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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44화 (144/298)

144화 되살아나는 망령(亡靈) 그리고(4)

어째서 서인은 우상숭배를 범하지 않았는가.

왜 서인은 이교도의 길을 걷지 않았는가.

머릿속을 가득 메운 의문은 오래 걸리지 않아서 풀렸다.

“대감께서 나서지 말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며칠 전 나를 찾아왔던 사대부들을 불러서 물어봤다.

그리고 답변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재차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지 그 이유인가?”

“부끄럽지만 산림에서 제외되는 걸 우려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가?”

“소생들도 소중화를 품고 싶으나, 어찌 학맥을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소중화라는 이상이 학맥이라는 현실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이런 현상이 가능한 본질적인 이유는 나, 송시열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대부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학맥을 파버릴 수 있는 권위를 가졌기에, 파문을 가장 큰 수치 중 하나로 여기는 이들을 확실하게 움켜쥘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수립한 서인은 나서지 않았다는 말이다.

알겠다.

자생적인 흐름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강하게 치솟았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합리적이었다.

대체 누가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혹은 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한 것일까.

이런 고민은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조선에 프리메이슨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이런 현상이 가능할까?

참으로 허무맹랑한 생각만 떠오를 뿐이었다.

작금의 조선에 프리메이슨이라는 건 존재할 수가 없다.

가장 프리메이슨에 가까운 존재가 나, 송시열이었으니 말이다.

다시 모든 고민이 원점이었다.

뜬 눈으로 상황을 점검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상소가 올라왔다.

상당한 수량이었다.

그리고 내용도 의미심장했다.

중대본은 고요했다.

끈적끈적한 침묵이 만든 현상이었다.

“…….”

우상숭배가 번지기 시작할 때부터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는 정국이었기에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덫을 놓았다.

얼마 전 중대본의 결의 순간이 뇌리를 스쳤다.

*****

우상숭배를 선언한 직후였다.

“하면, 속에 담은 말을 꺼내 보게.”

송준길이 넌지시 말했다.

“그게 좋지 않겠나?”

윤선거도 보탰다.

사실 계속해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으나 확실하지 않았기에 공론화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함께 걸어가기로 한 이상 숨길 이유는 없다.

나는 허심탄회하게 말을 꺼냈다.

“당시의 열기를 되새길 때 사대부들이 소중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력제의 제사를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오. 한데, 미심쩍은 부분을 놓칠 수가 없소.”

나는 윤선거와 나눈 대화를 빠짐없이 말했다.

이러할 때 곳곳에서 만력제 사당이 만들어졌다.

나로서는 개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없소.”

“…….”

“그러나 확실하게 파악해야 하오.”

모두 표정이 무거워졌다.

박세당이 조심스레 침묵을 밀어내듯 말했다.

“대감. 만일, 자생적인 움직임이 아니라면 세력이 개입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조선에서 그리할 수 있는 분들은 모두 이곳에 계십니다.”

“틀렸네.”

“예?”

“서인과 남인은 조선 전역에 뿌리를 내린 거대 세력일세. 만일 어떤 의도로 이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이를 획책하였다면 절대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질 수 없네. 총력전을 꾀하면 될 일을 이렇게 조심스레 일을 펼칠 이유가 무엇인가.”

“…….”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없네. 또, 어떤 것이라고 할지라도 넘길 수 있는 일도 아닐세.”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하여, 시작은 나 홀로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네.”

“무슨 말씀입니까.”

“저들의 상소에 송시열과 중대본. 둘 중 무엇이 적히는지 확인해봐야 하지 않겠나?”

“대감만 거론된다면 자생적인 흐름일 것이고…….”

“중대본이 거론된다면 어떤 세력이 존재하겠지.”

덧붙였다.

“세력은 절대 송시열이라는 개인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네.”

왜?

개인의 비판과 상호 간의 토론은 존중하지만 세력의 도발은 초강경으로 응징하는 것이 이 나라 조선의 기풍이다.

즉, 송시열을 공격하는 건 조선의 7할에 대한 선전포고다.

세력이 있다면 절대 범하지 않을 경우의 수였다.

이렇게 덫을 설치할 생각이었다.

******

상념을 끝냈다.

상대는 덫을 물었다.

기분이 묘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냥 그랬다.

나는 상소를 나열하며 담담하게 운을 띄웠다.

“많지는 않으나 적지도 않소.”

20여 개의 상소였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이것이 시작이라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머지않아 상소는 빗발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상숭배는 역병처럼 번져서 광신도들을 집결시킬 것이다.

조선에서 소중화는 그토록 엄청난 위력이 있는 가치였다.

“송시열이 아니라 중대본을 비판하는 내용의 상소가 올라왔소.”

“…….”

“우상숭배를 옹호하는 상소이거늘 중대본을 비판했소. 내가 아니라 중대본을 말이오.”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움직임이 일사불란하지도 않고 산발적이지도 않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오직 한 가지였다.

“단지 뜻이 같을 뿐, 통제하는 지도부가 없다는 의미요.”

단일 세력이 아니다.

같은 말을 하는 머리가 여러 개라는 것이다.

“소중화를 명분으로 사대부를 움직일 수 있을 명망과 재력이 있는 무리요.”

거대한 향수를 자극하였을 가치였다.

그러나 섣불리 움직이는 건 어렵다.

이때 어떤 제안이 있었다면 결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제안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어떠한 흑심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교도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 이교도를 고문할지라도 얻어낼 수 있는 건 없다.

괜한 행동으로 정적이 흩어지게 할 뿐이다.

이건 곤란하다.

