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137화 (137/298)

137화 This is Joseon(5)

청 사신단의 의사는 정확하고 간결했다.

-대청은 만동묘 건립을 용인할 수 없다.

단지 권하는 차원의 의견이 아니었다.

-움직임도 절대 좌시할 수 없다.

조정에 대한 압박은 당연하거니와 산림을 향한 엄중한 경고가 담긴 강경 발언이었다.

아무리 오랑캐라고 멸시하고, 진심으로 상국으로 여기지 않으며, 중화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청국은 현존 최고의 강국이었다.

전쟁으로 만들어진 군신의 관계이었기에 그들의 압박은 숨을 막히게 할 수 있다.

그 위세를 고스란히 담은 경고에, 지금껏 승전을 거두었던 조선 조정과 재야는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밀림은 술렁여야 제맛이다.

그래야만 맹수가 나오는 법이다.

나는 멀찍이서 바라봤다.

그리고 들었다.

“만동묘 건립은 조선의 내정이옵니다!”

분노와 분노가 만난 산림의 분노를.

“아무리 대국이라고 할지라도 나라의 내정에 이리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대국이라고 하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들이 우리의 상국이라는 현실을 고의로 덮은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는 뇌호의 경고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정치적 결의였다.

나는 저들에게 말한 바 있다.

-만동묘 건립은 과거의 국난을 되새기는 일이네. 대명에 대한 부질 없는 연모가 아닐세.

그러나

“재조지은은 조선의 역사이옵니다!”

“신들은 기어이 만동묘를 건립해야겠사옵니다!”

건립하자도 아니고 건립해야겠다고 하였다.

우회라는 단어는 저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전하! 대국의 압박에 만동묘 건립을 보류하신다면 신들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옵니다!”

“무기한 연좌에 돌입할 것이옵니다!”

저들이야말로 신념의 강자가 아니겠는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쳐다보다가 입궐했다.

또 다른 밀림을 보기 위해서였다.

“전하!”

핏발 선 눈으로 격분한 윤휴를 말이다.

정사 뇌호의 엄중한 경고로 정국이 경직되었으나 그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치열하게 나섰다.

그는 누구도 대동하지 않고 오직 홀로 피를 토하듯 쉬지 않고 격정적으로 외쳤다.

“대저 대사헌이 가져야 할 무게는 어떠하옵니까.”

마주치며 자연스레 피하게 될 정도로 그의 눈동자는 뜨거웠다.

“조정의 관리를 감찰하기에 가장 청렴해야 하옵니다. 하여, 대사헌의 어깨에 올려진 무게는 조선을 지탱하는 기둥이옵니다.”

듣기만 해도 따가울 정도로 날카로운 말이었다.

말 그대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송준길을 타격했다.

“하온데 전하. 작금의 조선은 과연 이러한 기둥을 보유하고 있사옵니까? 아무리 대국의 국력이 하늘을 찌르고 사신단의 위세가 두렵다고 한들, 어찌 일국의 대신이 그토록 경박하게 행동할 수 있사옵니까. 하물며 대사헌이옵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를 만난 것처럼 맹렬했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윤휴와 송준길의 평소 사이가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험악하였다고 여길 정도였다.

“전하! 신 윤휴, 목숨을 걸고 청하옵니다!”

대사헌(大司憲).

품계로는 종2품이다.

그러나 대사헌은 단지 품계로 접근할 수 있는 관직이 아니었다.

윤휴의 말처럼 문무백관을 감찰하는 청백리의 상징이었다.

한데, 송준길이 비리를 저질렀다.

심지어 조선의 사대부가 가슴 속 깊이 증오하는 상대에게 말이다.

지금 나서서 외치는 이는 윤휴 한 명이었으나 조선 사대부가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여, 윤휴의 기세는 서릿발보다 차가웠다.

살이 따가울 정도로.

“대사헌 송준길을 파직하여 조정의 기강을 다시 세우시옵소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정공법이었다.

윤휴의 연좌는 말 그대로 배수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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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정사의 권위를 담은 엄중한 경고였다.

글자는 만동묘(萬東廟)였으나, 본질은 경거망동을 금한다는 것이었으며, 요구한 행동은 쥐 죽은 듯한 침묵이었다.

