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153화 (153/298)

153화 오늘 바로 오늘(4)

세종의 길.

이는 대체 무엇인가.

또, 세종이 경지에 이른 성리학자였다 해도, 성리학을 세상에 꺼낸 주희를 어찌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는 능히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오늘 이를 말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즐거웠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태조께서 민본의 대의로 역성을 단행하셨으나, 어찌 천하가 모두 즐거워하였겠는가.”

천하만민(天下萬民)이 반겼다고 할지라도, 왕성(王姓)이 바뀌었다.

반발이 없을 수가 없다.

“조선의 유자(儒者)라면 응당 포은 정몽주를 알 것이다.”

“소생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는 고려의 충신이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적이다. 이견이 있는가?”

“…….”

남인과 서인은 결국 사림이다.

사림의 뿌리는 정몽주로 올라간다.

그러하니 섣불리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침묵은 긍정이다.

객관식으로 선악을 가리자고 하였으니 어찌 쉽사리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이 지나면 저들은 정몽주를 적으로 규정하게 될 것이다.

“그의 죽음은 조선의 정당성에 흠집을 냈다.”

“…….”

“아무리 썩고 문드러졌다고 한들 무려 500년을 버틴 나라다. 그 흔적이 어찌 쉽게 사라질 수 있겠는가. 여기에 정몽주의 죽음이 더해졌기에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대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고려는 조선의 시작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당시 왕도였던 개경의 저자에서 있었던 참담한 일을 어찌 모르는가.”

“…….”

당시 고려의 백성은 이성계를 용상에 미친 짐승이라 욕하며 성계탕을 먹었다.

그러나 이를 차마 입으로 언급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역시 에둘러 언급했고, 사대부들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최영의 제사를 지내고 정몽주의 죽음을 슬퍼했다.”

단지 문자의 나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굳이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아야 한다면 모순(矛盾)이었다.

그랬다.

당시 백성은 행동은 참으로 모순적이었다.

“통치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냐마는, 민심(民心)보다 어려운 건 없다. 보라. 최영이 누구였는가. 요동 정벌을 꾀하였다. 당시 고려의 백성 중 요동 정벌에 찬성한 이가 과연 존재하였던가. 모두 두려움이 떨었다. 이를 태조께서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시어 막았다. 하여, 최영을 벌하였다. 그런데 백성은 어찌 기억하였는가. 최영의 제사를 지냈다. 우리 태조를 욕보이면서 말이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었다.

“당시 고려의 모든 것이 망국을 가리켰으나 가장 심각한 건 귀족의 사전이 만든 지옥이었다. 이를 해결한 건 바로 사전혁파 즉 과전법이었다.”

“우리의 선대가 이룬 쾌거였습니다.”

찰나 기분이 묘했다.

심장이 조금 뭉클했다.

오늘 이들의 입에서 처음으로 ‘쾌거’라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만큼 조선을 세운 이들의 일화는 전설로 남아 있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이 또한 반겨야 할 일이었다.

이들의 심장이 오직 중화를 향한 열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니 말이다.

또, 이들의 정치 DNA에 선대의 영광이 진하게 남아 있다는 걸 의미하니 말이다.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엄청난 쾌거는 분명 우리의 선대가 이룬 것이다. 한데, 이를 백성들이 알았는가?”

“예……?”

“실체는 조선의 성리학자였으나, 과전법을 반포한 건 고려의 조정이었다. 묻겠다. 백성을 사전의 악몽에서 구한 건 과연 누구인가. 백성은 누구를 바라보았는가.”

참으로 쉽지만 어려운 물음이었다.

당연히 조선의 성리학자를 바라봐야 하는 일이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않았다.

“백성은 정치의 세세한 사정을 알 수 없다. 조정에서 논의하고 집행되어 피부로 와닿을 때 비로소 정치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한데, 보라. 과전법은 고려의 국호가 존속할 때 집행되었다. 이를 설계하고 추진한 분이 우재 대감이라는 걸 백성이 어찌 알겠는가. 고려의 국호를 부여잡고 울부짖은 목은 이색은 과전법을 끝내 반대하였다는 걸 백성이 어찌 알겠는가. 오직 하나, 고려가 하였다. 이것만 뇌리에 새겨질 뿐이다.”

