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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38화 (138/298)

138화 This is Joseon(6)

송준길의 안색은 딱딱했다.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여 노출한 것이 아니었다.

작금의 엄중한 정세가 유발한 현상에 불과했다.

이를 고스란히 담았기에 어두웠다.

“윤휴의 말이 사실입니까.”

“…….”

“대인.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소인에게는 모두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대책이라도 세울 수 있습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소.”

“소인은 지금 대인의 생각을 여쭙는 것입니다.”

“…….”

송준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명백한 추궁이었다.

고작 번국의 관리가 감히 대국의 정사를 질책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으나, 뇌호는 불쾌감을 표출하기는커녕 항변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송준길은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잠시 찌푸렸다가 쏟아내듯 말을 이었다.

“조선은 소국이지만 중화의 질서를 유지하는 큰 축입니다. 대국의 사신이 조선을 가볍게 여길지라도 이를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

“한데, 작금에는 조선 조정의 분란을 노골적으로 야기(惹起)했습니다. 통관 이인설의 이러한 책동(策動)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행위입니다. 파장은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애초 제압해야 할 무리였소. 이참에 강경책으로 전환하는 게 어떻소?”

“…….”

“내가 직접 전하를 알현하겠소.”

“하면, 일은 봉합될 것입니다.”

“내키지는 않으나 지금은 이것이 상책이오.”

“예. 황상의 위력을 앞세우면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저 작금의 위기를 피하는 데 그칠 뿐, 본질에는 변화가 없을 겁니다.”

“공이 있거늘 어찌 변화가 없다고 하겠소이까. 나는 충분히 만족하오.”

흐르듯 나온 말이었으나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조선 외교의 목표를 하향(下向)하겠다는 말이었다.

송준길은 일이 지독하게 틀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긴장의 끈을 다시 잡았다.

짧게 고민했다.

“소인이 친청파가 되겠노라 결심한 건 오직 조선의 국익을 고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지금껏 조선의 친청파는 사대부의 올곧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핵심은 그들이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전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권세를 탐한 행위였으니 어찌 조정의 환영을 받았겠는가.

“이를 잘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친청이라는 가치가 외부의 압력에 의하여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이 나라 조선에서 자생적으로 태동해야 합니다.”

“…….”

“대인이 전하를 알현하여 위력으로 일을 마무리하면 어찌 자생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친청은 누군가의 권세와 이익의 다른 말이 될 뿐입니다.”

“…….”

뇌호는 다시 말문을 닫았다.

송준길은 자연스레 말을 돌렸다.

“한데, 외부에서 그러한 협잡을 하였습니다. 대체 조선의 사대부를 얼마나 가볍게 여겼으면 이리할 수가 있습니까. 되돌아보면 사대부들이 분연히 일어난 계기는 이일선의 역할이 지대했습니다. 지금은 아예 불을 붙인 격이지요.”

“…….”

“심지어 변발령과 관련한 발언도 있었습니다. 정황이 명백합니다.”

이미 이일선을 내쳤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다시는 조선에서 그런 패악질을 일삼는 이가 없도록, 철저하게 짓밟고 정치적 생명을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또한, 이는 조선이 취할 외교적 승리의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대인. 친청파의 수립만 보십시오. 이를 위한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뇌호의 판단력을 최대한 흐리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대국의 사신이라는 고압적인 위치에서 비롯한 기세를 밀어낼 수 있다.

“대인. 소인은 황상께서 격노하실까 너무나도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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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皇上).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언급됐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동시에 비루해진 처지가 너무나도 쓰라렸다.

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언제부터인가 상황은 너무나도 고약하게 흘러갔다.

자연스레 가장 쉬운 상대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토록 엉망으로 꼬일 줄 알았다면 이일선의 복귀를 꾀하지 말았어야 했다.

조선 조정을 짓누르기 위한 정치적 논리로 감행하였는데 그야말로 자충수가 된 꼴이었다.

“소인도 협상의 무효를 주장하겠습니다.”

“무슨 의미요?”

“일전에 말씀드렸듯이 소인 역시 협상의 무효를 청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이는 대국의 위력을 체감하고 황은을 받들기 위함이었지요. 한데, 호조판서 허적은 반청의 수단으로 휘두르고 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그 기세가 예사롭지 않으니 어찌 겨룰 수가 있겠습니까. 당장은 화를 피하는 게 옳습니다.”

