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161화 (161/298)

161화 개국(開國)(5)

박세당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미 사문난적 이후 위정척사와 원리주의가 태동한 것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종의 길에서 위대한 길로 이어진 흐름의 속도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가히 변혁(變革)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기에, 어찌 대응할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이대로 수수방관하다가는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일파의 수장이었기에 문제는 더 심각했다.

원리주의를 따르는 사족들의 서찰이 끊이지 않았다.

여러 내용이 적혀 있었으나 변혁으로 인한 혼란을 감추지 못한 심리가 핵심이었다.

그들에게 명쾌한 답을 내려줘야 할 위치였기에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쌓이는 건 근심이고,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선생?”

“…….”

“선생……?”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박세당은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걱정스레 쳐다보는 백성들이 보였다.

민망함과 황망함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으십니까?”

“아.”

“많이 고단해 보이십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갈까요?”

“아닐세. 아닐세. 여태껏 순번을 기다리지 않았는가.”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전혀 신경 쓰지 말게나.”

어깨를 짓누르는 번뇌였으나 백성들과의 만남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한 번의 만남을 위하여 며칠을 기다렸을 건데, 거기에 하루를 더 미룰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 말해보게.”

“실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얼마 전에 선비님들이 서원에서 다투지 않았겠습니까?”

박세당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백주의 일이었다.

백성이 보고 들었을 건 당연한 일인데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다.

얼마나 추하였을지 듣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사대부로서 그리고 위정자로서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대체 왜 싸우신 겁니까?”

“뭐……?”

“대충 들은 내용으로 소인들끼리 대화를 나눠봤는데 영 희한하더라고요.”

“희한하다?”

“예. 그러니까…….”

이어진 말에 박세당은 기함할 뻔했다.

너무나도 명쾌한 결론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의 제사.

-재산의 상속 문제.

흘려서 들으면 아예 관계가 없는 말이다.

하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한 본질이었다.

작금의 사안은 성현의 유산을 승계할 건지, 버릴 것인지가 핵심이었으니 말이다.

백성의 말을 듣고 싶었다.

“자네들은 누구의 말이 옳은 거 같은가.”

“꼭 누구의 말이 옳아야 합니까?”

“하면,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은가?”

“누가 재산을 물려받더라도 소인들이 무슨 상관이 있나 싶어서 말입니다.”

“자네들에게 보탬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아이고. 선생. 그럴 일은 왜 생기겠습니까. 윗분들 재산 싸움인데 말입니다.”

“…….”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나라 사람에게 받을 재산이라는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윗분들 재산 다툼에 애먼 백성들의 땅이나 재물이 흥정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나라 사람이 남긴 재산이라고 하니 다들 마음 놓고 있습니다. 그냥 강 건너 불구경이지요.”

“…….”

“그저 다투다가 소인들에게 화풀이나 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투박한 말투와 정제되어 있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놓칠 게 없는 내용이었다.

문뜩 궁금하여 물었다.

“자네들 서원을 어찌 생각하나?”

“윗분들이 제사 지내는 곳이잖습니까.”

그 말에 듣고만 있던 다른 백성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가끔 거기서 나오시는 윗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시긴 하는데, 영 어렵습니다.”

“허. 그 말씀이 좋다는 걸 알았다면 자네는 성공한 걸세.”

“하하하. 암. 그렇지. 대부분 그냥 말씀이라고 하지.”

대기하던 백성들이 너도나도 끼어들었다.

가벼운 웃음을 동반했던 시작은 어느새 박장대소를 일으켰다.

“이 사람들아. 내가 뭘 알아들어서 좋은 말씀이라고 하겠나? 웃으면서 말씀하셔서 그런 거지.”

“하하하. 그래. 웃으시면서 뭐라고 하시던가?”

“내가 그걸 왜 기억해야 하나?”

“못하는 거 아닌가?”

“사실 그렇지. 다른 나라 말인 줄 알았네.”

“하지만, 말씀은 주로 꾸짖으실 때 하셨는데 자네는 참으로 복 받은 걸세.”

