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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74화 (174/298)

174화 교향곡 제1번 ‘조선(朝鮮)’을 준비하다(4)

궁방의 특권 폐지는 전격적으로 선언됐다.

날치기가 아니었다.

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이연이 대놓고 교지를 내린 것이다.

조선에서 관복을 입었다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궐 안팎은 미친 속도로 어수선해졌다.

“대, 대체 어찌 된 것입니까.”

퇴궐하려는데 황급히 나를 막는 관리들이 있었다.

관복의 흉배(胸背)를 보아하니 당상관이었다.

그러니까 송자 선언의 원인 제공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되기는? 자네들이 송자를 간절하게 원했네.”

“예?”

“설마 막상 내가 송자가 되니 내키지 않나?”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한데, 대뜸 내 앞을 막으면서 연유를 묻는 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전하의 하교에 대해서 여쭙는 것입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전하께서 궁방의 면세 권한의 폐지를 이르셨습니다.”

“그걸 왜 내게 묻나?”

“예?”

“아니, 주상전하께서 왕실의 특권을 폐지하는 용단을 내리셨네. 일국의 관리라면 크게 감복하며 천세를 연호하면 될 일인데, 어찌하여 연유를 묻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허. 자네들 설마 어명이 내키지 않는 것인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어명의 위력이 궐 밖으로 전해지기도 전에 몰려와서 이리 뒷말하는 건 대체 무슨 경우인가?”

“!!!”

관리들의 눈동자는 격하게 흔들렸다.

안색도 볼썽사나울 정도로 썩어갔다.

“아니 그런데, 왕실의 이익을 더 늘리는 게 아니라 줄이는 건데 왜 이렇게들 호들갑인가?”

그냥 프레임을 걸어버렸다.

송자 선언의 1등 공신이었던 당상관들은 합죽이가 되었다.

이참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자네들 혹시, 여러 일에 개입하여 이권을 취하였나?”

“그, 그것이 아니라…….”

“괜찮네. 그게 법도를 어기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사사로운 이권을 더 도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번 일을 반대한다? 관리로서 부족하니 삭탈관직은 각오해야지.”

“…….”

“아. 아니군. 이는 검약해야 할 사대부로서 배움이 부족한 것일세. 그러니 ‘개망신’을 각오해야겠군.”

개망신을 강조했다.

당상관들은 ‘고요’해졌다.

“다음부터는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

덕담은 필수다.

마음 같아서는 가르침을 더 내리고 싶었으나, 할 일이 태산이었다.

“미안하네. 오늘 내가 너무 중요한 일이 있기에 이만 가봐야겠네.”

“서둘러 가십시오.”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게.”

환하게 웃으면서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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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원의 안색은 심각했다.

덩달아 허목의 안색도 심각했다.

“반계. 잘 되겠나?”

“여전히 온돌은 사대부가를 중심으로 보급되었을 뿐입니다. 이조차도 1~2칸에 불과합니다. 하물며 백성의 삶은 어떻겠습니까.”

유형원의 말대로 온돌은 대중적인 난방시설이 아니었다.

건국 직후만 하더라도 궁이나 사대부가에서도 한두 개씩 존재하거나, 군왕의 ‘성은’으로 공적 기구에 설치되었다.

그러다가 광해군과 인조 시절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전란을 거친 뒤 복구 과정에서 온돌이 채택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대중적 보급은 아니었다.

건국 초보다 더 많은 사대부가 사가에 온돌을 설치하였을 뿐 전체를 뒤덮은 건 아니었다.

한데, 유형원이 동부 지역부터 온돌을 도입하여 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것이다.

말 그대로 모든 건물에 온돌에 설치된 조선 최초의 신도시였다.

“사부님. 온돌을 사용하여 따뜻한 겨울을 경험한다면 어찌 도외시하겠습니까.”

“자네 말이 옳긴 하지. 겨울이 따뜻하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을 것이니까.”

사제의 대화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내 시선은 민가의 벽에 나 있는 구멍으로 향했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왔다.

