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143화 (143/298)

143화 되살아나는 망령(亡靈) 그리고(3)

숨이 턱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걸었다.

온 힘을 다해서 걸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으나 걸었다.

매섭게 걸었다.

눈을 부라리며 걸었다.

노여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당도했다.

거칠게 손을 내저었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신종(神宗) 만력황제(萬曆皇帝)]

명국 만력제의 위패가 보였다.

시선을 다시 돌렸다.

[재조지은(再造之恩)]

그냥 개소리가 적혀 있다.

이건 만동묘가 아니다.

아니 차라리 만동묘여야 했다.

“…….”

이는 사대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 만력제의 제사를 지낸다는 걸 의미했다.

비단 이곳만은 아닐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이따위 짓을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론을 응집하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만동묘는 존재하지도 않으나 구심점으로서 위상이 올라갈 것이다.

발본색원을 선언한 중대본으로서는 가장 난감한 방법이었다.

대체 누가 이를 주도한단 말인가.

“…….”

고개를 돌렸다.

젊은 무리였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느닷없는 상황으로 인한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있을 뿐, 감히 자부심 따위가 잔뜩 담겨 있었다.

물었다.

“너희가 한 일이군.”

“그렇습니다.”

“허. 참으로 당당하군.”

“소생들이 법도를 어긴 것이 아닌데 어찌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찰나였으나 말문이 막혔다.

조선의 법도를 어긴 건 아니긴 했다.

“소생들은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 대감께서 어찌 이리 노여워하시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만동묘 건립을 주창한 건 대감께서 영수로 계신 산림이었습니다.”

“또한, 소중화의 대의에도 동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소생들은 대감께서 청 사신단을 준엄하게 꾸짖은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사대부들은 부지런히 입을 움직였다.

끼어들 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잠시 막혔던 말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그냥 쳐다만 봤다.

이 행동이 어떤 오해를 일으켰을까?

다소 경직되었던 사대부들의 표정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혹시 대감께서 소생들을 살피러 오신 겁니까?”

“이런. 소생들이 오해한 듯합니다.”

“예. 서슬 퍼런 기세에 매우 놀라서 실언한 듯합니다.”

헛소리가 아주 걸작이다.

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다.

“시끄럽군.”

“대감…….”

“법도를 어긴 건 아니다. 그러나 만동묘 건립은 없을 것이며, 소중화는 사장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들었습니다.”

“한데?”

“재야의 선비들이 행하는 일을 탄압하실 수는 없습니다. 이는 언로의 봉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아.”

이대로 대화를 이어가는 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피식 웃었다.

그냥 웃었다.

말했다.

“만력제의 제사를 지냈다. 맞나?”

“그렇습니다.”

“하면, 묻겠다. 조선의 상국이 어디더냐.”

침묵으로 버틴다.

내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감돌았다.

매섭게 노려봤다.

“다시 묻겠다. 조선의 상국이 어디더냐.”

“……청국입니다.”

“명은 청국의 주적이다.”

“…….”

“하여, 명은 조선의 적이다.”

“!!!”

“너희는 조선의 적을 섬긴 것이다.”

“!!!”

공기는 일순간에 얼었다.

분위기는 급격하게 경직됐다.

손을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철거하라.”

“대, 대감!”

“추포하라.”

“!!!”

간결한 말과 동시에 병졸들이 거칠게 움직였다.

사대부들은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나 의미는 없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을 뿐이었다.

-----

전격적으로 전수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아니, 당혹스러운 수치였다.

“도성에 만력제의 제사를 지낸 곳이 10곳이 넘었소.”

무려 10곳이었다.

나는 이 수치를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담고 있는 의미가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화를 삭이고자 숨을 내쉴 때 곤혹스러운 윤선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이 아주 복잡하게 되었소. 도성에서 10곳이면 군현의 규모는 가늠할 수가 없소.”

“그렇겠지요.”

“문제는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오.”

“…….”

“본부장. 도성의 사대부를 추포한 건 과하였소. 선비는 군주에게 상소를 올릴 수 있소. 한 명이 언로를 지탱하는 존재요. 한데, 제사를 지냈다고 하여 잡아 가둔다면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소.”

“…….”

“본부장. 조정의 정치적 논리가 늘 사대부를 설득할 수는 없소.”

“선생의 말에 동의하오. 그러나 늘 설득할 필요도 없지요.”

“본부장.”

나는 만류하는 듯한 윤선도의 목소리를 밀어내듯 고개를 저었다.

백 보 양보하여 나의 방침이 강압적이라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소가 빗발칠 수도 있고, 연좌가 강행될 수도 있소. 혹은 나를 탄핵하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늘 같은 장벽을 만나게 되오.”

대명은 몰락했고 대청은 천하를 뒤덮고 있다.

조선의 사대부가 만나는 장벽은 바로 이러한 현실이었다.

이를 넘을 방법은 하늘 아래 존재할 수 없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곤란하오. 소중화의 소생(甦生)은 아무런 실익이 없소. 그토록 노력하여 도출하였던 재협상부터 무산될 것이외다. 나는 이것만 바라보겠소.”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그간 조선의 단합을 위하여 모든 걸 내려놓았소.”

말 그대로 하나 된 조선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야만 했기에 호포제도 포기했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조선의 모든 사대부가 당색을 넘어서 일치단결하여 대청 외교를 승리로 이끌었지 않은가.

그 모든 노력의 결실이 조금씩 발아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망령이 되살아나서 발목을 잡았다.

안타깝게도 그 망령은 우리가 우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되살린 것이기도 했다.

쓴 미소가 절로 생겼다.

