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되살아나는 망령(亡靈) 그리고(7)
훈련도감 출병 D-5.
난리가 났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군제 개혁이라니요?!”
말은 군제 개혁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군제 개혁을 선언했기에 난리가 난 게 아니었다.
“병자년의 치욕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세세한 내용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굴욕!”
그랬다.
굴욕이라고 하였다.
“굴욕입니다!”
너무나도 강렬한 진심이 담긴 외침이었다.
“그야말로 국치이며 굴욕입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군제 개혁의 전제가 너무나도 큰 문제였다.
그러니까
“굴욕입니다!”
“국치입니다!”
“온몸으로 거부합니다!”
“반드시 막아낼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대부가 다시 단결할 것입니다!”
이교도와 잠재적 이교도들에게 말이다.
조청 협상의 전말(顚末)을 공개하자 중대본을 향한 공세는 지금까지와는 아예 결을 달리했다.
당장 중대본을 향해 도끼 휘두르며 들어와서 방화까지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과장 조금 보태서 가히 사대부의 난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괜히 중대본 인근에 무장 병력이 배치된 게 아니었다.
언제 중대본 내부로 진입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감당할 수 있겠나?”
송준길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대간을 진두지휘하는 대사헌으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의 안색이 어두울 정도로 작금의 상황은 실로 엄중했다.
“서인까지 연좌에 결합했네.”
그랬다.
그간 완벽하게 통제가 됐던 서인도 본격적으로 이교도임을 커밍아웃했다.
즉, 조선의 사대부가 한 마음 한뜻으로 총집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대동단결이었다.
먹물은 동포(同胞), 이런 거였다.
“우암.”
“아.”
나는 엷게 웃었다.
상황이 가벼워서 웃은 게 아니었다.
그냥 웃어야 해서 웃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였으니 웃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형님.”
“…….”
“어차피 넘어야 할 산입니다.”
“넘지 않아도 될 산이었을 수도 있네.”
“우회할지라도 길을 가다 보면 결국 다시 앞에 나타날 산입니다. 그러한데 어찌 피할 수만 있겠습니까.”
사실은 우회하고자 했다.
소중화의 불씨를 끈 뒤 군제 개혁을 집행하고자 했다.
또, 만에 하나라도 ‘저들이’ 군제 개혁을 방해하고자 하였다면 조청 협상이 아니라 내부의 개혁 수준으로 일을 도모할 계획이었다.
아니, 솔직히 군영 해산에 청국이라는 국호를 아예 넣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현실적으로 가장 쉬운 길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우회해야 하는가.
조선에서 ‘대청’이라는 국호는 언제까지 절대 악이며 금기가 되어야 하는가.
허적의 말이 스쳤다.
-본부장. 그거 아시오?
-무엇을 말이오?
-아직도 이 나라에 조선에는 청국에서 구휼미를 준다고 해도 반대할 사대부가 가득하오.
그의 말은 참으로 많은 걸 시사했다.
게다가 우습게도 사실이었다.
이 나라 조선에는 죽어도 청국의 지원을 받기 싫어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이들은 청국이 쌀을 그냥 준다고 해도 싫다는 이들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오직 반청이었다.
누구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최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대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경의 전면 개방이니 말이다.
하면, 이때도 우회해야 하는가?
심지어 조선의 조정에서 제대로 다뤄보지도 않았던 국경 개방이 다가왔을 때도 말이다.
저들도 우리가 청국을 함부로 언급할 수 없다는 알기에 일을 도모한 것이 아닌가.
절대 우회할 수 없다.
더는 휘둘릴 수도 없다.
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형님.”
나는 분위기를 환기하듯 엷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잊으셨습니까? 애초 사대부들의 심장을 뜨겁게 한 건 바로 우리였습니다.”
사실이었다.
사대부들의 심장에 망령이 살아 숨 쉬게 한 원흉은 바로 우리 중대본이었다.
“청국 사신단을 궁지로 몰아넣고자 소중화를 휘둘렀지 않습니까.”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어떠한 흉계도 없었다.
오직 진실함이 존재하였을 뿐이었다.
“되돌아보면 의기 그 자체였습니다. 한데, 하루아침에 어찌 그 열기가 사라지겠습니까. 이는 애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소중화가 정의로 직결되었던 시간을 만들어냈다.
또, 함께 승리를 부르짖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결과가 친청이다.
“사대부로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요.”