조목조목 상황을 분석한 말을 들으며 고소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만동묘 건립이 강행될 수도 있습니다.”

송준길의 언행도 갈수록 과했다.

사세의 어려움은 알겠으나 언제부터인가 말을 가리지 않았다.

태도만 정중할 뿐이었다.

“해서, 내게 요구하는 게 무엇이오?”

“통관 이일선을 다시 버리셔야 합니다.”

“혹시 조선의 법도로 그를 벌하자는 말을 하오?”

“비록 죄가 크다고 할지라도 황상의 신하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인의 권한이라면 대국의 법도로 그를 엄히 다스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 또한 과했다.

하늘 아래 번국에서 대국의 관리를 벌하라는 예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일선을 어찌 하는 건 오직 대국의 일이다.

조선이 이토록 깊게 관여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번에도 이일선에게 엄중한 경고를 했소. 그를 공식적으로 접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오만.”

“이미 한 차례 겪은 과정입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쉽사리 이해하겠습니까.”

“허.”

“대인께서 용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심장에서 올라오는 불쾌감만큼 머릿속에서는 이성이 움직였다.

송준길의 말이 과하여 불쾌하였지만, 이를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도 있었다.

명백하게 수모(受侮)를 겪고 있었다.

이는 친청파의 확립이라는 공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하여, 그간 송준길의 말을 신뢰했다.

몇 번이나 합을 맞췄다.

하지만, 매번 더 격렬한 조선 사대부의 반발에 힘을 쓰지 못했다.

안다.

송준길도 최선을 다했다는 걸.

그런데 매번 이런 식이다.

언제 성과를 낼 수 있겠는가.

또한, 더는 번국에서 모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심장의 불쾌감과 머리의 이성이 만났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귀공의 말이 다 옳소.”

“하면…….”

“한데, 공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소. 내 말이 틀렸소?”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들을 벌하라고 하지는 않겠소. 그러나 이대로 상황을 관망하는 건 도저히 아니외다.”

“대인.”

“전하를 알현하여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겠소.”

“대인. 그리하면…….”

“되었소. 내가 알아서 마무리할 것이오.”

단호하게 정리했다.

그런데 송준길의 표정이 참으로 묘했다.

살짝 뒤틀린 듯한 느낌이었다.

의아하였는데

“알겠습니다. 대인. 소인은 그에 발맞춰서 일을 준비하겠습니다.”

곧장 수긍하니 더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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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졌다.

그의 시선이.

피하고 싶었으나 너무 빤히 쳐다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늘 이런 식이었다.

정말이지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하. 일은 참으로 순탄하옵니다.”

“내가 봐도 그렇소. 그저 후대가 작금의 정국을 어찌 바라볼지 궁금할 뿐이오.”

“가장 조선다운 모습으로 평가하지 않겠사옵니까?”

“도성 곳곳에서 연좌가 진행되고, 상소는 빗발치니 참으로 조선답소?”

“…….”

“태조께서 이 나라 역사를 개막하신 이래, 작금의 정국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사대부가 움직였던 때가 있었나 싶소만.”

말이 허공에서 미친 듯이 헛돌았다.

계속 이런 식이면 나만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넘을 수 있는 상대도 아니기에 과감하게 백기 투항을 선택했다.

“전하. 조만간 뇌호가 알현을 청할 것이옵니다.”

“…….”

“대사헌 송준길과 뇌호가 합을 맞춰서 1만의 힘을 내면, 우리 사대부가 2만의 힘으로 밀었사옵니다. 다시 그들이 3만의 힘을 내어도 우리는 4만의 힘을 내었사옵니다. 이는 뇌호의 힘을 미연에 좌지우지하였기에 그러하였사옵니다. 하여, 이제는 가진 힘을 모두 사용하고자 알현을 청할 것이옵니다.”

설명을 더 보태려고 했다.

그런데

“전쟁.”

이게 무슨 말……?

나도 모르게 용안을 빤히 쳐다봤다.

“전하?”

“내가 전쟁을 원하는 건 아니오. 알지요. 너무나도 잘 알지요. 만일, 청군이 압록강을 넘으면 승전은 고사하고 종묘사직을 지키기도 어렵다는 걸 말이오. 백성의 고통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

“하여, 무릎을 꿇어서라도 피해야 하오. 그런데 피하고자 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소?”

“…….”

