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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40화 (140/298)

140화 This is Joseon(8)

국력(國力)이 모든 걸 규정한다.

고작 이일선 따위가 조선에서 그토록 큰 패악질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오직 청국의 통관이라는 이유였다.

조선의 군왕과 대신이 뇌호의 눈치를 살핀 건 오직 청국 사신단의 정사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사람이 아니라 국적(國籍)이 이유였다.

하지만, 대국의 위세가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들은 그저 국적이 다른 사람에 불과하다.

-쾅!

-쾅!

-쾅!

……

-쾅!

-쾅!

일만 산림이 흉포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노골적인 살기까지 담겨 있었다.

분명 지부상소였으나, 본인의 목이 아니라 상대의 목을 정면으로 겨냥한 상황에서 이미 지부상소가 아니었다.

그러하니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당백의 무장이라고 할지라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 순간 뇌호는 황제의 대리인이 아니라 그저 무기력한 개인일 수밖에 없었다.

“…….”

여전히 도끼를 내민 채로 뇌호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봤다.

겁에 질린 뇌호의 눈동자를.

느낌 왔다.

이겼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완승이었다.

일어섰다.

걸었다.

다가갔다.

지척에 이르렀다.

말했다.

“대인.”

“…….”

이연은 말이 아닌 다른 방책을 통하고자 하였다.

옳다.

말이 많으면 탈이 생긴다.

그런데 백 번을 생각해도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설령 찾더라도 우회로다.

지금은 시간도 촉박하지 않은가.

하여, 말했다.

“훈련도감이 어찌하여 아직 평안도에 있을까요?”

조선은 청을 감당할 수 없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고작 뇌호 따위를 어찌하지 못하겠는가.

나는 오늘 조선과 노회를 운명 공동체로 만들어낼 것이다.

“정확하게 여쭤야겠군요.”

“…….”

“조선의 최고 정예군이 어째서 의주에 있을까요?”

“!!!”

나는 그저 상황을 말하였을 뿐이다.

격하게 흔들리는 뇌호의 눈동자를 편안하게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무조건…….”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였다.

귀를 기울였다.

“수용하겠소.”

무조건 항복이었다.

나는 싱그럽게 웃었다.

그리고

-턱!

도끼를 던졌다.

그러자

-턱!

-턱!

-턱!

-턱!

-턱!

……

-턱!

-턱!

-턱!

일만의 도끼가 일제히 던져졌다.

어떤 훈련도 받지 않았으나 너무나도 일사불란했다.

그렇다.

저들이 바로 조선의 최고 정예 산림(山林)이었다.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승리를 재확인했다.

“재협상을 시작하겠습니다. 대인.”

자고로 승리 선언은 몇 번을 해도 부족함이 없는 법이다.

-----

맑게 웃었다.

밝게 웃었다.

활짝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참을 노력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길게 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조선 측 요구를 전하지요.”

썩은 표정을 한 뇌호의 의사를 듣지도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휴.”

“…….”

“참으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어찌해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지.”

“…….”

“예. 조선이 포기하겠습니다.”

“무엇을 말이오?”

살짝 반색하는 뇌호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구국의 결단을 내리듯.

“곤룡포는 없던 일이며, 만동묘 건립을 취소하고, 소중화도 포기하지요.”

“…….”

곤룡포는 실제로 존재했던 사안으로 청에 유리하다.

한데, 나머지 두 사안은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서 아직은 구호로 존재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같은 성격인 양 하나로 묶어서 말했다.

심지어 대승적인 양보를 하듯 말했다.

놀라울 정도로 뻔뻔한 나의 언행에 뇌호의 표정은 그냥 썩어들어갔다.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따로 있으니까.

“이제 대국이 내어주셔야지요.”

“대체 조선이 무엇을 포기하였소?”

“소중화.”

“…….”

단어 하나로 뇌호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자고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번국의 외교란 이토록 무서운 법이다.

물론 싸워서 이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건 그냥 망상이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가 중요한 건 전쟁의 결과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바다와 쌀을 내어주시겠습니까?”

“!!!”

