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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35화 (135/298)

135화 This is Joseon(3)

무릇, 사신단의 정사는 천하의 지배자인 황제의 대리인이다.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아야 한다.

아니, 애초 위협을 받을 일은 발생조차 하지 않았다.

정사를 모독(冒瀆)하는 건 황제를 기만(欺瞞)하는 행위였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작금의 조선에서 발생한 반발은 관례처럼 접근할 수가 없었다.

위정척사파라는 무리의 지부상소에 기겁한 건 사실이었다.

도끼를 휘두르며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는 그들의 기세는 감당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정신이 곤두설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의 지부상소에 천하를 호령하는 대청국 사신단의 정사가 물러서거나 위축된 건 아니었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당면한 사세(事勢)가 난처하여 행한 물러섬이었을 뿐이었다.

한데, 이들의 연좌가 기어이 황제의 대리인이라는 지고한 신분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도출해내고 말았다.

“대사헌 송준길과 대간의 상소.”

이를 악물고 쥐어짜듯 말을 이었다.

“조선왕의 윤허.”

두 사례는 작금의 정국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혔는지 명확하게 입증했다.

진실과는 무관하게 이미 조선 조정에서 변발령을 엄중한 정치적 사안으로 인지했다는 걸 의미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이미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면한 현실이 바로 핵심이었다.

속이 너무 답답했다.

이 사태의 내막이 황도에 전해지면 어찌 될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울렁이는 속을 억지로 누르며 번뇌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대인…….”

바닥을 기어가듯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뇌호는 고개를 돌려보지도 않았다.

누구인지 너무나도 뻔하였으니 말이다.

“대인.”

“…….”

파직(罷職)은 황제의 권한이었으나, 정사로서 조선 일정 중 이일선을 배제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여, 송시열에게 이일선의 파면(罷免)을 약조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궁색한 처지가 된 이일선은 정치적 생존을 위하여 세 치 혀를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고작 번국의 행동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뇌호의 답변은 딱딱했다.

“자네의 말대로야. 고작 번국의 행동이지. 한데, 황상께서 이를 아시면 어찌 여기실까?”

“그것은…….”

“황상이 아니라 대청의 누구도 조선에 변발을 요구하지 않았어.”

“대인. 이는 조선의 획책(劃策)입니다.”

“획책일지도 모르지. 한데, 사대부가 도끼를 휘두르며 외치고, 송준길과 대간이 상소를 올렸으며, 조선왕이 윤허했네. 심지어 대청국의 사신단을 국경 밖으로 내치라는 교지까지 내려졌어. 묻지. 이렇게 쫓기듯 황도로 돌아가면 황상께서는 뭐라고 하시겠나?”

“대인. 바로 그것입니다. 조선이 감히 황상의 대리인을 가볍게 대한 것입니다. 그런 교지는 사실상 선전포고가 아니겠습니까. 황상의 권능이 조금이라도 뻗으면 조선은…….”

“선전포고?”

“예……?”

“누가 그따위 말을 입에 담으라고 했나?”

표정이 험악해졌고, 말투는 싸늘해졌다.

대경실색한 이일선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으로 대놓고 전쟁을 운운하였던 송시열의 호전적인 발언이 스쳤으나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선이 언제 선전포고를 했나?”

“소, 송구합니다. 소인이 과장하여 말했습니다.”

“그리고 황군이 출병할 수도 있고, 새로운 사신단이 파견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이대로 돌아가면 관복이 아니라 목이 멀쩡할지도 가늠할 수 없어.”

핵심이었다.

대청의 사신단이 번국에서 쫓겨났다?

황제가 어찌 반응할지 불 보듯 뻔했다.

이를 다시 상기한 뇌호의 날카로운 시선은 이일선을 찢어버릴 기세였다.

“작금의 대청이 조선에게 무엇을 바란다고 생각하나?”

“…….”

“진실로 주회인 몇 명을 송환하는 게 대청의 국익과 직결하기에 내가 이곳에 있다고 생각하나?”

“…….”

