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163화 (163/298)

163화 개국(開國)(7)

성현의 가르침이 수백 년을 이어질 수는 있다.

그의 제자들이 세상을 통치하며 유훈을 이어갔기에 그러했다.

그러나 성현의 행보를 직접 볼 수는 없다.

모두 죽은 이였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조선에는 성현이 살아 있다.

심지어 두 발로 잘 걸어 다니기까지 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기에, 도성에서 글자를 익힌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세상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내가 보란 듯이 정치적 행보를 감행했다.

그랬다.

살아 있는 성현이 현 조선의 모든 이해관계가 집결한 성균관 대성전으로 향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일파만파였다.

과연 장사진(長蛇陣)이었다.

나는 오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감히 시선을 마주치면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다.

친절하게 걸음까지 멈추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나의 일백 사제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자네는 대체 누구길래 이토록 방자하게 행동하나?”

“소생이 무엇을 하였다고 이러십니까?”

“하! 지금 눈을 마주쳤는데 고개를 숙이지 않지 않았는가!”

“그, 그건…….”

“내가 현실을 일러주겠네!”

누군지는 모르겠다.

일백 사제 중 허리쯤의 위치에 있다는 정도였던 걸로 기억했다.

“일찍이 대감께서 성현에 오르시기 전에도 자네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지고한 위치셨네. 당대 최고의 학자이시자 서인과 산림의 영수이셨기에 그러하였다는 말일세.”

“그, 그건…….”

“한데, 보게. 지금은 당상관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시어 성현이심을 천명하셨네.”

“아니, 선생. 그건 오해가…….”

“주상전하!”

“처, 천세…….”

기겁한 유생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반사적으로 천세를 연호하려고 했다.

물론, 주상전하는 없었다.

“주상전하께서도 교지를 내리시어 공식적으로 반포하셨네.”

실로 놀라운 성동격서가 아닐 수 없었다.

모두 유생을 안타깝게 쳐다봤다.

그의 안색이 본격적으로 공포에 젖어갔다.

“…….”

“이미 학자의 영역을 아득하게 넘은 지고하고 지고하신 위치에 오르셨거늘, 어찌 고개를 숙이지 않고 빤히 쳐다볼 수 있단 말인가!”

“!!!”

아주 바람직한 말이었다.

이는 참으로 올바른 송비어천가(宋飛御天歌)였다.

나의 흐뭇함을 느낀 사제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목소리만 크고 현실은 그대로였다.

통탄하지 않을 수 없기에 엷게 웃으며 눈을 부라렸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사제가 황급히 다시 나섰다.

“자네, 이름이 뭔가?”

아.

이것은 참으로 교리에 충실한 이교도 감별법이 아닐 수 없다.

유생의 몸이 경직됐다.

“본관과 형제 그리고 사돈의 팔촌까지 말하게.”

“!!!”

“어서.”

“!!!”

그리고

“소, 소생이 결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주십시오.”

머리를 숙이고 용서를 청했다.

나는 송자답게 화답했다.

“본관과 형제 그리고 사돈의 팔촌은 과하고, 자네 이름만 남기게.”

“!!!”

“이제 막 약관을 넘은 듯하여 특별히 사정을 봐준 것이니 앞으로 자중하게.”

“!!!”

큰 가르침을 내리니 불손한 행동을 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길게 늘어진 환영인파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세계 각국을 방문한 로마 교황청의 교황이 이런 기분일까?

진해지는 미소를 참지 않고 천천히 걸어갈 때였다.

“소생은 최 서생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정중하게 청하였다.

“묻습니다.”

“허락한다.”

“그간 만력제를 망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오늘을 위한 주춧돌이었습니까?”

대충 빌드업이었냐는 뜻이었다.

나는 최서생을 빤히 쳐다봤다.

“만력제는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한데, 지금 나와 그를 비교하나?”

“그, 그것이 아니라……”

“그는 생전에 암군(暗君)이었기에 죽어서 망령이 되었다. 한데, 나는 살아서는 성현이고 죽어서는 성현의 중심이 될 것이다. 생전과 생후가 이토록 다르다.”

“!!!”

“한데, 어찌 감히 비교하는가?”

“비, 비교가 아니라 여쭙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답변하고 물었다.”

“!!!”

나의 놀라운 논리에 최서생은 사색이 됐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이왕 나섰기 때문일까?

쉽사리 물러날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하면, 만력제가 우리 조선을 도운 건 어찌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도 명나라를 돕느라 수만의 병력이 몰살되었지 않은가. 사르후에서.”

