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오늘 바로 오늘(1)
이성계가 두 글자의 국호 조선을 이 땅에 아로새긴 이래 없었던 일이다.
아니, 아니다.
이는 고작 수백 년을 되돌아볼 게 아니었다.
4천 명.
이 땅에서 역사라는 단어가 사용된 이후 존재하지 않은 수치였다.
백성 혹은 병졸 4천 명이 아니었다.
지식인 4천 명이다.
이들은 사대부이며 곧 위정자가 되는 나라다.
그랬다.
지금 국호는 조선이었으며, 연좌라고 불리는 불가침의 정치 행위를 진행하던 사대부 4천 명을 탄압한 것이다.
정치적인 탄압이 아니라 병력을 동원하여 물리적으로 탄압했다.
이는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그냥 계시면 됩니다.”
“네 이놈!”
“부르셨습니까.”
“감히!”
“좋습니다. 이대로 힘을 빼십시오.”
“!!!”
사대부의 저항은 당연한 일이었다.
몸과 몸이 부딪히면서 상황은 더 격렬해졌다.
“네, 네 이놈들!”
“힘을 빼셔야 합니다.”
“당장 손을 떼지 못하겠느냐?!”
“군율이 그러한데 어쩌겠습니까.”
“멈추라고 하였다!”
“부월을 뺏어오세요. 그러면 멈추겠습니다.”
“!!!”
저항은 격렬했다.
사대부들은 온몸으로 저항했다.
핏대까지 세우며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부질없는 행위였다.
애초 오래 이어질 수가 없었다.
“송구합니다. 선생.”
“네 이놈!”
“알겠습니다. 소인들이 알아서 할 테니 그냥 몸에서 힘만 빼십시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저기 부월을 들고 계신 분보다 덜 유명하신 건 압니다.”
“!!!”
“좋습니다. 지금처럼 계세요. 계속 무리하다가 다치십니다.”
“!!!”
서책 따위나 들고 다니던 사대부들이 조선 최고의 강군인 훈련도감을 감당할 수는 없다.
차라리 지부상소였다면 바람을 가르는 도끼라도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총책임자에게 항의하는 것이었다.
“대감! 이를 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어찌 사대부를 이토록 탄압하실 수 있습니까?”
“무려 4천 명입니다!”
“조선의 역사에 이토록 참담한 일은 없었습니다!”
핏대까지 세우며 외쳤다.
절규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
사실 저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나의 행위만 보면 제대로 미친 짓이 분명하니 말이다.
무릇, 정치적 행위는 의외로 간단하다.
과정의 명분이나 복잡한 정치 공학을 뒤로하고 행동으로 옮기면 그만이었다.
말 그대로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할 수 없는 건 파급을 감당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열린 언로로서 공론을 모아내는 조선에서 연좌를 강제 해산하는 건 미친 짓이다.
정치적 수명을 갉아 먹는 게 아니라 정치적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4천여 명의 사대부가 집결한 연좌가 가지는 상징성은 종묘와 사직에 고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를 강제 진압하는 건 물리적으로는 쉬운 일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식물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 그냥 식물이 된다.
시작은 대간이며, 마지막도 대간이다.
조선의 대간은 정치적 판단을 떠나서 옳고 그름이 목숨보다 귀한 가치이기에, 들불처럼 일어나서 이를 규탄할 것이다.
조선에서 대간의 집단적인 공세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작금의 사안은 송준길이라도 제어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강제 진압을 집행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연이 공식적으로 등판한 것이다.
훈련도감의 동원이라는 건 군권의 발동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군왕의 개입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군왕이 교지를 내리고 중대본의 본부장이 집행한 것이다.
절대자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광기라고 보일 수도 있다.
정치적 후폭풍이 모든 걸 집어삼킬 수도 있는 일이다.