하늘 아래 이보다 큰 모순이 어디 있을까.

귀족의 횡포로부터 구한 건 이성계인데 백성은 성계탕을 먹었다.

전쟁을 획책하여 고려를 불구덩이로 넣으려고 한 건 최영인데 백성은 이성계가 배은망덕하다며 욕을 했다.

대관절 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잠시 숨을 내쉬었다.

청자에 대한 배려였다.

나의 진심 어린 바람은 이들이 선대의 이야기를 심장에 새기는 것이다.

이물질을 모두 밀어내어 모든 자리를 차지하길 바라였다.

“한데, 이러한 민심을 우리의 선대가 몰랐는가.”

“무너진 이 땅을 재건하신 분들입니다. 어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피를 쏟으며 일군 과실이 고려의 왕조로 넘어갔다. 선대는 분하지 않았겠는가.”

“혼란을 끝장내었습니다. 공을 탐하지 않을지라도 어찌 속이 쓰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양보했다.”

“양보라고 하셨습니까?”

“옳다. 이는 양보였다.”

“고려에 양보했다는 것입니까.”

“본질은 백성을 위함이었으나 현상은 그러하다. 민심을 평안하게 한 공을 고려왕조에 양보한 것이다.”

“대관절 무슨 의미입니까.”

“혹자는 말한다. 고려가 존속되던 시절 선대의 개혁은 역성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며, 조선을 위한 거름이었다고.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아니라고 말이다.”

과전법이 조선 건국의 경제적 기반이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게 배웠으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지극히 결과론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참혹한 이 시절을 경험하면서 말이다.

“과전법이 귀족을 무력화하였습니다. 하여, 조선 건국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참으로 어리석다. 위화도 회군으로 태조께서 군권을 거머쥐셨으며, 폐가입진으로 모든 명분을 확보하셨다. 남은 건 오직 옥새이거늘 과전법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사대부들의 말처럼 과전법이 조선 건국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필수조건이 아니었다.

“오직 조선만을 생각하였다면 과전법은 미뤘어야 한다. 모든 개혁을 중단하여 고려의 국호를 쥐어짜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리하지 않았다. 이는 지극히 간단한 이유였다.”

“무엇입니까.”

“우리의 선대는 참담한 지옥을 버텼기에 알고 있다. 사람이 숨을 쉴 수 없는 세상이라는 걸 말이다. 하여, 단 하루라도 빨리 지옥을 끝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오직 백성을 위하여.

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백성의 차가운 시선보다 그들의 굶주림을 먼저 생각했고, 백성의 원망보다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걸 우선하였다.”

과전법은 백성을 살렸다.

추상적으로 만백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전법의 도입이 느려질수록 죽어가는 실제의 백성이 늘어날 뿐이었다.

과전법의 조기 집행이 실제로 죽었을 백성을 살린 것이다.

이는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이다.

“이러한 대의로 꽃피운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그러나 민심은 싸늘했기에 모순이었다. 인간이 세운 나라 중 가장 아름답고 피를 적게 보며 건국되었으나 민심이 이를 따르지 못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민심이 싸늘하였는데 어찌하여 고려의 망국과 조선의 건국에 환호성을 터트렸는가.

이러한 모순이 양립할 수 있었던 원인은 괴이하게도 세종의 존재였다.

“500년 고려의 망령이 새 나라의 뿌리부터 어지럽혔다. 백성을 살찌운 건 조선이었으나, 고려의 사체가 도처(到處)에 남아 공을 탐하였다. 이를 지운 건 오직 세종의 치세였다.”

고려의 사체가 치워진 건 조선의 시간이 흘렀기에 발생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일찍이 이성계와 개국 공신이 미처 치우지 못한 고려의 잔재를 세종이 뿌리 뽑은 것이다.

오직 세종의 역량이었다.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조선은 백성을 두려워했다.”

“…….”

“태조께서는 천도를 단행하셨고, 태종께서는 백성을 통제하셨다. 새 나라를 정비하자면 천도와 통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내면에는 백성을 피하고, 눈을 가리기 위한 왕가의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대저 백성을 너그러이 아끼셨으나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셨다. 이는 실로 두렵기 때문이었다.”

조선은 민본의 대의로 세워진 나라다.

