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155화 (155/298)

155화 홍위병(紅衛兵)(2)

상기하면 홍위병은 성균관의 유생이었다.

과거 성균관 현판을 떼어 죄를 청할 정도로 패기가 넘쳤다.

이런 이들이 홍위병으로 나섰으니 기세의 날카로움은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단연 압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 윤증이었다.

“소생들은 일찍이 위정척사를 주창하였습니다. 하여, 오늘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무려 200년이 걸렸습니다. 더는 단 하루도 미룰 수 없습니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등을 꼿꼿하게 펴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하니 선생들께서는 비키십시오.”

“하! 서원에 난입하는 무도함이 정도였더냐!”

“하면, 세종의 길이 사도(邪道)입니까?”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준의 갈라치기였다.

조선에서 이런 이분법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다.

무려 ‘세종’으로 이런 위대한 흑백논리를 구축할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 궤변도 적당히 하라!”

“궤변이라니요? 여쭙는 것이지요. 하면, 이리하지요. 선생. 세종께서 사도를 걸으셨습니까?”

“이보게!”

“어찌하여 계속 답변을 회피하십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가 윤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런 식이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윤증이 학문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갈라치기도 능한 것이다.

정말 대단했다.

“소생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주희는 망령이며, 그의 길은 사도였습니다.”

“!!!”

“세종의 길을 찾고 망령을 치우는 것이야말로 위정척사가 아니면 무엇이 위정척사이겠습니까.”

“더, 더는 듣고 싶지 않으니 썩 물러가게.”

“물러가야 할 건 소생들이 아니라, 주희의 망령을 지키고 선 선생입니다.”

“!!!”

“선생께서 진정 주희를 신봉한다면 이대로 비켜주십시오. 소생들이 정성껏 망령의 장례를 치를 것이니 말입니다. 이는 참으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진정 불경한 언사를 멈추지 않을 것인가?! 감히…….”

“어쩔 수 없군요. 더는 듣지 않겠습니다.”

“뭐, 뭐라?!”

“선생은 세종의 적입니다.”

“!!!”

“세종의 적은 곧 우리의 적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윤증이 손을 들었다.

핏대를 세우며 힘껏 외쳤다.

“오직!”

그러자

“세종의 길로!”

유생들이 화답했다.

또 그리고

“오직 세종의 길로!”

“오직 세종의 길로!”

“오직 세종의 길로!”

수십 명의 성균관 유생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서원을 향해서 ‘진군(進軍)’했다.

서원을 지키던 사대부들은 아연실색하였으나 젊은 유생을 감당할 방법은 없었다.

유생들은 순식간에 서원 내부로 진입했다.

나는 백성들 사이에서 갓을 눌러쓰고 바라만 봤다.

여기까지.

서서히 몸을 숨기듯 옮겼다.

굳이 나설 생각이 없었다.

좋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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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은 조정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그 주체가 다름 아닌, 윤증과 성균관 유생이 주축인 위정척사라는 건 더 큰 충격이었다.

중대본의 공기는 묘했다.

사문난적, 위정척사, 원리주의의 흐름이 귀결된 세종의 길이 이런 혼란을 불러올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였다.

특히 윤선거가 난처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장성하였다고 한들 아들의 일이었으니 어찌 곤혹스럽지 않겠는가.

나는 분위기를 환기하듯 말했다.

“이미 주희를 죽였소. 그러니 망령을 치우자는 말은 당연히 나올 수도 있소. 근 200년간 이 땅에 똬리를 튼 유서 깊은 망령이니 말이외다.”

아무런 미련도, 감정도 없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다들 다소 어색한 표정을 보이면서 쓴 미소를 지었다.

탓할 생각은 없었다.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사문난적의 대열에 동참하였더라도 이들의 기본은 성리학자다.

성리학의 동의어가 주자학인 세상에서 평생을 살았던 이들이다.

하루아침에 주희가 지워야 할 존재가 된 세상이 어색하고 혹은 거북할 수도 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중대본의 시간이 멈출 수는 없는 법이다.