모조리 잡아내야 하니 말이다.

“가장 본질적인 의문은 그들이 왜 중대본을 흔드냐는 것이외다.”

작금의 정국에서 중대본을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되돌아보면 지금껏 중대본은 적을 만들지 않았다.

오직 기근 극복을 위해서 모든 역량과 시간을 할애했다.

위생의 집행이나 여러 방책이 종래의 삶을 불편하게 하였을지라도 중대본을 공식 비판하는 이는 없었다.

어째서?

중대본은 누군가의 이권을 겨냥하는 개혁을 단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실체적인 정적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작금의 시기에 중대본의 정적이 탄생했다.

무엇을 도모하기 위하였을까? 이라는 의문을 시작했다.

어떤 결론을 찾고자 머릿속은 맹렬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단서를 찾듯 하나씩 말했다.

“중대본이 정적을 만들었다면 오직 하나, 군제 개혁이오.”

막대한 이권이 걸린 일이다.

복잡한 정치 공학을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

유형원의 말에 의하면 군포가 바로 이권이 되는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만일, 군영의 전면 해체로 군포라는 조세 자체를 없애려는 중대본의 행보를 누군가가 알았다면 격렬하게 반대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오. 이를 반대하는데 이런 흐름이라는 건 참으로 이상하오.”

어째서 이상한가.

군영의 해체를 반대할 명분은 너무나도 많았다.

청국의 요구를 수용했다며 굴욕 외교라는 말은 너무나도 강렬한 힘을 창출할 수 있다.

국방을 허술하게 할 수 없다는 원칙만으로도 거대한 장벽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아니었다.

아니, 군제 개혁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이교도를 만들었을 뿐이다.

해서, 한 가지 가정을 할 수 있었다.

“군제 개혁이 공식화되기 전에 무산시킬 의도라면 아주 괜찮은 방법이오.”

소중화는 강렬한 반청을 내포하고 있다.

만동묘는 이를 반영하는 상징물이다.

그러니 만일 조선 사대부 사회에서 소중화가 대세로 굳어지고, 사가에서 만력제의 제사를 지내며, 급기야 만동묘라는 정치적 상징물까지 완성된다면 군제 개혁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무너지게 된다.

당연한 일이었다.

군제 개혁은 대청 외교의 산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의문이오. 너무나도 큰 의문이외다.”

의문은 두 가지였다.

아니 한 가지 명확한 사실과 하나의 의문이었다.

명확한 사실 한 가지.

저들은 공식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문 한 가지가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만일 군제 개혁을 무산시키려는 의도였다면, 저들이 어찌하여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것이오.”

이것이었다.

“공식적으로 반포하지 않은 일인데 말이외다.”

내 시선이 움직였다.

이교도는 남인이다.

하여, 남인의 영수 허적을 쳐다봤다.

“…….”

다시 움직였다.

이교도는 소중화를 외친다.

하여, 소중화의 주창자인 윤선도를 바라봤다.

“…….”

또 움직였다.

이교도는 원리주의 계열이다.

하여, 원리주의의 수장인 박세당을 바라봤다.

서늘한 분위기가 중대본을 가득 채웠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대청 외교의 최대 성과는 따로 있었소.”

“본부장.”

“내부의 적을 이렇게 찾았으니 말이외다.”

“…….”

입술을 뒤틀며 말했다.

“잘됐소.”

진심이었다.

그리고 또 말했다.

“의금부로 모시겠소.”

“!!!”

“!!!”

“!!!”

거대한 충격이 장내를 지배했다.

그러나 나는 반론을 허용할 생각이 없었다.

“예우로 제 발로 갈 수 있게 배려하리다.”

“본부장.”

“설마 진실로 우리를 의심하오?”

“대감.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노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는 아니었다.

서운함이 잔뜩 담겨 있었다.

나는 속이 아렸으나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외다.”

말을 이었다.

“군제 개혁을 반대하는 누군가가 존재하오. 가장 큰 의문은 이들이 어찌 정보를 취득하였을까.”

“…….”

“그들이 남인, 원리주의, 소중화를 이용하여 우상숭배를 시도했소.”

“…….”

“더 말해야 하오?”

중대본의 공기는 삭막했다.

참으로 퍽퍽했다.

“결과에 따라서…….”

차가운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사화(士禍)도 가능하오.”

모두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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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의 영수가 남인 출신의 사대부 100여 명을 구금시켰다.

그러더니 서인의 영수가 남인의 지도부도 구금시켰다.

도성 전역에 사화의 분위기가 흉포하게 번졌다.

이를 인지한 남인 세력은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은 일제히 상소를 올렸다.

또한, 연좌를 감행하여 격렬하게 저항했다.

나는 남인의 저항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이었다.

싸늘한 미소가 입가를 채웠다.

참으로 우스웠다.

조선의 근간을 흔들고자 한 무리의 정체가 너무나도 가소로워서였다.

아니, 너무나도 괘씸하였기 때문이었다.

서늘한 웃음이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잘됐다.

이참에 썩은 뿌리를 모조리 뽑아낸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개새끼들이었다.

감히……

“전하께 청하겠소.”

조선의 군관들이 군제 개혁을 무산하고자 망령을 되살렸다.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훈련도감의 출병을 청하겠소.”

조선의 무장이 뒤에서 조정을 상대로 음모를 획책하였으니 역모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응당 강군의 출병이 옳았다.

“저들은 역도요.”

모조리 벌할 것이다.

그리하여 저들을 군제 개혁의 제물(祭物)로 삼을 것이다.

오직 조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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