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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62화 (162/298)

162화 개국(開國)(6)

‘산림의 영수’ 송시열이 되었다.

시작부터 예송논쟁이었다.

그러나 다가올 경신 대기근을 생각하면 불필요한 논쟁에 국력을 허비할 시간은 없다.

예송논쟁을 조기에 정리하여 하나 된 조선을 만든다.

그리하여 경신 대기근을 방비한다.

나의 원대한 꿈은 바로 이러했다.

그런데

“…….”

‘송자’가 됐다.

예송논쟁을 던져 버리고 하나 된 조선을 꾀하였다.

경신 대기근은 다가오는데 조선에 좀비가 출몰했다.

이래서 경신 대기근을 방비하겠나.

송시열의 원대한 꿈은 기어이 이뤄지고 말았다.

과거 송시열이 성현을 꿈꾸었다는 소문의 진위(眞僞)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모든 걸 진심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는 가장 기본을 흔들었다고 할 수 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영역이었다.

겸손인 미덕인 조선에서 무려 ‘성현’을 자칭(自稱)한 게 아닌가.

오직 송시열이기에 가능했다.

종일 떠들던 당상관들도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조리 귀가했다.

시작은 윤증의 ‘위대한 길’을 막기 위한 정치적 의도였고, 성현의 추존(推尊)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사후를 논한 것이었다.

그러한데 눈을 뜨고 ‘나는 송자이니라’ 이렇게 선언하니 황망함을 어찌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윤증도 나를 껌뻑껌뻑 쳐다보더니 연좌를 거두고 집으로 갔다.

표정이 아주 복잡했다.

어쨌거나 모든 혼란을 한 번에 정리한 절정의 한 수였다.

일단 이러했다.

“…….”

그런데 재밌는 현상이 발생했다.

아니, 놀라운 상황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감축드립니다.”

“감축드립니다.”

…….

“감축드립니다.”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였다.

참으로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으나, 이토록 진실한데 어찌 내칠 수 있겠는가.

“대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는 신(神)의 영역에 도전한 교황(敎皇)의 숙명(宿命)이라고 해야 할까?

또한, 기어이 신의 자리에 앉은 반인반신의 길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습니다. 서인의 영수께서 성현의 반열에 오르셨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한데, 대감. 사직 상소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하긴 성현의 반열에 오르셨으니 관직은 굳이 필요가 없긴 하죠.”

“과연 이번은 진심이셨던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생들이 대감을 지켜드릴 겁니다.”

감격스러웠다.

하늘 아래 이토록 신실한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평범한 신도가 아니라 산림의 심장부로서 사제(司祭)의 위치에 이른 이들이었다.

누구보다 신앙심이 투철할 수밖에 없다.

원하지 않았으나, 기왕 이리되었으니 어찌하겠는가.

마왕의 침략을 막고자 신이 된 교황의 무게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 이는 운명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나도 내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옳다.

“대감. 소생들만 믿으십시오.”

“대감께서 굳이 나서실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1만 산림의 힘을 보일 것입니다.”

새로운 신(神)을 향한 사제들의 충성 맹세가 끝없이 이어졌다.

차분하게 생각해봤다.

아직 마왕은 강림(降臨)하지 않았다.

예언서에 의하면 경술년과 신해년이 도래할 때 세상에 모습을 보인다.

한데, 고작 수하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도 참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이러한데 주신(主神)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아니, 주신만 그러한 게 아니라 이 세계의 신들이 모두 그렇다.

이러니 뭐가 돌아가겠는가.

무릇, 새로운 신이 탄생하는 이유는 현실이 너무나도 참혹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나로서는 이러한 요구에 화답하여 합당한 일을 도모해야 한다.

사제들을 바라봤다.

새로운 신(神)을 향한 열의가 너무나도 강렬했다.

이만하면 됐다.

이제 신탁(神託)을 내릴 때가 됐다.

“나를 따르겠는가?”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내가 성현의 자리에 올랐으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어찌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교지가 없다면 반쪽에 그치지 않겠는가.”

“…….”

“일제히 상소를 올려 성현의 자리를 공식화할 수 있겠는가.”

“…….”

민간에서 종교를 만드는 것과 합법적 기구가 되는 건 아예 다른 일이었다.

사자(死者)를 성현으로 추존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한데,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성현으로 공식화해달라?

이건 극악한 난도였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어심이 어찌 반응할지도 가늠할 수 없고, 불똥이 어디로 튈지도 모른다.

그러니 머뭇거리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첫 번째 신탁부터 이러는 건 아주 곤란했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위엄을 보였다.

술렁임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나서는 이가 없다.

이러면 체면이 구겨질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신이 된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송시열답게 행동해주기로 했다.

원래 신은 인간이었을 때의 인격을 그대로 가져가는 법이다.

“하면, 내가 나를 성현으로 인정해달라고 상소라고 올려야 하나?”

이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추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전히 반응이 없다.

송시열이 인간일 때 했던 여러 행동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다.

정말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내뱉듯 말했다.

“그래. 내가 직접 하지.”

“!!!”

“그래. 연좌도 하지. 나를 성현으로 추존해달라고.”

“!!!”

“좋네. 지부상소로 나서 보겠네. 살아서 성현이 될 수 없다면 그 자리에서 죽어 성현이 될 것이네.”

“!!!”

“나는 기어이 성현이 될 것이니 자네들은 부디 만수무강하게!”

“!!!”

“이보게! 도끼 한 자루 내오게! 당장 나서야겠네!”

눈망울을 사납게 굴리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압도적인 신의 위엄을 표출했다.

그런데도 아직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만 있을 뿐 신탁에 대한 응답이 없다.

