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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51화 (151/298)

151화 오늘 바로 오늘(2)

성현의 패배를 선언하고 우리의 승리를 예고했다.

이 외침은 너무나도 단호했다.

조선의 사대부라면 내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을 것이다.

오늘 내가 성리학을 만든 주희를 비롯하여 무수한 성현을 부정했다는 것을 말이다.

성리학자라면 충격에 휩싸일 게 당연했다.

어쩌면 엄청난 진통을 겪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혼돈이 예상됐다.

하지만, 이는 결국 겪어야 할 일이었다.

나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었다.

성리학자들의 반발을 기어이 밀어낼 것이다.

주먹을 꽉 쥐고 바라봤다.

그런데

“…….”

“…….”

“…….”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나도 차분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너무나도 조용했다.

혼란은커녕 작은 소란도 없었다.

엄청난 각오를 한 내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물론, 감정을 얼굴에 담아내는 초보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근엄하게 정면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이름 모를 사대부 한 명이 나서며 말했다.

“일찍이 대감께서는 사문난적을 선언하셨습니다.”

아. 맞다.

나는 사문난적의 거두(巨頭)였지?

듣고 생각해보니 이런 분위기는 당연했다.

이미 사문난적을 천명했는데, 이제 와서 성현을 부정하는 발언 따위가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겠는가.

이미 완화될 이유는 잔뜩 넘칠 만큼 있었다.

물론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현장을 목도하는 건 결이 다른 일이었다.

“그간 사문난적은 구호로만 존재했을 뿐입니다.”

“…….”

“예. 무엇을 어찌할 건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전혀 없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성리학을 익히지 않는 것인지 성리학을 달리 탐구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

“하여, 소생들에게 사문난적은 그저 구호에 불과했습니다.”

“…….”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불친절했나?

또, 내가 사문난적을 외쳤을 때 저들의 당혹감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 정도면 거의 ㈜사문난적 입사 방법을 알려달라는 수준이었다.

차분하게 되돌아봤다.

위정척사와 원리주의는 구체적인 길이 있었다.

두 정파의 수장이 학문과 정치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것이 아니었기에 선이 굵지 않았을 뿐, 색을 채워가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원리주의는 사족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위정척사는 성균관이라는 집단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반면, 사문난적은 아니었다.

이는 참으로 묘한 구조였다.

서인과 남인이라는 거대 정파의 지도부와 이미 일가를 이룬 대학자들이 중심이었다.

이들이 중대본에 집결하여 사문난적이라 하였다.

그러나 원리주의나 위정척사처럼 구체적인 세력화를 꾀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중대본의 일을 하였을 뿐이었다.

사문난적은 특별한 길을 걸은 게 아니었다.

우직하게 걸었으나 모두 중대본으로 귀결되었고 이는 기근 극복을 위한 정책이었다.

특정 정파가 아니라 오직 조정이었다.

조정의 방침을 집행하는 건 특정 정파의 성격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그냥 조정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사문난적만의 특징을 구체화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 것이다.

즉, 지금 사대부들은 이를 정확하게 언급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문난적의 실체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한데, 오늘 기어이 사문난적의 길을 구체화하셨습니다.”

“…….”

“소생들이 사문난적은 아닙니다.”

“…….”

“그러나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어찌 없다고 하겠습니까.”

“…….”

이런 흐름은 대체 무엇일까.

아니, 길게 고민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배우겠노라 나선 이들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나로서는 적극적으로 환영할 일이었다.

싱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후학이 배움을 청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맞다.

이는 나의 의무다.

내게는 의무가 있다.

이들을 인도할 의무가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내가 수행할 의무다.

이는 백번이라도 할 수 있다.

이대로 죽더라도 해낼 수 있다.

이는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환한 미소가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4천 사대부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해산하라.”

“예……?”

“이것이 첫 번째다.”

진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알 것이다.”

“석가를 따르는 무리가 치르는 대규모 법회를 이르는 말이 아닙니까.”

“우리도 이를 해볼까 한다.”

“예……?”

“연좌 말고 야단법석을 해보자는 말이다.”

“예……?”

4천여 명의 8천여 개의 눈동자에 담긴 의구심을 가볍게 밀어내며 웃었다.

여유로움을 가득 담아서 환하게 웃었다.

“오늘 우리의 논쟁이 고작 이렇게 끝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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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났다.

사가를 나섰다.

밤새 편히 잠을 잤기에 너무나도 몸 상태는 최적이었다.

날씨도 참으로 따사로웠다.

지저귀는 새와 여러 곤충의 울음까지 더해지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 모든 영화(榮華)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여유롭게 걸었다.