“뭐 그렇긴 하지. 그 지겨운 말씀을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들었으니 말일세.”

200년을 이어온 교화는 고작 이 정도였다.

성현의 가르침이 틀린 걸까 아니면 조선의 사대부가 부족한 걸까.

후자라면 200년을 더해야 성과가 나오는 걸까?

그렇다면 교화라는 건 허상이거나 실패한 게 아닐까?

“확실한 건, 알아듣지 못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걸세.”

“하하하. 그 말이 정답이지. 우리가 그렇게 어려운 말을 알아서 뭐 하나?”

“살면서 알아야 할 내용은 어른들한테 다 듣고 배우니 문제는 없지.”

어쩌면 교화를 선언하였던 성현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군자의 길을 알려주고자 한 것일까.

하루를 살기도 버거운 백성이다.

경전을 읽지 않는데 어찌 수기치인을 할 수 있는가.

애초 군자가 될 수 없는 백성들이지 않은가.

사문난적.

위정척사.

원리주의.

세종의 길.

위대한 길.

조선을 흔들고 있는 시류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불문에 부치겠네.”

박세당의 말이 소란을 뚫고 울렸다.

왁자지껄하던 장내는 순식간에 정적이 감돌았다.

백성들은 그제야 눈치를 살폈다.

너무 생각 없이 떠들었다.

늘 가까운 곳에서 편히 대화했기 때문일까?

박세당 역시 양반이며 사대부라는 사실을 잠시 잊은 것이다.

그러나 섣불리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간 경험한 바에 의하면 괜한 말을 보태는 것보다 침묵이 낫기 때문이었다.

“다툼은 자네들을 위한 걸세. 목숨을 걸고 나선 이도 있고.”

“…….”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양반의 뻔한 소리다.

골수에 박힌 말이라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대의 그리고 명분.

이럴 때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백성들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

“…….”

“그간 보았던 나를 떠올리게. 불문에 부친다는 게 허언은 아니라는 걸 알 것이네.”

“…….”

“그러니 말해주겠나?”

“솔직히…….”

바닥을 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박세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봤다.

“윗분들의 목숨이 소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긴장감이 잔뜩 담긴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시작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대체 왜 죽어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선생. 그거 아십니까? 누가 죽고, 살아도 바뀌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말은 결국, 싸움의 결과는 소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박세당은 아무런 대꾸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백성들이 어렵게 입을 열었는데 말을 보태는 건 함구를 명하는 것이니 말이다.

“늘…….”

어떤 노인이었다.

그가 말을 꺼내자 백성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윗분들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패하여 너희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그리 여깁니다. 소인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늘 지는 쪽이 백성을 위하였기 때문일 거라고.”

“…….”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이 너무 가혹하지 않겠습니까.”

“…….”

“다만, 소인이 오래 살아서 윗분들이 두 패로 나뉘어 싸웠는데 이기고 지는 일을 주고받았다는 건 애써 외면하였을 뿐입니다.”

“…….”

“윗분들의 목숨까지 생각하기에는 살지는 않습니다. 소인들은 윗분들이 가끔 느끼는 죽음이라는 걸 매일 경험하면서 오늘까지 버틴 것이니 말입니다. 목숨에 귀천이 있는 걸 알지만 소인들에게는 가족과 친우의 목숨이 더 귀하지 않겠습니까.”

노인의 느릿느릿한 말은 참으로 많은 걸 담고 있었다.

복잡한 정치의 원리와 심오함은 없지만 너무나도 정확한 본질이었다.

위정자로서 미처 보지 못한 영역이기도 했다.

박세당은 고개도 끄덕이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그러나 군포가 없어진 건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소인이 평생 처음 본 일이었습니다. 다툼의 결과가 무언가를 바꾼 것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정승 자리의 주인만 바뀌는 걸 보았으니 말입니다.”

“아…….”

“얼마 전 서원에서 제사와 재산의 문제로 다투셨지요?”

