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158화 (158/298)

158화 개국(開國)(2)

서원의 일이라는 건 생각보다 다양했다.

제례, 교육, 유생 모임이 있는데 지출도 대체로 여기에 집중됐다.

문제는 이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할 수입이었다.

“대감. 사액 서원을 제외한다면 조선의 서원은 자생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이 열악합니다. 특히, 건물을 보수하려면 큰 비용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하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여러 갈래로 운영비를 확보하지만 넉넉하지 않았다.

원인은 다양하겠으나, 애초 서원이라는 집단이 민간에서 주도한 것이었으니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이 윤휴의 진단이었다.

“그런데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문중의 절대적인 지원입니다.”

“문중이라.”

“물론 환곡을 대여하거나 중앙 관료를 내세워…….”

“잠시.”

“예?”

“환곡과 인맥 팔이라.”

제법 괜찮은 제보였기에 진하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보편적인 현상조차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게 왜 보편적인가? 환곡은 백성을 위한 것일세. 한데, 서원에서 이를 사용하는 것은 법도를 어기는 걸세.”

“원론적으로는 그렇긴 합니다.”

“또, 언제 서원을 누가 그렇게 무리해서 만들라고 했나? 여기저기 영토 확장하듯 대책 없이 세우더니, 이제 와서는 감당을 못하니 인맥을 팔았다? 이거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군.”

“…….”

윤휴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나도 살짝 흠칫했다.

내가 송시열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럴 때 민망해하면 지는 것이기에 그냥 뻔뻔하게 있었다.

“어쨌든 이런 구조를 차단하기 전에는 서원은 없어질 수 없습니다.”

“위대한 길의 주창으로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자네 생각이군.”

“성균관 대성전에서 무언가를 도모할 수는 있겠지요. 한데, 군현의 서원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음.”

“누군가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더라도, 복잡한 이해관계와 인맥이 얽힌 서원입니다.”

“그렇지.”

“유생이 나서서 뭘 하려고 할지라도 그의 부친이 반대할 것입니다. 가끔 잊으시는 거 같은데, 이곳은 조선입니다.”

“그걸 왜 잊나?”

“반면, 윤증은 다르지요.”

“다르지.”

애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윤증은 윤선거가 부친이었고, 격동의 도성에서 일을 도모하고 있다.

정치적인 풍파가 아니라면 사사로운 일이 발목을 잡을 수는 없다.

“해서, 자네 말은 재정적 지원을 차단하자는 것인가?”

“대감. 지금은 서원을 압박하여 치울 때가 아니라 협상할 때입니다.”

“협상이라.”

“그간 많이 고민했으나 쉽사리 도모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윤증이 위대한 길을 주창하였습니다. 하늘이 내린 적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네가 생각하는 협상의 결과는 무엇인가.”

“쌀 한 톨이 아쉬운 세상입니다. 서원을 쥐어짜서 재력가의 곳간을 확인할 수 있다면 막대한 구휼미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즉, 서원의 살길을 열어주고 군현의 환곡을 크게 일으키는 것입니다.”

서원을 이용하여 이런 모략이라니.

기가 막히는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반계는 서원에 의원을 수립하자고 하였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일입니다. 가당치도 않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서원에서 의원을 육성하는 건 다 비용이다.

그들을 무슨 돈으로 먹일 것인가.

또, 의원화에 성공하더라도 약재는 어찌 감당할 것인가.

실무적인 문제였기에 해결책은 모색하면 될 일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고민이 아주 쉽게 해결되고 있었다.

경신 대기근이 도래할 때 작물을 재배하지 못할지라도.

식량이 부족하여 사람이 굶어 죽더라도.

그 시간을 버티며 후일을 도모하는 건 바로 ‘사람’이었다.

‘의원’이라는 직역은 경신 대기근과의 혈전에 꼭 필요하다.

또한, 이후 나라를 재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

1. 문화대혁명은 현실 정치와 엮어서 간다.

2. 조선 전체의 변혁으로 강제할 필요도 없다.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하지.”

한 가지 더 궁금한 것도 있었다.

“혹시 다른 원인은 없나?”

“사대부는 검약을 중시합니다. 그런데 공적 자금을 꼭 그렇게 집행하지는 않습니다.”

“낭비와 태만이 엄청나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엄히 다스려야겠군.”

느낌 제대로 왔다.

서원의 운명이 백척간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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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허적에게 혼나고 윤휴와 논의까지 했다.

이 정도면 정말 알찬 하루였다.

몸은 고됐으나 뿌듯했다.

보람차게 귀가했는데 정말 피곤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예 잔소리와 논의의 본고장인 송준길이었다.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안 바쁘십니까?”

“사세가 급박한데 어찌 여유를 찾겠는가.”