참으로 무도한 사제들이 아닐 수 없다.

이리되면 신의 노여움을 보일 수밖에 없다.

“자네들을 반드시 기억할 것이야!”

“!!!”

“!!!”

“!!!”

“!!!”

어느새 지척에 이른 도끼를 부여잡으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러자

“대, 대감!”

“대, 대감!”

“대, 대감!”

드디어 사제들이 상황 파악을 했다.

“사, 상소를 올릴 것입니다.”

“되었다. 내가 직접 나를 성현으로 인정해달라고 청할 것이야.”

“소, 소생들이 있는데 어찌하여 친히 나서십니까.”

“평생의 꿈이었으니 직접 이뤄야지. 안 그런가?”

“아, 아닙니다. 소생들이 이뤄드릴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도끼를 내려놓으시지요.”

이렇게까지 만류한다면 너그럽게 물러서는 것도 신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나는 못 이기는 척 도끼를 슬쩍 내려놓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럴 수는 없다.

신탁을 내릴 때마다 실랑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확실하게 경고했다.

“오늘 자네들의 번뇌를 모두 기억할 것이네.”

“!!!”

“그러나 덮어질 기억이 생긴다면 어찌 기어이 다 생각하고 살겠는가.”

이 정도면 신탁의 집행력은 확실하게 담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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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 났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수량의 상소가 폭발적인 기세로 쏟아졌다.

산림의 역량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진짜 산(Mountain)이라는 게 뭔지 확실하게 알게 됐다.

“…….”

“…….”

과장을 보탤 필요도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수량이었다.

검토하려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고 본능이 강렬하게 경고할 정도였다.

물론, 모두 볼 필요는 없었다.

아니, 전혀 볼 필요가 없었다.

다 같은 말이었고, 다 아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Mountain 등반은 할 필요가 없었다.

“진심으로 감축드리오.”

“…….”

“기어이 성현의 반열에 닿고야 말았소. 과연 대단하시오.”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과 씰룩이는 입꼬리였다.

과거였다면 용안(龍顏)이라고 할지라도 열이 뻗쳤겠으나, 나는 이미 신의 반열에 올랐다.

전처럼 놀 수는 없는 법이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전하. 신이 송자이옵니다. 하온데, 이리 조롱하실 수 있사옵니까?”

“이런. 성현이면 신하도 아니오?”

“원래 조선이 성현의 가르침으로 통치하지 않사옵니까. 하오니 격을 맞춰주시옵소서.”

“하하하. 그렇소. 과연 그렇소. 조선은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는 나라이니까.”

대놓고 박장대소까지 한다.

심지어 용안은 주황색을 띤 빨강인 소홍색이었다.

한눈에 봐도 즐거워 죽겠다는 의미였다.

송자 선언 직후 좀비 상태였다면 상당히 화가 났을 거 같았다.

“그러한데 그 가르침은 언제 어찌 익힐 수 있소?”

“구태여 그리하실 필요까지 있사옵니까?”

“허. 과연 겸손하시오.”

됐다.

이런 말이나 하러 온 건 아니다.

게다가 나는 아주 바쁜 몸이었다.

“교지 한 장 내려주시옵소서.”

“허. 참으로 무엄하오. 군왕을 이렇게 압박하시오?”

“신은 성현이니 조금 무엄해도 되옵니다.”

“내가 윤허하지 않으면 아니오.”

“하면, 신은 낙향할 수밖에 없지 않겠사옵니까?”

“하하하! 기군망상도 이런 기군망상이 없을 것이오.”

“황공하옵니다. 하오나 이르신 바와 같이 조선은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는 나라가 아니옵니까.”

“그렇지요. 심지어 군왕조차도 말이외다.”

아슬아슬한 수위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물론, 실체적인 위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하오니 한 장 내려주시옵소서.”

“끌. 뭐라고 하면 되겠소?”

“간단하옵니다. ‘송시열은 성현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연은 나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실수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허. 전하. 성현의 가르침은 늘 옳사옵니다. 실수는 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이들의 영역이옵니다. 하오니 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사옵니다. 아니, 애초 그럴 수가 없사옵니다.”

“…….”

“신이 송자이옵니다. 전하.”

처음이었다.

이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건.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간의 울분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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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가 내려왔다.

대충 나를 성현으로 윤허한다는 내용이었다.

반대 여론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단 며칠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하였기에 아직은 조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누구라도 시작하면 미친 듯이 불이 붙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마(火魔)가 날뛰기 전에 선수를 취하는 게 옳다.

어차피 불의 마귀를 소환할 무리는 주신(主神)의 사도가 아니겠는가?

하여, 나의 두 번째 행보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사도들이 날뛰기 전에 조선의 주신을 완벽하게 죽이는 것이었다.

내 사가에 운집한 이들을 바라봤다.

규모는 100여 명.

과거, 세상은 이들을 산림의 심장부라고 하였다.

앞으로는 성현의 결사대라고, 아니, 성현의 일백 사제라고 불릴 것이다.

눈빛과 기세가 전과는 아예 달랐다.

교지가 내려지면서 나의 권위는 하늘이 되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우리만의 성현이 아니라 조선의 성현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저들로서는 압도적 자부심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

살아서 움직이는 성현을 보필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흐뭇하게 웃으며 가볍게 읊조리듯 말했다.

“성균관 대성전으로 가겠다.”

“예. 대감.”

오늘 기어이 주신을 죽여 내 자리를 찾을 것이다.

하여, 마왕의 침략을 방비하는 세상의 주신이 될 것이다.

이게 옳다.

원 주신(主神)의 세상은 너무나도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세상을 딱 제 꼴처럼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 죽는 것이다.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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