박세당이 멈칫하자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기대라는 걸 해봅니다. 상속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소인들도 웃을 수 있기를 말입니다.”

박세당은 온몸이 굳는 것만 같았다.

여기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사족이 구휼미를 풀어 백성을 구하였다.

어째서 그리하였는가.

교화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틀렸다.

교화는 이미 실패한 방법이다.

20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본질적으로 백성은 교화를 바라지 않는다.

눈앞의 백성이 그 증거였다.

그런데 원리주의는 교화를 위하여 여기까지 달렸다.

이는 아예 틀린 방법이었다.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쉽고 기본적인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무려 200년간 이를 잊었다.

개국의 열의가 사라지면서 아예 잊었다.

깨달았다.

-오늘의 논쟁이 대성전의 주인을 결정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어떤 결론이 날지라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였다.

변화란 무엇일까.

어떤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까.

이를 찾아낼 수 없다면 격동의 시기, 원리주의는 생존을 도모할 수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노인의 말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다툼의 이유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것이다.

이미 백성이 다 보았다.

그렇다면 이 다툼이 백성의 삶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한다.

바로 정책이었다.

다툼의 끝은 새로운 정책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 옛날 조선을 세운 선각자들이 귀족과 싸운 결과물로 과전법을 일궈낸 것처럼 말이다.

옳다.

그래서 허탈하게 웃었다.

지금껏 모든 노선은 말이 많았을 뿐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백성이 볼 때 원리주의와 위정척사의 차이는 전혀 없다.

위대한 길과 세종의 길은 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니, 사문난적 천명 이전과 이후의 차이도 전혀 없다.

또 깨달았다.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 노선이 다른 나라 사람의 제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심장이 빨라졌다.

원리주의를 지지하는 사족들과 도모할 수 있는 정책이 있었다.

이를 깨닫는 날이었다.

마침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노인을 바라봤다.

그의 미소가 참으로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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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거는 고단함을 힘겹게 밀어냈다.

위대한 길에 어울리는 정책을 수립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선보일 정책에서 부족함이 있으면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송시열의 요구도 참으로 괴이했다.

-미촌. 조선은 더 생산할 수 있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地大本).

이는 곧 조선이었다.

조선에서 나라를 살찌우는 방법은 오직 수확량의 확충뿐이었다.

이조차 어려울 때는 조세 제도를 손질했다.

위정자로서 백 번을 살펴도 지금보다 수확량을 더 늘리는 건 어려웠다.

애를 써서 소폭의 증대를 해낼 수는 있겠으나 그 정도로 무엇을 도모하겠는가.

개국공신을 배우자며 터져 나온 ‘위대한 길’이라는 선언이 무색해질 수준이다.

그렇다고 조세 제도를 손보는 게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럴 여력과 시간이 없다.

호포제부터 군영 해산에 이르렀던 과정이 모든 걸 입증했다.

아무리 비루하다고 욕해도 조선은 하나부터 열까지 거미줄처럼 연결된 나라다.

어떤 가능성이 있다면 손을 뻗어서 성취를 이뤘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가능성을 찾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찾아야 했다.

위대한 길이 문제가 아니었다.

갈수록 잦아지는 기근을 대비하려면 마음껏 구휼미를 사용하면서도 ‘비축’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런데 있었다.

“아직 여력이 있을 줄이야…….”

설마 했는데 송시열의 말대로였다.

조선은 아직 재화를 창출할 수 있는 틈이 있었다.

틈으로 손을 넣으려면 200년간 닫힌 문을 열어야 했다.

“위대한 길로 연결되는 문이로구나.”

종래 조선으로서는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의 파격이었다.

하지만 도모해야 할 일이었다.

위대한 길의 천명과 가장 잘 어울리는 기조(基調)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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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다.

진짜 길을 잃은 건 아닌데 길을 잃었다.

이건 한 번도 원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도전과 동지들이 주희와 선후배들과 다퉈야 했다.

그런데 대체 이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하! 조선의 새로운 길이라고 하였나?”

