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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66화 (166/298)

166화 개국(開國)(10)

화형식 D+3

100분 토론의 소식은 긴급으로 전송됐다.

상업 진흥을 위한 토론회에 대뜸 유형원이 난입하여 의술 교육을 부르짖었다고 했다.

나 역시 과거 의술을 사대부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고 언급하였으나 비공식적인 논의에 불과했다.

한데, 유형원이 백주에 언급했다.

유형원 발 의술 교육은 종국적으로 서원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아주 제대로 공을 쏘아 올린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오래전 성현의 반열에 오른 입장으로서 자잘한 일에 호들갑을 부릴 수는 없다.

이 모든 건 깨달음을 얻지 못한 무리의 논쟁에 불과하니 말이다.

“일찍이…….”

나지막하게 말하며 턱을 슬쩍 움직였다.

언제봐도 듬직한 나의 일백 사제가 경건한 자세로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의술의 본질을 세상에 전한 바 있다.”

“아.”

“유형원보다 빨리.”

가장 중요한 말로 서두를 던졌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할망정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지 않겠는가?

이건 진위를 따지는 게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는가.

이건 부처가 와도 불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장내를 호령하려고 할 때 지필묵을 펼치는 이가 보였다.

백만 대군을 두렵게 할 노여움을 잠시라도 멈추게 한 묘한 광경이었다.

“공도의 말을 전한 논어(論語)가 있습니다.”

“한데?”

“논어는 그의 제자들의 기록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하면……?”

“응당 송자께서 걸어오신 길을 소생들이 모두 기록해야 합니다. 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다시 여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 참으로 기특하도다. 이토록 기특할 수는 없다.”

“당연한 일입니다. 치하하실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옳다.”

“저들을 송유(宋儒, 송자의 말을 기록하는 유생)라고 부릅니다. 사관과 비교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족해도 된다.”

“예?”

“그런 게 있다.”

사관처럼 다 기록하고 따라다니면 너무 피곤하다.

이건 내가 나중에 따로 정리하면 될 일이기에 대충 손을 내저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갈 때였다.

“나는 오래전 서인과 남인의 거두(巨頭)들을 모아 사대부가 의술을 독점한 현실을 준엄히 꾸짖으며 큰 가르침을 내린 바 있다.”

“과연 송자이십니다.”

“그들은 나의 꾸지람에 크게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여 부끄러워했다.”

“당연한 일입니다.”

“결과, 위생국이 태동(胎動)했고, 중대본이 수립되었느니라.”

“오. 그런 비사(祕史)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내 너희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느냐.”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영광과 감사함을 잔뜩 머금은 감격함이 좌중에서 터져 나왔다.

또, 송유의 붓이 먹을 품고 유려하게 움직이는 투박한 소리도 전해졌다.

참으로 아름다울 미(美)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성현다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뒤늦게 귀동냥으로 듣고 깨우친 유형원이 비로소 세상에 전하였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하면, 유형원의 언행은 결국 송자의 가르침에 따른 것입니까?”

“옳다.”

“하면, 명하신 것입니까?”

“갈!”

“!!!”

“내가 어찌 사사로이 거동을 할 수 있더냐!”

“소, 송구합니다.”

“나의 가르침은 한 치의 거짓도 없기에, 익혔다면 응당 행하는 것이거늘 어찌…….”

“소, 송구합니다.”

화가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쳤다.

매섭게 일갈했다.

“송유는 오늘의 일을 빠짐없이 기록해야 할 것이다.”

“응당 그리할 것입니다.”

“저 무도한 이의 이름도 반드시 남겨야 할 것이다.”

“그, 그리하겠습니다.”

“후에 내가 직접 확인할 것이니 너는 거짓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

검열까지 한다는 나의 경고에 송유의 손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얼핏 보니 무언가를 황급히 고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어쨌든 분위기는 삭막해졌다.

아니었다.

잠시나마 해이해졌던 기강을 바로잡은 것이다.

서두는 이만하면 됐다.

이제 신탁을 내릴 시간이었다.

“너희의 생각을 묻겠다.”

“……소생들이 무지하여 뜻을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허. 보라. 처지가 가련하여 귀동냥할 수밖에 없던 유형원도 저렇게 나섰다. 한데, 내게 직접 전해 들은 너희는 하늘만 쳐다볼 것인가?”

사제들은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다.