걷다 보니 사대부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제법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그가 대표인 듯했다.

빙그레 웃으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먼저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아…….”

당황하여 말문이 막힌 걸 보아하니 이름만큼은 말할 생각이 없는 게 확실하다.

그러면 나와 ‘독대’를 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환하게 웃으며 부지런히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당도했다.

바로 시전거리였다.

정확하게는 과거 의술을 베풀었던 곳, 위생국을 태동하였던 바로 그 위치였다.

오늘 나는 이곳에 나섰다.

누구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저 홀로 나섰고 여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도성의 사대부 중 나의 걸음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사대부들은 삼삼오오 모여 있거나 백성의 사이에 몸을 감추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들을 아니라 이곳의 주인들을 바라봤다.

좌우를 돌아봤다.

생업에 종사하던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휘둥그레진 눈동자가 잔뜩 보였다.

상하좌우, 동서남북 복잡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도 보였다.

온몸이 경직된 이가 대다수였다.

마른침이 목울대로 넘어가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 모든 감정을 하나로 모아내면 한 마디로 불안함이라고 했다.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너희의 터전을 잠시 빌리고자 한다.”

“…….”

“만일, 작은 손해라도 발생하면 빠짐없이 말하도록 하라.”

오늘 나는 이곳에서 사문난적의 길을 말할 것이다.

그간 추상적이었던 우리의 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할 것이다.

이는 위정자의 논쟁이 아니라 백성이 필요하였기에 이 자리로 온 것이다.

하여, 야단법석이었다.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참으로 맑은 날씨였다.

평생의 소박한 바람이 하나 있다면 이런 하늘을 바라보며 아무런 근심 없이 느긋하게 낮잠을 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아직은 너무나도 요원하다.

대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에 그러했다.

시선을 내려 다시 좌우로 돌렸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눈동자와 다시 마주쳤다.

오늘 두 번째로 마주한 눈동자들인데 참으로 정겹다.

실제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어떨지라도 나는 진심으로 그러했다.

이 정겨움을 오랫동안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단절 없이 가져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대의가 아니면 무엇이 대의겠는가.

오늘의 논쟁이 또 다른 시발점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때 웅성거림이 커졌다.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퀭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무리가 다가왔다.

몰골도 보통이 아니었다.

보고 있노라면 그냥 시선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흉했다.

그랬다.

저들은 바로 이교도였다.

수백 명에 이르는 사대부가 포승줄로 끌려오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흉흉해졌다.

당황한 백성들은 눈치껏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4천 결사대 사대부들도 당혹감을 숨길 수가 없었는지 연신 헛웃음을 내뱉었다.

“대감.”

“시전에서 소생들의 사지라도 찢을 생각입니까.”

“얼마든지 해보시지요.”

기세가 대단했다.

독기 자체가 4천 결사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

그럴 만도 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망령을 숭배하다가 구금된 무리였으니 말이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손을 내저었다.

그 순간 병졸들이 다가가서 그들의 포승줄을 모두 풀었다.

의아함이 가득한 이교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쟁의(爭議)하겠다.”

“…….”

반응을 살피지 않고 곧장 말을 이었다.

“주상께서 윤허하셨다.”

오른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지필묵을 든 무리가 등장했다.

올곧은 시선과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그대로 앉았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선의 사대부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관은 오늘의 쟁의를 기록할 것이다.”

그랬다.

조선은 저들을 일컬어 사관(史官)이라고 한다.

나는 크게 외쳤다.

“사대부와 백성. 누구도 이 자리를 떠나지 말 것이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여 쟁의할 것이다. 아무도 통제하지 말라.”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반드시 정사(正史)에 남을 것이다.”

내 시선은 이교도에게 향했다.

어느새 육신이 자유로워진 그들의 기세는 참으로 날카로웠다.

나는 온화하게 웃었다.

그들의 눈썹이 휘어졌다.

더 진하게 웃었다.

말했다.

“오라.”

또 말했다.

“나 송시열이 너희에게 가르침을 내리겠다.”

이는 쟁의였으나 쟁의가 아니다.

나는 송시열이기에 그러했다.

또한, 평등해야 할 쟁의를 선언하였는데 선전포고처럼 고압적인 행동을 보였다.

당색도 다르고, 지도부도 귀양을 갔고, 종교 탄압에 괴로워하던 이교도들의 표정은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따사롭던 시전의 공기는 싸늘하게 변했다.

그래서 한마디를 보태듯 말했다.

“자신이 없다면 이대로 귀가하라.”

