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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34화 (134/298)

134화 This is Joseon(2)

윤선거의 안색은 평온하였다.

딱 이 점을 제외하면 평소와 다른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송준길은 슬며시 쳐다보며 괜한 말을 툭 내뱉었다.

“어디를 봐도 멀쩡한 사람이 왜 쉬고 있나? 당장 등청(登廳)하게. 청국 사신이 소란을 피우는데 예조판서가 일해야지.”

“하하하.”

애정이 담긴 농에 윤선거는 맑게 웃었다.

애초 몸이 불편하거나 문제가 있었기에 칩거한 게 아니었다.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힌 정국을 해결하려면 곤룡포 협상의 당사자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좋다는 정치적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그나저나 저잣거리의 소문이 제법 의미심장하더군요.”

“이일선이 변발을 언급하였다……라는 내용이 골자였지요. 괴이하였습니다.”

“어째서 괴이한가.”

“이일선이 경박한 인사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작 만주어가 뛰어나다고 하여 그 위치에 있을 수는 없지요. 처세에 능하고 정치력이 상당한 인사입니다. 그가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니 괴이한 소문이지요.”

윤선거는 유독 괴이하다는 말을 강조했다.

그러나 송준길은 굳이 묻지 않고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만 갔다.

“한데, 칩거하면서 세상사는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나?”

“실은 증이가 전하였습니다.”

“그래? 뭐라고 하던가?”

“비분강개(悲憤慷慨)의 명분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뭐라고 답하였나.”

“사대부가 저잣거리의 소문을 신뢰하여 거동을 함부로 할 수는 없으나, 이 또한 민심이니 어찌하겠느냐고 하였지요.”

“했더니?”

“만일 사세(事勢)가 여의치 않으면 어찌하느냐고 묻기에, 사대부가 어찌 일의 유불리를 따지겠느냐고 답하였지요.”

참으로 정겨운 부자(父子) 간의 문답이 아닐 수 없었다.

송준길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짧게나마 미소를 짓다가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며 물었다.

“자네는 이를 정말 백성의 입에서 난 말이라고 보는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여, 괴이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면, 시발점을 어디로 보나?”

“우리는 아닙니다. 그러니 남인이지요. 그중 이 정도로 대범한 방책이라면 아마 반계와 백호일 겁니다.”

“거참. 이런 일은 미리 상의하면 얼마나 좋은가? 하면, 더 힘을 실을 수가 있을 건데.”

“애초 위정척사의 행동을 추동하고자 계획한 일로 보입니다. 내용도 딱 그러하고요. 그리고 엄밀히 하자면 산림의 회합도 그들에게 미리 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할 말은 없지요.”

“거. 말은 바로 하게. 그 일은 자네와 나도 몰랐어. 뒤늦게 알았지 않은가.”

“하하하. 그건 그렇지요. 한데, 결국 안 가셨다고요?”

“끙. 그때라도 가려니 체면이 영 말이 아니라서……. 차라리 칩거 중인 자네가 어찌나 부럽던지.”

당시의 민망함을 떠올린 송준길은 입맛을 다시며 쓰게 웃었다.

결국, 윤선거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우암이 왜 그리하였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 분명하니 만일을 대비한 것이겠지. 그런데 이것과 별개로 미리 상의하는 건 무슨 문제인가?”

“하하하. 우암의 성격이 원래 그러하지 않습니까.”

“휴…….”

“그리고 명 황제를 기리는 만동묘입니다. 이는 여차하면 진짜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겠지.”

“청 사신단이 사대부의 기세에 밀려 일 보 후퇴할지라도 청 황제는 그러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황명을 내려서 책임자를 벌하라고만 해도 조선은 산천초목이 떨게 될 것입니다.”

“단 일천의 군세만이라도 압록강으로 진군할 시 우리는 사신을 파견하여 죄를 청하겠지.”

“그게 현실이지요.”

최악의 경우는 따로 있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씁쓸한 웃음이 감돌았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만동묘만 건립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실리를 전혀 얻지 못하고 과거에 매몰된 외교를 선례로 남기겠지.”

“예. 청으로부터 쌀과 바다를 얻을 기회를 내던지고 명 황제를 섬기는 사원이나 세우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자연스레 대청 외교는 늘 지금처럼 살얼음판이 되겠지요. 전쟁의 위협을 동반한 창칼을 앞세운 외교 말입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경우의 수였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할 수가 아니라 반드시 피해야 할 길이었다.