하여, 모든 정책이 백성을 위하였으나 그들의 손을 잡지는 못했다.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오래전 조선이 그러했다.

“그러나 세종의 치세에는 아니었다.”

“어찌하여 아닙니까.”

“바야흐로 애민(愛民)을 언급할 수 있었다. 더는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니, 어찌 세종께서 이루셨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종에 이르러 조선은 백성을 품었다.

이는 자신감이었다.

“세종께서 보위에 오르시어 애민을 선언하시니 마침내 고려의 백성은 모두 조선의 백성이 되었다. 네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드디어 고려가 아니라 조선이라고 하였다. 이 땅의 국호만 조선인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조선 사람이 살게 된 것이다.”

여말선초라는 난세에 이성계와 공신들이 가져야 했던 모든 오명은 세종의 치세에 이르러 비로소 해소되었다.

“애민.”

다시 언급하며 시선을 옮겼다.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봤다.

“오명으로 가득하였던 세월을 지나 힘겹게 세운 애민은 더욱 번졌기에, 마침내 왕가만이 아니라 사대부도 백성을 더 가깝고 자신 있게 만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우리는 이를 교화라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애민으로 시작하였던 교화는 어찌 되었는가.”

“…….”

“오직 생존을 위하여 살아가는 백성에게 규율을 강요하였다. 또한, 거짓된 마음으로 군자가 되라고 하였다. 이렇게 다시 백성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결과, 작금에 이르러서는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태조와 공신들은 백성을 두려워하였는데 지금은 백성이 위정자를 두려워한다. 묻겠다. 이것이 진정 조선의 정신인가? 과연 조선의 개국과 어울리는 작태인가.”

철저하고 지독할 정도로 성리학적 잣대로 이루어진 교화는 백성에게 있어서 강고한 법, 그 자체였다.

더 두려운 건, 교화란 사대부의 세 치 혀가 모든 걸 좌우하기에 일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교화는 백성을 집요할 정도로 묶었다.

하여, 작금의 조선 백성은 말을 할 줄 몰랐다.

이미 오래전에 말하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잃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언제부터 애민은 상실했다. 국호는 조선이었으나 조선이 아니게 되었다. 이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개국 초의 정신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땅에 버티는 나라는 그저 조선일 뿐이었다.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 아니었다.

그저 이성계가 태조인 나라에 불과했다.

“어찌하여 이리되었는가.”

찾아야 한다.

“대체 이 나라 조선은 어찌하여 국호만 조선인가.”

해결해야 한다.

“이는…….”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주희의 탓이 아니다.”

정확하게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나는 이를 알고 있다.

“오직 주희의 말만 따르는 사대부의 탓이다.”

나는 이미 성현이라는 무리를 죽였다.

그러나 오늘은 구체적으로 주희를 죽일 것이다.

주희의 부관참시를 거행하여야만 조선의 성리학이 태동한다.

망령을 치우고 세종을 부활시킨다.

“그의 성리학은 천하를 중화와 오랑캐로 나눈다.”

이토록 오만한 학문이 존재할 수 있는가.

참으로 불쾌했다.

“우리가 과연 중화인가. 주희가 살아나면 우리를 중화라고 하겠는가. 아니다. 우리는 중화가 아니다. 그저 오랑캐에 불과하다. 소중화? 이는 하찮은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은가. 조선이 소중화를 천명하면 중화가 되며, 소중화를 버리면 오랑캐가 되더냐?”

“!!!”

“설령 소중화를 취한다고 한들 천하가 인정할 것이라고 여기는가? 이는 오직 우리의 착각에 불과하지 않은가? 성리학에 의하면 우리는 한낱 오랑캐에 불과하거늘.”

“!!!”

“한데, 우리가 우리를 폄훼하는 주희의 말을 왜 따라야 하는가?”

성리학.

이는 당대 최고의 학문이지만 모든 내용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면 우리의 세계관은 주희가 정한 선에 갇히고 만다.

이는 경계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미 만주족이 천하를 도모하였기에 성리학은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무엇이 입증되었는가. 중화란 성리학이 융성한 나라가 아니라, 중원이라는 거대한 땅을 도모한 나라가 가지는 호칭에 불과하다.”