“!!!”

“받았기에 주었다. 혹시 그사이 빚에 이자라도 붙었는가?”

“!!!”

이만하면 됐다.

손을 내저었다.

최서생은 결국 물러났다.

“박서생입니다.”

“허락한다.”

“주자를 밀어내셨습니다. 이를 위함이었습니까?”

“얼토당토않은 소리.”

“예?”

“내가 대체 주희보다 못한 게 무엇인가?”

“!!!”

“고작 그를 몰아내는 데 머리 아프게 주춧돌을 쌓아야 하나?”

“!!!”

다시 손을 내저었다.

박서생은 어지러운지 휘청이며 물러났다.

“이서생입니다.”

“허락한다.”

“지난날, 세종의 길을 이르셨습니다.”

“옳다.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때 주자의 자리에 세종을 올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옳다. 능히 그리하실 수 있다.”

“한데, 결국 대감께서 그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이는…….”

“갈(喝)!”

“!!!”

“어찌 감히 신하로서 조종(祖宗)을 함부로 거론하는가!”

“!!!”

“유자이기 전에 백성이며 신하이거늘!”

“!!!”

“당장 본관을 말하라!”

“!!!”

호령(號令)하자 사제가 나서서 그의 신상을 확인했다.

이서생의 안색은 귀신을 본 듯 질린 상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불쾌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어찌 이토록 무도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조정의 기강이 이토록 문란하다니!”

술렁임은 커지다가도 사라졌다.

사라지다가도 일어났고.

노발대발하며 외쳤다.

그런데

“더 묻겠는가!”

감히 나서는 이가 있었다.

“황서생입니다.”

근데 이름이 왜 다 서생이야?

유행이라도 있었나?

“허락한다.”

“위대한 길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옳은 길이다.”

“한데, 위대한 길은 성현을 부정하였습니다.”

“…….”

“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생각이다.”

“예?”

대충 손을 내저었다.

황서생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대, 대감. 이는 모순이며 자가당착이 아닙니까.”

“하여, 자네가 나를 가르치는가?”

“!!!”

“자네가 성현에 오르겠는가?”

“!!!”

이번에는 성심껏 손을 내저었다.

그 즉시 사제가 움직였고, 황서생과 깊은 대화를 시작했다.

좌우를 돌아봤다.

모두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사실 그렇다.

나를 막을 수 있는 인사들이 없는 건 아니다.

허적, 윤선도, 허목, 윤휴, 송준길, 윤선거, 유형원…….

그런데 그들이 모두 내 편이었다.

아마 지금쯤 뒤에서 내 욕이나 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이 없는 상황에서 먹물만 먹은 유생 수백 명이 몰려와도 나를 어쩔 수는 없다.

심지어 일백 사제가 함께하는데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더는 불온한 무리가 없었다.

드디어 모세의 기적이 펼쳐졌다.

탄탄대로를 타고 걸었다.

성균관에 발을 내딛기 전에 선언했다.

“오늘은 모두 들어갈 수 있다.”

교지조차 숨을 쉬고 들어가는 성균관이었다.

이토록 권위가 있는 성지(聖地)를 치우고, 수백 년 이어진 법도를 짓밟는 선언이었다.

물론, 반발은 없었다.

대성전에 이르렀는데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건 윤증이었다.

그런데 늘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참으로 수척했다.

번뇌에 휩싸인 게 분명했다.

“사부님께서 오셨습니까.”

“여기서 농성이라도 한 것이냐?”

“대성전을 범하고자 하였으나 소생들의 행보는 위법할 수 없기에 농성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하다.”

“그리고…….”

윤증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늦었지만 성현의 반열에 오르신 걸 감축드립니다.”

“되었다.”

“송구합니다. 사부님.”

“허. 참으로 근심이 가득하구나.”

“소생은 길을 잃었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무엇을 잘 모르겠더냐?”

“소생은 위대한 길이 옳다고 여겼기에 성현의 위패를 내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랬지. 너는 올바르기에 심장이 뛰는 방향으로 걸어가면 될 것이다.”

“한데, 사부님과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미 송자다. 한데, 네가 어찌 나를 막았느냐. 또한, 네가 나와 대립할 수 있더냐?”

윤증은 머뭇거렸다.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해보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말이었으니까.

이유도 잘 안다.

의도와 무관하게 사부인 나의 꿈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성전에서 농성하며 길을 잃지 않은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이제 윤증에게 가르침을 내릴 때가 되었다.

“너는 진정 나의 의도를 모르겠느냐?”