“아니지. 결단코 아니지. 이 모든 건 대청이 중화로서의 입지를 굳건하게 하기 위한 외교적 방침에 불과해.”

“…….”

“조선은 고작 번국이 아니라 중화의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세력이야. 이 나라의 정신까지 장악하여 진실한 사대의 예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절대로 중화의 완성을 선언할 수 없어.”

중원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강대한 군사적 힘으로 깃발을 꽂은 세력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모두 스치듯 사라졌을 뿐 진정한 중화를 탐하지 못하였다.

작금의 천하를 움켜쥔 청으로서는 이를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한데 나는 쫓겨나고 조선의 도성에는 만동묘가 건립된다?”

“…….”

“하. 자네 지금 나더러 죽으라는 건가?”

독설을 쏟아내는 뇌호의 목소리에는 살기까지 담겨 있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이일선의 낯빛은 창백해졌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눈앞에 닥친 난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 바로 읍소(泣訴)였다.

“대인.”

“되었네.”

“소, 소인은 정말 억울합니다.”

“돌아가는 사정이 자네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어. 내가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하나?”

“대, 대인. 지금 조선이 곤룡포 협상을 덮기 위해서 수를 쓰는 겁니다.”

“우리가 강요한 게 아니라 먼저 청한 걸세. 잊었나? 아. 그리고…….”

뇌호가 이죽거리며 이일선을 바라봤다.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과장하여 말했다고.”

“…….”

“벌써 잊었나? 조선이 감히 황상께 선전포고했다고 언급했네. 아닌가?”

“대, 대인. 그건…….”

“양국 간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거짓을 서슴없이 일삼는데, 변발령 정도야 스치듯 말하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겠나?”

“!!!”

“허. 다시 생각해보니 참으로 위험한 인사로군. 머릿속에서 선전포고라는 단어는 영원히 지우게.”

“!!!”

“자네에 대한 처우는 황상께서 결정하실 것이네. 그러니 쥐 죽은 듯이 있게.”

“!!!”

아예 여지를 두지 않은 단호한 축객령이었다.

이일선은 더 버틸 재간이 없었기에 흐느끼듯 답하며 힘겹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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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리 중에서 이일선의 파면을 화두로 삼지 않는 이가 없었다.

누구도 참지 않고 박장대소하며 떠들었다.

그간 이일선의 패악질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배후에서 변발령을 입안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이일선의 정치적 생명을 끊은 유형원과 윤휴로서는 절로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윤휴는 싱그럽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미소와는 결이 달랐다.

“그를 처단할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네.”

“백호. 진정하게. 황제의 신하를 우리가 무슨 수로 처단하겠는가.”

“그만큼 이일선의 패악질이 심하였으니 그저 답답하여 한 말일세.”

말 그대로 이만하면 됐다.

조선의 사대부는 황제의 신하를 죽이라고 부르짖거나 정치적 구호로 사용할 정도로 우매하지는 않았다.

“반계. 나는 이참에 명확한 선례를 만들고 싶네.”

“선례라고 하였나?”

“우리와 청의 관계를 고려할 때, 또 다른 이일선은 언제라도 등장할 수 있네. 이를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선례를 말하는 걸세.”

무슨 말인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벗의 뜨거운 독기를 온몸으로 느낀 유형원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래야지. 암. 다시는 그런 무도한 인사가 압록강을 넘지 못하도록 해야지.”

“설령 이일선이 다시 올지라도 패악질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네.”

“마땅한 방책이 있는가?”

윤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적은 자중지란에 빠졌네. 또한,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보이고 말았네. 이러한데 어찌 방책이 없겠는가.”

“경청하겠네.”

“이참에…….”

이어진 윤휴의 말에 유형원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야말로 가장 윤휴다운 방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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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대간의 상소를 주도하여 군왕의 교지까지 얻어내었으니 어찌 그 위상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송준길은 너무나도 담담하였다.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백면서생이나 무명의 관리가 아니라 서인의 지도부로서 조정의 대소사를 이끌어온 대신의 어깨란 이토록 거대한 것이었다.