예상되는 문제는 없었다.

대국의 정사가 일갈하였으니 작금의 혼란은 일거에 정리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펼쳐진 정국은 기대와는 아예 달랐다.

당연히 물러났어야 할 윤휴가 더욱 독기를 품은 채 핏발까지 세우며 외치고 있지 않은가.

“대인. 이를 그냥 넘기시면 안 됩니다.”

이일선의 얼굴은 표독스러웠다.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나도 분했다.

그야말로 오욕의 시간을 겨우 벗어나 힘겹게 복귀하였건만 윤휴의 연좌가 또 문제였다.

이일선 자신이 ‘뇌물’이라는 화두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문제가 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이는 대국의 사신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대가가 아닌가.

늘 있었던 일이다.

또, 청국만 그러한 게 아니라 대명 시절에도 그랬다.

그러한데 집요하게 물고 넘어지니 불편함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윤휴가 송준길을 운운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뇌물’이었다.

그런데 뇌물이라는 게 건넨 사람만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대청 사신단의 정사 뇌호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윤휴의 의도를 모를 수가 없다.

차마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송준길‘만’ 거론하였을 뿐이었다.

그간의 관례를 되돌아볼 때 이런 적은 없었다.

“대인. 이를 그냥 넘기신다면 조선이 대청을 가볍게 여길 겁니다.”

“언급해야겠지. 그런데 자네, 정말 많은 뇌물을 챙겼더군.”

“예……?”

“윤휴가 입증하였지 않은가. 혹시 이 또한 오해가 있나?”

이일선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설마 이토록 노골적으로 언급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을 끌수록 좋을 건 없었다.

“그것이…….”

“자네의 파면을 유지하였다면 윤휴의 기세가 저토록 맹렬하였을까 싶네만.”

“대인을 흠모한 조선 목민관들의 성의였습니다. 어찌 소인이 딴마음을 품겠습니까.”

“차차 정리해보도록 하지.”

“대인께 누가 되지 않도록 소인이 세밀하게 살피겠습니다.”

“그리하게. 한데, 변발령을 주도한 세력이 위정척사라고 하였나? 예조판서 윤선거의 아들이 수장으로 있는 세력 말일세.”

“그렇습니다. 또, 송준길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움직일 수 있으면 윤휴를 정리할 수 있지 않겠나?”

“예……?”

당황한 듯한 이일선의 반문에 뇌호는 피식 웃었다.

“일전에 내가 한 말을 기억하나? 우리 대청국이 중화로서 입지를 확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조선의 진심이 담긴 사대가 필연적이라고.”

“물론입니다. 소인이 어찌 잊겠습니까. 한데, 대감. 날이 갈수록 대청의 국세가 팽창하고 있는데 조선이 어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자네 말이 맞아.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가 애를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이를 앞당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 나는 작금의 조선에서 이를 이뤄낼 가능성을 확인하고 말았네.”

“송준길과 윤선거가 주축이 된 친청파를 이르십니까?”

“암. 그들은 지금껏 권세를 탐하였던 친청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파급을 발휘할 것이니, 어찌 바람직하지 않은가.”

되돌아보면 친청파로 분류되었던 이들은 막상 조선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은 건 아니었다.

아니, 규탄의 대상이 되었던 이가 많았기에 조선 조정 내에서 친청파는 위력을 발휘하였을지언정 설득을 이뤄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조선 사대부의 흠모(欽慕)를 받는 송준길과 윤선거가 친청파의 태두(泰斗)가 된다면 삼전도 이후 최고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여러 미심쩍은 정황이 없었던 건 아니었으나, 윤선거가 주도한 조약의 발목을 잡는 허적과 격렬하게 송준길의 탄핵을 요구하는 윤휴로 인하여 말끔하게 해결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번국의 일에 황상의 대리인이 어찌 세세하게 관여하겠는가. 나는 이미 엄중한 경고를 전하였으니 조선 조정이 알아서 잘 처신해야겠지.”

송준길과 윤선거가 자력으로 승전을 거두어도 상관없고, 끝내 황상의 위력에 기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떤 결론이라도 좋다.