“소생이 어리석어 사부님의 뜻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하여, 청합니다. 다시 일러주십시오.”

“나는 분명하게 선언했다. 내가 주희보다 무엇이 부족하냐고.”

윤증의 안색이 진하고 선명해졌다.

“내가 주희의 학문을 익힌 건 사실이다. 하면, 그보다 부족한 것이더냐?”

“소생은 진실로 사부님께서 주희의 아래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아래라.”

“주희는 사부님의 아래입니다.”

“옳다. 한데, 왜 그렇게 있느냐?”

“예……?”

나는 대성전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주희와 그의 동향인 자들의 위패가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난입하여 위패를 치우라는 말이 아니다. 너는 물러서지 않고 위대한 길을 주창했어야 한다. 한데, 대체 이 무슨 추한 몰골이더냐.”

“!!!”

윤증의 눈은 충격으로 일렁였다.

혼란도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평생 주희의 제자로서 살았다. 그러나 조선의 생존에 그는 더 역할이 없기에 과감하게 죽였다.”

“!!!”

“한데, 너는 고작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위대한 길’의 진입을 늦추고 있다.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도다!”

“소, 소생이 어찌 사부님의 그림자를 밟을 수 있겠습니까.”

“그림자를 밟지 않으면 뛰어넘을 수 없는가? 세상에 어찌 청출어람이 없는가.”

“!!!”

“이미 주희가 나의 아래가 되었다면, 네가 나를 넘을 수 있다. 어찌 이를 부정하는가!”

“!!!”

송시열답지 않은 발언의 연속이었다.

좌중은 충격에 휩싸였다.

윤증에게 가르침을 다 내렸다.

이제 확실하게 나아갈 때가 되었다.

“오래전 우리의 선대는 성리학을 내세워 이 땅을 민본의 열의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다시 대성전을 바라봤다.

비록 현판은 없었으나 어찌 그 위세가 가볍지 않겠는가.

가히 조선 유학의 총본산이자 성지라고 불릴 만했다.

이곳에 참으로 오랜 세월 다른 나라 사람의 위패가 있었다.

그 기나긴 점령의 시간을 오늘 내가 끝을 낼 것이다.

이미 내게는 누구도 항거할 수 없는 최고의 권위가 있지 않은가.

“나는 주희를 더는 대성전에서 보고 싶지 않다.”

오늘 나는 성지, 대성전(大成殿)에서 조선의 주신(主神) 주희를 죽였다.

“나는 공도를 더는 대성전에서 보고 싶지 않다.”

오늘 나는 성지, 대성전(大成殿)에서 유학의 주신(主神) 공도를 죽였다.

곳곳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주희도 부족하여 공도까지 죽이니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분루를 숨기지 못하여 나서려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는 걸 느꼈을까?

좌중이 술렁였다.

불안함을 느낀 사대부들의 외침이 시공간을 찢었다.

“대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5현은 우리 조선의 성현입니다!”

“아무리 대감이 성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들 이리하실 수는 없습니다!”

“소생들을 먼저 죽이십시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들을 바라봤다.

참으로 격렬했다.

주희를 죽이고, 공도를 죽일 때도 애써 참던 이들이 이렇게 발악하듯 나섰다.

나는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고 있었다.

참으로 가소로웠다.

비릿하게 웃었다.

“5현이야말로 너희의 생명줄이겠지.”

“!!!”

“하여, 나는 5현도 용납할 수 없다.”

“!!!”

“나는 5현을 더는 대성전에서 보고 싶지 않다.”

“!!!”

오늘 나는 성지, 대성전(大成殿)에서 기득권의 주신(主神) 5현을 죽였다.

손을 내저었다.

사제들이 현판을 들고 왔다.

[대성전(大成殿)]

과거 위정척사가 주창되었을 때 성균관 유생들이 자발적으로 바친 현판이었다.

이를 오늘 내가 들고 왔다.

의구심이 가득한 시선이 느껴졌다.

“막는 자.”

피식 웃으며 새로운 주신 송자의 위력을 보였다.

“나 송시열의 모든 걸 걸고, 가문을 존폐의 길로 밀어 넣을 것이다.”

“!!!”

“영원히 과거에 응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

손을 내저었다.

“대성전 현판을 불태우라.”

오늘 나는 성지, 대성전(大成殿)에서 조선의 국시 유학을 죽였다.

그리고

“위패도 모조리 불태우라.”

오늘 나는 외세의 조선 점령을 완전히 끝장냈다.

남은 건 외세의 잔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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