송시열에게 이를 타개할 묘안이 있다고 생각되었으나, 구체적으로 구현되기 전에 단발령이 번지면서 모든 걸 집어삼켰다.

옳고 그름을 넘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만동묘 건립은 양날의 검이지만, 변발령은 확고한 비기입니다.”

“옳은 말이지. 그래. 자네는 반계와 백호의 구체적인 목표가 무엇이라고 보나?”

“병장기의 존재 이유는 적의 수급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일선을 도모하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사 뇌호를 어찌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이일선을 치우는 건 백번 지당한 일이지. 그런데 대국적으로 조정의 일이 고작 통관 하나 치우는 걸로 귀결될 수는 없지 않겠나? 결국, 핵심은 재협상이니 말일세.”

송준길의 말대로였다.

일국을 책임지는 대신의 목표가 눈에 거슬리는 역관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분노는 젊은 유생들의 몫이었다.

또, 불이 이 정도로 붙었는데 정말 중요한 곤룡포 협상이 공식화되면 그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이는 조선 조정의 공식 협상 내용이라서 섣불리 손을 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아니, 청 사신단이 먼저 재협상을 제안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다.

“말씀대로입니다. 지금부터가 어찌 판을 좌우하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만일 후폭풍이 몰아치면 가장 먼저 공격에 노출될 사람은 윤선거였다.

그런데도 담담하게 정국을 예측할 뿐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멈췄던 송준길은 피식 웃었다.

“실은 그 말이 듣고 싶어서 왔네.”

“예……?”

“자네가 볼 때 나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겠나? 정확하게는 대간은 어찌할 수 있겠냐는 것이지.”

“불가합니다. 대감과 대간의 개입은 재야의 선비들이 나서는 것과 결이 다릅니다. 이는 저들이 크게 반길 일이지요. 조정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나라의 중대사를 어찌 젊은이들에게만 맡기겠는가. 또한, 청 사신단을 기겁하게 할 정도의 역량이 집중되었는데 고작 이일선의 제압에 시간을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이는 단번에 끝내고 재협상을 도모해야지. 안 그런가?”

“…….”

송준길은 당황한 듯 눈동자가 흔들리는 윤선거를 보며 싱그럽게 웃었다.

“미촌. 일국의 대신이라면 젊은이들의 의기에 힘을 보탤 때도 있어야지. 그렇게 명쾌한 길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는 대청의 사신단이라고 할지라도 이곳은 조선일세. 하면, 조선의 의기를 명확하게 보여 저들을 궁지로 몰아야지. 그래야 우리가 주도권을 다시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송준길은 여전히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쟁에서는 패하였으나 이 싸움은 질 수 없지 않겠는가.”

“…….”

“대감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하하. 자네가 동의하였으니 어찌 더 머뭇거리겠는가. 즉각 결행하겠네.”

“대감. 몸을 살피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게. 뒤에 숨어 있을 테니까.”

그럴 리가 있는가.

그러나 윤선거는 더 말하지 않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저 이리해야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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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연실색(啞然失色)이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게 아닐까?

뇌호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떠오르는 말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무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광기였다.

이 말이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눈을 부라리며 도끼를 휘두르면서 청 황도로 가겠노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위정척사파의 모습은 나도 움찔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광기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런데 뇌호가 이러고만 있어서는 곤란했다.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해야만 판단을 내리지 않겠는가?

물론 그러자면 더 궁지로 몰아야 하기에 나는 이 상황을 더 공포스레 설명해주기로 했다.

아주 친절하게 말이다.

“대인.”

“…….”

“단지 변발의 문제가 아닙니다.”

“벼, 변발이라니! 우리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소!”

“계속 이러시면 소인은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니, 대감. 어찌 이리 무책임하십니까?”

이일선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진땀을 흘리며 말까지 더듬었다.

평소 이죽거리던 태도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위정척사의 칼날이 정확하게 이일선의 목을 향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조급하겠는가.

나는 여유롭게 이를 다시 인지시켜주었다.

“공이 변발령을 운운한 것부터 시작이었소.”

“아, 아닙니다! 소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잣거리의 소문입니다.”

“허. 지부상소는 도끼로 목을 치라는 최고의 결의외다. 한데, 지금 지부상소를 단행한 사대부의 기개가 고작 유언비어에서 시작했다는 것이오?”