그 속도만큼 내 눈도 가늘어졌다.

표정은 흉악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의술 교육을 조정에서 장려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실무적인 문제를 미리 파악하여 발의하는 게 더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해야만 단번에 일이 추진될 것이니 말입니다.”

“너는 참으로 틀렸다.”

“예……?”

“예?”

“소, 송구합니다.”

“듣거라. 너는 장려라고 하였다. 한데, 나는 그리 언급한 적이 없다. 대계이거늘 어찌 장려하는가.”

“일백 년의 대계라면 더욱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하는 게 더 옳지 않겠습니까.”

“일 년의 대계로 수립하여 진행함이 마땅하다.”

“!!!”

“이토록 장기적인 안목으로 빠르고 세세하게 추진해야 한다. 한데, 어찌하여 실무적인 문제를 굳이 언급하여 일 년 대계의 발목을 잡으려고 하는가?”

일백 사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당혹감이 혀의 움직임을 막고 목울대를 짓누른 게 분명했다.

참으로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짧게나마 고민하다가 그냥 떠 먹여주기로 했다.

어찌하겠는가.

스스로 못하는데.

원래 신탁은 어려울 수도 있는 법이다.

거칠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모두 보기 싫으니 썩 물러나라.”

“!!!”

“앞으로 소집에 응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갈이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눈까지 부라렸기에 살기마저 담겼을 것이다.

그러자

“어, 어찌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소생들이 나서서 의술 교육을 청할 것입니다.”

“어심을 움직일 것입니다.”

일백 사제는 미친 듯이 나섰다.

그러나 어찌 노여움이 한 번에 풀릴 수 있겠는가.

“더는 내가 실망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송구합니다.”

이 짓도 하다 보니 익숙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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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식 D+3

오랜 세월 속을 꽉 막히게 하였던 무언가를 속 시원하게 뚫어낸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유형원은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되돌아보면 윤증은 참으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학문적 경지를 떠나서 사람 자체가 대단했다.

생각할수록 감탄만 떠올랐기 때문일까?

절로 말이 새어 나왔다.

“하필이면 그토록 졸렬한 스승이라니. 인생이란 참으로 오묘하구나.”

몇 번을 생각해봐도 땅을 치며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부님?”

대뜸 들린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제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혼잣말을 크게 했구나.”

“혹시 우암 대감을 이르신 것입니까?”

“허. 너도 아느냐?”

“글자를 익혔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일입니다. ‘졸렬’이라고 하면 응당 우암 대감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네 말이 참으로 옳다.”

유형원은 호탕하게 웃었다.

백성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웃음의 여운을 즐기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한데, 사부님. 의술이 서원과 관련이 있습니까?”

“어째서 그걸 묻는 것이냐?”

“화폐의 유통을 논하는 자리였으나 본질은 서원이라고 하셨습니다. 한데, 의술을 언급하셨기에 여쭙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 내가 묻겠다. 너는 의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사람을 구하고 살리는 일이 아닙니까?”

간단하지만 가장 정확한 대답이었다.

“네 말이 참으로 옳다. 하면, 달리 묻겠다. 의술은 누구의 일이더냐.”

“응당 의원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한데, 사대부도 의술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

“소생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의술을 깊게 익힌 사대부가 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사대부는 성리학 이외에 다양한 지식을 탐하지 않습니까.”

“또 달리 묻겠다. 의술을 왜 의학이 아니더냐.”

“예……?”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일인데 어찌하여 의학이 아니고 의술이더냐.”

“그, 그건 성리학은 통치학이기에 수백, 수천 명을 책임져야 하지만 의술은 한두 명의 생사를 좌우하여 그런 것이 아닙니까?”

“네 말대로 정치가 가장 무섭고 두렵기에 통치학이 중요하다. 한데, 위계를 나눌 이유는 무엇이냐. 아니, 위계를 나누더라도 굳이 말학(末學)으로 치부할 이유는 또 무엇이냐.”

김서경은 말문이 막혔다.

걷고는 있었으나 발걸음이 꼬여버릴 정도로 당황했다.

“오직 한 가지의 이유가 있다.”

“무엇입니까.”

“의술이 말학에 머물러야만 의원이 천하다. 그래야만 언제라도 의술을 다시 취할 수 있기에 그리한 것이다.”

“의원도 아닌데 대체 누가……!”

