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156화 (156/298)

156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서원(書院).

조선의 서원은…… 됐다.

서원의 역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서원의 폐단을 굳이 열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서원은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범죄 집단이었다.

정신이 올바르게 박힌 조선의 위정자라면 바로 이 대목에 집중해야 한다.

-합법적.

그리고

-대중적.

이런데도 그간 누구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정치적 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굳건해진다.

서원이야말로 살아 숨 쉬는 기득권 그 자체이기에 그러했다.

성리학자가 위정자인 조선에서 성현의 제사를 지내는 서원은 교단일 수밖에 없다.

해서, 그러했다.

원 역사에서 이를 정리한 건 흥선대원군 시절이었다.

자고로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 때는 모순이 커지기만 한다.

그리고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그제야 수술을 한다.

한데, 이조차 어려우면 숨통을 끊는다.

흥선대원군 시절 조선이 이러했다.

만일 조선이 아니었다면 서원은 진작에 철폐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리학자가 통치하는 조선에서, 서원은 기득권의 최전선이자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마지막까지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야말로 교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집요하고 끈질긴 생명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서원의 수명은 아직 200여 년이나 남았다.

달리 말하면 서원이 200여 년 정도 더 맹위를 떨쳐야 죽는다는 것이다.

그간 서원을 그냥 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200년의 역사를 앞당긴다는 건 일개 개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선의 종묘사직을 끊어버리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홍위병이 창궐했다.

결과를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역병보다 무서운 기세로 조선 팔도를 뒤덮을 수도 있다.

반대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당연하게도 전자를 바랐다.

사실 불가능한 전망은 아니었다.

홍위병의 수장이 윤증이었고, 대오는 성균관 유생이었기에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게다가 유형원이 서원 철폐 이후의 로드맵을 가져왔다.

실무적인 문제가 없지는 않으나,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 이연과 논의하여 보이지 않는 손을 구현할 방편도 고민했다.

나로서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관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은 몰랐다.

주희의 장례를 위하여 홍위병이 서원에 창궐하는 건 바람직하다.

그런데 성균관을 도모하는 건 전혀 별개의 일이다.

아니, 아예 결이 다른 사안이었다.

서원은 억지로라도 민간의 일이라며 발을 뺄 수 있으나, 성균관은 분명한 공적 기구다.

조정이 개입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리되면 홍위병에 대한 정치적 처우가 집행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러니 홍위병은 성균관에 창궐해서는 곤란했다.

은근슬쩍 발을 빼고 불타는 서원을 보며 제삿)이나 먹으려던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둘러야 했다.

성균관 유생이 성균관으로 진입하는 걸 막을 명분은 없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건 이연도 못 막는다.

그러니 그들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이 없는 성균관에서 홍위병을 창궐시킬 것이다.

결과가 어찌 될지 가늠할 수 없기에 가야 했다.

내가.

최대한 빨리.

-----

대성전에 이르렀다.

천만다행으로 아직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였다.

되돌아보면 서원을 도모할 때도 뛰지 않고 걸었다.

20세기 중국의 홍위병과는 달리 이들은 군자인지라 급하게 움직이지 않은 것 같다.

정말 대단한 이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셨습니까.”

윤증의 말에 상황 파악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지금 나를 기다린 것이다.

세종의 길을 따르는 홍위병이니, 그 주창자인 나를.

놀라울 정도로 당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숨을 고른 뒤 물었다.

“구태여 성균관을 도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서원을 다녀왔습니다. 뜨거운 현장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배웠는가.”

“이래서는 주희의 마지막 장례식을 볼 수 없다는 걸 말입니다.”

주희의 마지막 장례식이라.

참으로 대범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윤증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매번 사대부와 논쟁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번거롭고, 시간이 길어집니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해서, 조선 유학의 총본산인 성균관을 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성균관에서 주희의 장례식을 집행한다면 조선 팔도가 이를 인지할 것입니다. 하면, 이 땅에서 숨을 쉬는 세종의 백성이 분연히 일어날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그간 내가 겪은 윤증의 가장 큰 장점은 배움에 벽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서인의 거목인 윤선거의 아들로서 성리학의 내일을 이끌어 갈 적장자로 기대를 모았는데 위정척사의 수장이 되었다.

지금은 세종의 길을 수용하더니 홍위병을 창궐시켰다.

이 시절의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탄력적인 사고였다.

그런데 이 모든 걸 고려할지라도 말문이 막힐 만큼 과격한 언사였다.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이 소론의 영수로 기록되었던 윤증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세종의 길은 경신 대기근과 싸울 조선을 이끌 노선이다.

철저하게 시대를 고찰하며, 명백한 대안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망령의 부활을 영원히 막고, 조선을 거듭나게 할 수 있다.

한데, 극단적인 행위로 변화를 강제한다는 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쩌면 홍위병이 이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생각을 정리하며 홍위병들을 바라봤다.

윤증과 시선이 마주쳤다.

“사부님.”

“말하게.”

“소생은 유학을 익혔으나 이제 유학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아예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주희의 성리학을 넘어서자고 하였을 뿐, 성리학자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윤증은 성리학이 아니라 유학 자체를 벗어나자고 한다.

