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개국(開國)(3)
나와 동지들의 논의가 이뤄질 동안 도성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사대부의 동요는 지금껏 내가 경험하지 못한 수위였다.
-주자도 죽이더니 공자도 죽이자는 게 말이 되는가?
-하면, 우리는 성리학자도 아니고 유학자도 아니게 되는 걸세.
-대관절 우리 조선의 사대부는 무엇이란 말인가?
퍽퍽해진 공기에 불편함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젊은 무리가 불태우자고 부르짖는 성현의 위패에는 5현도 포함되었어.
-참으로 무도한 무리가 아닐 수 없네.
-작금의 조선이 어찌 여기까지 왔는지 한 번이라도 되새겨본다면 감히 할 수 없는 망언일세.
-선배들이 만든 길을 편안하게 걷기만 하더니 기어이 이런 짓을 저지른 걸세.
예상대로 기성세대는 위대한 길에 강력한 거부감을 표출했다.
위정척사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여차하면 유혈 사태까지 발생할 것만 같은 수위였다.
바꿔 말하면 심장부를 타격하여 일거에 변화를 꾀하려 한 윤증의 전술적 판단이 유효했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서일까?
윤증은 거센 반발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대성전에 개국공신의 위패를 모셔야 하옵니다!”
성균관 유생을 이끌고 연좌에 돌입한 것이다.
‘성현을 불태우자’라는 엄청난 논제로 말이다.
세간의 화제성을 반영하듯 엄청난 수의 관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러 생각을 하며 은근슬쩍 걸어갈 때였다.
“사부님.”
윤증이 나를 불렀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는데 곧장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
정말이지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진짜 등골이 오싹했다.
그야말로 ‘공포가 몰려온다’였다.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설 뻔했다.
경지에 이른 학자가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신념에 미치면 저렇게 되는 건가 싶었다.
정도전이 저랬을까 싶다.
“사부님!”
“…….”
“어찌하여 함께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허.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퇴로라고는 열어줄 생각이 없는 이런 인사를 보았나.
과연 100여 명이 넘는 기성 관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꽂혔다.
얼핏 보았는데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관리도 두 자릿수의 인원이었다.
심히 부담스러웠다.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절로 걸렸다.
“사부님께서 동참해 주신다면 그야말로 천군만마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대감께서 나서 주십시오.”
“세종의 길을 주창하신 대감이시라면 누구보다도 위대한 길을 잘 이해하실 겁니다.”
“대감이 아니라면 누가 있어서 소생들을 이끌겠습니까.”
대체 언제부터 송시열이 개혁과 변화의 상징이 되었단 말인가.
이 나라 조선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사부님.”
“…….”
“소생 윤증. 지금껏 사부님의 말씀을 한 번도 흘린 적이 없습니다.”
“…….”
“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겼습니다. 심장에 새겼습니다.”
“…….”
“소생들이 길을 잃었을 때 사부님께서 이르셨습니다. ‘위대한 길을 걸어 세종의 길을 탐하라’ 이렇게 말입니다.”
이토록 무서운 말을 대놓고 하다니.
참으로 맹랑한 인사가 아닐 수 없다.
힐끗 시선을 돌려봤다.
나를 쏘아보는 당상관들의 눈빛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송시열을 상대로 저런 기세라는 건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능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말을 해야 할 때가 됐다.
며칠 더 지켜본 뒤 감행하려고 하였으나, 오늘 판이 깔렸으니 어쩔 수 없다.
자세를 고쳐 잡았다.
윤증을 바라봤다.
유생들을 쳐다봤다.
당상관들을 바라봤다.
모두를 시야에 담았다.
모든 시선이 내게로 집중됐다.
딱 좋다.
단호하게 말했다.
“사직하겠다.”
“!!!”
“!!!”
“!!!”
내 뜻은 충분히 전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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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적은 한숨을 쉬었다.
어찌나 무거운지 들을 때마다 심장이 철렁했다.
눈이 마주쳤는데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시선을 돌려서 먼 산을 쳐다봤다.
죄가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다 대충 넘겨도 허적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솔직히 이연보다 더 불편했다.
실질적인 실무 책임자가 허적이었기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여기서 나는 탕진파, 그는 비축파라는 묘한 경계도 일정 부분 더해졌다.
“또…….”