“원하지 않소. 그러나 피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세운다면 어찌 화가 이르겠소.”

“어인 하교이시옵니까?”

“최근 훈련대장 이완에게 밀지를 내렸소.”

“예……?”

밀지……?

심지어 구휼미를 운송하고 있을 이완에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스치는 게 있었으나 현실성이 너무나도 떨어졌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이연의 말을 들어야 한다.

“구휼미를 나누어 넉넉하게 군량미를 확보하라.”

“저, 전하.”

“하여, 의주에 주둔할 것이며 따로 명하기 전에는 한 치도 움직이지 말고 자리를 지켜라.”

“!!!”

심장이 털컥 내려앉았다.

아연실색(啞然失色)했다.

“저, 전하.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정사 뇌호가 기어이 이대로 귀국을 선언하면 무슨 수로 막을 것이오?”

현재 우리가 뇌호의 발걸음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왕의 옥새가 찍힌 협정 체결문이었다.

곤룡포, 조청 어업 협정 등 조약의 모든 건 문서에 옥새가 찍혀야만 공식적으로 발의된다. 청 황제의 동의는 그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뇌호가 이를 포기한다면 귀국을 막기가 난망한 게 사실이었다.

“배수진을 친 뇌호는 전쟁을 운운하며 우리를 겁박할 것이오. 황제를 언급하면서.”

“…….”

“황도로 돌아간 그의 말에 황제는 어찌하겠소? 재차 사신을 보내어 조선의 기둥을 뽑으려고 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대군을 출병할 수도 있을 것이오. 위협을 위해서라도 이리할 것이오. 당연하오. 나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니 말이오.”

“…….”

“이를 피하자면 뇌호에게 전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준비 태세를 보여줘야 하오.”

이연의 목소리는 확신이 가득했다.

자신감과 자부심이 아니라 사생결단의 각오가 담겨 있었다.

“뇌호가 황제를 만나기 전에 이를 각인시켜야 하오. 그래야만 그는 경거망동할 수 없을 것이외다. 조선의 준비 태세에 대한 모든 정치적 책임을 감내해야 할 것이니 말이오.”

“…….”

“기어이 뇌호가 요지부동이면 나는 즉시 몽진 준비에 착수할 것이외다. 최대한 먼 곳으로.”

“전하.”

“이런 각오. 이런 결의를 말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전하고자 훈련도감을 의주에 주둔시킨 것이외다.”

이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어쩌면 정말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지도 모르기에 번뇌가 손으로 전해진 것이다.

“본부장.”

“이르시옵소서.”

“사신을 다시 보내면 정사를 참할 것이며, 대군이 오면 목숨을 걸고 응전할 것이외다. 이 나라 조선의 군왕은 전쟁도 불사할 것이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뇌호를 굴복시키시오.”

소국이 전쟁을 피하지 않는다면 대국은 전쟁 외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여기서부터 고도의 정치력을 동반한 외교가 진행된다.

정확하게는 굳이 전쟁을 원하지 않을 대국에서 이리하게 된다.

소국은 한발 물러설 수 있게 된다.

하여, 이연의 말은 선전포고가 아니라 가이드 라인이었다.

모든 걸 동원하고, 무슨 말을 해도 된다는 위임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무거운 마음에 감히 나서지 못할 때였다.

“생각해봤는데 청국의 곤룡포를 입는 건 너무 끔찍하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너무 진심이 느껴져서였다.

“다시 말하지만, 훈련도감은 그저 의주에 있을 뿐이외다. 우리는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소.”

“하하하. 신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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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호의 표정은 싸늘했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마주한 상대가 조선의 군왕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참으로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그야말로 대국 사신의 전형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들었소만.”

“전하. 소인이 최근 조선의 혼란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대국에서 번국의 내정까지 이리 살펴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괘념치 마시오. 이는 어디까지나 조선의 일이오.”

송준길은 친청파를 결의했다.

한배를 탔기에 그의 지혜와 위치를 빌리고자 적절하게 처세하였다.

그러나 마음을 확실하게 먹은 이상, 더는 비루한 처세를 이어갈 이유가 없다.

“물론입니다. 소인이 구태여 번국의 일에 신경 쓸 이유는 없지요. 예. 전혀 없습니다.”

고작 번국의 일이다.

이를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연의 안색이 살짝 찌푸려졌다.