“그렇습니다.”

“좋아. 다 알겠네. 하지만, 군자라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이전에 수신제가(修身齊家)가 우선이라는 건 동의할 것이네. 혹시 이조차도 합의할 수 없나?”

“소생이 어찌 기본을 부정하겠습니까.”

“한데, 부정하였네.”

“무슨 말씀입니까.”

“자네의 사부님이신 본부장 대감의 꿈을 짓밟지 않았는가.”

개가 포효하면 이런 상황일까.

말문이 턱턱 막혔다.

더 짜증 나는 건 윤증이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체 어쩌다가 위패의 주인을 찾는 논쟁이 ‘송자가 주인이다’가 되었단 말인가.

이건 누가 봐도 전형적인 물타기여야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당상관들의 집단지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분명했다.

이에 비해서 윤증과 유생은 철부지에 불과했으니 말려버린 것이다.

분명하다.

“자네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

“소생은 금시초문입니다. 물론, 사부님이시라면 문묘에 배향되고도 남을 학문의 경지를 이루셨습니다. 한데, 꿈이라니요?”

“허. 본부장 대감께서는 평소 입버릇처럼 ‘송자’를 언급하셨네.”

“어찌 유자가 제 입으로 그럴 수 있습니까.”

“자네 사부님이 바로 우암 송시열 대감일세.”

“…….”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가?”

“…….”

머리가 지끈거렸다.

당상관들이 헛소리도 열받는데, 말려 들어가는 걸 넘어서 밀리고 있는 윤증이 더 열받았다.

심지어 내가 쳐다보고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저러고들 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미칠 노릇이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했네.”

“…….”

“자네의 생각이 아무리 굳건할지라도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하는 법일세.”

“…….”

조선에서 사부라는 존재는 그냥 하늘이다.

원 역사에서 송시열이 윤증에게 패드립을 날렸다.

하지만 윤증은 대놓고 따질 수가 없었다.

조선이 이렇다.

그런데 당상관들이 나를 무기로 윤증을 공격한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성립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변명도 어렵다.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딱 두 가지가 있다.

1. 몰랐습니다.

2. 어쩌라고요.

1번은 이미 끝났다.

2번을 언급하면 윤증은 끝이다.

조선이 이런 나라다.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으로 위대한 길이 무너지고 있었다.

한숨만 나왔다.

스치는 말이 있었다.

-그래도 생각은 해보시오. 썩 나쁘지는 않소.

다시 생각해보니 이연은 이 상황을 가늠한 게 분명했다.

이 난국을 돌파할 방법은 하나였다.

“모두 멈추게.”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나는 죽고 싶은 마음을 겨우 짓눌렀다.

그리고 유일한 해결책을 꺼냈다.

바로

“내가 송자다.”

정면 돌파다.

조용해졌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내가 송자다.”

“!!!”

“!!!”

“!!!”

“!!!”

거대한 충격의 일렁임이 느껴졌다.

그러나 낙장불입(落張不入)이라고 했다.

나는 이미 물러설 수 없다.

오만하게 좌우를 돌아봤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당상관들을 바라봤다.

“혹시 이견이 있나?”

“!!!”

“!!!”

오만함을 정수를 보여주기로 했다.

“이견이 있으면 지금 나와 성리학을 논하면 될 것이다.”

“!!!”

“또한, 송자인 내가 성리학의 한계를 선언했다. 이것이 틀렸다고 한다면 나보다 성리학의 경지가 지고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

“자신 있는가?”

“!!!”

“하면, 오라.”

“!!!”

공포의 침묵이 이어졌다.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물러설 수는 없다.

끝을 보기로 했다.

그래. 좋다.

다 같이 미쳐보자.

“내가 주희보다 부족한 게 무엇인가!”

일갈했다.

놀라운 건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송시열이 이 정도였구나.

진짜 대단하다.

결국 오늘 정도전의 부활은 미뤄지고, 좀비가 기어 나오고 말았다.

답답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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