인정해야 하지만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던 현실을 말했다.

“작금의 천하에서 중화는 오직 청국을 이르는 말이다.”

“!!!”

“작금의 천하에서 소중화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소중화는 우리가 사용한 도구로서 생명을 다하였다.

딱 그 정도가 소중화의 역할이다.

“대체 이 가치가 무엇이더냐. 이 나라 조선의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를 오랑캐라고 멸시한 이의 말을 심장에 새길 것인가.”

주희의 성리학은 역사적 사명을 다하였다.

이제 이 땅에 그의 이름 두 글자가 살아 숨 쉴 공간은 한치도 없다.

품을 이 역시 한 명도 없다.

“이는 세종의 길을 주창하게 된 시발점이었고, 작금의 현실은 주희의 성리학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 세종의 길을 확립하게 된 이유다.”

세종의 성리학은 오직 국익이며 민본이자 백성이다.

명분이 아니라 실리다.

하여, 승리의 길로 나아간다.

그러나 주희의 성리학은 중화이며 글자이자 위정자다.

실리가 아니라 명분이다.

하여, 이미 죽었다.

“세종의 애민이 주희의 글자보다 부족한 게 무엇이더냐.”

“…….”

“주희의 글자는 단 일 할도 애민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의 학문은 오직 통치에 기반하였을 뿐이기에 그러하다.”

손을 뻗었다.

“그 옛날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던 열의가 불타오른 시절이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그 모든 것이 집약된 우리 성리학의 길.”

힘을 꽉 주었다.

“이는 바로 세종의 길이다.”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강고한 신념을 담아서 말했다.

“우리의 세종께서 주희보다 부족한 건 없다. 아니, 고작 주희가 어찌 우리의 세종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는 선언이었다.

“사문난적, 위정척사, 원리주의. 이 모든 것은 세종의 길로 집약된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세종을 탐한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세종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다.

기술, 학문, 국방, 상업, 농업……. 이 모든 걸 포괄할 수 있는 유일한 대명사다.

작금의 조선에 이보다 먼저 탐해야 할 건 존재할 수 없다.

기어이 세종의 길을 탐한 이 땅의 역사는 어찌 되겠는가.

“우리의 후대는 기록할 것이다.”

사관은 기록할 것이다.

“우리의 성리학이 기어이 승리하였다고.”

조선의 성리학이 이겼노라고 외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선대는 위대하였다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마치 우리가 우리의 선대를 칭송하는 것처럼.”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승리 선언이 아니겠는가.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모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늘 세종의 길을 천명하였기에 첫 번째 과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이는 이 나라 조선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할 대의이기에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선택의 순간은 이미 끝났다.

남은 건 오직 집행의 시간이었다.

“너희는 이미 모두가 군포를 내는 세상을 부정했다.”

손을 옮겨 백성을 가리켰다.

“백성도 이를 거절하였다.”

오직 한 가지 집행을 선언했다.

“남은 건 모두가 군포를 내지 않는 나라다.”

“…….”

“…….”

“…….”

군영의 해산을 선언한 것이다.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일제히 침묵으로 동의했다.

물끄러미 군적을 바라봤다.

차분하게 말했다.

“조선의 군적을…….”

말을 이었다.

“화형에 처하라.”

순식간에 화마(火魔)가 자라났다.

모두 말없이 화마를 바라만 봤다.

사대부도 그리고 백성도 바라만 봤다.

나 역시 말없이 바라봤다.

병폐의 상징물들은 순식간에 화마의 먹이가 되었다.

바로 오늘 조선의 군적이 소멸했다.

이는 조선에서 군포라는 조세가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이는 단지 글자로 전할 의미가 아니었다.

후대는 이를 그저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었다.

“…….”

백골징포(白骨徵布).

황구첨정(黃口簽丁).

강년채(降年債).

족징(族徵).

인징(隣徵).

감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폭압들이었다.

떠올렸다.

군포의 부담에 고환을 자르려던 백성.

기근에 굶주렸던 백성.

역병으로 고통을 받았던 백성.

그리고 내가 죽였던 백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내렸던 재앙에서 수백 년간 고통받던 백성이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었다.

조선의 만백성이 바라던 순간이었다.

바로 오늘이었다.

오늘 바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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