“애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변발령의 철회가 선언되었네.”

“사실상 뇌호의 백기 투항이지요. 물론 청국은 이를 공식화하지 않겠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은 건 재협상이군.”

“물론입니다. 이제 이를 도출해야지요.”

애초 승산이 없는 싸움에서 대승을 거뒀기에, 여기서 기세를 늦추는 건 우매한 짓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파죽지세의 기세였다.

이를 재차 상기한 윤선거는 차분하게 말했다.

“대감. 조청 어업 협정의 파기를 청하시지요.”

“구휼미도 치우겠네.”

“예. 명분은 많습니다. 사신단의 일정이 진행될 때 도성에서 큰 소란이 일었으니 죄를 청한다고만 해도 충분합니다.”

“뇌호가 기겁할 것이네.”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송준길은 껄껄 웃었다.

말을 꺼내고자 해도 웃음이 멈추지 않아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 잔잔한 미소를 짓던 윤선거가 말했다.

“이제 양날의 검이었던 만동묘 건립을 비기로 사용할 때입니다. 하면, 뇌호를 완벽하게 궁지로 몰아 재협상을 도출할 수 있을 겁니다.”

“암. 그러자면 우리의 요구 사안을 모두 철회해야겠지.”

“그렇습니다.”

거인(巨人) 송준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만동묘가 날카로운 보검이 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네.”

“그저 즐기며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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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하게 돌아가는 정국이었다.

또,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상황이었다.

호조판서 허적은 중대본의 여러 실무에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바빴으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

그리고 오늘은 숨을 거칠게 내쉬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는 정객이 찾아왔다.

바로 남인 최고의 정략가 윤선도였다.

“호판.”

“오셨습니까.”

“생각해봤네.”

거두절미로 서론을 치워버리고 곧장 본론이었다.

허적은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작금의 흐름에서 역할을 하지 못한 윤선도가 얼마나 조급한지 대번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였더라도 정략가로서의 호승심만큼은 전혀 줄어들지 않은 게 분명했다.

“만일 뇌호가 우리 남인의 정적이었다면 어찌 제압할 수 있을까?”

“남인의 정적이라고 하셨습니까?”

“정확하게는, 송시열이었다면 어찌하였을지 고민하였다네.”

“하하하. 이런. 당장 뭐라도 보태고 싶군요.”

허적의 맑은 웃음이 잔잔하게 울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근심과 걱정을 모두 날려버린 후련한 웃음이었다.

“무엇입니까. 서둘러 말씀하시지요.”

“뇌호와 송시열은 본질에서 같네.”

“더 빨리 듣고 싶군요.”

“위세가 대단하지만, 이는 제 능력이 아니라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걸세.”

어폐가 있었다.

뇌호는 청 황제의 권능을 대리하기에, 그의 오만함을 호가호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송시열은 비록 정치력이 엉망일지라도 가진 위세는 쌓아 올린 학문적 경지에서 비롯하였기에 호가호위라고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사실관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허적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경청할 뿐이었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는 것이니, 이를 차단하면 그만이지 않겠나?”

“차단이라고 하셨습니까……?”

“병법에서도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였네. 만일 우리가 뇌호를 청 황제로부터 고립시킬 수만 있다면 어찌 승산이 없겠나?”

허적은 의구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선생. 설마……?”

“남인은 북벌을 품은 적이 있지 않은가.”

“허.”

“이리하면 재협상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네.”

허적의 머릿속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상황이 너무나도 명쾌하게 정리됐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감돌았다.

이건 해볼 만한 판이었다.

“선생. 그거 아십니까?”

“말하게.”

“병자년 이후 많은 청국의 사신단이 왔습니다.”

“그랬지.”

“한데, 이번처럼 그들이 오래 머물기를 바란 적이 없습니다.”

“암.”

“또한, 도성 곳곳에서 웃음이 만발한 적도 없고요.”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윤선도가 말했다.

“이번에는 합을 잘 맞춰보지.”

“물론입니다.”

“모처럼 자네와 의견이 통하였군.”