“한데, 저들이 대국의 관리를 능멸하고 있습니다.”

“…….”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그저 연좌에 불과하오.”

“그건 조선의 입장이지요. 소인은 더 듣고 싶지 않습니다. 감히…….”

오만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황상의 신하를 욕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

“심지어 소인은 황상의 대리인인데 말입니다.”

눈빛, 말투, 표정…….

무엇 하나 예를 취한 건 없었다.

오직 힘으로 밀고 갈 뿐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선비의 연좌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하지만 책임자를 벌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책임자라고 하셨소?”

“그렇습니다. 작금의 조선은 일제히 반청을 부르짖고 있지 않습니까. 책임자를 벌하여 정국을 쇄신할 것을 청합니다.”

연좌를 어찌할 수 없다면 관복을 입은 이를 벌하면 된다.

참으로 적절한 인사가 있었다.

“본부장 송시열을 파직하여 귀양보낸다면 어찌 일이 더 커지겠습니까.”

바로 송시열이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껏 송준길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건 세력의 문제였다.

같은 서인이라고 할지라도 송시열이 영수로서 존재하니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었다.

그런데 만일, 송시열을 정치적으로 제거할 수만 있다면 어찌 되겠는가.

공백을 송준길이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산림의 영수에 송준길이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조선의 7할을 좌지우지하는 이가 명실상부한 친청파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소인도 더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딱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조선이 알아서 할 일이다.

사분오열이 나도 무슨 상관인가.

고작 번국의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만일 내가 거절하면 어찌 되오?”

이연의 반응이 예상과는 달랐다.

뇌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쉽게 결정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틀렸소. 이는 아예 결정할 일이 아니오. 나는 정사의 말을 들어 신하를 벌할 생각이 없으니까.”

“본부장 송시열을 파직하여 정국을 쇄신하여 주십시오.”

“못 들은 걸로 하겠소.”

“소인은 다 전하였습니다.”

“끝내 내가 듣지 않으면 황상께 고하여 황군이라도 출병할 계획이시오?”

“조선이 반청의 성지로 변모하고 있거늘 어찌 묵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시오.”

“허. 지금 황군과 전쟁이라도 하시겠다는 겁니까?”

“정사가 그걸 원하는 듯하여, 뜻대로 하라고 하였을 뿐이오. 내가 이를 어찌 막소?”

“허.”

“물러가시오.”

“좋습니다. 귀국을 청합니다.”

빈손으로 가겠다는 최종통보였다.

순식간에 전운이 치솟았다.

뇌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편히 돌아가시오.”

조선왕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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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호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러나 이내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미 조선왕에 대해서는 겪을 만큼 겪었다.

처음 사신연에서도 호전적인 발언을 내뱉었지 않은가.

이번도 마찬가지다.

그저 혈기를 다스리지 못할 뿐이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조선에서 발생한 일 중 황제가 좋아할 만한 일이 전혀 없다.

이를 근거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겁박을 하였으니 조선 조정에서 알아서 반응할 것이다.

조선왕을 떠올리며 한껏 비웃으며 퇴궐할 때였다.

“조선은 조선의 길을 가는 것이 옳사옵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렸다.

윤선도와 남인들이었다.

참으로 오만방자한 무리가 아닐 수 없다.

황제의 대리인이 지나가는데 저리 나서고 있으니, 어찌 참을 수가 있겠는가.

대사가 마무리되면 저들은 꼭 벌하리라고 다짐했다.

비웃으며 걸었다.

그때 윤선도와 시선이 마주쳤다.

눈을 부라리며 노려봤다.

그런데 윤선도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불쾌하여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윤선도의 입이 움직였다.

“전하!”

여전히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한마디를 외친 윤선도는 다시 묘한 웃음을 지었다.

뇌호는 너무나도 불쾌하여 노려봤다.

그런데

“조선이 중화의 적통이옵니다!”

“!!!”

그의 말은 모든 활동을 멈추게 했다.

“하여, 간곡하게 청하옵니다!”

묘했다.

이상했다.

이 순간 윤선도의 눈이 웃는 것만 같았다.

아니,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감히…….

중화

“지엄하신 어명을 내리시어 소중화(小中華)를 천명하소서!”

“!!!”

뇌호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만동묘의 건립은 중화 계승의 시작이 될 것이옵니다!”

“!!!”

“만일 윤허하지 않으신다면 신들이 감행하겠사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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