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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81화 (181/298)

181화 송자, 착취(搾取)의 시대(1)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너무나도 가혹한 존재였으나 겉모습은 참으로 맑다.

“…….”

개혁(改革).

누군가의 이권을 뺏어 다른 이의 곳간을 채우는 싸움을 고아하게 표현한 단어였다.

평시라면 작금의 개혁 중 하나를 추진하려고 할지라도 정파의 명운을 걸어야 할 정도로 강도 높은 것이었다.

힘겹게 집행하더라도 효과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기에 늘 위태로웠다.

그러나 절대 왕권의 구축, 중대본의 수립 그리고 송자가 탄생한 작금의 조선이 잉태한 개혁의 운명은 달랐다.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백 번을 되돌아봐도 이 땅의 역사에서 작금의 조선처럼 동시다발적인 개혁이 집행되었던 때는 없었다.

이는 분명한 쾌거였기에 ‘조선인’들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늘이 난세를 개막하였다고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과를 도출하고 있으니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시기가 걸릴지라도 개혁의 단호한 집행은 점차 성과가 나타날 것이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오직 나만이 경신 대기근이라는 미증유의 재앙이 도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여, 모든 이가 개혁의 과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더라도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무릇, 개혁의 과실을 추수하는 시기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개혁과 개혁을 일궈내느라 단일 대오는 구축하지 못했고, 전선은 분명하지 않았다.

이러할 때 작게라도 추수하지 못하였는데 대기근이 도래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조선은 파멸적 결과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 속도를 내야 했다.

오늘처럼 말이다.

어느새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관인들은 내게 예를 취한 뒤 바쁘게 움직였다.

육조거리 끝에서 상당한 규모의 인원이 다가왔다.

바로 오늘 저들의 손끝에서 조선은 새로운 역사를 창출할 것이다.

등을 돌렸다.

나는 나의 일을 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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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복을 입은 관리를 제외하더라도 십수 명의 인원이었다.

그들 중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변승업과 김근행이었다.

오랜 세월 다진 친분이 있기에 두 사람은 방긋 웃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내용은 예사롭지 않았다.

“해서, 어찌할 생각인가?”

“이보게. 지금 자네와 나는 경쟁자일세. 한데, 뭘 그렇게 물어보나?”

“어차피 내놓을 쌀의 수량을 변경할 계획은 없지 않나? 그러니 우리끼리 의견 교환을 하자는 걸세.”

“어림도 없네. 필시 내가 준비한 수량을 알아서 한 석이라도 더 적으려는 게 아닌가?”

“아닐세. 내가 어찌 그러겠는가?”

“되었네. 저리 가게.”

김근행의 단호한 태도에 변승업은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자네는 왜국의 동을 독점할 권한을 가졌잖은가. 한데 갑산동광까지 탐하는 건 과하네.”

“상인이 다다익선을 좇는 건 당연한 일일세.”

“아니, 과해서 하는 말일세. 세상 사람들이 욕할 걸세.”

“자네가 할 말인가?”

치열한 신경전도 아니었다.

대놓고 포기와 양보가 언급됐다.

다른 상인도 딴 곳을 쳐다보면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변승업과 김근행이 조정과 가장 가까운 상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담은 오래갈 수 없었다.

“모두 내 말에 집중하게.”

호조판서 허적이었다.

다소 산만하던 분위기는 일순간에 정적이 일었다.

“규칙은 간단하네. 가장 많은 수량의 쌀을 적어내는 상단이 향후 5년간 함경도 갑산동광의 채광권을 가지게 될 것이네.”

이미 내용은 전달받았다.

그런데도 허적의 입에서 다시 언급되자 상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질의를 허락하겠다.”

“대감. 청국과 왜국의 무역이 활성화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말에 의하면 특정 상단이 독점하는데 오늘 입찰에서 참여했습니다. 대감. 이리하면 군소 상단이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왜국 무역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한데, 청국 무역은 아직 공식화하지 않았는데 어찌 알고 있나?”

“예……?”

“누가 감히 조정의 대사를 민간에서 함부로 떠드는가.”

“소, 송구합니다.”

물음의 의도를 지워버리는 서슬 퍼런 답변이었다.

자라목을 한 상단주의 안색은 하얗게 질렸다.

동시에 변승업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여기저기 말을 옮긴 건 아니지만, 내용을 관계자에게 전달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 결국 말이 샌 것이다.

허적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언질은 없었다.

“5년간 동광에서 마음껏 채광하되, 그 수량만큼 조정에 조세를 내게 될 것이다.”

“기간이 아니라 채광하는 동의 수량만큼 조세를 내는 것입니까?”

“물론이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상단이기에 광산에서 최대한 많은 동을 캘 계획이었다.

그러니 상단으로서는 정액화가 좋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만을 표출할 수는 없었다.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원치 않으면 참가하지 말게.”

허적은 정말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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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1석 차이였다.

겨우 이 차이로 갑산동광의 이권이 김근행에게 넘어갔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변승업은 한숨까지 푹푹 쉬었다.

“거. 땅 꺼지겠네. 그만하시게.”

“끙.”

“이보게. 그러니 2석만 더 적어서 내지 그랬나? 대체 2석이 뭐라고 그렇게 아끼셨나? 쌀도 많은 사람이. 하하하!”

김근행의 호방한 웃음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변승업은 눈을 부라리면서 말했다.

“부디 땅 파고 들어갔더니 동이 정말 조금만 있길 바라겠네. 간절하게.”