“우암.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그저 저들이 쉽게 이 상황을 수용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뭐 이런 뜻이지요.”
사대부들은 리모컨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다.
조선의 사대부는 가치에 살고 가치에 죽는 이들이다.
지금 사대부들이 죽고자 일어섰다.
또, 뜨거웠던 시간의 진실이 그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를 회피할 생각이 없었다.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을 어찌 탓만 하겠습니까.”
“…….”
“잘 타일러서 현실을 보게 해야지요.”
“타이른다……?”
의미심장한 말에 송준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나는 싱그럽게 웃었다.
“현실을 보게 타이른다는 것이지요.”
“자네의 생각을 말하게.”
“괜찮습니다.”
“우암. 다시 말해야 하나? 서인도 집결하기 시작했네. 기강부터 잡아야 하는데 이조차 하지 않고 있네. 한데, 괜찮다니? 어찌 이러시는가.”
“사실 무엇보다 자신이 있습니다. 저들을 제압할 자신 말입니다.”
“허.”
“형님께서는 서인이 아니라 대사헌의 역할에 충실해지십시오.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소제가 감내하겠습니다.”
덧붙였다.
“잊으셨습니까. 소제가 조정과 사문난적의 방패가 아닙니까.”
“…….”
나의 굳건한 의지를 느꼈을까.
송준길은 더 말하지 않았다.
사실 이는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절을 뜨겁게 살았던 조선인이 가져야 할 감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저 웃었다.
“아. 이왕이면 사대부들의 연좌가 절정에 이르는 게 좋지요.”
제대로 집결한다면 규모는 수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사실상 만인소였다.
그러니까 2차 만인소였다.
1차와 가장 큰 차이는 당시 지도부였던 우리가 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와 송준길이 제대로 힘을 쓰면 규모를 대폭 줄일 수는 있다.
지금 서인도 은근슬쩍 결합하는 건 재차 언급하지 않은 탓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들을 산림의 영수로서 제압하는 건 아주 곤란했다.
그저 송시열이라는 존재가 나서야 한다.
그래서 이 땅의 이교도가 전면 봉기해야 했다.
그래야만 내가 기획하고 있는 대대적인 종교탄압이 빛을 볼 것이니 말이다.
이미 나의 적은 알 수 없는 저들이 아니라 이교도였다.
하여, 전선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이참에 동기부여도 확실하게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겸사겸사 이곳에서 숙식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그냥 문을 열고 나섰다.
많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무수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
고작 수백의 무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기에 그러했다.
너무나도 가소로웠다.
“대감!”
무명의 사대부였다.
나는 턱을 슬쩍 올리며 내려봤다.
“왜 부르는가.”
“어찌하여 굴욕적인 협상을 도모하셨습니까.”
“자네 이름이 뭔가?”
“예……?”
“이름이 뭐냐고 물었네.”
논제를 치워버리는 나의 물음에 사대부가 멈칫했다.
지켜보던 다른 사대부들도 눈을 껌뻑였다.
자연스레 웅성거림도 점차 사라졌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이름이 없지는 않을 걸세.”
“소인의 이름은 어찌하여…….”
“아니, 이름을 알아야 나도 어떤 조처를 하지. 안 그런가?”
“…….”
무슨 조치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사돈의 팔촌까지 관운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이해했을 그의 얼굴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이름을 말하게.”
“…….”
말할 리가 없다.
말하면 가문에 지옥이 열릴 것이니까.
나는 이렇게 사대부의 의기를 순식간에 치웠다.
송시열의 졸렬함이 이 정도였다.
느긋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서인도 있는가?”
말과 동시에 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숨기는 이들이 있었다.
지그시 쳐다봤다.
“꼭 상소를 올리게. 그래야 이름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
“이왕이면 서인이라고 기입(記入)하게. 그게 수월하니까.”
“…….”
“아. 이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닐세. 서인과 산림의 영수로서 내리는 명이니 새기게.”
“…….”
수백의 무리가 일제히 침묵했다.
나는 한 걸음 걸으며 입꼬리를 끝까지 말아 올렸다.
“수백이라.”
“…….”
“참으로 속이 상하는군. 고작 이 정도로 내 앞을 가로막으셨나?”
다시 걸었다.
그리고 말했다.
“일만은 모아오시게. 그래야 나와 말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분위기는 급격하게 싸늘해졌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고작 수백의 무리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걸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이름 정도는 말해주게나.”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래야 나도 조처를 하니까.”