또, 조선 내부의 다툼이 격해지는 건 환영할 일이었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어차피 그들의 일이 아니겠는가?

이일선은 뇌호의 뜻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를 이르시는 것이군요.”

“바로 그것일세.”

흡족함이 가득 실린 답변이었다.

그때였다.

“변발령을 주도한 통관 이일선의 복귀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바입니다!”

불편한 내용을 담은 외침이 들렸다.

뇌호의 눈가가 가늘어졌고, 이일선의 안색이 와락 일그러졌다.

박차듯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통관 이일선의 복귀는 변발령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니, 어찌 이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칼칼한 목소리로 외치는 윤증이 보였다.

뇌호의 안색은 싸늘하게 굳었다.

오만상을 찌푸린 이일선이 노기를 터트렸다.

“감히 청사의 일에 관여…….”

그러나

-쾅!

윤증이 도끼를 휘둘러 바닥을 찍었다.

“정사께서 진정 통관 이일선의 복귀를 강행하고자 하신다면 소생의 목을 치십시오!”

그리고

-쾅!

-쾅!

……

-쾅!

뒤를 따르듯 성균관 유생들이 일제히 도끼를 휘둘렀다.

기세는 하늘을 찔렀고, 살이 따가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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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적의 양손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문서를 뒤적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엄청난 분량의 문자를 인지하고자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

살피면 살필수록 좋은 일이었다.

지금껏 십수 번을 검토하였으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횟수가 늘어날수록 결과는 더 좋아졌다.

“어떤가?”

그간의 검토를 마무리하는 날이었기에 윤선도는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물음을 던졌다.

“선생. 조청 어업 협정이 관철된다면 조선은 엄청난 이익을 취할 수 있습니다.”

“허.”

“추상적으로 청국의 바다에서 어류를 구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본부장이 이를 위해서 중대본의 주요 인사를 한 명씩 만나서 설득한 이유를 알 수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인가?”

“예. 놀랍군요.”

“제기되는 문제는 없는가?”

“호조판서로서는 없습니다. 그러나 남인의 영수로서는 문제를 제기해야겠지요.”

본격적으로 행동을 결행하기 전 가장 문제가 된 건 조청 어업 협정의 실체였다.

가난한 나라 조선으로서 어떤 행보를 취하는 게 가장 합당한지,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여 일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최종 결론은 조청 어업 협정은 반드시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작금의 정국이 줄타기보다 아슬아슬하였기에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선생께서는 어찌 되셨습니까.”

“한때 북벌을 당론으로 채택하였던 우리 남인이지 않은가. 응당 분연히 일어설 것이네. 그간 통관 이일선의 패악질에 분개하고, 정사 뇌호의 오만함에 애써 노기를 감췄을 뿐이니까.”

“위정척사파의 움직임도 적절하니 상황은 더 바람직하겠군요.”

“물론일세.”

이만하면 됐다.

허적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청 어업 협정의 폐기를 당론화하겠습니다.”

“천은이 참으로 황공하나 조선은 자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외치겠네.”

“하하하. 좋습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아. 우리 조선인은 압록강 이북의 쌀은 먹지 못한다고도 하겠네.”

“하하하! 정사 뇌호가 기절초풍할 것입니다.”

자신감이 잔뜩 실린 웃음은 참으로 호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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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치십시오!

……

-목을 치십시오!

-목을 치십시오!

지금도 밖에서는 윤증과 위정척사파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조선말이었으니 이제는 따라 외칠 수 있을 정도로 지겹게 들었다.

그런데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부른 송준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송구하지만 대인. 윤증은 일파의 수장입니다.”

“해서, 통제할 수 없다는 말이오?”

“소인이 그의 스승이며, 예판이 부친이지만 어찌 강제할 수 있겠습니까.”

“하면, 지금 저들이 대청국의 정사인 나를 핍박하는 일을 그냥 지켜만 보겠다는 것이오?”

“대인.”

“허. 하면, 지금 대청국의 정사인 나를 핍박하는 일을 그냥 두고만 보겠다는 것이오?”

뇌호의 입에서는 거친 발언들이 쏟아졌다.

차분하게 듣던 송준길은 끝내 곤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인. 지부상소입니다. 이를 강제하면 탈이 납니다.”

