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되살아나는 망령(亡靈) 그리고(8)
훈련도감 출병 D-2.
논쟁은 치열했다.
엄밀히 따지면 치열하게 진행될 논쟁이 아닌데도 그러했다.
복잡하게 찾지 않고 눈으로만 봐도 그랬다.
고작 100여 명과 2천여 명이 아득하게 넘어 어느새 3천여 명에 육박한 무리의 논쟁이었다.
물리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수의 차이였다.
그런데도 팽팽하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바로 압도적인 주체의 능력이었다.
“알겠네.”
“예……?”
“나 역시 자네들과 뜻이 다르지 않네.”
“아.”
“전후 맥락을 파악하였을 때 자네들은 조선의 국치라고 할 수 있던 ‘굴욕’을 거부하는 게 아니었나? 망국적인 군제 개혁을 반대하는 게 아니었네.”
“아…….”
“나는 자네들이 자랑스럽다네.”
“예……?”
“덕분에 조선에서 드디어 군제 개혁의 논의가 탄력을 받게 되었지 않은가.”
“…….”
학문적 경지는 최상급, 정치적 경륜도 최상급, 전투력은 최상급의 너머에 있는 사람이 바로 윤휴다.
그의 삶을 되돌아보면 쉬지 않고 정적과 피 터지는 싸움을 하며 여기까지 왔다.
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고, 없는 싸움도 만들어서 기어이 승리를 쟁취하는 이가 바로 윤휴였다.
이러한데 연좌에 나선 사대부들이 얼마나 풋풋하게 보이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고압적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었다.
언성 한 번 올리지 않고 부드럽게 상황을 주도하고 있었다.
사실 윤휴가 나와 대화할 때는 눈을 부라리고 불꽃으로 산화하지만, 다른 데 가서도 그러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압도적인 주체가 있었다.
“좋습니다. 하면, 선생들께서는 어떤 대안이 있으십니까.”
“…….”
“소생이 호포제를 주장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호포제가 모든 걸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견을 일러주시면 경청하며 배우겠습니다.”
윤증은 시종일관 차분하게 대화를 주도했다.
특히, 논리를 내세우며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경청을 통해서 대화를 장악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이 사대부들을 압도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구도 자체가 기울어진 정의의 운동장이었다.
이는 윤휴의 강렬한 언변과 만나면서 초유의 힘을 발휘했다.
“나는 자네들을 이해할 수 없네. 하면, 군제 개혁을 아예 하지 말자는 건가?”
“선생. 그게 아니라…….”
“호포제는 군영 해산과 아무런 관련이 없거늘 어찌하여 엮나?”
“…….”
“군영 해산은 굴욕이기에 불가할지라도, 호포제도 그러한가? 전혀 이해할 수 없네.”
“…….”
보편적 정의의 무게추는 윤휴를 향해서 완벽하게 쏠렸다.
만일 평시 군제 개혁을 논의할 때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작금의 조선에서 군제 개혁을 논의하려면 군포가 가장 시급하지 않은가? 이견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네.”
그러나 굴욕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은 사대부의 연좌는, 군포라는 희대의 재앙을 해결하고자 한 호포제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정의의 논리가 된 호포제였기에 망령을 끌어안은 이교도를 능히 분쇄했다.
윤증의 청아한 목소리가 번지듯 퍼졌다.
“어렵지 않습니다.”
악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저 진솔한 권유였다.
“군영 해산을 막아내고 호포제를 관철하시지요.”
그러나 송곳처럼 날카롭게 숨통을 찌르는 말이었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일당백이라는 말이 어째서 탄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건 이 싸움의 결과가 아니었다.
어차피 이 싸움은 장기전으로 갈수록 윤휴와 윤증이 감당할 수 없다.
정의를 품은 두 사람의 언변에 사대부가 침묵으로 화답할 뿐, 설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 호포제가 관철될 수 있는 나라였다면 군포의 폐단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사대부들은 점차 전열을 가다듬으며 전선을 명확하게 구축하여 군영 해산이 아니라 ‘군제 개혁 반대’라는 정치적 슬로건을 선명하게 꺼낼 것이다.