“유학을 벗어난다? 하면, 더는 유학자가 아니다.”

“아니면 어떻습니까.”

“뭐……?”

당혹의 연속이었다.

이쯤 되어 보니 윤증도 회귀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소생이 유학을 넘어서는 학문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또한,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대로는 정체만 될 것이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유학을 벗어난다고 하였으나 길은 없다고 하였다. 너는 이를 해명해야 할 것이다.”

“백성을 성리학적 이상 국가의 백성으로 만들고자 교화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성리학적 이상 국가의 백성이라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성리학이 백성을 통제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교화다.

그런데 교화하지 않고 절로 통제에 머물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이게 가능하다면 최고의 통치가 아닐 수 없으나,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인의 사고를 하는 나조차도 성리학이 아니면 조선을 경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통치는 철학이며, 작금의 시대에 성리학을 넘어서는 통치학은 없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교화의 필요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성리학이 아닌 유학이라고 하였다. 말의 향연으로 그친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성리학이되 성리학이 아니며 유학이되 유학이 아닌 길을 찾았습니다.”

“길이라고 하였는가.”

“세종의 길을 완성하게 한 위대한 길이 있었습니다.”

묘한 기대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어쩌면 오늘 윤증과 나눈 대화가 엄청난 전환기를 열어낼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거대하게 잠식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르셨습니다. 그 옛날의 열의가 가능한 건 당시의 성리학이 지금과는 달랐기에 그러했다고. 아닙니다. 소생은 백번을 살폈으나 아니었습니다.”

“어찌하여 아닌가.”

“오직 그분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적과 싸우더라도 백 승을 거둘 수 있는 장수였기에 성리학이 보검으로 태어났을 뿐입니다.”

윤증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단호하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한 것이 분명했다.

“법가(法家), 도가(道家), 묵가(墨家)였다고 할지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과정이 고되고 시간이 더 필요하였을지라도 승리의 쟁취는 필연적이었습니다.”

학문이 아니라 사람이다.

성리학이 아니라 그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윤증은 수백 년 이어진 조선의 사고를 송두리째 흔들어 뿌리 뽑고 있었다.

“민본을 위해서는 모든 걸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길이 아니었다면 어찌 세종의 치세가 있었겠습니까.”

이토록 강건한 확신을 어찌 품을 수 있을까.

“세종의 길 이전에 위대한 길이 있었기에 조선은 모든 것이 찬란하였습니다.”

위대한 길.

이보다 압도적인 말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어떠한 어색함도 없었다.

너무나도 적절하였으니 말이다.

“소생은 이를 배울 것입니다. 하여, 비로소 세종의 길을 탐할 것입니다.”

이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본질적인 의문이었다.

“개국 공신은 유자이며 성리학자였다.”

“아닙니다.”

“하면?”

“그분들은 유자도 성리학자도 아닙니다. 하여, 유학도 성리학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어질 말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실학(實學)입니다.”

“…….”

“실학자(實學者)입니다.”

실학…….

지켜만 봤다.

듣기만 했다.

“종래 유학의 범주에 있는 실학이 아닙니다. 소생들이 품고자 하는 실학은,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면 석가조차 품을 것입니다.”

조선에서 가장 빛나는 성리학자로 성장할 윤증이었다.

그가 지금 실학을 주창하고 있다.

이는 원 역사의 실학과도 결이 달랐다.

“성리학과 다름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같으나 다릅니다.”

“말하라.”

“복제(服制)가 아니라 백성의 옷을 바라볼 것입니다.”

끝.

가장 완벽한 차이를 설명했다.

더는 들을 필요가 없다.

내 표정의 변화를 느꼈을까?

긴장감이 감돌았던 윤증이 한결 편안한 미소를 보였다.

“사부님. 미증유의 재해가 난세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극복하자면 주희의 장례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라.”

“사부님.”

윤증이 예를 취했다.

그리고 말했다.

“훗날 공자가 학문을 집대성하였다는 의미의 대성전(大成殿)이 아닌, 대성인(大聖人)을 모신 대성전(大聖殿)의 현판을 세울 것입니다.”

“구태여 그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현의 위패를 내치고 개국 공신의 위패를 올리고자 합니다.”

“!!!”

“사부님께서 나서주십시오.”

작금의 조선에서 변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 서원의 폐단은 조선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실질적인 백성의 고통이 어떠할지라도 조선은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원을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이는 보편적인 조선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모순이 폭발한 것이 아니었다.

서원을 지탱하던 기득권 내부에서 통념(通念)의 정립이 다시 이뤄졌기에 발생한 것이다.

통상 역사는 이를 혁명(革命)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부님.”

윤증의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삼봉 정도전의 신원(伸冤)을 청합니다.”

역성의 주창자가 다시 혁명을 도모하는 날이었다.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이 부활하여 조선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었다.

“위대한 길을 걸어 세종의 길을 탐하라.”

오늘 조선의 개국 공신들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고려의 망령 정몽주에게 내주었던 제 위치를 찾은 것이다.

다시 조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