뇌호의 안색이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섣부르게 화를 내거나 무슨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칼자루가 내 손에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동의도 하지 않았다.

고민이 많을 것이다.

나는 대인(大人)의 풍모(風貌)를 보이며 설득하듯 은근하게 말했다.

“대인.”

“…….”

“우리 같이 삽시다.”

중요한 건 우리의 생존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귀호라는 개인의 생존 말이다.

“방법이 있을 겁니다.”

“…….”

실로 담대한 포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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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호의 머릿속으로 송준길이 떠올랐다.

그는 뇌물을 내밀던 순간에도 풍모가 대단했다.

반면, 눈앞에 있는 송시열은 참으로 간악한 인사였다.

수시로 올라가는 입꼬리와 경박스럽게 웃어대는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수치심까지 치밀었다.

특히, 도끼를 휘두를 때 보였던 가벼움은 실로 참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오늘 제안이라고 꺼낸 것들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패악질도 이런 패악질이 없다.

그러나 최악으로 치달은 정세였기에 감히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굴욕을 참는 수밖에 없었다.

“다 이해했소. 그러나 내가 동의하더라도 황상께서 반려하시면 그만이오.”

“그렇지요.”

“반려만 하시겠소? 당장 내 목을 어찌하실 수도 있소.”

“능히 가능성이 있지요.”

죽여버리고 싶었다.

실행에 옮길 수는 없으나, 살심(殺心)은 도무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니 현실적인 제안을 하시오.”

“조선의 충심을 보인다면 어찌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충심이라고 하셨소?”

“설마 소인이 빈손으로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말을 하면서 웃는다.

볼수록 가볍고 경박스럽다.

저 세 치 혀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신뢰하고 싶지 않았다.

“대국은 늘 조선을 의심하였지요. 이를 충심으로 걷어내고자 합니다.”

“…….”

“향후 10년간 조선 전역에서 성을 축조하거나 보수하지 않겠습니다.”

뇌호의 몸이 일순간 굳었다.

그리고 느꼈다.

대화는 더 이어져야 한다는 걸.

진중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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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한마디로 이거나 먹고 사라지라는 의미였다.

어차피 할 여력도 없다.

전쟁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선심 쓰듯이 내지르면 된다.

내가 생각할 때 뇌호로도 썩 나쁜 조건은 아닐 것이다.

이 시절 10년은 절대 짧은 세월이 아니다.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그리고

“받겠소.”

과연 뇌호는 사양하지 않았다.

“귀공이 이렇게 대화의 물꼬를 트니 어찌 제대로 임하지 않겠소이까.”

“묘하게 기분이 나쁘지만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지요.”

“…….”

“예.”

“한데, 솔직히 말하리다. 대국에서 내어줄 것이 너무 크오.”

표면적으로 볼 때 내가 내민 조건도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최종결정권자가 어차피 황제였으니, 뇌호로서는 몸을 사리며 최대한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게 당연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동시에 나는 유형원과 나눈 대화가 스쳤다.

그러니까 산림의 총집결을 진행하기 직전이었다.

******

유형원의 표정은 아주 진중했다.

이 사람이 이리 나올 때는 묵직한 제안을 할 때였다.

만일, 작금의 정국과 관련이 있다면 정치적 의미가 상당할 것이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대감. 무엇을 내어주실 생각입니까.”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을 것이네.”

“그건 불가능합니다. 뇌호를 제압하더라도 황제의 동의가 없으면 모두 허사이니 말입니다.”

“그렇겠지. 하여, 황제가 마음에 들 만한 제안은 할 것이네. 그러나 조선은 잃는 게 없기에 내어주지 않는다고 말한 것일세.”

“혹시 국방과 관련한 일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나?”

흥미가 가득한 나의 물음에 유형원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주 잠시 숨을 고르더니 빠르게 말을 이었다.

“대감. 2천 보 길이의 성벽을 수리하려면 11일간 6천 명의 승군을 동원해야 합니다.”

“승군이라.”

“성벽 2보당 6명이 필요하며, 튼튼한 성벽을 새로 축조하려면 2보당 12명을 30일간 동원해야 합니다.”