신랄하게 조롱했다.

발끈한 누군가가 나섰다.

“위선(僞善)입니다.”

“이름.”

“…….”

“이름을 말하게.”

“허. 이리 탄압하실지라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소생 김경용입니다.”

“김경용이라. 사관은 기록하라.”

“…….”

“한데, 위선이라고 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어째서 위선인가?”

“일찍이 청국의 사신을 압박할 때 소중화와 만동묘 건립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랬지.”

“소생들은 이를 이어갔을 뿐입니다.”

“옳다.”

“한데, 이를 탄압하는 건 대체 무슨 연유입니까? 행여 대감께서 단지 정략적 수단으로 소중화와 만동묘 건립을 언급하였고 소생들을 이용하신 겁니까.”

“왜 묻나?”

“예?”

“알면서 왜 묻나?”

“!!!”

나는 당당함에 눈동자가 커졌다.

그러자 다른 이가 나섰다.

“박세작입니다.”

“말하라.”

“좋습니다. 소생들을 이용하였다고 하지요. 일만의 사대부를 조롱하였다고 하지요.”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이용하였다. 한데, 조롱한 적은 없다.”

“이것이 조롱이 아니라면…….”

“기어이 그렇게 여긴다면 그러도록.”

“…….”

“자네들의 졸렬함까지 내가 고려할 필요는 없지. 안 그런가?”

“대체 누가 누구더러 졸렬하다는 것입니까!”

“내가 자네들에게.”

격분한 그를 대신하여 다른 이가 또 나섰다.

그의 이름을 대충 넘겼다.

“소생들을 이용하여 청국 사신단을 압박했습니다.”

“옳다.”

“승리하셨습니까?”

“옳다. 우리는 승리했다.”

“세상은 그 승리를 굴욕이라고 합니다.”

“무릇, 정치는 정도(正道)를 따르는 것이다.”

“대감께서는 굴욕을 정도라고 하십니까.”

“행위가 아니라 본질이 정도이기에, 굴욕일지라도 정도일 수가 있다.”

상대의 말을 끊어내듯 손을 내저었다.

강하지 않았으나 단단하게 말했다.

“굴욕이면 어떠한가? 무릎을 꿇어도 좋다. 절을 해도 좋다.”

“보아하니 조아리는 것이 대감의 정도였군요.”

“하면, 죽어야 하나?”

“죽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소생은 그리 배웠습니다.”

“그래. 그러나 그건 자네들의 이야기일세.”

“무슨 말씀입니까.”

“위정자는 죽어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네. 그 가치는 고귀하게 평가받지. 한데, 백성은 왜 그래야 하나?”

“그건…….”

“무수한 충의지사가 있네. 그들이 종묘와 사직을 위하여 목숨을 던지는 건 위대한 일이지. 그런데 나라가 망하였다고 하여 백성들도 목숨을 던져야 하나? 아니지. 아닐세. 백성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지. 안 그런가?”

“어찌 그러한 백성이 없다고 할 것이며, 의롭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가소로운 말이었다.

하여 말했다.

“그런 백성이 있으면 말하게. 당장 찾아가서 멱살을 잡아서라도 생각을 뜯어고칠 것이니까.”

“대감.”

“망국은 오직 위정자의 책임이다. 한데, 백성에게 왜 부채를 미루나?”

“…….”

“조세를 내라면 냈고, 창칼을 들어야 하면 들었고, 싸우라고 하면 싸웠다. 지옥에서 처참하게 몸부림쳤으나 나라가 무너졌다. 대체 백성의 탓이 어디 있느냐?”

손을 내저었다.

사관을 바라봤다.

“사관은 기록하라.”

“…….”

“저들은 백성에게 채무를 넘긴 위정자다.”

“!!!”

나의 일갈에 이교도들의 안색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멈출 의사는 없었다.

“진정 굴욕이라고 여겼더냐?”

도저히 조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권세를 탐하지 않고 오직 백성의 생존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오직 백성의 생존을 도모한 것이다. 한데, 어찌 이를 굴욕이라고 하는가. 너희는 진정 이를 모르는가?”

조롱을 잔뜩 담은 차가운 말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발끈한 누군가가 말하려고 할 때였다.

소란이 일었다.

“…….”

훈련도감이 군진(軍陣)의 무장을 압송해왔다.

십수 명이었다.

이는 징후조차 없었던 일이었기에 일순간 쟁의가 멈췄다.

나는 무장들을 빤히 쳐다봤다.

저들이 바로 ‘저들’이었다.

그토록 찾았던 ‘저들’이었다.