“그저 기세를 올리기 위한 수단이라고 들었소.”

“……대인. 조선의 사대부는 단지 기세를 올리고자 지부상소를 행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걸 각오가 없는 이들은 애초 시작도 하지 않습니다.”

“되었소.”

“백 보 양보하여 대인의 말씀이 옳아도 문제입니다. 만일, 단 한 명이라도 분을 참지 못하여 일을 자행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진정 저 많은 이들 중 목숨을 던지는 이가 한 명도 없다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

“대인. 그때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변발령은 양국의 첨예한 대립을 부르는 논제가 될 것인데, 이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송준길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중 누군가의 ‘죽음’을 계기로 변발령 외교 정국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뇌호에게 엄청난 압박이었다.

특히, 일전에 변발령을 사실상 공식화한 모종의 흐름까지 불거진다면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疊疊山中)이자 진퇴양난(進退兩難)이었다.

“대감. 하여, 저들을 이대로 두자는 말씀입니까?”

“내가 통관이라면 이 사태를 방기(放棄)하지 않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방기라니요?”

뼈있는 말에 이인설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하지만, 이미 전처럼 고압적인 태도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변발령 정국을 거치면서 위치가 흔들렸고, 위세는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양측의 말을 조선 역관이 바쁘게 전하는 상황이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또한, 송준길도 이인설과의 대화를 더 이어가지 않았다.

“대인. 통관 이일선의 처우는 이미 우리 조정과 합의하여 결정되었습니다. 한데 이를 번복하셨으니, 어찌 윤증과 위정척사파가 침묵하겠습니까.”

“이미 말하였소만, 이일선은 변발령과 아무런 관계가 없소.”

“이미 통관 이일선은 변발령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어찌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일선의 복귀가 변발령의 부활로 직결되는 정국을 강조한 말이었다.

하지만 정사의 권한으로 직권 처리한 사안에 관하여 판단이 틀렸음을 언급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에 뇌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변발령을 뒤에서 획책한 무리가 유형원과 윤휴라고 확신하오.”

“…….”

“모르겠소? 지금 조선인이 대청국 사신단을 음해하였소. 이보다 중요한 사실이 어디 있소?”

“증좌가 있습니까?”

“아무래도 조선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은 듯하오?”

“무슨 말씀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대국의 정사가 그토록 부지런하였소?”

“…….”

“내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물증이라도 확보해야 하오? 직접?”

“…….”

대저 대국의 사신은 이러했다.

그들은 세 치 혀로 모든 걸 일궈낼 수 있다.

뇌호는 오만한 눈빛으로 송준길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간 공의 입장을 고려하여 지켜봤을 뿐이오. 한데, 도끼를 들고 소란을 피우고 있소. 조선 조정에서 이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다면 더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이 있습니까.”

“하하하! 방법이라고 하였소?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구려.”

“대인. 아무래도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오해?”

“만에 하나 남인의 일부 무리가 변발령을 획책한 것이라면 어찌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밑에서부터 은근하게 울리듯 전해지는 송준길의 목소리에 담긴 의미는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점차 커지던 뇌호의 노여움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없던 일을 만들어 대국의 사신을 모함한 일입니다. 이를 입증해낼 수만 있다면 정국의 흐름은 일거에 변할 것입니다.”

“가능하겠소……?”

“중요한 건 소인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라는 것이지요.”

정치적 욕망이 잔뜩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함께 만들어진 송준길의 미소는 참으로 청아했다.

그 미소만 봤을 때는 모두가 흠모하지 않을 수 없는 대학자의 모습이었다.

“실은 소인도 윤휴의 행동이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관례에 불과한 일을 문제 삼아 사람을 이토록 타박하니, 어찌 인내만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의아한 건 대인과 소인의 은밀한 일을 그가 어찌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말과 함께 대화의 결이 바뀌었고, 공기의 흐름이 흔들렸다.

급박한 정국으로 인하여 놓쳤던 핵심이었다.

“……그들은 남인의 중추라고 들었소.”

“금상의 치세에 이르러 남인이 크게 융성하였으나, 소인의 뒤를 밟을 수는 없습니다.”

“…….”