“종래 조선의 기준보다 시간이 단축되었군.”

“그건 조선의 방식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가령 남한산성이 3년이 걸렸으나 절반의 세월은 다시 수축했습니다. 1년이면 충분할 일인데 허송세월이 참으로 길었지요.”

뉴타운 건설을 주도하는 유형원의 능력을 보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어려웠다.

“대단하군.”

“재능이지요.”

“됐네. 해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대대적으로 성을 축조라도 하자는 건가?”

“대감. 1년이면 괜찮고 3년이면 불가한 정세가 아니지 않습니까.”

“…….”

“소생은 국방이 정치의 기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조선은 국방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를 고려하는 것은 사치일 뿐입니다.”

“…….”

“한데, 이것이 사치라는 걸 저들은 모를 겁니다. 아닙니까?”

어찌 이토록 내 속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혀를 내두를 정도의 안목이었다.

“제대로 보았네. 청은 늘 조선을 의심하였으니, 국방 일부를 던지면 어찌 효과가 없겠는가.”

“동의합니다. 한데, 그것만으로 충분하겠습니까?”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기네만.”

“대감은 훗날 국경의 전면개방과, 청국과의 대대적인 무역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지.”

“하면, 이참에 황제의 신뢰를 확실하게 확보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무릇,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신뢰보다는 차곡히 쌓였을 때 더 단단하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더 있는가?”

“어차피 여력도 안 됩니다.”

“응?”

유형원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서책이었다.

그리고 내게 내밀었다.

제목이 보였다.

[군제개혁]

무섭고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눈이 가늘어졌다.

“대감.”

“…….”

“어차피 조선은 대군을 유지할 능력이 없습니다.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모든 힘을 동원하여 기근을 극복한 뒤에 다시 갖춰도 늦지 않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청국을 아예 명국 상대하듯이 하자는 것이군.”

“대국의 신뢰가 있다면 무리하게 병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지요.”

“병력이 부족하면 저들은 전쟁을 더 강하게 언급할 수도 있네.”

“10만 대군이 있으면 싸울 수는 있습니까? 아니, 10만 대군을 양병할 능력은 됩니까?”

“우문현답이군.”

피식 웃으면 서책을 한 장 넘겼다.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이거 이리하면……?”

“예. 대감. 호포제 따위는 문제가 아닙니다. 군역의 모순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생각일세.”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참에 군영을 치워버리지.”

“소생 유형원, 대감을 지지하겠습니다.”

******

상념을 끝냈다.

그리고 최고의 제안을 던졌다.

“군영을 해산하지요.”

“지금 뭐라고 하셨소?”

“훈련도감을 제외한 군영을 모두 해산하겠습니다.”

“!!!”

뇌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여유롭게 말을 보탰다.

“군축과 방어 태세의 중단. 이 정도면 조선이 대국에 머리를 확실하게 조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중앙군은 어명을 받들어 움직일 소수 정예면 충분하다.

순식간에 뇌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짐짓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습니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오.”

“아.”

“왜 그러시오?”

“황도에 가시면 조선에도 진실한 친청파가 생겼다고 꼭 말을 퍼트려주십시오.”

뇌호의 표정이 복잡해졌으나 내가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그저 말을 보탤 뿐이었다.

“소인이 대감께 수시로 서찰을 보내겠습니다.”

“뭐…… 좋소.”

산림의 영수가 친청파를 결의하였거늘 썩 좋아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굉장히 찝찝했으나 나도 더 보태지는 않았다.

한데, 궁금한 게 있소.”

“이르시지요.”

“훈련도감이 의주에 주둔한 건 진정 전쟁을 고려한 것이오?”

“허. 전쟁이라니요. 그저 의주에 구휼미를 전한 것이지요.”

“…….”

“대인.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을 겁니다.”

“하면 대체 왜 이곳에서 사직 상소를 올린 것이오?”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지요.”

“…….”

“대인.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습니다.”

“…….”

나는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대감이 압록강을 넘는 날, 조선은 어선을 출항시키겠습니다.”

“만선(滿船)을 기원하리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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