결과는 청국에 굴종한 왕과 대신의 폭거(暴擧)로 규정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미치지 않은 이상, 이연의 용상이 흔들릴 수 있는 짓은 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강제 집행의 백미(白眉)가 있었다.
나는 부월을 들었다.
이완이 손을 들었다.
부관들이 손을 내저었다.
그 순간 병졸들은 일제히 행동을 멈췄다.
동시에 정적이 감돌았다.
부월을 내렸다.
말했다.
“이일선.”
조선이 가장 증오하는 나라가 청국이다.
그리고 가장 경멸하는 사람은 이일선이었다.
“조선의 사대부가 이일선의 지령을 받았다.”
이는 모든 걸 가능하게 한 압도적인 명분이었다.
비록 4천 사대부의 연좌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내가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가.”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나아갈 곳만 있었다.
이것이 길이다.
이 시간이 바로 역사였다.
“아닙니다.”
“이일선이라니요.”
“차라리 죽이십시오.”
“사대부를 이리도 모욕하실 수는 없습니다.”
강력한 항변이었다.
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지만 답변할 생각은 없었다.
다시 부월을 들었다.
“!!!”
“!!!”
“!!!”
일제히 진압이 재개됐다.
“대, 대감!”
“차라리 죽이십시오!”
“죽었으면 죽었지, 이일선의 간자(間者)라는 말은 들을 수 없습니다!”
격렬한 진압의 와중에도 사대부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나는 여전히 쳐다만 봤다.
“선생. 그냥 가만히 계십시오.”
“네 이놈!”
“휴. 다치십니다.”
저항은 갈수록 강해졌다.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부월을 들었다.
진압이 멈췄다.
아직 버티는 사대부들.
한 손은 동료가 잡고, 남은 한 손은 병졸에게 잡힌 사대부들.
사지가 제압당한 사대부들.
참으로 각양각색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나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묻겠다.”
“대감! 소생들을 이렇게 음해할 수 없습니다!”
“소생들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이십시오!”
괜한 말들이 아니었다.
단호하며 절절한 목소리가 지천을 울리고 있다.
이일선의 간자라는 치욕만큼은 절대 품을 수 없다고 절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나의 의도를 너무나도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지그시 쳐다봤다.
“소생들은 오직…….”
손을 내저었다.
나는……
“소중화가 그리도 귀하더냐?”
“…….”
고작 이일선 따위로 입씨름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건 그냥 시간이 아까웠다.
할 일이 태산이다.
갈 길이 구만리다.
그런데 이일선으로 다툴 이유는 아예 없다.
그의 이름 석 자는 그저 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나는 고작 간계(奸計)로 사대부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늘 내가 도모하고자 하는 건 정략이 아니라 정도(正道)였기에 그러했다.
“내게 소중화는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도구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하면, 어찌하여 도구인가.”
감정을 전혀 담지 않았다.
흘러가듯 건조하게 말했다.
“일찍이 나는 조선의 역량을 한데 모아내고자 했다.”
지금껏 나의 모든 행위는 조선의 단합으로 귀결됐다.
오직 그것만을 위하여 달려왔다.
어찌하여 그리하였던가.
“하늘이 만든 작금의 난세는 하나 된 조선을 간절하게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서인과 남인만이 아니었다.
사족까지 품어내고자 했다.
기어이 조선을 이연을 심장부로 한 단일대오로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했다. 그런데도 작금의 시대가 휘두르는 폭압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삭주의 재해를 막으니 각지에서 유민이 발생했다. 애써 비축한 재원으로 그들을 도성으로 받았는데 개성부에서 역병이 창궐했다. 중대본이 역량을 기울여 수립한 위생부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진화하였더니 평안도에서 유민과 기민이 발생했다. 그 수가 무려 1만이 넘었다. 감당할 수 없었기에 관리의 녹봉까지 손을 댔다. 남한산성과 강화도에 비축했던 군량으로 힘겹게 방비했다. 한데, 경상도에서 일만여 명의 기민이 또 발생했다. 하여, 운송한 군량 10만 석은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
“하나를 막으니 더 큰 하나가 다가왔다. 온 힘으로 이를 막았더니 더 큰 두 개가 발생했다. 처절하게 막았으나 감당하기 어려운 재해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
“시대가 휘두르는 폭압과 싸우는 우리 조선의 노력이 부족하였는가? 아니다. 진정으로 아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관리는 녹봉의 감액을 스스로 청하였으며, 조정은 체질을 개선했고,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각종 개혁을 도모하였으며, 위생도 집행했다. 그러나 감히 감당할 수 없었다.”