온돌 아궁이의 반대편이 바로 우리가 서 있는 길가였기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한 곳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이러했다.

만일, 일제히 온돌을 사용하면 길가 전체가 연기로 가득할 수도 있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송구하지만 최선입니다.”

나의 속내를 짐작한 유형원의 말이었다.

“온돌 아궁이의 연기가 외부로 빠져야 합니다. 그런데 구멍을 달리한다면 연기가 이웃을 덮칠 것이니 길가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물론 길가를 지나갈 사람들은 불편할 겁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감내해야지요.”

너무 맞는 말이긴 한데 찝찝함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장차 대거 사용할 석탄이 화석 연료였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유형원의 말에 의하면 연기 구멍을 다른 방향으로 배치할 방법이 없다.

또, 달리 생각해보면 어디로 배치할지라도 석탄 연기가 허공을 배회한다.

편히 수긍하기로 했다.

“알겠네. 하면, 온돌 자체에는 탈이 없는 것인가?”

“지금은 그렇습니다. 다만, 흑토는 사용한 전례가 없으니 확실하게 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문제가 있겠나?”

“땔감과 불이 붙어 있는 시간 따위가 다를 겁니다. 그러니 흑토를 채취하여 직접 확인해봐야 할 듯합니다. 물론, 여러 기록에 의하면 땔감보다 훨씬 유용하니 거는 기대가 큽니다.”

유형원은 정말로 들떠 보였다.

사실 석탄의 화력을 떠나서 현실적인 부분으로 도입해야 할 시기가 도래하긴 했다.

산림의 채취를 자유롭게 하긴 하였으나 그간 여러 일을 진행하면서 엄청난 수량의 목재가 사용됐다.

수레 제작과 어선의 건조만 해도 그러했다.

물론 여기까지는 모두 예상 범위였다.

그러나 온돌을 크게 보급할 계획을 본격화한 이상,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요가 생길 것이니 땔감은 순식간에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땔감의 값은 미친 듯이 치솟을 것이니 애써 보급한 온돌이 무용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석탄이 간절한 상황이 되었다.

“한데, 본부장. 흑토의 채취는 어찌 되었소?”

위생국에서도 온돌의 보급에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겨울은 ‘건강’한 삶에서 필수적인 일이었다.

나는 시원하게 답변했다.

“우선 평양부의 흑토를 채취해야 하오.”

그 외 지역에서 탄광이 발견되면 모두 조정이 관할할 계획이었다.

다른 건 민간에 위탁할지라도 탄광은 절대로 예외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난세에 어찌 역을 부과할 수 있겠소? 하여, 훈련도감을 동원하기로 했소.”

“…….”

“…….”

허목과 유형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전시에 군대가 쉬면 되겠소?”

“…….”

“…….”

두 사람은 계속 말이 없었다.

그런데 훈련도감은 평양으로 가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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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대장 이완의 표정은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미안하긴 했다.

일국의 정예군을 채광에 동원했으니 말이다.

최소한의 도의적인 책임을 느꼈기에 진심으로 말했다.

“어명인데 어찌하여 내게 그러시오?”

“설마 내가 전하를 알현하지 않았다고 여기시오?”

“이런. 이미 사건의 전말(顚末)을 모두 아셨구려.”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뻔뻔한 나의 태도에 이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일국의 중추인 정예군인 훈련도감을 괄시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추가 비용을 발생하지 않고 수천 명을 동원할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군량을 운송하여 이미 백성으로부터 칭송받고 있소. 그러니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지요.”

“본부장. 사기라는 게 있소.”

“훈련대장이 잘 설득하시리라 믿소.”

“…….”

이완에게서 곤혹스러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좋게 넘어가려고 했으나 곤란할 듯싶었다.

“궁방이 가졌던 여러 이권에 군영과 군현의 진영에서도 크게 개입했소.”

“…….”

“한데, 모두 소멸하였으니 훈련도감의 병졸들은 공백을 마음껏 취할 수 있었을 것이외다.”

이완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그러나 이내 반박했다.

“법도를 어기는 일이 아니었소.”

“물론이오.”