“아, 아니라면 누군가가 선동이라도 하였겠지요!”

우습다.

다시 나를 걸고넘어지는 가련함이 너무 우스웠다.

진심으로 나라면 얌전히 입 다물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판세가 눈에 띌 정도로 확연하게 기울었으니 말이다.

“음.”

“가, 갑자기 또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물어보리다.”

“예……?”

“유언비어나 선동 중 무엇인지 물어보겠소.”

말과 동시에 냉큼 일어났다.

이일선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자네는 이 자리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가?!”

뇌호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대, 대인. 소인은 그것이 아니라…….”

“자네 일이나 똑바로 하게.”

통역이나 하라는 말이었다.

이 간단한 한마디로 이일선의 정치적 공간은 완벽하게 박탈됐다.

아주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분위기가 좋다.

마치 순풍에 돛단 듯 너무나도 순탄했다.

나는 다시 자연스레 정확한 정세를 각인시켜주기로 했다.

“대인. 변발이 단지 상투를 자르는 문제로 인지되었겠습니까?”

“변발은…… 아니외다. 무슨 말이오?”

“시작이라고 여겨지겠지요.”

“시작……?”

“곤룡포는 청국의 예법에 따르고, 변발을 시행한다……. 그 뒤는요?”

“…….”

“수백 년간 이어진 조선의 전통이 모두 박탈된다고 여겨졌을 겁니다. 간단하게는 의복부터, 복잡하게는 각종 의례까지.”

“…….”

“청국의 말과 글을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였을 겁니다.”

“…….”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는 사대부로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일이지요.”

“…….”

“조선이 비록 소국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변발은 이를 뿌리 뽑으려는 대국의 횡포라고 인지한 것이지요.”

“…….”

“만일 이를 막지 못하면 이 땅은 국호만 조선일 뿐 조선이 아니게 되는 것이지요.”

뇌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한 것이다.

작금의 정국을 그저 공포라는 감정에만 짓눌리거나 치우칠 수 없다는 걸 파악한 것이다.

“기근에 허덕이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조선입니다.”

“…….”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조선입니다.”

“…….”

변발령에 대한 진실을 완벽하게 흐렸다.

지금 중요한 건 조선 사대부들이 인지한 현실이라는 걸 정확하게 말했다.

뇌호는 이를 고민할 것이다.

수용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

어떤 판단을 하고, 결정할지라도 나는 방책이 있다.

오만한 청 사신단을 강제로 재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다.

그저 힘을 사용할 수 있을 시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뇌호의 머릿속은 참으로 복잡할 것이다.

나는 그저 기다렸다.

그때였다.

“대감.”

나는 고개를 돌려 다가온 관리를 쳐다봤다.

그가 눈치를 살피며 내게 서찰을 내밀었다.

단번에 읽었다.

“…….”

변수가 생겼다.

마침내

“…….”

조선의 조정이 움직였다.

엄청난 강수였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유려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조선 역관에게 말했다.

“전하게.”

“예. 대감.”

바뀐 분위기를 느꼈을까?

팽팽하게 차오르는 자신감이 전해졌을까?

뇌호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치솟았다.

나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대사헌 송준길과 삼사의 대간이 대대적인 상소를 올렸습니다.”

“뭐요……? 하면, 조선의 조정에서 저들의 연좌에 관여한다는 것이오?”

“정확하게는 변발령을 규탄하고 대인과 사신단을 내치라는 것이지요.”

“하! 감히…….”

“그리고…….”

이 움직임이 어떤 여파를 가져올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신하로서 이를 따를 뿐이다.

조선의 최고 결정권자는 바로 이연이니까.

“전하께서 윤허하셨습니다.”

“!!!”

뇌호의 안색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상상도 하지 못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뻔했다.

그래서 내가 선수를 쳤다.

“기근에 허덕이는 나라입니다. 싸우다 죽으나 굶어 죽으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

“또한,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곧 조선인데 어찌 국호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보태듯 말했다.

“조선은 이러합니다.”

다시 말했다.

“어찌하실 겁니까.”

정확하게 요구했다.

“변발령을.”

이로써 변발령은 청의 공식 입장이 되었다.

아니,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파면하겠소.”

“…….”

“이일선을.”

철회를 얻어냈다.

첫 승이었다.

그리고 대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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