끝까지 조롱했다.
이는 아주 개연성이 넘치는 언행이었다.
가다가 다시 쳐다봤다.
정확하게는 처음 내게 말을 걸었던 남인이었다.
이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게 해줄 생각이었다.
“오늘의 무례에 대한 답은 조만간 전하겠네.”
진짜 제대로 전해줄 생각이었다.
송시열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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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던 윤증은 이내 고개를 숙였다.
마주한 이는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태산과도 같은 부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네 생각이 정녕 그러하더냐?”
“예. 아버님.”
“그 길의 끝에 무엇이 남을지 생각해 보았느냐? 혹은 무엇을 보게 될지는 고려하였느냐?”
부친의 말에 윤증은 고개를 저었다.
“소자는 아직 배우고 있습니다.”
“배우고자 가는 길이더냐?”
“짧게나마 배웠기에 가는 길입니다.”
“배웠기에 가는 길이다?”
“그렇습니다.”
이미 일파의 수정으로 대성한 아들의 결심에 윤선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어찌 그리할 수 있겠는가.
“네 뜻이 그러하다면 막지 않겠다. 그러나…….”
윤선거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돌아봐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할 것입니다.”
“그래. 너는 오늘부터 매사 나와 가문이 아닌 위정척사를 우선하여 행동해야 할 것이다.”
부친의 말에 윤증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부족한 자신을 이토록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부친이 너무나도 크고 존경스러웠다.
“소자를 믿어주시어 감사합니다.”
“나는 너를 늘 믿는다. 하여, 이번에도 네가 걷는 길이 정도라고 확신할 뿐이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윤선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저 장성한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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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는 기함(氣陷)했다.
투박해도 너무 투박하지 않은가.
대놓고 목을 내밀며 온몸으로 정면 돌파를 감행할 줄은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자네가 말렸어야지.”
“그런다고 들을 분인가.”
“그렇긴 하지만…….”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네.”
“하. 대체 이를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말 그대로 사상 초유의 상황이었다.
무려 청국의 사신단도 무릎을 꿇린 만인소였다.
아무리 송시열의 위상이 천외천이라고 할지라도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이는 군왕이라고 할지라도 버틸 수 없는 압박이다.
그러한데 이토록 엄청난 일을 저질러버린 것이 아닌가.
“주상께서는 반응이 없으신가?”
“백호. 주상께서는 절대 개입하셔서는 아니 되는 일일세.”
“알고 있네. 그저 답답해서 하는 말일세. 답답해서.”
한숨만 나왔다.
게다가 연좌하는 사대부를 향한 송시열의 조롱을 들으니 헛웃음도 안 나왔다.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한데, 자네는 어찌하여 이곳에 오셨나. 어쨌거나 구금된 처지인데.”
“실은 가택 구금이 중단됐네.”
“뭐?”
이 난리 통에 구금의 중단이라니.
바꿔 말해서 지도부의 복귀였기에 남인의 연좌에 불을 지피는 행동이었다.
윤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실은 우암 대감이 자네에게 전하라 하셨네.”
유형원이 한 장의 서찰을 내밀었다.
서둘러 내용을 확인한 윤휴의 눈이 가늘어졌다.
“불을 더 키우겠다……?”
윤휴가 다시 내민 서찰을 확인한 유형원은 피식 웃었다.
“선전포고로군.”
“어처구니가 없군. 사관이 나를 어찌 기록할지 모르겠군.”
“이거 아무래도 아예 박멸(撲滅)의 의지를 피력하신 듯한데, 어찌하실 생각인가.”
“그 졸렬한 성정을 모르시는가? 이리 나오면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유형원은 말과는 달리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린 윤휴를 보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방문객이 찾아왔는데, 놀랍게도 윤증이었다.
“자네가 어찌……?”
윤증은 부드럽게 웃으면 공손하게 예를 취했다.
“소생이 선생께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
“내게 학문을 배우고자 온 것은 아닐 것이네.”
“선생께 길을 배우고자 합니다.”
“길이라 하였나?”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윤휴는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듣기 전에 묻겠네. 자네의 의지로 온 것인가?”
“아버님께 허락은 구하였으나 소생의 의지입니다.”
“무엇인가. 말해보게.”
“소생이 아무리 살펴도, 이 나라 조선에서 이 길을 가신 분은 선생이 유일합니다.”