“혹시 그 일을 아는 이가 더 있습니까? 분명 대인과 소인만의 일이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뇌호가 이일선을 쳐다봤다.

잠시 바라본 게 아니라 대놓고 쏘아보는 수준이었다.

두 사람의 미묘한 기류를 송준길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말했다.

“얻을 게 없으면 무모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지요.”

무럭무럭 자라는 갈등의 씨앗을 제거하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이일선의 입장을 변호하는 것이었다.

송준길의 말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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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짐을 쥐고 하늘을 바라봤다.

재해를 알리는 장계의 수가 갈수록 많아졌다.

수만 많아진 게 아니라 시간의 간격도 줄었다.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조선이 자력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미증유의 재해.

하여, 우리는 조선의 외부에서 길을 찾아야 하기에 최선을 다하여 청을 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선은 작금의 대청 외교를 기어이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했다.

성공은 거창하지 않다.

하나도 내어주지 않고 얻기만 하는 것이다.

나는 조선의 자존심조차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오직 취하기만 할 것이다.

“대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돌아보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한 장의 서찰이 올려졌다.

힘을 주지 않고 천천히 서찰을 펼쳤다.

내용은 한눈에 담길 정도로 길지 않았다.

짧고 굵은 핵심만 담긴 것이다.

“…….”

허투루 넘길 글자는 없었다.

한 글자씩 차분하게 놓치지 않고 읽었다.

눈에 담긴 글자가 뇌로 전해지기도 전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래서 송준길이 역사에 그토록 진한 이름을 남겼겠지.”

나한테 잔소리할 그 언변이라면, 뇌호의 뇌를 녹이는 건 일도 아니겠지.

타박할 수 없으니 최대한 말을 꼬아버리며 상대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였을 상황이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뇌호와 이일선의 기류가 묘하다……?”

어렵지 않게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일선의 복귀가 ‘신뢰’로 이뤄진 결과가 아니라 철저하게 정치적 판단에 기인한 것이라는 의미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을 진행하고자 하였으나 제법 큰 오차가 발생했다.

일이 계획보다 더 잘 풀렸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하늘이 조선에 대기근을 내리셨으나 뇌호와 이일선을 주셨으니 어찌 가혹하다고만 하겠는가.”

엷게 웃었다.

너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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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텄다.

평소와 다른 점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건 새의 지저귐이 그러할 뿐, 두 발로 걸으며 언어를 구현하는 이들의 세상은 어제와 달랐다.

시발점은 송준길이었다.

-전하. 신은 억울하옵니다.

윤휴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상황이 이리되자 그간 송준길의 침묵을 사실상 시인(是認)으로 여겼던 관리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물론, 대립도 발생하였다.

-암. 다른 분도 아니고 송준길 대감일세. 어찌 그런 부정과 가까이하시겠는가.

-그러나 백호 선생이 아예 없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을 건데.

-없는 말이지.

-허. 무슨 말을 그리하나?

-하면, 증좌가 있나?

-해서, 그저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는 건가?

-흥! 그건 더 지켜보면 알지 않겠나?

또한, 자연스럽게 대간은 일제히 무고죄(誣告罪)를 운운하며 윤휴를 맹폭했다.

그간 윤휴의 단독 연좌로 생명을 이어가던 사안은 대간을 등에 업은 송준길의 본격적인 등판으로 첨예한 대립을 예고했다.

이때 확전의 신호탄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나는 뇌물을 받은 적이 없으며, 본 적도 없다. 더는 모멸감을 참을 수 없으며, 이를 방기하는 조선 조정의 행보도 좌시하지 않겠다.

뇌호의 경고가 조선 조정을 압박했다.

청국 사신단 정사의 대대적인 지원까지 펼쳐지자, 홀로 연좌하던 윤휴는 사실상 고립됐다.

그러나 언제라도 남인 세력이 등판할 수 있기에 폭풍전야(暴風前夜)로 봐도 무방했고, 전망되는 상황은 악화일로(惡化一路)가 유일했다.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나설 때가 되었다.

상황을 더 혼란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하니 말이다.

“백호.”

“…….”

“자네가 연좌에 나섰을 때부터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었네.”

강행군이라는 말도 부족한 강렬한 연좌를 지속하였기에 얼굴에는 피로감이 잔뜩 묻어났다.