중대본 수립 이후 조선은 부단히도 노력했다.
한시도 쉬지 않았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
“너희와 내가 부족한 게 아니었다.”
“…….”
“그저 다가오는 폭압이 너무나도 거대할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병력을 동원한 강제 진압을 감행하였다.
현재 잠시 멈춘 것에 불과하다.
여전한 대치 국면이었거늘, 고해성사와도 같은 말을 이어가자 다른 의미의 혼란이 가중됐다.
나의 말은 점차 힘을 내며 이어졌다.
“하면, 어찌해야 하는가.”
“…….”
“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
“어찌해야만 하늘이 내린 이 난세를 이겨낼 수 있는가.”
“…….”
계속하여 고해성사를 이어갔다.
“나 송시열.”
진실을 담아서.
“평생을 거쳐서 학문을 익혔다.”
모두를 바라봤다.
그들과 눈을 마주했다.
“감히 성현에 비할 수는 없으나 부족함은 없다. 이를 인정하는가?”
아무리 상황이 엄혹할지라도.
아무리 전선이 구축되었을지라도.
나는 당대 최고의 학자 송시열이다.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겠는가.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부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가볍게 휘둘렀다.
훈련도감의 병졸들이 일사불란하게 물러났다.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했던 사대부들은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자세를 바로 했다.
누군가가 물었다.
“무엇입니까.”
과연 조선의 사대부다운 태세였다.
학문과 토론은 이들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이는 사대부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엄중한 경종을 울릴 것이기에 그러했다.
“방법이 없다는 걸.”
“…….”
“성리학은 패배하였다는 걸 알았다.”
“!!!”
“압도적인 패배였다.”
“!!!”
나는 봤다.
전선의 대치를 떠나서 나의 해결책을 기대했다는 걸.
정파의 이해를 떠나서 송시열의 학문적 경지는 조선 성리학의 집대성이다.
그러한데 방책이 없다는 건 너무나도 충격적인 선언이다.
아니, 아예 패배 선언을 했다.
이는 저들이 할 수 있는 상상의 범주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영역일 것이다.
어쩌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을 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사대부들의 눈동자는 크게 흔들렸고, 안색은 지독할 정도로 어두웠다.
“경전의 내용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부족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하면, 무엇입니까.”
“작금의 난세는 그 어떤 성현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기에 그러하다.”
부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움직인 건 자유로운 왼손이었다.
서서히 들었다.
“하여, 작금의 시대는 성현의 가르침으로 극복할 수가 없다.”
적당한 높이에 이르자 사대부들을 향해서 내밀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성현이 되어야 한다.”
“!!!”
“과거의 기록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는 우리가 새로운 성현이 되어야 한다.”
“!!!”
“우리가 새로운 성현이 되어 후대를 위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
“이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일 것이다.”
“!!!”
충격과 침묵.
침묵과 충격.
이 두 가지가 거대하게 공존했다.
“성현이 되는 길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이다.”
선언했다.
“성현이 남긴 성리학은 패배했다. 그러나…….”
왼손에 힘을 주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선언을 이었다.
“우리의 성리학은 이제 시작이지 않은가.”
패배한 건 오직 그들이었다.
우리가 아니다.
다시 말했다.
“우리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단호하게 승리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