 징발하더니 사대부가에도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결국, 분노한 사족들이 평안 감사에게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예. 어찌 영감께서 소생들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간 기근의 어려움과 싸운 건 비단 관의 역량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족들의 심정을 모를 수는 없으나, 저들 역시 평양부의 난처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거세게 따지는 사족들을 바라보는 평안 감사의 표정에는 곤혹스러움과 씁쓸함이 동시에 담겼다.
이럴 때는 어기차게 행동하는 게 옳았다.
“평안 감사로서 합당한 권한을 사용하였을 뿐이네.”
“허. 사대부의 사가에 병졸을 보내어 재물을 갈취하는 것이 합당한 권한입니까.”
“평시라면 무도한 행위이며, 일신의 탐욕을 위한 것이라며 부정한 것이겠지.”
“소생들도 정확하게 전하겠습니다. 굶는 백성을 위해서는 곳간을 모두 비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국 사신을 위해서는 쌀 한 톨도 안 됩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단연한 결의였다.
평안 감사 역시 사족들과 논쟁할 생각은 없었다.
“목민관의 정당한 집행을 방해한다면 지엄한 법도로 벌할 것이네.”
“지금 소생들을 겁박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허. 소생들이 이대로 넘어가리라고 보십니까?”
“자네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네.”
“평안 감사 영감의 권한이 이토록 대단한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자네들이 대대적으로 나서면 나의 관복이 위태롭겠지. 그러나 아쉽게도 이는 내 권한이 아닐세.”
“무슨 말씀입니까.”
“조정에서 군현의 모든 걸 징발해서라도 사신단의 요구를 맞추라는 명이 내려졌으니까.”
“어찌…….”
“허. 지금 이들이 대청의 사신단을 모독하는 겁니까?”
말의 내용과 달리 조롱이 잔뜩 담긴 목소리가 난입했다.
바로 이일선이었다.
대경실색한 평안 감사는 황급히 외쳤다.
“썩 물러가게! 더는 분란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아니외다. 오해가 있으시오.”
“내 귀로 다 들었습니다.”
“이들은 내가 잘 타이르겠소.”
“정사께 보고할 것이외다.”
“정사께서 아실 만한 일이 아니오.”
“그걸 왜 평안 감사께서 판단합니까?”
“…….”
평안 감사는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또,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감히 황상의 대리인을 모욕하였으니 사지를 찢어도 부족할 것이거늘.”
이일선의 압박은 거셌다.
머릿속이 창백해지는 걸 느꼈다.
그때였다.
“여, 영감!”
급히 달려오는 관리.
평안 감사는 옳다 싶어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구휼미가 당도하였습니다!”
낭보(朗報)였다.
평안 감사는 크게 반색하였다.
이 순간만큼은 이일선도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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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관용조차 베풀지 않았다.
어떠한 특혜도 없었다.
군령을 어기면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다스렸다.
선왕 시절 훈련도감의 수장 이완은 이러했다.
그리고 지금의 이완도 이러했다.
그래서일까?
훈련도감 병졸들의 움직임은 참으로 일사불란하였다.
작은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정예군이었다.
“영감. 평양부 지척에 이르렀습니다.”
부관의 절도 있는 보고를 들은 이완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기가 감도는 눈으로 좌우를 돌아봤다.
그의 입에서 시작된 묵직한 중저음이 천천히 울리며 번졌다.
“단 한 명도 흐트러짐을 보이지 말라.”
일찍이 문란한 군기를 방치하였던 훈련대장은 이미 없었다.
“너희는 조선 최고의 강군이다.”
실로 준엄한 울림이었다.
잠시 쉬듯 숨을 돌리던 병졸들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수레를 밀던 병졸들은 손에 힘을 주었다.
쌀가마를 들었던 병졸들도 지탱하던 어깨에 힘을 주었다.
“너희의 강건함이 곧 백성의 위안으로 번진다. 이를 심장에 새겨야 할 것이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으나 장내를 지배하는 묵직한 공기가 모든 걸 대변하였다.
과거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문란한 군기로 한 걸음조차 내딛기 힘들던 시기가 아니었다.
이연은 흡족하게 웃으며 칼을 뽑았다.
그리고 말했다.
“진군한다.”
그와 동시에 전 병력이 일제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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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에 불과한 재물과 구휼미를 잃은 백성들은 멍한 눈이었다.
뜬 눈이었으나 초점은 없었다.
그렇게 쳐다만 봤다.
왜 저들이 이곳에 왔는지 궁금하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성내로 진입하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병졸들을 그저 바라봤다.
“…….”
“…….”
성내로 진입한 이완은 말없이 응시했다.
넋을 놓고 있는 백성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에 마음이 무거웠다.
“…….”
“…….”
목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한 곳만 멀뚱하게 바라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묘했다.
병장기를 들고 있어야 할 병졸들이 수레를 밀며 끌고 있었다.
어깨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지고 있는 병졸도 보였다.
한둘이 아니었다.
보이는 모든 병졸이 그러하였다.
오직 한 곳만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
“…….”
이완은 걸음을 멈췄다.
이는 조선의 유일무이한 절대자가 내리는 성은이다.
관례라면 평안 감사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다.
또, 장수로서 언제 어떤 작전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가장 큰 효과가 나오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때는 바로 지금이며, 작전은 곧장 집행이었다.
장수로서의 모든 감각이 이리 말하였다.
그래서 외쳤다.
“주상전하께서!”
훈련도감의 병졸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질서가 정연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백성을 가엽게 여기시어!”
병졸들은 일제히 도성을 바라봤다.
쌀가마를 내리고 정자세를 취하였다.
여기까지 이르자 이완이 뜸을 들이며 백성들을 바라봤다.
“…….”
“…….”
바닥에 앉아서 여전히 바라만 보던 백성들의 눈에 초점이 생겼다.
목이 조금씩 움직였다.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맨 앞에서 성문까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모든 병졸이 무언가를 들고 있었고, 수레를 옮겼다.
눈을 껌뻑였다.
자세히 봐야 한다.
눈을 비볐다.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저 많은 병졸이 옮기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은 바로
“구휼미를 내리셨다!”
구휼미였다.
시각적 인지와 동시에 들린 청각적 사실은
“흐윽…….”
“흐윽…….”
“흐윽…….”
고되고 지쳤던 마음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흐윽…….”
“흐윽…….”
“흐윽…….”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던 기간의 고통이 온몸을 스쳤다.
“흐윽…….”
“흐윽…….”
“흐윽…….”
굶주림에 먼저 떠난 가족이 떠올랐다.
“흐윽…….”
“흐윽…….”
“흐윽…….”
분위기는 참으로 슬펐다.
백성들은 그저 울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도성을 바라보던 병졸들은 그저 버틸 뿐이었다.
그때였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른다.
누군가가 기어가듯 걸었다.
시뻘게진 눈으로 걸었다.
그의 걸음이 멈춘 곳은 병졸들의 앞이었다.
“…….”
“…….”
그는 떨리는 손을 움직여 병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울먹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도성을 바라보던 병졸들의 고개가 움직였다.
울며 말하는 백성을 바라봤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무서우리만큼 빠르게 솟구쳤다.
그때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수한 백성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끝내 병졸들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함께 울었다.
이완은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지축을 울리는 천세의 연호는 없었다.
그러나 천세의 연호만큼 값진 말이 지천을 적셨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봤다.
그저 붉어진 눈시울을 숨기고 싶을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