“사익을 취한 건 아니었소. 그러나 여러 군관과 병졸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품앗이를 한 수준이오.”

“탓하는 게 아니라고 하였소.”

“백성의 칭송을 받는 훈련도감? 좋소. 다들 기뻐하였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계 이외의 영역이오. 작게나마 이익을 취하여 식솔을 먹여 살리던 병졸이외다. 이 수단을 모두 걷어간 상황에서 평양부의 흑토를 채취하라는 건 너무나도 가혹하오.”

“대체 언제부터 조선이 다 넉넉했소?”

“뭐요……?”

“사대부처럼 수기치인에 전념할 여유가 없는 그저 백성이기에 이해해야 하오? 생계를 지키고자 한 행동이니 그리해야만 하오?”

“다시 말하지만, 법도를 어기는 일이 아니었소. 또한, 궁방의 면세지를 거두는 일을 반대하는 게 아니외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이권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훈련도감의 수장으로서 병졸의 사기를 고려하는 것이외다. 이조차도 수용할 수 없소?”

“당연히 대가가 있소.”

“선왕 시절부터 공은 충신이셨소.”

전광석화였다.

피식 웃었다.

사실 이완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군인이라고 해서 요역에 동원되는 게 합당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평시라고 할지라도 훈련을 통하여 강군의 기세를 유지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있던 군영마저 모두 해산할 정도로 경신 대기근의 위세를 걱정해야 하는 마당에, 정상적인 사고로 매사 접근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대가라는 단어를 언급한 건, 그들 역시 위정자가 아니라 그저 백성에 속하기에 ‘사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를 대가라고 인식하려면 상당한 세월이 지나야 할 것이다.

“도성의 동부 지역이 크게 흥할 것이오.”

“사정은 들었소.”

“식솔들을 이주하여 부흥의 물결에 몸을 담게 해주겠소.”

“…….”

“후회하지 않을 것이오.”

이완은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선왕께서 경을 아주 싫어하셨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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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는 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평생 이렇게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어떤 생각을 하지도 않았건만 말이라는 것이 절로 만들어졌다.

“호판 대감으로부터 최종 승인이 내려졌네. 이제 본격적으로 왜국의 동을 가져올 것이네.”

마주한 변승업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도 참을 수 없는 기쁨이 흐르고 있었다.

“매년 1백여만 근을 원하는 듯하더군. 감당할 수 있겠나?”

“해내야지. 상단의 기둥을 뽑아서라도 해낼 것이네.”

“거. 그 말이 아니라 내가 좀 보태도 된다는 말일세.”

“내 말도 그 말이 아니라 은근슬쩍 숟가락 올리지 말라는 말일세.”

“끙.”

“잊었나? 왜국과 청국의 무역을 나누기로. 저 넓은 중원의 이익을 자네에게 양보했는데 어찌 이리 욕심을 부리나?”

“아무리 중원이 넓고 물산이 풍부한들 조선의 상단일세. 화폐 주조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동무역의 독점보다 이권이 크겠나?”

변승업의 말대로였다.

이미 조선은 동으로 동전을 주조할 계획을 수립했다.

이때 동을 보급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권한이다.

동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익이었다.

물론, 당장은 큰 손해를 감내하겠지만 말이다.

김근행은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그런데 자네 선택이었네.”

“끙.”

“그러나 그게 중요한가?”

“그건 그렇지.”

동전의 전면적 보급이 이들에게 의미하는 건 한가지였다.

“평상 바랐네. 상업국(商業國) 말일세.”

“그렇지. 사농공상이라는 말에 짓눌리며 숨을 죽여야만 하는 세상이 아니라 상업이 제 위치를 찾는 나라, 우리의 꿈이지.”

“하하하. 이리될지 누가 알았겠나?”

“자네와 나는 조선 상단사에 길이 남을 것이네.”

두 사람의 웃음이 달을 젖혔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다만 경거망동해서는 곤란하네.”

“물론일세. 늘 자중해야지. 조선은 왕명으로 상단을 영원히 지울 수 있는 나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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