그러나 눈빛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백호 윤휴였다.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나를 삼켜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인과 대사헌 사이에 부정이 있었다면 이는 두 사람만의 일이네.”

“…….”

“한데, 자네가 이를 어찌 알고 있나?”

물론, 역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세계관이 구축된 정계에서 그들은 그저 말을 옮기는 도구일 뿐, 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만약 역관이 은밀한 일을 여기저기 옮겼다면 삼족을 죽여달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짜인 각본대로 답변이 나올 일만 남았다.

-통관 이일선이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통관 이일선이 제 보신을 요구하며 전한 내용입니다.”

애드립이 아주 걸작이다.

호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인가.”

“조선 조정과 청국의 통로가 자신으로 단일화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정말이지 이런 담대함은 타고나는 걸까?

알 수는 없으나 확실한 건, 윤휴는 정말 뜨거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허.”

“그러면서 자연스레 말이 새어 나왔습니다.”

“지금 청 사신단이 조선 조정의 내분을 획책하였다는 건가?”

“소생은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소생은 어떠한 다른 마음이 없으며, 오직 정도를 걷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잠시.”

참으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짐짓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그 시점이 언젠가?”

“…….”

“정확하게 이일선이 자네를 찾은 시점을 묻는 걸세.”

“아…….”

“작은 거짓이라도 말한다면 당장 상투를 잘라버릴 것이네.”

대놓고 해답지를 던졌다.

그리고

“처음 이일선이 소생을 찾은 건 변발령이 번지기 이전입니다.”

완벽한 답안지가 나왔다.

나는 말 끝을 끌었다.

“혹시…….”

“유구무언입니다.”

이만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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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뇌호는 손에 잡히는 걸 모두 집어 던졌다.

“이일선!”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퍼부었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서슬 퍼런 기세에 이일선은 사색이 됐다.

“이일선…….”

“대, 대인. 소인은 아닙니다.”

“내가 고작 네놈을 어찌하지 못할 줄 알았더냐? 고작 만주어에 능하다는 것이 네놈의 존재 이유다. 천한 놈이 주제넘게 날뛰어도 관대하게 넘어갔다. 한데, 네놈 따위가 감히…….”

“대, 대인. 소인은 정말 억울합니다.”

“하! 억울? 내가 고작 네놈 따위의 억울함을 신경 써야 하느냐?”

고압적인 뇌호의 언행에 이일선의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청국의 통관이 된 이후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 머리를 집어삼켰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 넘을 수 없는 신분의 장벽, 그리고 하늘이 두 쪽 나도 바꿀 수 없는 국적이 사방을 짓누르며 다가왔다.

미천한 신분이며 만주인이 아닌 이일선은 뇌호의 고압적인 태도에 숨이 턱턱 막혔다.

속이 거북하여 무언가를 토해내고만 싶을 정도였다.

이미 세 치 혀는 언어를 만들어낼 능력을 잃었다.

“윤휴의 말이 거짓이라고 하였느냐? 한데, 무슨 의미가 있지? 이미 조선의 사대부는 사분오열이었거늘 네놈의 패악질로 단결하고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느냐? 고작 네놈 따위로 대사가 그르치게 된 것이야.”

“!!!”

“또한, 이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더는 네놈을 신뢰할 수 없으니까.”

“!!!”

“분명히 말하지. 다시 또 내 눈앞에 나타나서 그 간사한 세 치 혀를 움직이면 목을 자를 것이다.”

“!!!”

“나와 조선이 네놈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릴 수 있게, 숨도 크게 쉬지 말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이일선은 감히 대답도 하지 못하고 세차게 고개만 끄덕이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대, 대인!”

급보였다.

“남인이 대거 움직여 협상의 전면 폐기를 주장하였습니다.”

뇌호의 안색이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뭐라……?”

“조선은 아직 황은을 입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

“어차피 배도 없다는 게 실무적인 이유였습니다. 또한…….”

“말하라.”

“조선인은 압록강 이북의 쌀을 먹으면 탈이 나니 반려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

화도 웃음도 나오지 않을 명분이었다.

하늘이 노래지는 것만 같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졌고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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