“안 바쁘냐고 여쭸는데 무슨 여유가 나옵니까?”

“일단 앉게.”

“…….”

엄청난 잔소리를 장전해온 게 분명했다.

할 수만 있다면 도성 밖으로 도주하고 싶을 정도였다.

한숨을 푹 쉬면서 대충 자리에 앉았다.

“뭐라도 내오게.”

냉수나 한 잔 내오라고 했다.

쌀 한 톨이라도 아껴야 할 시대다.

송준길도 딱히 뭔가를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별말은 없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자네 왜 이리 여유롭나?”

“조금 전에 소제가 여쭤본 내용이군요. 농을 하시다니 안 바쁘십니까?”

“윤증이 주창한 위대한 길에 담긴 뜻을 모르지 않을 것이네.”

“그의 외침은 순수했습니다. 한마디로 뭐라도 해보자는 거였지요. 많은 걸 가진 노인들이 기함했을 뿐입니다.”

“우암. 이 사안을 그렇게만 봐서는 곤란하네.”

“안 곤란합니다.”

“농을 하는 게 아닐세.”

송준길의 목소리는 참으로 심각했다.

그만큼 작금의 상황에 실린 정치적 무게가 무겁다는 의미였다.

아무래도 작심하고 내게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형님. 그저 지켜만 볼 수는 없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네.”

이리되면 허적을 상대했던 것처럼 가볍게 넘길 수는 없었다.

되도록 참전 인원을 늘리고 싶지는 않았으나 어쩔 수 없다.

나는 쓰게 웃으면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위대한 길은 기존 질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일세. 한데, 자네가 여기에 힘을 실었어.”

“압니다. 어찌 모르겠습니까.”

“이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송준길은 서인의 지도부다.

송시열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입지와 위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런 송준길의 입에서 나온 기존 질서라는 건 예사로울 수가 없다.

“위대한 길이 가속화될수록 기존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작금의 조선이 유지되는 틀은 누가 뭐라 해도 서인과 남인의 공존이었다.

붕당의 폐해가 아무리 거대하다고 할지라도, 붕당이 없으면 하루도 생존할 수 없는 게 조선의 현실이었다.

즉, 기존 질서의 해체는 엄청난 혼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윤증이 선언한 위대한 길은 이토록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여기에 자네가 동조하면서, 아예 해체할 수도 있는 파급력을 가지게 됐네.”

나는 시선을 회피하며 무던하게 말했다.

“그건 좋은 일이 아닙니까?”

“…….”

“진심입니다.”

“그래. 그간 자네의 언행을 되돌아보면 이리 나올 줄 알았어.”

“알면서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군요.”

“작금의 조선이 태평성대, 아니 평시만 되더라도 우려를 표하지 않았을 걸세. 그러나 난세일세.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절에 붕당을 개편하다가는 조정의 지도력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네. 어찌 이를 모르시는가.”

되돌아본다.

원 역사의 현종 시대는 예송논쟁이 정치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그 시절 조선은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내부의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였을지라도 현종은 정국을 개편하거나 붕당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의 아들 숙종이 피비린내 나는 환국으로 정사를 이끌었다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평온한 시절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숙종 시절 환국의 원인이 되었던 일들은 예송논쟁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조족지혈의 사안이니 말이다.

원 역사의 현종이 다스린 조선은 경신 대기근을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또한 모든 힘을 다하여 온몸으로 싸운 결과였다.

만일, 원 역사에서 현종이 숙종처럼 과감하게 환국을 도모했다면 경신 대기근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을 것이다.

조정은 안정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송준길은 이를 우려하고 있었다.

“단지 붕당의 개편으로도 그러한데, 위대한 길은 그간의 역사와는 본질이 다르지 않은가.”

“…….”

“성리학적 해석으로 붕당의 재편이 도모되는 것이 아니기에, 파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지 않은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일세.”

나는 송준길을 빤히 쳐다봤다.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저러다가 죽지 싶을 정도였다.

이제 나도 말이라는 걸 제대로 할 때였다.

애초 나 역시 위대한 길을 충동적으로 동의한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선악 혹은 정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천하에서 성리학이 가장 융성한 나라는 우리 조선입니다. 하여, 우리가 제일 잘 압니다.”

“옳지.”

“그러나 성리학은 작금의 난세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만일, 이러한 진단이 틀렸다면 위대한 길은 주창될 수가 없지요. 아니, 사문난적조차 언급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암.”

“다시 말씀드려야 합니까? 임진년과 병자년의 참화로 성리학은 이 땅의 태평성대를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전란을 방비할 수 없는 학문, 재조산하(再造山河)를 도모할 수 없는 학문이라는 걸 보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리학이 현실적으로 여전히 가장 뛰어난 통치의 수단이었기에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거르지 않은 직설적인 말을 꺼내자 송준길의 안색은 혼탁했다.