“차라리 악담하시게.”

“악담일세.”

“허.”

“폭삭 망했으면 좋겠네.”

“그건 곤란하지.”

두 사람의 사담에 개입한 사람은 역시 허적이었다.

변승업은 흠칫하며 몸을 숙였다.

“김 역관. 무운을 빌겠네.”

“감사합니다. 대감.”

“그나저나 조선의 동은 자네가 모두 가지겠군.”

“소인은 그저 대감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바람직하군.”

허적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따라오게.”

“그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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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금권은 언제라도 정치를 흔들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세속적인 유혹에는 눈 하나 꼼짝하지 않을 철혈의 대신이라면,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니 허적의 말마따나 조선의 동을 독점하였다고 한들 정치권력과는 아예 결이 달랐다.

누구보다도 이런 현실을 잘 아는 김근행은 작은 교만함도 보이지 않았다.

자세를 낮추고 허적의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 계획을 들을 수 있겠나?”

“대감. 아직 갑산동광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 아닙니다.”

“이보게. 월 100근이 나올 수도 있고, 월 1,000근이 나올 수도 있네. 이처럼 수량은 알 수 없으나, 동은 무조건 나오지 않겠나? 나는 이걸 묻는 걸세.”

물음의 요지는 갑산동광 백성의 생계를 어찌 책임질 것이냐는 것이었다.

진땀이 절로 나오는 압박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허적의 요구는 참으로 노골적이었다.

그러나 대답을 회피할 수는 없었다.

“각 성련간마다…….”

“가장 크게 잡게.”

“각 성련간마다 월 1,000근을 생산한다면 연간 40~50만 근의 동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계속하게.”

“갑산동광 인근은 2,000여 명이 거주하는 촌락을 이룰 것입니다. 또한, 광부 40명, 운반부 20명, 지주부와 배수부 10명, 제련부 320명 등을 두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렇게 준비해보지.”

“대감. 이는 소인의 장담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준비하여 부족하다면 다른 길이 있지 않겠나?”

“다른 길이라고 하셨습니까?”

“인근에 어찌 광산이 그곳만 있겠나?”

“하면…….”

“그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게 더 내어줄 것이니 해보자는 말일세.”

이러면 상황이 완벽하게 달라진다.

비로소 김근행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소인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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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가에 반가운 사람들이 찾아왔다.

나는 진심으로 반기며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이네. 개성에서 보고 처음이군.”

“예, 예. 대감.”

“뭘 그렇게 어려워하나? 다들 편히 앉게.”

“예, 예. 대감.”

나의 흐뭇한 미소를 유발하는 이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순수 혈통의 무당파였다.

그러니까 진짜 무당들이었다.

“보아하니 내 말을 잘 수행했더군.”

“그, 그저…….”

“되었네. 어차피 안 믿으니까.”

“…….”

“기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네.”

“그렇습니다. 대감.”

“백성의 불안함이 더 커지고 있네.”

“그렇습니다. 대감.”

“나는 백성이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한데, 소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러나?”

“예?”

조선의 위대한 길에는 샤머니즘도 함께할 것이다.

왜……?

이들이야말로 백성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신탁(神託)을 내릴 수 있는 존재니까.

“사대부의 교화는 듣고 싶지 않은 명령이지만, 자네들의 신탁은 다르지 않나?”

“예?”

“이유 여하를 떠나서 자네들의 말을 백성들이 아주 잘 듣는다네.”

“대감. 그건…….”

“오늘부터 굿을 하게. 손을 씻지 않거나 위생 수칙을 어기면 역병이 창궐할 것이라고, 흉흉한 신탁을 내리라는 말일세.”

고로 역병의 창궐은 위생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는 상당히 ‘과학적’인 분석이 민간을 지배할 것이다.

물론 황당한 무당들의 표정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결론을 말했다.

“대가는 없네.”

“아…….”

“살다가 곤혹스러운 일이 있으면 여기에 들르게.”

물론, 이 정도 서비스는 해줄 수 있다.

과연 무당들의 표정이 한결 좋아졌다.

송자가 뒷배라는 유리한 해석이 뇌리에 꽂혔을 것이니까.

화기애매하게 마무리했다.

홀로 남아서 기분 좋게 읊조렸다.

“이제 또 누구의 고혈을 쥐어짜야 할까…….”

그랬다.

막상 송자가 되고 나니까 조선은 ‘착취’할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았다.

아주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

막상 착취를 본격화하려니 스치는 게 있었다.

“이런 아둔한 놈을 봤나.”

심장이 울렁였다.

내가 왜 여태까지 이들을 놓쳤을까?

아니, 놓친 게 아니라 그냥 방치한 것이다.

조선에서 이들이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정말 어이가 없구나.”

다만 귀찮아질 뿐이었다.

우선 이연부터 만나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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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이연은 헛웃음을 집어삼키며 황당함을 감추지 않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에서도 확실한 당혹감이 담겨 있었다.

“설마 농을 하는 것이오?”

“허. 전하. 신이 어찌 감히 농을 하겠사옵니까.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옵니다.”

“진심이시오?”

“물론이옵니다. 하옵고 내키지 않으시면 윤허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교지에 옥새만 찍어주시옵소서.”

“교지를 내리지 않으면 어찌할 것이오?”

선수끼리 왜 이러실까?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사직 상소와 사모(紗帽)를 올리고 사라질 것이옵니다.”

“차라리 옥새를 가져가지 그러오?”

“참으로 명쾌하시옵니다.”

“썩 물러가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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