“위정척사의 일은 더 지켜보는 게 어떻소이까.”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이대로 지켜만 보면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소. 과격한 행위는 제어하는 게 옳지 않겠소?”

윤선도가 우려를 표했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오늘은 망령의 장례만 진행되었으나 언제라도 사람이 다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이리되면 대대적인 역풍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를 방비하려면 행위 자체를 금지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서원에 병력을 배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선 팔도에 있는 서원을 모두 지킬 방책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소.”

심지어 군영을 모두 해산하여 훈련도감만 남아 있다.

그 훈련도감조차도 구휼미 운송을 비롯한 재해 대책에 수시로 동원되는지라 서원을 지킬 여력 따위는 없었다.

“조정이 개입하면 더 복잡해집니다. 이미 세종의 길을 선언했는데 주희를 모신 서원을 지키겠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지 않습니까.”

“반계의 말이 옳습니다. 이미 세종께서 다시 조선의 하늘이 되셨거늘 어찌 주희의 망령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이참에 전면적으로 일을 감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유형원의 말을 더하는 윤휴의 과격한 해결책은 그냥 귀담아듣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조정이 나서서 서원과 정면충돌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건 정말로 얻는 게 없는 하책이었으니까.

“이미 수천의 사대부가 세종의 길에 동참하였소. 이들이 귀향하여 주희의 신봉자와 격렬한 토론을 펼칠 것이외다. 이는 어차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조정이 섣불리 나서는 건 우매한 짓이오.”

“대감. 신중론을 주장할 때가 아닙니다. 그건 결국 혼란만 부릅니다. 주상께 교지를 청하여 강경하게 나서는 게 옳습니다. 심지어 세종의 길을 선언한 건 대감이었습니다. 사족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 이에 분노한 대감이 대대적인 보복을 감행했다고 하면 어찌 다른 의도를 의심하겠습니까.”

“…….”

“솔직히 지금도 언짢으시잖습니까. 이런 도전을 용인할 정도로 품이 넓으신 분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게 말이야? 뭐야?

대체 이런 말을 본인 앞에서 하는 건 어느 나라 법도야?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쳐다봤다.

물론, 윤휴는 눈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딱 한 마디를 하려고 할 때 밖이 소란스럽다.

다들 눈을 마주치며 쓰게 웃었다.

원인이 너무나도 쉽게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서원이었다.

중대본 밖에서 진을 친 사대부들의 몰골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홍위병에게 된통 당한 게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심하게 다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감! 어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나는 눈을 껌뻑이며 쳐다봤다.

“아니, 내가 무엇을 어쨌다고 이러나?”

“위정척사의 무리가 서원을 침탈할 때 관망만 하셨지 않습니까?!”

“허.”

“아니라고 하지 마십시오!”

“어찌 그걸 또 봤나? 몸을 숨긴다고 숨겼건만.”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말게. 등청하다가 다툼을 봤을 뿐이네.”

“…….”

“그런데 내가 굳이 개입하여 중재해야 하나? 나는 꼭 그래야 하는 법도가 있나?”

“아무리 그래도…….”

“다시 말하지. 내가 백주에 벌어진 난장판에 개입해야 하나? 나 송시열이?”

나의 뻔뻔한 태도에 사대부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다른 이가 나섰다.

“대감. 아무리 세종의 길이 천명되었다고 한들…….”

“세종의 길은 내가 주도했네. 한데, 따르지 않겠다는 건가?”

“…….”

“나 송시열이 주창한 것이네만.”

“…….”

그냥 밀고 갔다.

그런데 효과가 제대로였다.

한 명씩 말문을 닫았으니 말이다.

“대감. 서원은 민간의 일입니다.”

“민간의 일인데 왜 허구한 날 사액(賜額)을 청하여 면세를 바라나? 계속 민간에 있으면 될 일인데.”

“…….”

“나 송시열의 말이 틀렸다고 말해보게.”

“…….”