즉, 어떤 경우라도 군제 개혁은 반대한다고 나올 것이니 제아무리 윤휴와 윤증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망령의 부활을 일시적이나마 짓누른 건 엄청난 성과였다.
더불어 사대부의 도덕성에 심대한 타격을 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저들의 위선을 백일하에 밝힌 것이다.
어쩌면 힘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직전 이연과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스쳤다.
******
이연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래서 나도 물끄러미 쳐다봤다.
“…….”
“…….”
이연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래서 내 눈동자도 가늘어졌다.
“…….”
“…….”
이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나도 미간을 찌푸렸다.
“본부장.”
“전하.”
동시에 말했다.
참으로 정겨운 군신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말하시오.”
“하교하시옵소서.”
“…….”
“…….”
이연은 못마땅하다는 듯 실소를 머금었다.
당연하겠으나 이것만은 따라 할 수 없었기에 공손하게 시선을 낮췄다.
“경은 갈수록 불충하오?”
“신은 자나 깨나 충심으로 넘실넘실 어깨춤을 추옵니다. 하온데, 불충을 이르시니 받잡기 민망하옵니다.”
“무능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불충하기까지 하오?”
“불충도 억울한데 무능까지 이르시오면 참으로 두렵사옵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
“언행도 불충한데, 무능하기까지 하니 대관절 이는 어찌 된 일이오?”
진심이 단전에서 올라오고 있지 않은가.
피하고자 해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전해졌다.
아무래도 괜한 말을 하는 건 아닌 듯했다.
하지만, 말을 돌렸다.
“신이 불민하여 어심을 헤아릴 수가 없사옵니다.”
“진정 저들이 누군지 모르시오?”
“짐작하신 무리가 있사옵니까?”
“이 나라 조선에서 군제 개혁을 반대할 이가 적소?”
“어인 하교이시옵니까.”
“호포제를 관철하고자 하였을 때 어찌 되었소?”
직관적인 말이었다.
어쩌면 무언가를 언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작금의 정국에서 무언가를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하여, 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슬쩍 돌리며 나의 길을 말했다.
“신은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옵니다.”
“본부장.”
“전하.”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회피가 아니라 정확한 언급이었다.
“군주의 길과 신하의 길은 다르옵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큰 분란이 생길 것이옵니다. 신이 저들과 크게 다툴 것이옵니다. 이 싸움에 전하의 공간은 없사옵니다.”
“…….”
“전하께서는 패자를 품으셔야 하옵니다. 하온데, 직접 칼을 휘두르신다면 어찌 이를 이루실 수 있겠사옵니까.”
“…….”
“일찍이 신은 전하께서 호포제를 이르셨을 때 하나 된 조선을 역설하였사옵니다. 이는 불변의 가치이옵니다.”
이연의 안색에는 그림자가 생겼다.
그러나 나는 그림자를 치울 수 있는 말을 꺼내지 않을 것이다.
싸움이 나의 역할이듯, 포용은 이연의 역할이다.
싸워 괴로운 것이 나의 사명이듯, 나서지 않기에 괴로운 것도 이연의 사명이었다.
이는 나와 그의 길이었다.
“신이 해낼 것이옵니다.”
“…….”
“전하. 이 싸움의 끝에 무엇이 남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사옵니다. 조선이 사분오열 갈라질 수도 있사옵니다. 전하가 아니시면 누가 품으실 수 있사옵니까.”
“…….”
“하여, 간곡하게 청하옵니다.”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전하께서는 그저 포용하소서.”
다시 더 큰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사관의 붓은 오직 신을 향하여 졸렬하다 이를 것이옵니다.”
송시열, 아니 나의 졸렬함이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경은 참으로 나를 부끄럽게 하오. 나의 자리는 늘 이러하오.”
잘게 떨리는 이연의 목소리가 내 심장에 남았다.
그래서 화답하였다.
“그 또한 전하의 자리가 아니옵니다.”
“…….”
“전하의 자리는 오직 빛나는 곳이옵니다. 바로 그곳에서 만백성과 조선을 노래하시옵소서.”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인내하소서.”
재차 말했다.
“신이 다 해낼 것이옵니다.”
이연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상념을 거뒀다.