이어진 말을 듣던 윤휴는 끝내 박장대소했다.
다른 의미는 아니었다.
너무나도 속이 후련하였기에 그러했다.
이를 생각해낸 윤증이 너무나도 대범하였고, 선배로서 대견했다.
그리고 송시열이 보낸 서찰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도 자네와 같은 생각일세. 어디 한번 해보지.”
서찰의 내용을 확인하며 윤휴의 말을 들은 윤증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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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뭐라?”
허적은 헛웃음을 지었다.
“뭐라고 하였나?”
박세당은 천장만 바라봤다.
“…….”
동시에 쏟아진 거물들의 반문에 관리는 멈칫하였다.
그러나 이내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귀양이 집행될 듯합니다.”
고육지책이었다.
구금으로도 남인이 대대적으로 반발하였다.
그런데 귀양까지 집행된다는 건 상황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밀어 넣는 행위다.
배수진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상황이 정말 녹록지 않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세 명의 지도부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
“…….”
“…….”
귀양 소식에 분위기가 삭막해졌다고 느낀 관리는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다.
“송구합니다. 실은 며칠 내로 바로 집행됩니다.”
“…….”
“송구합니다. 실은 이미 어명이 내려졌습니다.”
“…….”
“하면, 소인은 가보겠습니다.”
말과 함께 관리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귀양이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군요.”
“바꿔 말해서 국문을 실제 집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겠지.”
“선생의 말대로입니다. 그러니 국문을 피하고자 전격적으로 귀양을 집행한 것이겠지요.”
세 사람의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귀양을 가기에 마음이 무거운 게 아니라 작금의 정국을 걱정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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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도감 출병 D-4.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남인은 격앙했다.
“이건 졸속일세.”
“대체 우리 조선이 언제부터 대신을 절차도 없이 유배형에 처했나.”
“중대본, 아니 우암 대감의 사감(私感)이 아니라면 어찌 일이 이렇게 되겠나.”
분노에 찬 그들의 머릿속으로 일제히 스치는 송시열의 말이 있었다.
-오늘의 무례에 대한 답은 조만간 전하겠네.
소름 끼치는 스산한 협박이었다.
동시에 남인들의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하! 설마!”
“어찌 이토록 졸렬할 수가 있단 말인가!”
고작 사감으로 남인의 지도부 3명을 유배형에 처했다.
심지어 당사자도 아니라 남인의 ‘일원’이 불쾌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말이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예 아득하게 먼 곳에 존재하는 졸렬함이었다.
“아, 아니. 내가 뭐 다른 말을 했나?”
송시열에게 ‘경고’를 직접 받았던 남인의 안색은 하얗게 질렸다.
분위기는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반면, 서인들은 궁색한 듯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충 보아도 송시열의 졸렬함이 만들어낸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지라도 서인으로서 송시열을 이렇게 욕보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연좌라는 공론의 장에서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송시열 개인의 성정을 대놓고 졸렬하다고 하는 건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그저 애써 시선을 피하며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미봉책(彌縫策)에 불과했다.
“자네들은 어째서 아무런 말이 없는가.”
기어이 남인의 원성이 터졌다.
서인들의 안색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화가 나거나 언짢은 게 아니라 너무나도 멋쩍고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게.”
“…….”
“당색이 같다고 하여 편을 드는 것인가?”
“거. 누가 편을 들었다고 그러나?”
“한데, 왜 침묵하나?”
“침묵이 아니라 연좌를 준비하는 걸세. 목을 잘 가다듬으면서.”
“하!”
남인들이 매섭게 노려봤다.
서인들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함께 송시열을 원색적으로 욕할 수는 없었다.
이건 지켜야 할 선이었으며 자존심이었다.
“하! 평소에는 참으로 말이 많았건만!”
“말 많던 서인들은 다 어디 갔나?!”
그저 궁색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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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도감 출병 D-3.
이상했다.
너무 이상했다.
오늘이 되면 연좌에 결합한 인원이 천여 명은 훌쩍 넘어야 했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정치적 구호를 핏대까지 올리며 외쳐야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직 이 정도 인원인가?”
“…….”
“수가 적으면 더 열심히라도 해야 하거늘 참으로 건성이군.”
진심으로 이해할 수가 없어서 미간을 찌푸렸다.
또,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사대부들을 살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을 포착할 수 있었다.