다시 한 명이 말문을 닫았다.

느긋하게 시선을 돌렸다.

다른 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그렇지만 사사롭게 성현을 섬기는 걸 어찌 탓할 수 있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 아무리 조정이라고 할지라도 민간의 사사로운 일을 어찌 막을 수 있겠나. 당장 과거에 성현이라고 불렸던 이들을 부관참시라도 하는 건 아니니 말일세.”

“…….”

“결론적으로 자네의 말이 옳다는 걸세.”

“하면, 당장 저 무도한 무리를 벌하여주십시오.”

“내 말을 제대로 들어야지. 자네의 말대로 민간의 사사로운 일인데 조정에서 어찌 개입할 수가 있겠는가.”

“예……?”

“조정의 과한 개입은 또 다른 혼란과 갈등을 일으킬 것이니 어찌할 방도가 없네.”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하게 한숨까지 쉬어주면서 말했다.

“하여, 불개입을 선언하겠네.”

“!!!”

손을 훠이 훠이 내저었다.

“서둘러 가보게.”

“!!!”

“성현들 기다리니 어서 가보시게.”

“!!!”

자고로 종기는 쥐어짜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이참에 서원이나 좀 치우기로 했다.

물론, 내가 직접 치울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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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의 발생은 애초 사업계획서에는 없는 일이었다.

유불리와 사세를 떠나서 상황이 어찌 흘러갈지 쉽사리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이연과 세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었다.

오랜만에 알현이나 하려고 이동할 때였다.

“대감.”

용안을 보려고 움직이는데 유형원의 얼굴이 보였다.

눈을 반짝이면서 다가오는데 실로 두려웠다.

나도 모르게 두세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거기서 말하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긴히 듣겠네. 그러니 부디 거기서 말하게.”

“…….”

진저리치는 나를 본 유형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목울대로 무언가가 내려가는 것만 같았으나 내가 신경을 쓸 부분은 아니다.

“서원을 치우실 생각입니까.”

“허. 자네 무슨 신통력이라도 있는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면, 천하 삼분지계가 중요한가?”

“예.”

“그렇군……. 자네 지금 뭐라고 하였나?”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유형원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세종의 길을 명분으로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서원을 치울 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서론은 됐네. 서둘러 말하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유형원의 입가에 보인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서원에 애민을 담는 것입니다.”

“그 말은…….”

“위생국을 전국에 확대하시지요.”

“뭐……?”

위생국을 보급하더라도 의원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또한, 막대한 인력과 재원도 필요하다.

이를 모르지 않을 유형원이 이리 나오니, 더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치솟았다.

“대감. 어차피 서원에는 노비가 있습니다. 이들은 유지하면 될 일입니다.”

“인력은 그렇다 쳐도, 의원은 어찌 충당할 수 있는가.”

“의술은 배우면 될 일입니다.”

“배우다니?”

“의서가 꼭 한자로 적혀 있어야 합니까?”

“!!!”

유형원은 진짜 천재네.

나도 모르게 끌어안을 뻔했다.

“애민입니다. 그러니 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 의서를 만들어 보급한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로 의원을 육성할 수 있을 겁니다. 수준이 낮을 수는 있으나 가벼운 병세는 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애민이 아니겠습니까.”

“서원에서 수학하겠군.”

“물론입니다. 때가 되면 자신의 길을 가야겠으나, 일정 기간 서원에서 의원의 역을 행하게 한다면 어찌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감탄했다.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참으로 대단하군. 가히 천하 삼분지계라고 부를 만해.”

진심이 우러나오는 찬사가 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유형원은 엷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때였다.

“대, 대감.”

쳐다봤다.

관리 한 명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빤히 쳐다보니 황급하게 말했다.

“성균관 유생들이 성균관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이 성균관으로 향하는 게 뭐가 잘못됐나?”

“성균관의 망령을 치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뭐……?”

맙소사.

홍위병이 역병보다 무서운 기세로 창궐(猖獗)했다.

그야말로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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