허적의 입에서 언어라는 게 튀어나왔다.
묵직한 한숨을 동반하면서 말이다.
“사직을 선언하셨소?”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소.”
“대관절 그 부득이한 사정이라는 게 무엇이오? 혹시 기근 대비보다 부득이하오?”
“물론 그건 아니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사세가 참으로 엄중했소.”
“본부장…….”
“진심으로 사죄하는 바이오.”
어차피 겨뤄서 남는 것도 없는 상대다.
그냥 사과하는 게 옳다.
허적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것이오?”
“그리해야만 늙은이들의 이합집산이 발생하지 않겠소?”
“허. 기어이 일을 크게 키우겠다는 것이오? 모두 합심해도 버거운 난세이거늘.”
“중대본에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오.”
“중대본의 본부장께서 사직을 선언하였소만.”
평소답지 않게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걸 보니 뭔가 바라는 게 있다.
불안함이 엄습했으나 의연하게 대처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이오?”
“어렵지 않소. 환곡을 좀 손봐야 할 듯하오.”
“그게 어렵지 않은 일이오?”
“산림의 영수께서 언질이라도 하는 게 그리 어렵소?”
“…….”
“내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요.”
이건 대체 어느 나라 화법이란 말인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눈을 껌뻑거렸다.
하지만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사안도 아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윤휴의 서원 협상론에서도 환곡이 언급됐다는 것이다.
은근하게 물었다.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오?”
“조만간 정리하여 전하겠소.”
“아직 초안도 나오지 않았소?”
“본부장의 결심에 따라 초안이 달라지니, 어찌 섣불리 붓을 움직일 수 있겠소?”
“…….”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다.
총체적으로 찝찝하였으나 동의했다.
그때 윤선도가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본부장. 사직할 때 사직하더라도 일전에 약조한 어선의 건조는 모두 이행되어야 할 것이오.”
“나도 이 말을 하려고 했소. 사직 상소를 정식으로 올리기 전에 처리해야 하오.”
“…….”
참으로 야박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쌓은 정이라는 게 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다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담긴 기대가 엄청났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그냥 먼 산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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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원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눈가도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여러 어려움에도 꾸준하게 추진해온 동부 지역의 역사(役事)가 어느새 끝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틀은 마무리가 됐다.
세세한 부분과 몇 가지 문제만 바로 잡으면 완공을 선언해도 될 수준이었다.
“선생. 감축드립니다.”
변승업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가왔다.
유형원 역시 환한 미소로 반겼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괜한 공치사는 되었소.”
“하하하. 이런. 소인이 결례를 범할 뻔했군요.”
“그런 뜻이 아니오. 당치도 않소. 변 역관이 중대본의 여러 일에 큰 역할을 하는 걸 아오. 한데 내가 어떤 말을 듣자니 민망하여 그런 것이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오.”
“물론입니다. 소인은 그런 마음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몇 번 만난 적은 없다.
역관이며 상인에 불과한 자신에게도 언행이 깍듯하다.
심지어 일신의 능력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시야 자체가 달랐다.
조선의 사대부 중 이토록 뛰어나고 겸손한 이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그간의 만남을 통해서 파악한 유형원을 잠시 상기한 변승업은 소탈하게 웃었다.
“듣자니 조정이 시끄럽다고 하더군요.”
“편히 말씀하시오. 사대부들이 백주에 저리 떠드는데 변 역관이 모르는 게 이상하니까.”
“하하하. 너그럽게 봐주시어 감사합니다. 한데, 선생. 소인의 소견으로는 가볍게 끝날 사안은 아닌 듯합니다.”
“어찌 보시오?”
“솔직히 양측의 전선이 어디까지 번질지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사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시오?”
“그건 아닙니다. 주상 전하께서 사화를 품으셨다면 이미 몇 번이나 도모하셨을 순간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송구합니다. 소인이 실언했습니다.”
“나는 거상의 시선이 궁금하오. 아니, 거상이 볼 때 어떤 변화가 보이는지 알고 싶소. 배우리다.”
“아.”
“진심이오.”
이러면 속내를 숨길 수가 없다.
변승업은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꺼냈다.
“사화로 인한 붕당의 개편은 어제가 오늘로 이어졌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종래 위정자와 다른 성격을 가진 위대한 길이 공식화된다면 반드시 변화가 있을 겁니다.”