“진실로 자생적인 흐름이라면 지금 막아야 하오. 망령이 더 힘을 얻기 전에 제압하는 게 옳소. 진실로 그래야만 하오.”

나는 안다.

만일 작금의 사태가 자생적인 흐름이라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하리라는 걸.

어쩌면 사상 초유의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 수위는 이미 우리가 경험한 바 있다.

청국 사신단을 굴복시켰던 위력이니 말이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이는 내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만동묘 그리고 소중화.”

“…….”

“모두 내가 만든 망령이오.”

오직 조선의 국익을 위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탈이 생겼다.

심지어 모든 걸 집어삼킬 수 있는 병마(病魔)였다.

“내가 해결하겠소.”

나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오직 송시열이라는 이름 석 자로 소중화와 만력제를 이 땅에서 지울 것이오.”

단호한 선언이었으며 결심이었다.

“과정에서 사대부의 반발이 있을 것이오.”

반발이 거셀 것이다.

“상소가 빗발칠 것이오.”

조정이 마비될 수도 있다.

“여차하면 연좌가 감행될 것이오.”

지부상소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괜찮다.

중대본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모든 상소와 연좌에는 오직 내 이름만이 언급될 것이오.”

오직 내가 책임진다.

“모든 비판은 나의 탄핵으로 귀결하게 할 것이오.”

빙그레 웃었다.

담백하게 말을 이었다.

“허송세월은 내가 감내할 것이니 중대본은 내일을 향하시오.”

“…….”

“나는 이미 사문난적의 방패가 되겠노라 선언하였기에 능히 감당할 것이외다.”

이만하면 됐다.

싱그러운 웃음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최근 변승업이 경상도의 광산을 취했다고 들었소.”

느닷없이 변승업의 일을 언급하는 이는 호조판서 허적이었다.

나는 쓰게 웃으면서 답했다.

“호판. 그건…….”

“호조의 수장과 논의하지도 않고 어찌 일을 펼치시오?”

“오해가 있소.”

“됐소. 나는 이를 그냥 넘길 수 없소.”

“…….”

“그러나 같이 갑시다.”

“호판……?”

“대체 이 나라 조선이 언제부터 공만 취하고 과를 떠넘겼소?”

“…….”

눈을 껌뻑이며 허적을 멍하게 쳐다봤다.

그는 괜히 시선을 피하더니 탐탁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인은 그럴지 몰라도 남인은 그리 배우지 않소.”

괜한 당색까지 언급하며 민망함을 밀어낸다.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잊으셨소? 명목상이지만 소중화를 주창한 건 나요. 한데, 어찌 발을 빼겠소?”

윤선도였다.

또 그리고

“소생이 무능하긴 하지만 원리주의를 주창했습니다. 책임이 없을 수가 없지요. 되돌아보면 무능한 게 가장 큰 잘못입니다. 그러니 응당 나서야지요.”

박세당.

“본부장 대감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하는 걸 보고 싶긴 하지만, 그건 소생이 해야 할 일이지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윤휴.

“본부장이 탄핵당하는 건 좋은 일이오. 한데, 그러면 변승업이 발을 뺄 것인데 위생국은 어찌하오? 참으로 걱정이 커서 나서지 않을 수가 없소.”

허목.

“우암. 잊었나? 시발점은 예조가 주도한 원안이었네. 그러니 내 책임이 제일 커.”

윤선거.

그리고

“군제 개혁의 공식화는 잠시 미루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괜히 불을 번지게 할 것이니 말입니다. 소생의 생각이 어떻습니까.”

아예 함께 싸우기를 공식화한 유형원.

그리고

“우암.”

송준길이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내가 자네 형일세.”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리 나오면 내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좋소. 같이 해봅시다.”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전하께 청하여 죄인을 모조리 추포하겠소.”

속전속결의 총력전 선언이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죄목은…….”

비릿하게 웃었다.

“우상숭배(偶像崇拜)요.”

-----

난리였다.

의금부가 가득찼다.

우상을 숭배한 죄인, 아니, 이교도들의 규모가 어느새 100여 명을 육박했다.

도성 인근만 전수조사했는데 이 정도 규모였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진실로 이것이 들불처럼 번진 자생적 흐름일까?

향수에 미친 광신도들이었기에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더 파악해야 했다.

아니, 지켜볼 생각이었다.

차분하게 고민을 이어갈 때였다.

“대감. 어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대관절 소생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조선의 사대부로서 재조지은을 새기는 것이 어찌 죄가 되는 것입니까!”

“소중화는 조선 사대부의 숙명입니다!”

이교도들은 핏발 선 눈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나는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말했다.

“우상을 숭배하여 나라를 어지럽혔다. 어찌 죄가 없나?”

“우, 우상이라니요.”

“우상이지. 만력제가 우상이 아니면 누가 우상인가.”

“!!!”

이교도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더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고문을 당해야 그 입을 다물겠나?”

사대부들은 흠칫했다.

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최소한의 품위라도 지키고 싶다면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걸세. 나 역시 굳이 자네들의 비명을 듣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저들로서도 굳이 고문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소생들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예. 기어이 해낼 것입니다.”

기세가 남달랐다.

조선 사대부의 기풍을 고려하면 가능한 일이긴 한데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단지 자생적으로 들고 일어났다면 이런 동질감이 발생할 수 있을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네들, 이번에 뜻을 함께했나?”

“소생들은 원래 한배를 탄 사이입니다.”

“무슨 말인가.”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남인의 학자들이니 어찌 한배를 탄 사이가 아니겠습니까.”

“…….”

원리주의 그리고 남인이라.

이미 아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 상황에 직면하니 묘했다.

이 모든 사람이 다 남인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묘했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어째서 서인은 단 한 명도 이교도가 없단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