실소를 머금었다.
“남인 일색이군.”
“…….”
“뭐 어쨌거나 무운을 빌겠네.”
최선을 다해서 비웃어주며 궐로 향했다.
그런데
“허.”
여기에 서인이 있었다.
규모가 상당했다.
중대본 앞에 있던 남인과 더하면 천 명은 가볍게 상회하는 규모였다.
아니, 거의 이천여 명은 되었다.
이 묘한 상황을 보니 딱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싸웠나?”
“…….”
“허.”
“…….”
“한심하군.”
진심이었다.
대적(大敵)을 앞에 두고 당색을 나눈 것이 아닌가.
인간의 단합이란 이토록 보잘것없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일갈(一喝)했다.
“파당(派黨)이라니.”
“…….”
“심지어 같은 목표이거늘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대감. 실은…….”
“되었네!”
대차게 혼쭐을 냈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군자라면 양보하고 화합해야 하거늘.”
“대감. 그것이…….”
“당장 해산하여 남인과 결합하게!”
“아니, 대감…….”
“자네들이 기어이 내 말을 이토록 무시할 것인가?!”
크게 노하여 고함을 질렀다.
사색이 된 서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더니 눈치껏 한 명씩 일어났다.
그 꼴을 보고 있노라니 한숨만 나왔다.
이렇게 가르칠 게 많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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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도감 출병 D-2.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미 2천여 명이 넘은 규모였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충분히 엄청난 인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 보였다.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줄 수는 없다.
우리도 바쁘니 말이다.
“대감. 소생들은 군제 개혁을 용인(容認)할 수 없습니다.”
“이는 굴욕입니다.”
“더는 조선의 역사에 굴욕을 기록할 수 없습니다.”
“소생들이 바로 잡을 것입니다.”
기세가 상당했다.
또, 서인과 남인의 합이 제법 잘 맞았다.
하루 사이에 대동단결을 이뤄낸 걸 보니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있었다.
연좌의 장소가 중대본 인근이 아니라 궐의 지척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전략과 전술이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전하!”
나와 중대본이 아니라 이연에게 직접 청하는 연좌의 정석을 취한 것이다.
“이는 태조 이래 최대의 굴욕이며 국치이옵니다. 어찌 지켜만 볼 수 있겠사옵니까!”
“그러하옵니다! 신들은 전면 철회를 하교하시기 전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옵니다!”
또, 일사불란했다.
“밀약(密約)의 전면 철회를 청하옵니다!”
“밀약(密約)의 전면 철회를 청하옵니다!”
“밀약(密約)의 전면 철회를 청하옵니다!”
……
“밀약(密約)의 전면 철회를 청하옵니다!”
밀약으로 규정하여 일제히 외쳤다.
그리고 더는 나와 말을 섞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이연이 비답을 내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밀약(密約)의 전면 철회를 청하옵니다!”
“밀약(密約)의 전면 철회를 청하옵니다!”
2천여 명의 외침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어떤 형식으로라도 이들의 요구에 대한 답은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전하!”
멀찍이서 다가오는 무리가 보였다.
선두에 선 이를 보니 갑자기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바로 땀을 부르는 남자, 윤휴였다.
수십 명과 함께였다.
제법 세력화를 해낸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동시에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오는 이가 눈에 들어왔는데 윤증이었다.
예상치 못한 조합이었다.
그러고 보니 뒤를 따르는 무리는 다름 아닌 성균관 유생들이었다.
그러니까 윤휴가 윤증과 손을 잡았다는 말이었다.
아니, 위정척사파와 한배를 탔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군제 개혁은 시대의 요구이옵니다.”
자리를 잡은 윤휴가 단호하게 외쳤다.
“하여, 신은 양반도 군포를 내는 호포제의 관철을 청하옵니다.”
“!!!”
“!!!”
“!!!”
“!!!”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전하! 신 윤증, 호포제의 관철을 청하옵니다!”
윤증이 선창했고
“호포제의 관철을 청하옵니다!”
위정척사파가 후창했다.
오직 충격이었다.
더욱 거대한 정적이 장내를 휘어 감았다.
침묵과 침묵이 만들어낸 괴이한 공기의 흐름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망령이 만들어낸 군제 개혁 반대 논리에서 정의(正義)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정의(正義).
이는 100여 명이 2천여 명을 압도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양반도 군포를 내는 호포제가 망령을 짓이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바로 양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