“이유는 무엇이오?”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은 이를 뒷받침할 민간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동의하오.”
“예…… 예?”
변승업은 눈을 껌뻑였다.
수용만 하더라도 다행인데, 이런 전격적인 의사 표현은 원래 가진 뜻이라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종래 조선의 사대부는 농업을 기반하여 경제력을 유지하였소. 하지만, 새로운 정치 세력은 꼭 농업을 취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허.”
“그러니 농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새로운 민간의 영역을 크게 일으키지 않겠소? 아. 물론, 농자천하지대본이 근간이라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오. 이는 근본이니까.”
말을 마친 유형원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놀라움으로 범벅이 된 변승업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말했다.
“변 역관. 해서, 우리 이야기를 해볼까 하오.”
“무, 물론입니다.”
유형원의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주변을 지나던 손은 어느 순간 멈추었다.
“방금 내 손이 향한 곳을 모두 내어드릴 수 있소.”
그야말로 동부의 요충지였다.
이는 동부 지역의 상권을 몽땅 넘기겠다는 의미나 다름이 없었다.
변승업의 눈이 반짝였다.
“소인이 무엇을 내어드리면 되겠습니까.”
“완벽한 지원.”
“완벽함의 기준을 알지 못합니다.”
“동부가 도성에서 가장 청결하고 흥하는 지역이 되어야지요.”
“음.”
“벽 역관의 상단이 쇠고기 전매권을 가지게 되었고, 이 지역에서 상권이 형성될 것이니 흥하는 건 어렵지 않소. 그러나 청결을 도모하려니 참으로 어려운 게 많소.”
“선생. 더 엄격한 기준을 내어주십시오.”
역시 상인답게 거래는 정확했다.
유형원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인분이 거리에는 없었으면 하오.”
“음.”
“아무리 교화한다고 하여도 쉽사리 될 일이 아니외다.”
“그렇긴 하지요.”
“한데, 이는 결국 돈이 들어가면 해결할 수 있소.”
“허. 참으로 놀랍군요.”
“무엇이 놀랍소?”
“많은 학자를 만났으나 교화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분은 선생이 처음입니다.”
“당연한 일이외다. 교화는 결국 돈을 잘 벌게 해주는 수단이니 어찌 가볍게 여길 수가 있겠소? 어떻소? 가능하겠소?”
“물론입니다. 인분을 치우는 인력을 구하면 될 일이지요.”
“이왕이면 거름화 작업도 거들면 좋겠지요.”
“그리하겠습니다.”
협상은 빠르고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유형원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젊은 유생이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소. 그들이 제대로 된 기반을 가지려면 상단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외다.”
“물론입니다. 소인이 성심껏 나설 것입니다.”
“우려할 일은 없길 바라오.”
“소인은 절대 선을 넘지 않습니다.”
“훌륭하오.”
“아. 선생.”
“왜 그러시오?”
“우암 대감께서 사직을 선언하셨다고요?”
“그것도 병이오. 진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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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의 사직 선언은 엄청난 파열음을 냈다.
그의 사직 선언이 드문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위상이 아니다.
또한, 정국이 너무나도 불안정했다.
이럴 때 송시열의 행동은 정치적 무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삼삼오오 모인 당상관은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본부장 대감께서 사직을 선언하셨네.”
“늘 있던 일이지만 이번은 예사롭지 않아.”
“지금껏 본부장 대감의 사직 상소는 졸렬함의 표현이었다면, 이번은 아닐세.”
“그렇지. 졸렬해질 수 있는 사안이 없어.”
“하면, 대체 왜?”
“알 수 없는 일일세. 이런 안개는 난생처음 만나 보았네.”
“가뜩이나 위정척사의 억지에 머리가 아픈데 이런 변수라니. 골치가 아프군.”
“내 말이 그 말일세.”
송시열의 의도에 따라서 작금의 전선은 확실하게 달라진다.
그래서 당상관은 수시로 모여서 확보한 정보를 공유하며 토론을 이어갔다.
“확실하지는 않네. 내 생각에는 모종의 경고가 아닐까 싶네.”
“경고? 누구를 향한 경고인가.”
“윤증이지.”
“제자가 아닌가.”
“무도한 연좌를 강행하던 그가 본부장 대감의 권위를 탐하였어. 노발대발하신 걸세.”