이토록 참담한 일에 동조한 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잠시 되새겼다.

여기까지 달려오며 숨을 쉬는 순간마다 생각했다.

백 번을 생각했다.

천 번을 생각했다.

저들이 군제 개혁을 알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누설(漏泄)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서 어찌 누설되었는가.

답은 너무나도 쉽게 나왔다.

조선에서 이 내용을 알고 있는 건 중대본과 이연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니다.

그러니 청국 사신단이다.

그중 누구인가.

뇌호는 아니다

그는 이미 조선과 한배를 탔지 않은가.

남은 인물은 이일선이었다.

되돌아보면 패악질을 일삼았던 이일선은 완전히 몰락했다.

더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초라한 신세가 되었다.

일정의 말미(末尾)에 이르러서는 공식 석상에 얼굴을 비추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재기할 수 있는 방책이 있다.

이번 외교의 성과를 아예 지우는 것이었다.

조청 외교에서 최고 핵심은 조선이 군제 개혁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모든 협상의 전제인 군제 개혁의 무산은 양국 협상의 전면 철회를 의미했다.

이리되었을 때 뇌호의 정치적 생명이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반대로 이일선은 화려하게 부활할 가능성이 컸다.

이는 가능성을 더 알아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설령 이일선이 무고하다고 할지라도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짧은 생각을 마무리했다.

무장들을 쳐다봤다.

애써 내 시선을 피하는 꼴이 너무나도 가소로웠다.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한 이들이 이 난리를 유발한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덕분에 이 나라 조선의 병마를 치워버릴 계기가 열렸으니 말이다.

시선을 돌렸다.

나는 고작 저들과 대화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다.

자세를 고쳐 잡았다.

말했다.

“나는…….”

왼쪽을 바라봤다.

백성들과 사대부들이 보였다.

오른쪽을 바라봤다.

백성들과 사대부들이 보였다.

정면을 주시했다.

이교도가 보였다.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이 자리에 섰는가.

이를 말하고자 한다.

“오늘 우리의 쟁의가 헛되지 않길 바란다.”

어쩌면 반복한 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런 힘을 구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이었다.

“태조 이래 최대의 난세다. 임진년도 병자년도 작금의 난세를 감당하지 못하였다.”

작금의 상황이 시작된 건 소중화였다.

이를 끌어안고 있는 건 만력제의 망령이었다.

하여, 나는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우리의 후대가…….”

나는 안다.

이 시절 조선에서 복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철학자의 나라, 조선의 근간이었다.

하여, 예송논쟁은 고작 옷을 몇 년 입느냐로 다툰 것이 아니라, 조선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생사결의 쟁의였다.

“우리의 쟁의를 조롱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그들의 쟁의였다.

아무리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지라도 그들만의 쟁의였다.

어찌하여 이리되었는가.

이 시절 조선의 백성은 기근과 쟁의하였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경신 대기근의 시절에 조선의 위정자는 복제로 다퉜다.

그 논쟁에 아무리 거대한 의미를 부여할지라도 수백만 명의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앞설 수는 없다.

하여, 조선의 예송논쟁은 후대가 비난한다.

하여, 조선의 예송논쟁은 현실과 무관한 논쟁으로 격하된다.

하여, 조선의 사대부는 현실과는 괴리된 무능한 무리가 되었다.

작금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그들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진실을 떠나서 이것이 바로 역사가 아니었던가.

나는 이를 우려한다.

우리의 역사는 절대 무능하며 부족하지 않다.

우리의 노력은 역사 앞에 당당하기에 그러하다.

우리는 삶은 그 어떤 시절보다 치열하고 뜨겁다.

어찌 우려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여, 말하였다.

“오늘 우리의 쟁의는 사대부와 사대부만의 다툼이 아니라, 진실로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둔 철학의 충돌이어야 한다.”

손을 내저었다.

그에 맞춰서 훈련도감의 병졸들이 좌우로 나뉘었고 수레가 보였다.

말했다.

“이는 군적(軍籍)이다.”

제시하였다.

“태워서 모두가 군포를 내지 않거나.”

만인이 평등하거나…….

“유지하되 모두가 군포를 내거나.”

만인이 평등할 수 있는 길을.

“오늘 우리의 논쟁은 양반도 군포를 내는 호포제와, 조선에서 군포를 없애는 것. 이 두 가지의 정책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후대가 바라보는 것이다.

예송논쟁은 그들만의 쟁의였으나 군포 논쟁은 조선의 길을 밝힐 것이다.

오늘 이를 결정할 것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우리의 조선은 뜨겁기에.

“사문난적의 성리학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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