말하던 김서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화의 내용으로 결론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술을 행하지는 않지만 언제라도 의술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이 사대부 외에 더 있더냐?”

“어, 어찌하여 그리하는 것입니까?”

충격과 당혹감을 숨기고 싶었을까?

김서경은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형원은 제자의 반응을 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더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사대부는 위정자가 될 수 있기에 정치로서 백성을 살리거나 죽일 수 있다.”

“그렇습니다.”

“사대부는 지주이기에 생존으로 백성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

“그렇습니다.”

“사대부는 의술을 독점할 수 있기에 백성의 생명을 끊거나 살릴 수도 있다.”

“…….”

담긴 의미가 참으로 무서웠다.

정치(政治).

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건 위정자였다.

그러나 일국에 속하였다면 누구도 정치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기득권’으로부터 사지가 잡힌 경우는 흔치 않다.

대번에 이를 깨우친 김서경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참으로 무섭지 않으냐?”

“…….”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백성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대부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늘 당연하게 여겼던 사실들이었다.

이 모든 걸 하나로 묶으니 너무나도 무거운 결과가 도출되었다.

김서경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조선은 사대부가 사대부를 위하여 만든 제도에 백성이 복무하는 나라다.”

“…….”

“하나부터 열까지 백성이 아니라 오직 사대부의 기준으로 이어진 나라다.”

“…….”

“일찍이 개국의 열의가 뒤덮었던 시절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기괴하게 뒤틀려 꿈틀거린 세월이 자그마치 200년이다.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어찌 의롭지 않으며, 어찌 고생이 덜하겠는가. 참으로 고될 수밖에 없다.”

“하, 하면, 사부님께서는 사대부의 통치를 부정하시는 겁니까?”

“조금 전에 말하였지 않은가. 무려 200년이라고. 그러한데, 작금의 조선에서 사대부를 제외하면 어디서 대안을 찾을 수 있겠느냐. 그들이 아니면 통치를 수행할 무리가 존재조차 하지 않는 나라인데.”

“그러나 사부님의 말씀에 의하면 사대부는 조선의 해악입니다.”

“나는 사대부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그들이 올곧은 통치에만 집중하길 바랄 뿐이다.”

한마디로 위정자라고 자부한다면 통치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너무 많은 영역에 손을 뻗어 있으니 탈이 날 뿐이었다.

“사대부의 물러남으로 생길 공백에는 막대한 이권이 주인을 찾을 것이다. 이토록 가난한 나라에서 그건 참으로 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무릇, 사대부 한 명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재물은 1,000명의 백성을 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유형원은 힘을 주어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해서, 사대부의 역할은 정치로 국한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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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식 D+4

신탁을 받은 일백 사제의 움직임은 전격적이었다.

정갈한 백색의 사제복을 잘 차려입고 육조 거리에 집결했다.

규모는 100여 명에 불과하였으나, 신탁을 전하는 위치였기에 위세는 실로 대단했다.

이미 자리를 선점하여 활발한 토론으로 여론을 몰아가던 윤증은 당황했다.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사부님. 어찌하여 산림의 선생들이 집결하였습니까.”

“동전의 유통은 명백하게 조정의 일이다.”

“그렇습니다.”

“서원과 대놓고 싸우는 건 내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

나는 유려하게 손을 저었다.

사제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일찍이 이 땅에 서원이 존재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그렇습니다!”

하나였는지는 모른다.

“성현을 향한 제사.”

“옳습니다!”

하나가 되었다.

“한데, 조선의 성현이 몇 명인가.”

“오직 한 분이십니다.”

한 명이 되었다.

“한데, 조선의 성현이 누구인가.”

“송자이십니다.”

바로 나다.

“한데, 나는 아직 살아 있다.”

“하여, 전인미답의 길이십니다.”

“하면, 서원은 어찌해야 하는가.”

자문자답이다.

“산 사람에게 제사를 지낼 수는 없다. 사후 어찌할지라도 지금은 생전이니 내 뜻을 따르는 것이 옳다.”

신탁을 내렸다.

“서원에서 의술을 익힐 것이다.”

해석은 필요 없다.

오직 행동하라.

나의 사제들이여.

일백 사제의 기개가 하늘을 찔렀다.

그들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신탁을 따르는 서원이 적힌 문서였다.

“내게로 오라.”

내게 바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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