“설마 이번에도 그런 이유란 말인가?”
“확실하네. 생각해보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모욕을 준 것이나 다름이 없네. 심지어 제자가 사부를 말일세. 본부장 대감이 이를 그냥 넘길 수 있는 성정을 일 할이라도 가졌나?”
“자네 말이 진리일세.”
말은 말을 타고 번지는 법이다.
말과 말이 만나 내려진 하나의 결론은 또 다른 정보가 되어 옮겨졌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네.”
“당장 말하게. 내가 풀어보겠네.”
“본부장 대감은 분명 위대한 길을 동의하셨어. 한데, 왜 언짢으셨을까.”
“그건 참으로 간단한 일일세.”
“무엇인가.”
“세종의 길을 설파하셨는데 제자인 윤증이 더 온고지신하여 위대한 길을 꺼냈네.”
“설마……?”
“불쾌하신 걸세.”
“그 정도란 말인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불쾌하셨군.”
“그렇지. 실제로 사직을 선언하실 때도 그 외에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셨네.”
“진심으로 불쾌하셨군.”
다양한 말이 옮겨지다 보면 모순이라는 것이 발생하는 법이다.
머리를 맞대어 토론하던 이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애초 동의하지 않으시면 되었을 걸세.”
“정확하게 하지. 본부장 대감은 동의하신 적이 없으시네.”
“뭐?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정확하게 하지. ‘위대한 길을 걸어 세종의 길을 탐하라.’라고 하셨네.”
“허. 설마?”
“기승전 세종의 길이어야 하거늘, 기어이 위대한 길을 언급하지 않았나.”
“그렇군. 청출어람이 너무나도 불쾌하셨던 걸세.”
“그렇지. 그래서 아예 제대로 분을 푸신 걸세.”
“제자를 상대로 참으로 대단하시군.”
“그 성정이 어디 가겠나?”
아무리 허튼 말이라도 기승전결은 존재하는 법이다.
하물며 당대 최고 학자의 언행을 분석하는 일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파악의 노력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되돌아보면 본부장 대감께서 성현의 위패를 어찌하겠다는 말씀은 없으셨네.”
“당연한 말일세.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일세.”
“어째서 그러한가?”
“서인의 영수이자 산림의 영수이시네. 학문적 경지는 조선 역사의 최고라고 불리시고.”
“응?”
“이 정도라면 꿈을 꿀 수 있지 않나?”
“설마?”
“설마가 맞을 것일세.”
“소, 송자?”
“내 생각은 필시 그것일세. 본부장 대감은 사후 송자를 탐하고 계신 걸세.”
“허.”
“그러한데 성현의 위패를 치우자? 심지어 제자가? 용납되겠나?”
“절대로 용납할 수 없지. 한데, 송자가 진정 가능한가?”
“자네도 이미 가능하다고 여길 텐데?”
“허. 졸렬한 성현이라니. 참으로 두렵군.”
“두려운 일이지만 너무나도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
“그렇군. 윤증이 아예 실수한 것이군.”
“그렇지.”
결론은 내려졌다.
결론은 하나였다.
-송시열은 우리 편이다.
확고부동한 결론이었다.
당상관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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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궐했다.
그런데 관리들이 나를 보더니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소생들이 돕겠습니다.”
“…….”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
이건 무슨 개똥 같은 상황일까?
“대감의 꿈을 소직들이 이뤄드리겠습니다.”
“나의 꿈?”
“다 알고 있습니다. 송자를 꿈꾸셨지 않습니까.”
“뭐……?”
“사후의 일이기에 입에 언급하기가 황망하지만, 이미 뜻을 밝히셨으니 어찌 숨기겠습니까.”
“…….”
송자…….
살아서 성현을 꿈꿔도 이상하지 않은 송시열이라니.
당신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여, 소직들이 일제히 사직 상소를 올렸습니다.”
“…….”
당상관이 일제히 사직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정국은 한 치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떠오른 게 있었다.
원 역사의 이 시절은 예송논쟁과 경신 대기근이 지배했다.
그러면 이곳의 후대는 작금의 조선을 어떻게 기록할까?
연좌의 시대와 경신 대기근으로 기록하지 않을까?
잊을 만하면 연좌가 발생하였으니 능히 그럴 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