그의 속이 얼마나 복잡할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작금의 조선을 책임지는 위정자라면 감내해야 할 일이었다.

“소제 역시 성리학의 변화로서 난세를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윤증과 젊은이들이 새로운 물결을 도모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막을 수 있습니까. 이제 조선을 200년간 이끌어 온 성리학은 역사적 사명을 다했습니다. 이미 수명이 끝나가거늘 어찌 미련을 가지십니까.”

우리는 작금의 변화를 어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원 역사를 배웠다.

그리고 지금 나는 새로운 역사의 심장부에 있다.

무엇이 나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으나 명확한 것이 있다.

원 역사를 답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난세라서 우려된다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난세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난세가 열리면 기존 질서가 만든 모순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소제가 위정척사의 움직임을 단지 붕당의 개편으로 보지 않는 전제입니다.”

난세는 변혁을 동반한다.

이는 동서고금의 진리다.

“형님. 난세에 불었던 새로운 시대 정신이 늘 어떤 문제와 봉착했는지 아십니까.”

“말하게.”

“선각자들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전조 고려 시절 성리학은 분명한 시대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귀족의 나라였기에 성리학이 통치 철학으로 자리 잡는 건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어찌하여 그러하였습니까. 새 시대를 알리는 철학은 늘 기득권을 향한 칼이었습니다. 하여, 그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막았지요. 결과, 목숨을 걸어야 했지요.”

“…….”

“형님. 성리학이 이 땅을 책임지기 위하여 그야말로 피의 역사를 보냈습니다. 이는 안타깝고 두려우나 필연적입니다.”

여말선초 성리학은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싸운 건 500년 귀족의 소굴인 고려였다.

“귀양을 가거나 고문당하여 죽거나. 그 모진 세월을 성리학이 버텼습니다.”

“…….”

“모든 난세는 이러하였습니다. 투쟁의 역사에서 살아남으면 조정의 통치 철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재차 언급했다.

쓰게 웃으면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죽거나 죽여야 했으니 말입니다. 기득권이 이기면 그 세상은 유지되는 것이며, 새로운 철학을 꺼낸 세력이 이기면 세상은 변하겠지요. 이 싸움은 서로의 목숨을 담보로 하였기에 치열할 수밖에 없지요.”

조정의 시책이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새로운 기득권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원래 기득권은 그들을 탄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생존의 문제였으니 그러했다.

“실학이라고 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의 외침이 어떤 모습으로 현실에 구현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종래 있었던 붕당의 분화처럼 정치적 다툼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길이지 않습니까. 물론, 종래 붕당의 분화처럼 정치적 다툼으로만 그칠 수도 있습니다. 예. 이건 최악의 결과로 귀결되겠지요.”

“…….”

“하지만, 아직 우리는 그들에게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부족하여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혼란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소제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어보고자 합니다.”

“…….”

“비록 결과가 고작 붕당의 분화로만 그치면 어떻습니까. 그간 있었던 일의 반복에 불과하니 어찌 그들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

“그러니 젊은이들에게 한 번 정도는 희망을 걸어봐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

“형님. 성리학의 나라에서 실학을 태동하겠다고 선언한 건 목숨을 건 도전입니다.”

더불어 나는 지금 너무나도 뼈 아픈 현실을 말했다.

“그리고 지금 젊은이들의 외침과 충돌하는 기득권은 바로 우리입니다.”

이것이었다.

너무나도 아픈 현실이.

송준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리가 그 의기에 기득권의 올바른 자세로써 화답하는 건 어떻습니까.”

말을 이었다.

“형님. 우리 역사에서 한 번 정도는 기득권이 제 손으로 기득권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 정신을 수용하는 순간이 있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젊은이들이 부족한 연륜과 경륜은, 기득권이었던 우리 늙은이들이 거들면 될 일입니다.”

진심을 담아서 천천히 말했다.

“형님. 윤증이 소제에게 말했습니다.”

“…….”

“백성의 옷을 바라보겠노라고.”

“…….”

“하면, 옷감 정도는 우리가 마련해줘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고통스러운 침묵을 지키던 송준길의 입에서 말이 새어 나왔다.

“진정으로 그리 여기는가?”

“물론입니다.”

“송시열이 송시열인 이유를 내리는 걸세.”

“다 필요 없습니다. 다 가져가라고 하십시오. 소제는 정말 필요 없습니다.”

방긋 웃었다.

“소제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어보고자 합니다.”

이 길의 끝에…….

“희망의 대가가 참혹할지라도 말입니다.”

지옥이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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