허적은 익살스럽게 웃으며 한마디를 툭 던지듯 말했다.

“선생께서 영수 대접을 옳게 해주셨으면 진작에 통했을 겁니다.”

“끙. 과거는 덮지.”

“하하하. 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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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호는 냉정하게 상황을 살폈다.

조선으로부터 크게 당하긴 하였으나 이미 상호 간의 공적인 대화는 마무리됐다.

누구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던 곤룡포 협상을 일궈냈다.

그렇다면 조선에 더 머물 이유가 없지 않은가.

“…….”

옳다.

이게 옳았다.

변수를 그저 변수로 만들자면 이리하는 게 최선이었다.

더 시일을 끌었다가는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만큼 작금의 조선은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조선을 떠나는 게 옳았다.

물론 만동묘 건립의 문제가 살아 있으나, 이상하리만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마음을 굳혔을 때였다.

“대인. 조선국 중앙재해대책본부장 송시열이 왔습니다.”

묘할 정도로 껄끄러운 상대의 방문 소식이었다.

뇌호의 낯빛은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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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는 달랐다.

변발령의 일로 수세에 몰렸다고 할지라도 필요 이상으로 허둥거렸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소인이 날을 잘못 잡아서 왔습니까.”

“아니외다. 한데, 어찌 오셨소?”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차라리 잘됐소. 나 역시 전할 말이 있소.”

급박한 정국이다.

그런데 왜 왔냐고 묻더니 차라리 잘됐다고 한다.

“무슨 일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협상은 이미 마무리됐소. 하여, 귀국할까 하오.”

“허. 벌써요?”

“더 있을 필요가 있겠소?”

“만동묘의 문제도 남아 있지 않습니까.”

“조선의 내정이니 어찌 관여하겠소.”

이 새끼 봐라?

많이 불안한 거 같은데?

그게 아니면 이렇게 나올 이유가 없다.

누가 봐도 도망치는 모양새이니 말이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나오면 크게 후회할 건데?

“그 밖에도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되었소.”

“사대의 예가 있는데 어찌 대인을 이리 보낼 수 있겠습니까.”

“황상의 뜻은 모두 전하였소. 조선의 청도 모두 수용하였소. 그러니 무방하오.”

알겠다.

알겠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하면, 내 뜻을 조정에 전해주시오.”

정말 후회할 텐데……?

나는 빤히 쳐다만 봤다.

그러자 뇌호는 속이 타는지 다시 말을 꺼냈다.

아니 꺼내려고 했다.

“허. 어찌 그리할 수가 있겠소.”

훅 치고 들어온 목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서 예를 취했다.

“전하.”

뇌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저, 전하. 어찌 이곳에…….”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소.”

“그건…….”

“그러하니 내 어찌 상국의 사신을 위로하지 않겠소.”

“…….”

“하여,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였소.”

“전하.”

“허. 내가 직접 왔거늘 어찌 이러시오?”

뻔뻔하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연의 태도에 뇌호의 안색은 살짝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내 억지 미소라도 꺼내며 말했다.

“전하. 실은…….”

“아. 정사에게 말하지 않았구려.”

“예……?”

“미리 말하여 동의를 구하는 걸 잊었소. 훈련도감이 얼마 전 의주까지 군량을 옮겼소.”

“…….”

기근 구휼 정책으로 트집 잡은 걸 비꼬는 것이었다.

뇌호의 안색은 창백했고, 볼은 거칠게 흔들렸다.

“어떻소? 넘어가 주겠소? 괜찮겠소?”

“전하. 일전의 일은 소인이 결례를 범하였습니다.”

“그렇소?”

“그렇습니다.”

이연은 뇌호를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를 거두었다.

입술은 미동도 없었으며,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무표정이었다.

“이번만은 덮겠소.”

“…….”

용서를 선언했다.

그리고

“귀국(歸國)은 윤허할 수 없소.”

“!!!”

윤허하지 않았다.

이는 기존 협상을 ‘윤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압박을 정확하게 한 것이다.

조선의 군왕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였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대대적인 반격의 시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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