여전히 윤휴와 윤증은 사대부들을 압도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점차 사대부들의 논리가 완성되고 있었다.
“소생들은 군제 개혁을 반대하는 겁니다.”
“호포제가 논의될 자리가 아닙니다.”
“기어이 주장하실 생각이면 따로 자리를 가지시지요.”
“예. 이곳은 소생들이 군제 개혁 반대를 주장하는 곳입니다.”
“굳이 같은 자리에서 이러실 이유가 있습니까?”
전형적인 물 흐리기였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제 내가 참전할 것이니 말이다.
바로 나 송시열이 말이다.
“참으로!”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엷게 웃었다.
사실 나의 역할은 크지 않다.
그저 불에 기름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윤휴와 윤증이 만든 최고의 상황을 이용해서.
“바람직한 논쟁이로다.”
껄껄 웃으며 외쳤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느껴졌다.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인 느낌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주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해주기로 했다.
아니 직관적으로 말이다.
“모두가 군포를 내는 세상.”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롱하듯.
“모두가 군포를 내지 않는 세상.”
유려하게 손을 저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말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돈 낼래? 아니면 해산에 찬성할래?
이보다 직관적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순식간에 내가 논쟁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
“대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윤휴와 윤증의 아름다운 논리에 숨을 쉬지 못하던 사대부들은 순식간에 큰 숨을 내쉬며 발끈했다.
아니, 격분하여 외쳤다.
“하면, 소생들이 호포제를 반대하는 이유가 군포를 내기 싫어서 그렇다는 겁니까?”
“아니지. 군영 해산에 반대하는 건 군포를 내지 않는 세상을 바라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지. 그러하니 군포를 내지 않겠다는 말이 아닐세.”
“어찌 그런 논리가 성립하는 겁니까. 소생들은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허. 내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둘 중 하나라고 했네.”
“어찌…….”
“아둔하여 이해하지 못한 듯하니 쉽게 설명해 주겠네.”
“!!!”
사실 저들이 누군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저들이 누구일지 몰라도 조선에서 무엇을 하려면 결국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혹은 제압해야 했다.
그러니 이게 옳다.
나는 나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갈 뿐이었다.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속에 담은 말을 꺼냈다.
“군포를 내겠나? 아니면 해산에 찬성하겠나.”
“!!!”
“군포를 내면 군영 해산은 거두겠네. 그러나 내기 싫으면 해산에 찬성하게.”
“!!!”
조롱도 이런 조롱이 없을 것이다.
윤휴와 윤증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기쁨을 감출 수 없기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토록 관대할 수가 있는가.”
“어찌 선비를 이렇게 조롱하실 수가 있습니까.”
“들어보게. 군포의 폐단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이라면 결국 호포제는 관철될 수밖에 없네.”
“억지도 그런 억지는 없습니다.”
“허. 들어보라고 했네.”
“대감.”
“자네 이름이 뭔가?”
“…….”
사대부는 놀랐는지 두려운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내가 이 정도다.
너무나도 가볍게 제압한 뒤 말을 이었다.
“자네들은 군포를 내고 싶지 않은데 기어이 양반도 군포를 내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말일세. 그러니 어쩌겠는가. 모두가 군포를 내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일세. 이리하면 어찌 되겠는가? 백성을 위하였다는 명분으로 포장하면서 군포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네.”
“…….”
“내가 해주겠네.”
“…….”
백 가지 이상의 의미가 담긴 침묵이 장내를 지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한탄했다.
“자네들의 곳간 사정을 고려하여 군영 해산의 용단을 내렸네. 한데, 내 진심을 이토록 몰라주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여전히 조용하여 고개를 내려 사대부들을 쳐다봤다.
“그러나 불안해하지 말게.”
표정이 참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또, 두려워하지도 말게.”
눈빛에는 분노가 일렁였다.
“목숨보다 중요한 재물이 축날까 봐 밤을 지새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들썩이는 입술의 안에서는 무수한 욕이 생성되고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방법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나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군영 해산. 찬성하게.”
재차 말했다.
“사대부가 군포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 내가 만들어주겠네.”
또 말했다.
“나만 믿게.”
나는 사대부의 대표, 송시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